DEMON RAW novel - chapter 102
“회주, 다녀왔습니다.”
혈영이 조용히 허리를 숙이며 말하자 그제야 혈마자의 고개가 책에서 떨어졌다.
“그래, 어떻게 하고 있더냐?”
“대충 마음은 정리가 된 모양입니다.”
“눈치챈 건 아니겠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들이니까요.”
혈영의 말에 혈마자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네게 맡기길 잘했군. 수고했다.”
혈마자의 칭찬에 혈영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럼 이제 슬슬 그놈들을 잡아야지. 월영에게 벗을 수 없는 굴레를 씌워준 그놈들에게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나. 허허헛.”
혈마자의 부드러운 웃음에 혈영은 살짝 소름이 끼쳤다.
“존명.”
혈영의 몸이 꺼지듯 사라졌다. 혈마자는 잠시 혈영이 있던 자리를 쳐다보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천기진해라, 대단해. 정말 대단해. 이거라면 한동안 심심하지 않겠군. 허허허헛.”
혈마자의 웃음소리가 방 안에 가득 울렸다. 이내 그곳에는 조용히 책장 넘어가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단형우 일행이 취월의 거처로 안내된 것은, 그들이 팽가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사실 팽가는 지금 종칠 때문에 난리가 난 상태였다. 검왕은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종칠은 검왕의 제자였다. 지금까지 검왕이 제자를 키웠다는 소문은 돈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검왕의 첫 번째 제자라는 뜻이다. 그런 자를 박대했으니 팽가에서 신경이 쓰일 만도 했다.
게다가 대련을 빙자해서 목숨까지 위협하는 상황을 검왕에게 들켰으니 가주를 비롯한 장로들의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이대로는 원하던 것을 손에 넣기는커녕 자칫하면 검왕과 원수가 될 판이다.
팽가 가주는 취월에게 모든 것을 맡겨 버렸다. 그라면 이 난관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했다.
어쨌든 일행은 팽가 무사들의 공손한 안내를 받으며 취월의 거처가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호오, 훌륭한 정취로군.”
검왕은 그곳의 풍경을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그야말로 검왕의 취향에 상당히 근접하는 풍광이었다.
검마마저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으니 대단하긴 대단했다. 물로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뭔가 고리타분한 사람일 것 같아.”
우문혜의 말에 당문영과 염혜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아가씨들 취향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정취이긴 했다. 하지만 제갈린만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놀랍군요. 이곳에 있는 사람이 분명해요.”
제갈린의 말에 일행이 그녀를 쳐다봤다. 제갈린은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팽가에 도사린 진을 설계한 사람이요, 틀림없어요. 그냥 작은 정원을 꾸민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는 진이 설치되어 있어요. 그것도 꽤 대단한.”
제갈린이 놀랄 정도라면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그제야 일행은 새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하하, 과연 백봉이로군요. 대단한 안목입니다.”
전각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바퀴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 취월이었다. 사람들은 취월의 모습에 살짝 놀랐지만 입을 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들 서 계시지 마시고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취월의 말에 일행은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을 안내한 팽가 무사들은 조용히 물러갔다.
전각 안에 들어선 일행은 단출한 내부에 또 놀랐다. 취월은 팽가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팽가가 돈을 아낄 리 없다. 세가 전체에 진을 설치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에게 인색하게 굴 팽가가 아니다.
“번잡한 걸 싫어해서 보잘 것 없습니다. 이해애 주시길.”
취월은 마치 일행의 마음을 읽고 있는 듯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데 분위기만으로 정확하게 집어내 말을 꺼낸다.
“이렇게 좋은 분들이 모였는데 술이 없으면 허전하지요.”
그렇게 말한 취월은 능숙하게 의자를 움직여 탁자 위에 술과 잔을 늘어놓았다.
손님을 들이면 차를 내놓는 것이 보통이다. 헌데 취월은 자신의 별호에 걸맞게 술을 차린다. 일행은 그 기묘한 어울림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친구로군.”
검왕의 말에 취월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검왕께서 그리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내 탁자 가득 술과 안주가 차려졌다. 취월은 모든 것을 혼자서 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고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이건 또 이것대로 대단하지 않은가.”
검마조차 그런 취월의 모습에 탄성을 자아냈다. 어쨌든 취월은 그렇게 해서 일행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취월은 일행이 모두 탁자 주변에 앉은 후에야 의자를 움직여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부드러운 눈으로 일행을 둘러봤다. 그저 부드러운 눈이었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움이 숨어 있었다.
