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15
천마는 크게 당황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검마가 눈에 들어왔다.
검마는 조용히 고개를 젓고 있었다. 자신을 보라는 듯이.
천마는 그 모습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았다. 네 말대로 하마. 쓸데없이 피를 볼 필요는 없지. 어차피 무황도 죽었으니.”
천마는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남은 세 마인도 몸을 날렸다.
천마가 갑자기 움직이자 무림맹 무사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대처는 확실했다.
“금마공을 펼쳐라!”
진국호가 외쳤다. 그리고 그가 외치기도 전에 벌써 멸마대원들이 금마공을 펼치고 있었다.
금마공의 기운이 사방을 장악했다. 당연히 천마 일행도 그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혈도객과 마궁이 몸을 휘청거렸다. 하지만 천마와 환마는 그렇지 않았다.
천마가 혈도객의 목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환마가 마궁을 들쳐 메었다. 그리고 네 마인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진국호는 사라지는 마인들의 등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다 잡았었는데……”
무림맹의 추격에서 벗어난 천마는 적당한 곳에 혈도객을 내려놓았다. 금마공에 당하기는 했지만 워낙 빨리 빠져 나왔기 때문에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혈도객이 운기요상에 들어가자, 뒤이어 도착한 환마가 마궁을 내려놓았다. 마궁 역시 운기를 시작했다.
천마가 가만히 서 있다가 환마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보기엔 어떻더냐.”
천마는 이번 중원행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환마가 얼마나 뛰어난 인재인지를.
환마는 일반 마인들이 가지지 못한 두뇌를 가졌다. 이는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난 힘이었다. 천마성에서 가장 중요한 힘이다.
천마의 질문에 환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잘 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그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환마는 단형우를 ‘그분’이라 표현했다. 그만큼 그 힘에 깊이 감복한 것이다.
“그렇겠지. 검마가 아니었다면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검마가 고개를 젓는 모습을 환마도 확인했다. 그래서 한 가지 확신을 더 얻을 수 있었다.
“아마 그 여자는 그분께 상당히 중요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 여자가 원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환마의 말에 천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였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검마가 그렇게 간절히 말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그 여자가 부탁했다면 여기 있는 두 사람도 금마공에서 벗어났을 것입니다.”
천마는 그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곧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군.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그 여자를 포섭해야겠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환마가 말을 흐리자 천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그러느냐? 말해 봐라. 괜찮으니까. 널 인정했다.
천마의 말에 환마가 눈을 크게 떴다. 천마는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결고 쉽게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천마가 인정한 사람은 검마와 마궁이 유일했다.
검마는 검으로 인정했고, 마궁은 활로 인정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머리를 인정한 것이리라.
“그분을 신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환마의 말에 천마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단형우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신으로까지 추앙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그런 힘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좀 문제가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굳이 성으로 만족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분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신으로 추앙해 교(敎)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교라……”
천마의 눈이 빛났다.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마인들은 대부분 제멋대로라 하나로 통합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에 종교로 끌어들이는 것은 오히려 간단하다.
“금마공이 큰 도움이 되겠군. 그놈들을 죽이지 않길 잘했어.”
천마가 대번에 자신의 말을 이해하자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금마공을 이용하면 대부분의 마인들을 교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금마공을 풀어주기 전에 세뇌에 가깝게 교리를 만들어 전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가 그걸 맡아서 처리해라. 기대하마.”
천마의 말에 환마가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를 만들면 천마는 교주가 된다. 초대 교주인 것이다. 혼탁한 마공을 순수한 마기로 채워 주는 단형우는 마인들에게 있어서는 신이나 다름없으리라. 너무나도 훌륭한 마신(魔神)이다.
“마신이지. 천하를 손에 쥐고 흔드는 마신. 그러니 천마신교라 명명하면 되겠군.”
“훌륭합니다.”
그렇게 천마신교가 시작되었다. 중원의 어느 작은 숲 속에서.
모용후는 오대세가의 회합에 대한 내용을 전서구로 전달받았다. 서신은 모용설이 직접 작성한 것이었다.
