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09
모용천은 그렇게 말하며 단형우를 쳐다봤다. 철막심은 모용천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서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은 내 아들의 친구일 뿐이오. 나와 관계가 없으니 그냥 보내주시오.”
철막심의 말에 모용천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좀 곤란한걸.”
모용천의 말에 이번에는 제갈린이 나섰다. 제갈린은 철막심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거죠? 모용세가에 인질이라도 잡혀 있는 건가요?”
제갈린의 말에 철막심이 피식 웃었다. 잡힐 인질이 어디 있는가. 인질이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단형우뿐이었다.
지금 철막심이 원하는 것은 단형우가 무사히 이곳을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그 이후에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제갈린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모용영환으로부터 나왔다.
“우리 세가에 빚이 좀 있지. 그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이야. 죽기 전까지 다 갚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빚 때문에……”‘
제갈린의 얼굴에 살짝 노기가 떠올랐다. 제갈세가에서 곱게 자란 그녀가 어찌 빚의 무서움을 알겠는가.
“고작이라니. 자그마치 은자 이만 냥이나 되는 액수다.”
은자 이만 냥이라면 보통 액수가 아니다. 제갈세가에서도 그 정도 돈을 마련하려면 기둥이 흔들릴 정도의 액수다.
단형우는 철막심을 쳐다봤다. 철막심은 단형우를 보며 슬쩍 웃었다. 그 웃음을 보다 단형우는 가믓이 답답했다.
이만 냥이 얼마나 되는 액수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모조리 박살내고 죽이면 끝이다.
모용세가의 힘으로 자신을 막을 수 없다. 시간도 많이 필요치 않다. 힘을 조금만 쓰면 순식간에 끝낼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철막심의 눈을 보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단형우가 고개를 돌려 우문혜를 쳐다봤다.
우문혜는 단형우가 자신을 쳐다보자 크게 감동했다.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것이다. 이만 냥은 큰 액수지만 우문세가에게는 그렇지도 않다.
“영사.”
우문혜가 영사를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 영사는 품에서 전표 한 장을 꺼내 그 손바닥 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우문혜는 그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내력을 담아 모용영환에게 날렸다.
피슉!
모용영환은 가볍게 그것을 낚아챘다. 그리고 안색이 변했다. 그것은 이만 냥짜리 전표였다.
“이제 빚은 없어졌네요. 더 할 말이 있으신가요?”
우문혜가 비아냥거리자 모용천의 눈에 날카로운 기운이 흘렀다.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큰코다칠 것이다.”
우문혜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곳에 단형우가 있는데 뭐가 두려운가.
“우문세가의 소저였군.”‘
모용영환이 일그러진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일행의 면면이 대단해 보였다. 잣칫 문제가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분은 모용세가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네요. 처벌만 남았군요.”
우문혜의 말에 모용덕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여인이 자신을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었다.
“처벌? 무슨 처벌 말인가?”
모용천이 섬뜩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돈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모용천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지 자꾸 자신이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하의 청룡검에게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우문혜가 청룡검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쓰레기였군.”
우문혜의 말에 청룡검의 표정이 굳었다.
“그 말로 너희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모용천은 모용영환을 쳐다보며 명했다.
“천강검진(天强劍陳)을 준비해라.”
천강검진이라는 말에 모용영환이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히 저들 중 모용천과 비슷한 실력의 강자가 있다는 의미일테니까.
“알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용세가 무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일행은 순식간에 포위되었다.
철막심은 돌아가는 상호아을 보며 크게 당황했다.
“그만 두시오! 내가 남는다 하지 않았소!”
“이미 늦었다.”
모용천은 그렇게 말하며 검왕을 노려봤다.
검마는 천강검진이 상대하고, 자신은 검왕을 상대하면 된다. 그럼 나머지는 모용세가의 장로급 고수들이 처리할 수 있다.
사실 모용천은 이곳에 있는 자들이 검왕과 검마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강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드디어 단형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형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모용덕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번쩍!
단형우는 가만있었는데 벼락이 떨어져 모용덕이 둘로 갈라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벼락 한 방으로 장내에 싸한 한기가 돌았다.
“이, 이게 무슨……”
모용영환이 놀람과 분노로 말을 잇지 못했다. 단형우는 그런 모용영환을 쳐다봤다.
번쩍!
모용영환도 둘로 갈라졌다.
모용천은 그제야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도 못한 놈이 대단한 고수였던 것이다.
“뭣들 하느냐! 천강검진을 펼쳐라!”
모용천이 외침에 단형우가 이번에는 모용천을 쳐다봤다.
번쩍!
쩡!
모용천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검으로 막아냈다. 단형우가 쳐다보면 벼락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쩌저적!
모용천이 잠시 안도 하고 있을 때, 벼락을 막았던 청룡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헉!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청룡검은 한음현철로 만든 명검이다. 지금까지 이가 나갔던 적도 없었다. 그런 청룡검에 거미줄 같은 금이 마구 퍼지고 있었다.
쩌저정!
청룡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모용천의 정수리에서 한줄기 피가 흘렸다.
“내, 내가……”
모용천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로 갈라졌다. 처음 공격을 받았을 때부터 이미 둘로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단형우는 막 발동하기 시작한 천강검진을 쳐다봤다.
쩌저적!
몇 번의 벼락이 그곳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천강검진이 깨졌다.
그것으로 상황은 끝이었다. 모용세가의 남은 무사들은 이미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그저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니 두렵기 그지없었다.