검왕이나 검마 정도 되는 사란이 그런 날카로움을 발견해내지 못할 리 없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취월이라는 사내에게 감탄했다.
취월의 시선이 단형우에게서 멎었다. 취월의 눈이 살짝 커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회에서 그렇게 강조하던 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뭐가 특별한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혼자서 마영대와 검영대를 몰살시킨 대단한 자로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취월은 다른 사람에게 들킬 새라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 잔 술로 그것을 축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취월은 급히 잔을 들어올리며 말을 꺼냈다. 일행들은 대부분 별다른 생각 없이 취월을 따라 잔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몇 순배 술이 돌고 나니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꽤 독한 술이었는지 금세 취기가 올라온 것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취월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했다.
검왕과 무(武)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제갈린과 진(陳)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당호관이나 당문영과 독과 암기에 대해 설파하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일행은 모두 취월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취월은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다가 문득 단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단대협께서는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지요.”
그때까지 한 마디도 안 한 사람은 단형우뿐이었다. 심지어는 염혜미마저도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는데 단형우만 굳게 입을 다문 채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듣는 게 좋으니까.”
단형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취월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으니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다른 일행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파악이 끝났다.
사람은 말을 하다보면 아무리 철갑을 둘렀다 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빈틈을 보이게 된다. 그 빈틈을 살짝만 파고들면 상대가 모르게 상당한 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대화의 기술문제이긴 하지만 취월은 그것이 상당히 능숙했다.
그런데 단형우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뭔가 말을 해야 파고들 틈이 있을 텐데 아예 입을 열지 않으니 그 어떤 것도 시도해 볼 수가 없지 않은가.
취월은 당황함을 접고 다시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이미 신경이 온통 단형우에게 가 있기 때문에 그다지 영양가 있는 대화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파악할 수 없었다. 적어도 취월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이 있어야 파악이 가능한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취월은 단형우 외에 제갈린에게도 큰 호기심이 일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진법에 대한 지식은 이미 취월을 넘어선 듯했다. 취월이 판단하기에 그랬다. 이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취월은 아주 어릴 때부터 혈마자에게 진법 교육을 받았다. 비록 천기자보다는 못해도 혈마자는 현존하는 모든 진법가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취월의 천재적 재능에 좋은 스승을 만났으니 그 능력이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취월이 스승인 혈마자를 넘어선 지도 꽤 오래되었다.
헌데 그런 취월을 능가하는 소녀라니. 아무리 제갈세가라지만 이건 거의 불가능할 일이었다.
“이런, 어느새 날이 저물었군요. 제가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취월의 말에 일행은 그제야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취월과의 대화가 즐거워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것이다.
“허허, 오늘 정말 내 좁은 안계를 훤히 넓혔군.”
검왕은 그렇게 오늘의 대화를 평가했다. 그 말에 나머지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취월에게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았다. 그의 몸이 불편해서 더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
“제가 몸이 이래서 멀리 나가지는 못합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취월의 말에 모두 일제히 손사래를 쳤다.
“별 말씀을.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푹 쉬도록 하세요.”
조설연이 일행의 대표 격으로 인사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취월이 상당히 피곤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전각에서 몸을 뺐다.
취월은 가장 마지막으로 나가려는 제갈린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갈소저와는 나중에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눠 보고 싶군요.”
제갈린은 취월의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빙긋 웃었다. 그녀 역시 취월과 좀 더 깊은 얘기를 해 보고 싶었다.
취월과 대화를 하다보면 천섬을 연구하며 얻는 것과는 조금 다른 깊이가 생길 것 같았다. 그것은 진법가로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내일 일찍 찾아올게요.”
제갈린은 그렇게 대답하고 밖으로 나갔다. 취월은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취월 역시 제갈린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제갈린과 취월이 보는 진에 대한 관점은 전혀 다르다. 역시 마찬가지로 취월 역시 또 다른 깊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형우는 일행들과 걸어가면서 깊은 사색에 잠겼다. 오늘은 단형우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것들이 대화의 주제로 떠올랐고, 단형우는 그 모든 것을 그저 듣기만 했다.
그는 이제 천천히 그것들을 곱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 깨달음을 얻었은데, 오늘의 일은 그것들을 더욱 확고히 다져 주었다.
