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14
무황의 재촉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잠시 기다리면 그렇게 해 주지.”
천마의 말에 무황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무황은 처음 천마를 볼 때부터 이 대결을 염두에 두었다. 사실 처음 천마를 뒤쫓을 때는 그냥 금마공으로 없앴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쓸데없이 천마 같은 고수와 싸울 이유가 없었다. 사실 완벽히 이길 자신이 있지 않는 한, 싸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방금 천마를 보고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이건 기회였다. 천마는 큰 내상을 입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기의 흐름이 불규칙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전 어림의 마기가 요동치고 있었고, 몸 전체에 흐르느 기운이 뚝뚝 끊어졌다. 내상도 보통 내상이 아니었다.
천마를 이길 수 있다면 얻는 것이 어마어마하다. 무황은 그 이득을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어쨌든 무황은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 와서 천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내상약을 먹는다 하더라도 그게 금새 효과를 볼수는 없는 법이다.
천마는 그런 무황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단형우를 쳐다봤다.
정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앞으로 어떻게 하더라도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다. 어쩌면 천마성 전체가 덤벼들어도 이길 수 없는 자일지도 모른다.
천마는 단형우에게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부디 힘을 거두어 주시오.”
천마의 포권에 단형우가 고개를 돌려 무황을 쳐다봤다. 무황은 놀란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단형우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는 갑자기 사라진 단형우의 존재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사라지고 나니 그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너무나 거대한 존재감에 온몸의 기혈이 가닥가닥 끊어질 것 같았는데, 이제는 너무 활기차게 움직여서 탈이다.
천마는 마차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리고 무황 쪽으로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
천마가 짙은 미소를 띠며 무황을 쳐다봤다.
무황은 경악했다. 갑자기 천마의 몸 상태가 달라진 것이다.
‘속았구나.’
속아도 너무 철저히 속았다. 어떻게 자신이 속을 수 있단 말인가. 무황의 시선이 단형우에게로 향했다.
무황이 생각하는 원흉은 바로 단형우였다. 무슨 방법을 어떻게 썼는지 모르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그랬다.
무황이 무서운 눈으로 단형우를 노려봤다. 하지만 단형우는 이미 무황에게 흥미를 잃어버렸다.
십대고수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자라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 적어도 천마는 단형우를 재미있게 해 주었으니, 뭔가 더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단형우는 천마와 무황을 중심으로 흐르는 기의 소용돌이를 확인하면 묵묵히 서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무황이었다. 일단 기습이라도 해야 유리해질 것 같아서였다.
펑!
무황의 주먹이 천마가 서 있던 바닥을 박살냈다. 바닥이 움푹 파였다.
천마는 가벼운 움직임으로 무황의 공격을 피하며 검을 뽑았다. 천마의 장기는 검(劍), 그리고 무황의 장기는 권(拳)이다.
천마의 검에서 촘촘히 뿜어져 나온 검기가 무황을 감쌌다.
무황의 권에서 맑은 기운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콰과광!
새까만 기운이 무황의 가슴을 향해 뻗어 갔다. 그리고 그것이 무황의 심장을 찌르기 직전, 그곳에 새하얀 빛이 솟아났다.
꽝!
무황의 호신강기가 천마의 검강을 막아낸 것이다.
무황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조금이라도 호신강기를 펼치는 것이 늦어졌다면 그대로 심장을 관통당할 뻔했다.
방금 천마가 쏟아낸 검강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방을 검은 검기가 가로막은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다가운 검강이었기 때문이다.
무황은 이를 악물었따. 절대 이겨야만 했다.
고오오오!
무황의 모든 내력이 양 주먹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무황을 중심으로 기의 바람이 회오리쳤다.
천마는 그것을 보며 입가에 슬쩍 미소를 걸었다. 드디어 무황이 모든 힘을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자신도 그에 걸맞은 힘을 내보이는 것이 예의했다.