철막심은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이내 따뜻한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대로 정신을 놓아 버렸다. 더 이상 그가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형우는 다시 정신을 잃은 철막심을 안아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모용세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일행은 놀란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검을 쓰지 않아도 천뢰를 쓸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당호관은 문득 당가의 천뢰(千雷)를 암기 없이 펼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형우는 철막심을 안고 돌아섰다. 그리고 왔던 길을 따라 다시 걸어갔다.
그 앞을 막아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일행은 그런 단형우를 따라 약간 찜찜함이 남은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특히 검마는 인상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지금 홀로 남아, 남아 있는 이들을 처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검왕은 그런 고민을 하는 검마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모용세가는 이미 몰락으로 내려가는 첫 계단을 밟았다. 청룡검이 죽은 것이다.
십대고수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가. 게다가 원래 있다가 사라진 경우에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가 잇다.
그뿐 아니라 모용영환도 죽었다. 실질적으로 지금의 모용세가를 만든 거나 다름없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마저 죽었으니 모용세가도 상당히 힘든 길을 지나야 할 것이다.
철막심은 이틀이나 죽은 듯 누워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직 몸은 완전히 회복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다. 단형우의 일행들이 모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철막심의 회복을 돕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철막심은 눈앞에 서 있는 단형우를 발견하고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검은…… 어떻게 되었나.”
단형우가 만들다 만 검 조각을 내밀었다. 대장간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가지고 가야했기에 단형우가 직접 챙겨 온 것이다.
철막심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들고는 중얼거렸다.
“검을 만들어야지.”
철막심이 몸을 일으켰다. 단형우는 굳이 그것을 막지 않았다. 지금 또 검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면 몸 상태가 악화되겠지만 단형우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철막심이 방에서 나가자, 밖에 있던 일행들이 그를 말렸다.
“꺄악! 벌써 일어나시면 안 돼요! 아직 몸이 완전치 않단 말이에요.”
“그래,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우문혜와 조설연이 그렇게 말렸지만 철막심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우문혜는 철막심에게 대장간을 마련해 주고 말았다.
땅! 땅! 땅!
대장간 안에서는 끊임없이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몸이 많이 상했을 텐데도 예전과 전혀 다름없는 좋은 소리였다.
단형우는 대장간 앞에서 철막심이 망치를 두드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이틀 동안 철막심은 쉬지 않고 망치를 두드렸다. 그 동안 그는 밥도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그렇게 검이 완성되었다.
“난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철막심의 고집을 단형우는 또 꺾지 못했다. 철막심은 아내의 무덤이 있는 심양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단형우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裏?허리춤에는 투박하지만 멋진 검집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검집에는 역시 투박한 검이 꽂혀 있었다.
철막심이 만든 검이었다. 혼신의 힘을 기울려 만든 최고이 검이었다. 아들이 찾아낸 재료로 혼을 불살라 만든 검이었다.
“잘 어울리는구나.”
철막심이 단형우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가 만든 검과 마찬가지로 투박한, 하지만 멋진 웃음이었다.
단형우는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 최대한의 공경과 마음을 담아서.
철막심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선 단형우의 귓가에 철9缺?말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네가 말했던 아버지라는 말, 잊지 않으마.”
단형우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단형우의 신형이 사라져 갔다.
철막심의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지워지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
심양을 떠난 일행은 다시 마차를 타고 하북으로 향했다.
여전히 마차 안에는 다섯 여인이 타고 남자들은 모조리 지붕에 올라갔다.
마차 안의 여인들은 이번 여행을 통해 상당히 친해졌다. 계속 함께 있으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 덕분이었다.
물론 대화라기보다는 수다에 훨씬 더 가까웠지만 오히려 그것이 친목에는 더 도움이 되었다.
“그나저나 그분을 그냥 그렇게 두고 와서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네.”
우문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철막심은 그녀에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게다가 단형우와 보통 사이가 아니다. 걱정되는 것이 당연했다.
우문혜가 세가의 힘을 이용해 철막심을 은연중 도와주도록 안배를 해 두고 오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곳에는 모용세가가 있다. 모용세가를 완전히 박살냈다면 모를까, 지금 이대로는 보복에 휘말릴 가능성이 컸다.
‘물론 우리 단공자님이 그렇게 두지는 않겠지만.’
우문혜도 단형우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하남에서 심양까지 눈 한 번 깜빡일 동안 이동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문혜가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때, 제갈린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마 괜찮을 거예요.”
제갈린의 말에 마차 안 여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제갈린은 그녀들의 눈빛을 받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모용세가에 바보들만 있지 않다면요.”
모용세가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상당수의 무사들이 핏물로 변해 사라졌고, 세가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죽고, 세가의 뒤를 받쳐 줘야 할 후기지수 하나가 사라졌으니 당연했다.
모용덕이야 그렇다 치고, 모용영환이나 모용천의 죽음은 모용세가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아직 이렇다 할 소문은 퍼지지 않았지만, 청룡검의 죽음은 조만간 천하를 진동할 것이다.
모용세가에서 퍼트리지 않더라도 청룡검을 죽인 자들이 그렇게 할 것이 분명했다.
머지않아 요녕의 패권다툼이 시작될 것이다. 십대고수도 없고, 무사의 태반을 잃은 데다, 사기마저 바닥을 기고 있으니 모용세가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 리 없다. 아마 심양에 대한 장악력도 점차 약해질 것이다.
모용세가의 장로들은 모두 거처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날 그들이 겪은 충격에서 헤어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현 모용세가를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은 모용세가의 장자인 모용후였다. 하지만 모용후는 근본적으로 무공을 익히는 데는 능숙했지만 세가를 이끌어 나갈 능력이 모자랐다.
그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빙란이라 불리는 모용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