단형우는 다른 사람들보다 아는 것이 훨씬 모자라다. 힘이라면 누구보다 강할지 모르지만 지식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여러 지식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단형우에게는 선입견이라는 것이 없다. 즉,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저절로 되어 있는 것이다.
“재미있군.”
단형우는 계속 상념에 잠긴 상태로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 크고 환한 미소라 주변에 있던 일행들이 모두 놀랄 정도였다.
오늘의 대화를 통해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은 바로 단형우였다.
다음날 아침, 아니 거의 새벽에 가까운 시각 제갈린이 거처를 나섰다. 제갈린은 망설임 없이 취월의 거처로 향했다.
어제도 천섬을 연구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염혜미가 수련을 열심히 해서 드러난 선이 더 많아진 것도 도움이 되긴 했지만, 진짜는 취월과의 대화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다.
마치 앞을 막아선 벽 하나를 부순 듯한 기분이었다. 그 흥분 때문에 밤에 제대로 잠도 못 잤다. 덕분에 새벽같이 일어나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취월에게로 향한 것이다.
취월의 거처는 새벽에 봐도 어제와 마찬가지의 정취가 묻어났다.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든 티가 났다.
제갈린은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취월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제갈린이 결국 힘없이 돌아서려는 순간, 전각의 문이 활짝 열렸다.
“설마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갈린은 깜짝 놀란 눈으로 취월을 쳐다봤다. 취월은 훨씬 일찍 일어난 듯, 의관을 제대로 갖춰 입고 예의 그 바퀴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 제가 너무 일찍 찾아왔죠?”
“아닙니다. 저도 어제는 잠을 이루기 어렵더군요. 제갈 소저 덕분에 진법을 바라보는 새로눈 눈이 떠진 기분입니다.”
제갈린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취월이 대신 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 역시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았던가.
“아직 새벽이슬이 차갑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취월의 말에 제갈린이 빙긋 미소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지은 그녀의 미소는 그 누구의 것보다 아름다웠다.
취월과 제갈린은 정말 열정적으로 토론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또다시 서로에게 감탄했다.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두 사람은 마치 벽을 하나 부순 것처럼 수준이 올라가 있었다.
수준이 높아지면 보는 눈도 달라진다. 그들은 상대의 대단함을 훨씬 더 잘 알게 되었다.
“제갈소저의 나이에 이런 대단한 경지라니 정말로 놀랍습니다!”
취월의 진심어린 감탄에 제갈린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취월공이야말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는지……”
두 사람이 그렇게 서로에게 감탄하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취월공! 무슨 일 있나요? 왜 대답을 안 하세요?”
그 소리에 취월과 제갈린은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팽미령의 목소리였다.
“이런, 너무 대화에 집중해서 팽소저가 보르는 소리도 못들었나 봅니다.”
취월의 말에 제갈린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문을 열도록 하죠.”
제갈린은 취월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급히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팽미령과 마주쳤다.
팽미령의 눈이 커졌다. 지금은 꽤 이른 시간이다. 이런 시간에는 보통 방문하지 않는 법이다. 헌데 분위기를 보니 꽤 오랫동안 함께한 듯하지 않은가.
팽미령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제갈린은 팽미령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으니까. 물론 제갈린이 무림맹보다는 주로 제갈세가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 자주 마주칠 일은 없었기에 친분이 있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죠?”
팽미령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가득했다. 아무리 감정을 조절하려 해도 잘 안 된다.
반면 제갈린은 너무나 여유러웠다. 자신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취월 공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제갈린 역시 팽미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냥 굽히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제갈린 역시 백봉이라 불리며 지금까지 추앙만 받아온 여인 아닌가.
팽미령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대답이 궁색했다. 당연히 문제가 있었다.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취월에게 꼬리를 치고 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면 뭔가 문제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비켜요.”
팽미령은 그렇게 말하며 제갈린을 슬쩍 밀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제갈린은 굳이 팽미령을 막을 생각이 없었기에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팽미령은 취월을 향해 걸어갔다.
“팽소저가 오셨군요.”
“그냥 보고 싶어서요.”
팽미령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제갈린을 본 덕분에 마음속에서 다급함이 인 탓이다. 평소 같았으면 결코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취월은 팽미령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취월의 머릿속에는 온통 진법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팽소저, 죄송하지만 중요한 볼일이 없으시다면 다음에 오시겠습니까? 오늘은 제갈소저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취월의 말에 팽미령은 마치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