“후우, 어떻게 간신히 넘긴 모양이구나. 다행이야.”
모용후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근심이 가시지 않았다. 제갈세가에서 모용세가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차린 것 같다는 소식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우리 세가가 이렇게 되었는지……”
잠시 한탄을 해 봤지만 그래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청룡검은 죽었고, 세가 무사의 절반이 넘는 수가 핏물로 화했다. 그리고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모용세가가 다시 일어서려면 적어도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아마 조만간 소문이 퍼질 것이고, 요녕에 있는 수많은 무림방파들로부터 견제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놈만 아니었어도……”
모용후는 단형우를 떠올렸다. 너무 두려워 분노도 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죽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바로 그때, 음산한 음성이 모용후의 귓가에 닿았다.
“힘을 원하는가?”
모용후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힘을 원하는가?”
같은 말이 다시 들려왔다. 모용후는 두려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원하느냐고? 너무도 당연하다. 힘이 있다면 이런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원한다면 주지. 그 힘을.”
그리고 모용후의 눈앞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마치 바닥에서 솟아나는 듯 스르륵 올라선 사내가 음울한 눈으로 모용후를 쳐다봤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모용후는 슬며시 겁이 났다. 사내의 몸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그곳에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기척과 온기가 전혀 없었다.
“난 무영(無影), 앞으로 너와 회를 이어줄 사신이다.”
무영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매달렸다.
– 순수 타이핑본이고 검토를 하지 않아 오타가 있더라고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문맥이나 전, 후권의 책을 토대로 오류가 있는 부분은 임의로 수정했습니다. –
독강시
진국호는 아까웠다. 다 잡은 천마를 놓쳐 버렸다. 금마공까지 펼쳤는데 놓쳤으니 할 말이 없었다.
“금마공을 펼치는게 조금 늦었던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천마가 무황을 죽이는 바람에 온 정신적 충격이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무황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황의 죽음은 너무나 허무했다. 물론 무림맹으로서는 어쩌면 더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무황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무황성 무사들을 무림맹으로 흡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아쉬운 것은 뒤로 제치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일단 지금은 다시 천마를 잡기 위해 추격을 재개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래도 지워을 더 요청해야겠군.”
이 상태로 천마를 잡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마는 정말로 대단한 자였다.
진국호는 대충 상황을 정리한 후, 마차를 쳐다봤다. 마차 앞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다섯 여인이 서 있었다. 진국호의 눈이 순식간에 부드럽게 풀렸다.
진국호는 조금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 아름다운 여인들 옆에 서 있는 단형우가 금막오의 천적이라는 사실을.
진국호는 얼굴에 미소를 만들며 마차로 다가갔다. 비록 천마를 놓치긴 했지만 그녀들에 대한 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천마의 위협으로부터 그녀들을 구한 영웅 아닌가.
“모두 무사해 보이시니 다행이오.”
진국호는 가장 눈에 띄는 우문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진국호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자신감으로 꽉차 있었다. 그녀들을 구해낸 영웅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진국호의 기대와 다르게 우문혜는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우문혜의 행동은 진국호를 당황케 했다. 진국호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자, 어쩔 수 없이 또 조설연이 나섰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만 갈 길을 마저 가도록 하겠습니다.”
조설연의 말에 진국호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그러시구려.”
조설연의 손짓에 우문혜를 비롯한 네 여인이 살짝 못마땅한 표정으로 마차에 올랐다. 그녀들은 진국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 여인이 마차에 오르자 검마가 마차 지붕으로 올라갔다. 이제 단형우만 올라가고 조설연만 탄다면 떠날 준비가 완벽해진다.
진국호는 왠지 이들을 그냥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직 가시는 길이 위험할 테니, 내가 호위를 해드리겠소. 다시 천마가 나타나면 곤란할 테니 말이오.”
진국호의 말에 조설연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희는 이대로도 충분합니다. 진대협께서는 무림맹의 일을 처리하십시오.”
조설연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진국호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부디 조심하시오.”
