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05
어쨌든 이곳에서는 모용세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은 편이 좋았다. 설사 그것이 정말로 별것 아닌 거라 할지라도.
객잔 2층에 오른 검왕은 그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2층은 1층에 비해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층은 1층보다 훨씬 비싸니 당연했다. 같은 요리를 시키는데도 돈을 더 줘야 하니 보통 사람들이 2층에 오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검왕은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객잔에서도 검왕처럼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2층과 3층을 만든 것이다.
“좋군.”‘
검왕은 마음에 드는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밖이 잘 내다보이는 창가였다.
일행이 대충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예쁜 소녀가 다가와 주문을 받앗가. 이것이 1층과는 차별된 대접이었다.
어느새 음식이 가득 차려졌다. 그리고 식사를 시작했다.
단형우는 평소와 다름없이 신중하게 맛을 음미했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은 그런 단형우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앞에 있는 음식들을 깨작거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궁금증이 너무 증폭되어 버렸다. 덕분에 별로 식욕도 없었다. 아무도 뭔가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식사시간이 끝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일행에게는 지루한, 하지만 단형우에게는 즐거운 식사시간이 끝났다. 일행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 이제 슬슬 움직일까?”
검왕의 말에 조설연이 조심스럽게 단형우를 쳐다봤다. 다른 일행도 조설연을 따라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하지만 조설연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감돌았다.
“오늘은 쉬고 내일 아침에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설연의 말에 일행 모두의 고개가 바람 소리를 내며 조설연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의 눈은 커질 대로 커진 상태였다. 하지만 조설연은 그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단형우가 몸을 돌려 한 걸음 걸었다.
일행은 단형우가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우문혜는 살짝 분한 표정으로 조설연을 쳐다봤다. 이건 분명히 단형우의 표정을 보고 기분을 읽어낸 것이 분명했다. 자신은 하지 못했는데 조설연은 너무 쉽게 그것을 해냈다.
제갈린 역시 크게 놀랐다. 하지만 우문혜처럼 분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
제갈린은 자신했다. 자신은 분명히 단형우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단형우는 홀로 방에 서서 검을 살피고 있었다. 단형우가 오늘 하루를 그냥 쉬고 싶어 했던 것은 이렇게 검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검집은 침상에 던저둔 채로 검을 들고 날을 비롯한 검의 모든 곳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을 함께했던 검이다. 물론 실제로는 시간이 십 년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찌만, 그래도 단형우가 몸으로 체험한 시간은 그의 수십 배가 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단형우와 함께했던 검이다. 그런 검에 애정이 없다면 거짓이다.
사실 현재 단형우의 경지에서 검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손가락만으로도 삼재검법을 펼칠 수 있고, 마음만으로도 그것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검이 없다면 허전할 것이다.
단형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맴돌았다.
“오늘이 마지막이군.”
나직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단형우는 천천히 걸어 밖으로 나갔다. 객잔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후원에는 넓은 뜰이 펼쳐져 있었다.
뜰 한가운데 선 단형우는 다시 검을 들고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살짝 검을 떨쳤다.
파지직.
미약한 뇌기가 검을 타고 흘렀다. 평소 보여주던 천뢰와는 전혀 다른 기의 운용이었다.
천뢰는 자체적으로 뇌기를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기운을 이용해 뇌기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단형우 몸속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자연스럽게 뇌기를 형성했다.
파직. 파직. 파지지직!
가만히 검을 들고 있는데 검에서 격렬한 뇌전이 흘러나갔다. 그 뇌전은 마치 뱀처럼 요동치며 땅으로 스며들었다.
단형우가 검을 들어올렸다.
번쩍!
어마어마하게 강렬한 뇌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우르르르.
은은한 뇌성이 뒤를 이었다.
그 소리와 기의 흐름에 놀란 일행들이 하나둘 후원 뜰에 나타났다. 단형우와 한참의 거리를 두고 멈춰선 일행은 눈을 크게 뜨고 단형우를 지켜봤다.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일행의 눈에 짙은 호기심이 어렸다. 그들은 단형우의 검무를 기대했다. 검왕이나 검마가 추는 검무를 봐도 거의 기연이라 할 만한다. 단형우가 추는 검무는 과연 어떨 것인가.
그 기대에 찬 눈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형우는 그저 가만히 검을 들고 서 있었다.
파지직.
그리고 검에 다시 뇌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스스로의 기로 만든 뇌기였다.
뇌전의 그물이 하늘을 가득 메워가기 시작했다. 해가 져서 어둑어둑한 하늘이 뇌전으로 휩싸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하늘에서 부서져 내렸다.
제갈린은 그 광경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저것은 분명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예전 배를 타고 동정호에 들어섰을 때, 단형우가 천섬을 들고 보여줬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설마 천섬의 힘이 아니라 단공자님의 힘이었단 말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제갈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절대 아니었다.
천섬을 연구하면 할수록 당시 그것은 천섬에 깃든 힘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거의 확신이 섰다.