천마의 검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무황과는 다르게 검마의 주변은 고요했다. 무황에게서 뻗어나오는 기의 회오리도 검마 앞에서는 그저 고요한 미풍이 되어 흩어졌다.
천마의 몸(身)과 검(劍), 그리고 기(氣)는 정(靜) 그 자체였다.
무황은 그런 천마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정말로 놀라웠다. 설마 천마의 무공이 이 정도 경지에 올라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다.
“흐아압!”
무황은 모자란 공력은 기합으로 채워 넣으며 천마에게 달려 들었다. 무황의 몸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기의 회오리가 천마를 집어삼켰다.
퍽!
그 거대한 힘이 부딪친 것치고는 너무나 조용한 소리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멎었다.
장내에 드러난 광경은 정말로 놀라웠다. 천마는 오연한 자세로 검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그리고 무황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천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천마는 무황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무황이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털썩.
무황은 쓰러진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천마는 천천히 마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거대한 기의 충돌이 일어났는데도 마차 주변은 멀쩡했다.
반면 무림맹과 무황성 무사들이 있는 곳은 마구 헤집어졌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들 중 멀쩡한 옷을 입고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비록 소리는 없었지만 사방으로 뻗어 나간 충돌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날카로운 칼바람들이 위협적으로 날아갔다. 덕분에 무림맹 무사들 중 몇은 큰 부상을 입어야 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충돌이었다. 그런데도 마차 주변은 멀쩡했다. 심지어는 근처에 있는 돌멩이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천마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단형우는 처음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자세도 그대로였다. 마치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듯했다.
천마는 마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환마와 마궁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사하군.”
환마는 천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알아서 피해 가는 것 같았습니다.”
환마의 대답에 천마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허허헛, 이것 참……”
천마가 고개를 돌려 단형우를 쳐다봤다. 천마의 눈빛은 모든 것을 태울 듯 강렬했다.
“몇 살이오?”
천마의 물음이 뜻밖이었는지 단형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살짝 놀랐다. 곧 대답이 흘러나왔다. 물론 단형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아직 스물입니다.”
조설연이었다.
천마의 시선이 조설연에게로 돌아갔다.
“스물이라고? 아직?”
“이제 몇 달만 더 있으면 스물하나가 되시겠지요.”
천마는 믿을 수 없었다. 고작 스물에 저런 경지에 들었단 말인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저렇게 거대한 기운을 몸속에 쌓으려면 아무리 절세의 신공으로 수련한다 하더라도 백 년은 우습게 지나갈 것이다. 아니, 백 년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내 나이가 이제 백이 다 되어 간다. 그래도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고작 스물이라고? 무공을 전생에서부터 익히기라도 했단 말인가?”
천마가 어이없어 하자 조설연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열 살 때부터 무공을 익히기 시작하셨다 했습니다.”
천마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고작 십 년에 이렇게 강해졌단 말인가.
“사람도 아니군.”
그게 천마가 내린 결론이었다.
천마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아직 모든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황성 무사 몇이 쓰러진 무황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경악을 가득 담아 외쳤다.
“돌아가셨다!”
무황이 죽었다. 천마에 의해.
천마는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인정하지만, 스스로는 인정하지 못하는.
무황성 무사들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무황은 그들의 구심점이었다. 무황성이라는 거대한 무력단체를 조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무황이 죽었으니 당연히 분노가 일었고, 그 분노의 대상은 천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무황성 무사들과 무림맹 무사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했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천마가 마차 앞에 서 있는 여인들을 인질로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금마공이 있었으니까.
금마공에 당한 마인은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린다. 그런 폐인을 몸 건강한 사람들이 못 당할 리 없다. 게다가 진국호가 보기에 마차 옆의 여인들은 무공을 익힌 것이 분명했다.
천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적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오는데 도망가기가 여의치 않은 것이다.
비록 무황이 죽었다고 하지만 천마 역시 무사할 수 없었다. 상당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기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았다. 평소 능력 중 삼 할도 채 발휘하기 어려울 듯했다.