진국호의 눈에 걱정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리고 마차 지붕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진국호를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야말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격 아닌가.
조설연이 마차에 오르자 단형우도 지붕으로 훌쩍 뛰어 올랐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종칠이 마차를 출발시켰다.
갑자기 마차가 출발하자 진국호는 깜짝 놀랐다. 생각해 보니 아직 그들이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도 묻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그녀들과 인연을 이어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정보였다.
진국호는 서둘러 뭔가를 물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종칠이 어찌나 빠르게 마차를 몰았는지 벌써 한참이나 멀어져 버렸다.
“이런……”
진국호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점이 되어 사라져 가는 마차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무래도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 운명이로군.”
우문혜 같은 미인을 봤으니 다른 여인들이 어찌 눈에 들어오겠는가. 쥐뿔도 없으면서 눈만 높아져 버렸으니 앞으로 좋은 짝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하아……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좋으련만……”
우문혜에게 빠진 사내가 하나 더 늘어 버렸다.
모용설은 오대세가의 회합을 마친 후, 서둘러 요녕에 있는 세가로 돌아왔다. 제갈세가가 무슨 수작을 부리지 않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제갈세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모용세가와의 일에서 슬며시 발을 뺀 것이 전부였다.
어쨌든 제갈세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모용설은 그나마 안심하고 세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분위기를 보건데 앞으로도 술수를 부리거나 해서 모용세가에 위해를 가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한 일이지. 아무래도 제갈세가에서는 우리 세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판단한 것 같구나.”
그렇게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다. 청룡검 모용천이 죽었고, 세가 무사들 중 절반이 넘는 수가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모용영환마저 죽었으니 모용세가의 타격이 크다 할 수 있었다.
모용설이 비록 뛰어난 재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힘을 발휘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장남인 모용후가 있기 때문이다.
모용설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세가의 정문을 넘어섰다. 문득 그녀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세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기묘한 활기가 흘렀다. 정말로 기묘했다. 특이하게도 음침한 기운이 세가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대체 무슨 일이……”
모용설은 서둘러 세가의 내원으로 향했다. 내원까지 가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낯선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그 낯선 자들이 모두 모용세가가 무사와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무사를 충원할 수 있을 리 없다. 貧@?외부 어딘가에서 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컸다.
“이럴 때 아무하고나 함부로 손을 잡으면 안 된다는 건 기본인데……”
모용설의 발걸음이 점점 더 다급해졌다. 이렇게 세가가 위축되어 있을 때, 아무하고나 함부로 손을 잡으면 자칫 세가가먹힐 수도 있다. 게다가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 모용후다.
모용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모용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모용후는 가주의 그릇이 아니었다. 그래도 뭔가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는 반드시 자신이 함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귀가 닳도록 말을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원에 들어간 모용설은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에는 수많은 무사들이 서 있었다. 풍기는 기세나 기운이 보통을 넘어었다. 아니, 너무나 대단했다. 문제는 그들이 절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는 온기가 없었다. 그리고 기척이 없었다. 피부색은 거무튀튀했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강시……?’
아무리 잘 봐줘도 그들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강시가 분명했다.
모용설은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소름에 진저리를 쳤다.
그때 내원의 전각, 모용후가 머무는 곳의 문이 스스로 열렸다. 그리고 모용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왔구나.”
“오, 오라버니, 대체 이들은……”
“앞으로 내 힘이 되어 줄 충실한 병기들이지.”
모용후의 말에 모용설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어쩌면 세가는 이번 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련히 들었다.
어두침침한 밀실, 상당히 넓은 공간에 커다란 관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관 속에는 새까만 액체가 찰랑거렸고, 그럴때마다 시커먼 독기가 수증기처럼 뭉클거리며 피어올랐다.
독영은 그 광경을 보며 눈을 빛냈다.
“거의 다 되어 가는군.”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 일 만큼은 절대로 성공해야만 했다. 이제 곧 세 구의 시체가 도착한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저 관에 넣을 것이다.
진짜 시작은 그때부터다. 그 시체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병기로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