‘정말 대단한 분이야.’
제갈린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단형우의 검에서 만들어진 벼락들이 하늘을 유영했다. 파직거리는 소리를 떨어뜨리며 벼락은 거칠게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한순간 벼락이 한곳으로 모이더니 하늘 높이 뻗어 나갔다.
번쩍!
너무나도 빠른 움직임이었다. 벼락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갔는지, 아니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는지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적막이 찾아왔다. 단형우는 여전히 검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채 서 있었고, 일행들은 할 말을 잊은 채 그것을 지켜봤다.
화르륵.
그리고 단형우의 검에서 이번에는 불길이 솟았다. 일행의 눈이 다시 커다래졌다.
단형우가 이러저리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궤적에 맞춰서 불길이 뻗어 나갔다. 이번에는 시뻘건 불덩이가 하늘을 가득 메웠따.
“대체….. 저 능력의 끝에 뭐가 있을지……”
검왕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일행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정말로 단형우 때문에 많이 놀랐지만, 오늘의 놀라움은 또 새로웠다.
하늘을 가득 메운 불덩이가 한순간 사라졌다. 하지만 그 후끈한 열기는 여전히 후원에 남아 있었다.
또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그대 단형우의 검에서 새하얀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허억! 이럴 수가!”
검왕과 검마의 입에서 동시에 경악이 터져 나왔다. 단형우의 검에 어린 기운은 세상을 모두 얼려 버릴 듯한 극빙(極氷)의 기운이었다.
쩌저저적!
검에서 얼음이 터져 나왔다. 사방이 싸한 한기로 가득 찼다. 검에서 뻗어 나온 얼음의 가지들이 후원을 가득 메웠다. 그 얼음에서 흘러나온 차가운 기운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일행들을 떨리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쩡!
한순간 얼음이 동시에 깨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한 사람이 극양의 기운과 극음의 기운을 동시에 가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그 두 가지 기운을 동시에 다루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에 가깝다.
한데 단형우는 그것을 어렵지 않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단형우의 검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대체 뭘……’
동시에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극음과 극양을 보여줬고, 그 두 가지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기운인 뇌(雷)를 보여줬다.
단형우의 검에서 음습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이것은 섬득하기 그지없는 마기(魔氣)였다. 마기가 얼마나 짙은지 검이 새까많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 순간 일행을 더 놀라게 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검의 절반이, 그러니까 검신을 세로로 나눴을 때, 오른 쪽에 해당하는 부분이 갑자기 새하얗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히 빛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느껴졌다. 일행은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이건…… 선기(仙氣)인가?”
검왕이 중얼거렸지만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성스러움으로 가득 찬 기운이었다. 그래서 마치 검이 하얗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검고 흰색이 어우러진 검을 들고 있는 단형우의 몸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보였다. 두 기운이 이리저리 뒤엉키기 시작했다. 단형우의 몸과 검은 순식간에 검은 색과 흰 색으로 뒤덮었다.
기묘한 곡선을 이루며 단형우의 몸을 채워 나가던 두 색깔은 주변조차 자신들의 색에 걸맞게 변화시켰다.
사방이 음습한 기운과 깨끗한 기운으로 뒤섞여 나가기 시작했다.
일행은 그 광경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뭔가 중요한 깨달음이 일행 전체를 덮친 것이다.
단형우는 그렇게 검을 휘두르며 세상을 흑과 백으로 채워나갔다.
화아악!
일순간 세상이 그것들로 꽉 채워졌고, 그대로 사라졌다.
단형우는 가만히 서서 조용히 검을 훑어보고 있었다.
일행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깨달음으로 모두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일행 주변으로 기묘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그 기운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일행 사이를 힘차게 휘돈 후, 사라졌다.
단형우는 기운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모두 끝났다. 검과 맺은 인연이.
다음날, 상당히 이른 아침에 모든 일행이 후원 뜰에 모여있어다. 단형우는 아직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다. 방문을 열고 확인하면 되겠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어젯밤의 단형우는 정말로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 경이가 아직도 남아 함부로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왜 우리가 더 조급한지 모르겠군. 허헛.”
검왕이 약간 허탈한 웃음을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사실 단형우가 경이롭기는 하지만, 그만큼 허탈하기도 했다. 단형우와 검왕은 지나온 세월의 깊이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단형우가 훨씬 앞서 있다. 모든 면에서. 검왕이 단형우보다 앞선 것은 나이가 많다는 것과 세상을 더 많이 겪었다는 것뿐이었다.
“너무 시간이 이른 걸까요?”
당문영이 하늘을 보며 물었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이었다. 환하긴 했지만 해가 뜨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잠도 안 올 테니 이른 시간도 아니지 안느냐. 허헛.”
당호관의 대답에 모두가 수긍했다. 지난 밤 아무도 잠을 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눈을 감고 밤을 지새웠다. 새로운 깨달음을 음미하는 시간은 꽤 길었다.