천하제일을 다투는 대결에서 그 정도 피해를 입었으니 큰 손해는 아니지만, 상황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천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검마를 쳐다봤다.
“도와주겠는가?”
천마의 물음에 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천마는 그동안 검마가 보아오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그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천마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검마가 도와준다면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환마도 금마공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 확률은 더 늘어난다.
단형우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검마를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단형우는 생각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검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단형우의 행동이 나타내는 것은 너무도 명백했다.
천마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단형우가 반대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환마 하나로는 절대 이곳을 무사히 빠 져 나갈 수 없다.
“부탁이오. 날 보내주시오.”
검마가 단형우의 등을 바라보며 간절히 말했다. 이대로 천마가 금마공에 당해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무황과 싸우다 죽었다면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고 애도를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금마공에 당해 폐인이된 채, 개처럼 끌려가는 모습만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천마, 모든 마인들의 정점에 선 사람이었다.
검마의 애원에도 단형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대신.”
단형우의 말은 단 하디였다. 하지만 그것에 포함된 의미는 그리 간단히 않았다.
“쿨럭!”
천마가 피를 토했다. 내상까지 입었으니 마공이 흩어지는 것도 너무나 간단했다.
“크윽.”
다시 마공이 차오른다. 순수한 마기로 이루어진 마공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차츰 그 고통들이 희열로 바뀌어 갔다.
후아악!
천마를 중심으로 거대한 마기가 휘몰아쳤다. 천마는 그제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순수한 마기가 얼마나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리고 자신이 눈앞에 뒀던 그 벽을 왜 넘지 못했는지를.
천마의 눈이 깊은 호수처럼 가라앉았다. 그리고 사방에 휘몰아치던 마기를 깊숙이 갈무리했다.
“이것이…… 이것이 진정한 마공이로군.”
천마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음은 크게 격동했다.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주화입마에 빠질 뻔한 정도였다.
천마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단형우를 쳐다봤다.
“후우우……”
길게 심호흡을 한 천마가 단형우를 향해 깊숙이 포권을 취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존경심을 담아서.
더 이상 나이는 의미가 없었다.그리고 다른 모든 것도 의미가 없었다. 천마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단형우의 힘에 진심으로 승복했다.
벽을 부수니 더욱 많은 것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바라보고 있던, 그리고 나름대로 재단했던 단형우의 힘은 그저 티끌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형우에게 그렇게 경의를 표한 천마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무림맹 무사들과 무황성 무사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지금의 힘이라면 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천마는 무림맹 무사들 사이사이에 있는 멸마대원들을 확인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천마가 그렇게 무림맹 무사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 조설연이 단형우 앞으로 나서며 급히 물었다.
“설마 저들을 모두 죽이실 생각이신가요?”
조설연의 질문에 천마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그것을 네게 굳이 말해야 하는가?”
“말씀해 주세요.”
조설연의 당찬 행동에 천마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비록 마기를 갈무리했다고 하지만 현재 천마가 내뿜고 있는 기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다가오고 있는 무림맹과 무황성 무사들이 그 기세 덕분에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 정도였다.
그런 기세를 감당하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하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무공실력으로 절대 이렇게 할 수 없었다.
“다 죽이게다고 하면 막을 생각이냐?”
조설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말아주세요.”
천마가 슬쩍 비웃음을 매달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미 얻을 것은 얻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저들의 목숨은 그냥 놔 주세요.”
조설연의 말에 천마가 입을 다물었다. 왠지 그 말을 들어줘야 할 것만 같았다.
별것도 아닌 계집인데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저들을 모두 두고 그냥 도망갈 수는 없다. 적어도 멸마대만이라도 해결을 해야 했다.
천마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른 자들은 건드리지 않고 멸마대만을 죽이기로 결정을 내린 후, 그 말을 조설연에게 하려 했다. 하지만 그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로 별것 아닌 계집이다. 한데 왜 그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가. 심지어는 위기감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