단형우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게 해서 잠겨든 명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깨달음을 음미하는 시간은 너무나 달콤했다. 순식간이라 생각했는데 눈을 뜨니 세 시진이나 지나 있었다.
남은 시간은 잠을 자 봐야 별 의미도 없다. 당연히 이렇게 단형우를 기다리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나저나 단공자님은 아침에 상당히 일찍 일어나는 편이신데……”
제갈린의 말에 일행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단형우의 방에서는 분명히 기척이 느껴졌다. 검왕과 검마가 단형우의 그 익숙한 기운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상대는 단형우다. 검왕이 급히 몸을 날려 방문을 벌컥 열었다.
검왕의 얼굴에 짙은 허탈감이 덧씌워졌다.
“벌써 갔군.”
방 안에는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단형우의 기척도 느껴졌다. 사람은 없고 기척만 남았으니 이 또한 신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신기함에 눈을 빛낼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빨리 쫓아가죠. 어차피 모용세가 쪽으로 갔을 테니까요.”
우문혜가 그렇게 말을 한 순간, 일행은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새벽이라고 해도 될 만한 아침이었다.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마음 놓고 경공을 전개해 모용세가로 향했다.
단형우는 일행이 채 명상을 끝내기도 전인 새벽에 객잔을 나섰다. 아무도 모르게 움직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으니, 들키지 않고 나오는 것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저 한 걸음만으로 객잔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객잔에서 나온 단형우는 가만히 주변에 흐르는 기운을 살폈다. 그리고 주저 않고 한쪽을 향해 걸어갔다. 합일을 이용해 한 번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걷고 싶었다.
천천히 걷던 단형우가 걸음을 멈췄다. 단형우 앞에는 거대한 장원이 펼쳐져 있었다. 단형우는 장원을 감싼 벽을 따라 걸어갔다. 그 끝에 작은 대장간이 하나 있었다.
대장간 옆에는 장원과 통하는 문이 나 있었는데, 장원에서 쓸 물건들을 대장간에서 만들어 공급할 때 쓰는 문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단형우는 거침없이 대장간을 향해 걸어갔다. 익숙한 느낌이 대장간에서 풍겨 나왔다. 그동안 잊고 있던 친구의 느낌이었다. 친구에게서 항상 나던 철의 향기였다.
다른 대장간에선 결코 느낄 수 없었던 향기이기도 했다. 그동안 겪었던 다른 대장간에서 났던 철 냄새와는 많이 달랐다.
땅! 땅! 땅! 땅!
아직 이른 새벽인데도 망치질 소리가 대장간을 울렸다. 친구와 함께할 때는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이지만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단형우는 대장간 앞에서 망치 소리와 함께 친구를 떠올리며 한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발을 움직여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대장간 안에는 구릿빛 근육이 꿈틀대고 있었다. 근육들이 물결칠 때마다 어김없이 망치 소리가 울렸다.
땅! 땅! 땅!
단형우는 가만히 서서 망치질 하는 사내는 바라봤다. 단형우가 안에 들어섰음을 사내가 알아차렸음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땅! 땅! 땅!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단형우는 여전히 망치질을 하고 있는 대장장이의 등을 바라봤다.
친구가 항상 원했던 광경이었다. 깊이 침잠해 있던 기억들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친구가 항상 말하던 풍경이 바로 이랬다.
단형우는 고개를 돌려 대장간 안을 한 번 훑었다. 예전 친구가 말했던 그대로의 광경이다. 아무런 장식도, 별다를 것도 없는 대장간의 풍경, 그리고 망치질을 하는 대장장이. 대장간을 뒤흔드는 망치 소리……
단형우는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진이 흘렀다. 지금쯤이면 동료들이 깨어날 시간이다.
망치 소리가 멎었다.
강인한 인상을 가진 대장장이가 몸을 돌려 단형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단형우는 그 모습을 보며 살짝 눈을 빛냈다.
그대로였다. 대장장이의 모습은 친구의 모습을 쏙 빼다 박았다. 나이가 많이 들었음에도 그렇게 느껴졌다. 예전 악가장에서 악비환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단형우는 허리춤에서 검을 풀어냈다. 검집에서 뺄 생각도 없었다. 그저 검을 내밀었을 뿐이다.
대장장이, 철막심은 단형우가 내미는 검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무심코 검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검집에 들어가 있음에도 시릴 듯한 예기가 손에 그대로 전해져 왔다.
대장장이 일로 단련된 손이 아니라면 아마 베었으리라. 철막심은 조심스럽게 검집에서 검을 빼냈다. 검의 예기가 마치 눈을 갈라 버릴 것만 같았다.
“아깝군.”
철막심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대단한 검이라고 하겠지만 철막심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 훌륭한 재료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이래서는 재료가 너무 아까웠다.
철막심의 눈이 단형우에게로 향했다. 본래 이곳은 모용세가 전용 대장간이었다. 철막심이 남의 밑에서 일을 할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모용세가에 진 거액의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고 단형우가 내민 검을 손봐 줄 수는 없었다.
“손질할 필요가 없는 검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