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16
밀실 안이 시커먼 독기로 가득 찼다. 아무리 독에 강한 독영이지만, 더 이상 참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독영은 조용히 움직여 밀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시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시체의 상태가 좋아야 할 텐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시체의 상태다. 적어도 수십 년 동안 무공을 수련한 고수의 시체여야 한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수십 년 고련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대법을 성공시킬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고수는 죽어서도 고수다. 살아서 수련으로 쌓아온 기(氣)는 그냥 흩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몸에 남는다.
고승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독영이 시도하려는 대법은 그저 그런 고수의 시체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
“고수일수록 좋긴 하지만 과연 어떤 고수를 데려올지……”
이번에 회(會)의 능력에 대해 다시 점검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회에도 고수가 상당하다. 하지만 아직 온전한 시체를 남긴 고수는 많지 않다.
“흐음, 경천단 정도면 어찌어찌 가능하겠군.”
경천단도 대단한 고수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대법의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설사 대법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큰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그저 독기만 뿜어내는 독강시는 반쪽자리일 뿐이니까.”
독영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독강시였다. 원래는 혈강시를 만들고 싶었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것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괴뢰고에 있는 문제점을 완벽히 해결하지 못했다.
괴뢰고에 중독되어 죽지 않으면, 그 시체는 혈강시의 재료로 쓸 수가 없다.
처음에는 회의 고수들을 이용해서 혈강시를 만들 계획까지 세워봤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들에게는 괴뢰고가 통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그나마 철강시가 있으니 다행이지.”
현재 회에는 수백 구의 철강시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은밀하게 요녕으로 이송 중이다. 벌써 절반 정도는 요녕의 모용세가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철강시도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도 철강시는 철강시일 뿐이다. 혈강시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독영이 시도한 것이 바로 독강시였다.
독상시를 만드는 대법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가 문제였다.
수많은 절독과 영약들이 필요했고, 고수의 시체가 필요했다.
만들기는 어렵지만 일단 만들고 나면 혈강시만큼이나 무서운 존재가 된다. 아니, 사람들이 상대할 때는 오히려 혈강시보다 훨씬 더 무섭다. 독기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독과 영약은 다 모았다. 그것을 모으는 데만도 엄청난 노력과 돈이 들어갔다. 회의 힘은 그것을 가능케 할 정도로 대단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세 개가 한계였다.
어쨌든 이제 남은 것은 시체뿐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밀폐에 가깝게 막아 놓은 밀실에서 독기가 새나오기 시작했다. 관에 담아 놓은 독들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끄응, 너무 늦는군. 지금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이 시체를 관에 담을 가장 적당한 순간이다. 지금 담아야 독기를 고스란히 몸에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독영이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림자에서 세 사람이 솟아올랐다. 무영의 부하들이다.
그들의 손에는 각각 시체가 한 구씩 들려 있었다.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시체를 온전히 수복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독영은 그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시체 상태가 온전한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온전치 않은 시체를 온전하게 만들어 왔단 말인가? 그렇게 고수 구하기가 어려웠나? 웬만하면 멀정한 모습으로 죽은 시체가 좋은데……”
독영의 말에 무영의 세 부하가 손에 든 시체를 내밀었다.
독영은 그 시체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몸이 굳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이해할 만하지.”
독영은 시체 세 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밀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엄청난 독기가 확 밀려왔다.
무영의 세 부하는 기겁을 하며 몸을 날렸다. 그들의 몸이 꺼지듯 사라졌다.
다시 밀실의 문이 닫혔고, 문 밖으로 새나왔던 독기들이 조금씩 다시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차는 어느새 하남으로 들어섰다. 무림맹 사람들과 천마를 만난 것이 거의 하북과 하남의 경계 부분이었다. 그 후로 상당히 늑장을 부렸지만 그래도 마차는 꾸준히 이동했다.
마차 지붕에 서 있떤 단형우는 문득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쓰다듬었다. 정성이 가득 담긴 검이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검이다. 단형우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좋으냐?”
검왕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단형우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담담한 눈으로 검왕을 쳐다봤다.
“정떨어지는 눈으로 쳐다보지 말고 그 검이나 한 번 뽑아봐라. 구경이나 해보자.”
검왕의 말에 단형우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검집도 투박했지만 검도 투박했다. 하지만 멋진 검이었다.
소리 없이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이 공중에서 몇 번 춤을 추었다. 검이 움직일 때도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검왕과 검마가 동시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검이군.”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상하군. 예전의 검이 더 좋아 보여.”
검왕의 말에 검마도 동의했다. 검에 전혀 예기가 흐르지 않았다. 지난번 검은 검집에 있어도 살을 가르는 듯한 예기가 느껴졌는데, 지금은 밖에 나와 있는데도 전혀 그 예기를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아예 날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보통 장인이 아닌 것 같았는데, 정말 이상하군요.”
영사도 옆에서 거들었다. 영사나 당호관이 보기에도 단형우의 검은 정말로 이상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장인이 오히려 검을 망가뜨렸을 리는 없다.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형우는 일행의 시선을 받으며 유심히 검을 살폈다. 정말로 마음에 드는 검이었다. 아마 검왕과 검마도 이 검을 손에 쥐고 살피거나 휘둘러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예기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예기가 모조리 안으로 갈무리된 것뿐이었다. 그냥 휘두른다면 그저 몽둥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집중만으로 그 예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철검보다 못하니 다른 사람이 탐을 내지도 않을 것이고, 예기가 갈무리 되어 있으니 전처럼 검집을 상하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안으로 갈무리 된 예기는 전보다 훨씬 더 제대로 다듬어져 있었다. 아마 평범한 꼬마가 검을 쓴다 하더라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검이 예기를 끌어낼 수 있을 정도로 집중이 가능할 때의 얘기지만.
무엇보다도 이 검에서는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그것은 다른 어떤 보검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리라.
단형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그리고 따뜻한 미소가 살짝 맺혔다.
가만히 검을 들고 있는 단형우를 중심으로 미약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하늘에서 내려운 기운과 땅에서 솟아나온 기운이 단형우의 몸속으로 조용히 빨려 들어갔다.
상당히 작은 양이었지만, 일단 단형우의 몸에서 하나로 합쳐지니 그 존재감이 강렬해졌다.
마차 지붕에 서 있던 일행은 그 존재감에 깜짝 놀라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는 그러게 모여들어 자신의 몸속에서 하나가 된 기운을 천천히 검에 밀어넣었다.
사아악-!
단형우의 기운을 남김없이 빨아먹은 검이 한순간 예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 짧았다. 예기가 나타난 순간과 거의 동시에 다시 사라져 버렸다.
단형우는 눈을 빛냈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검이 단형우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냥 밖으로 흘려버렸다. 강제로 안에 잡아둘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고, 자칫 검이 부서질 수도 있었기에 그만 뒀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검이 단형우의 기운을 안으로 갈무리한 것이다. 스스로 그 기운을 받아들였다.
단형운는 다시 기를 모았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양의 기가 휘몰아쳤다.
하늘에서 강렬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내려왔고, 땅에서 용이 승천하듯 기운이 솟아나왔다.
두 기운이 단형우의 몸에서 그대로 충돌했다. 아니, 합일(合一)했다.
단형우는 그렇게 만든 합기(合氣)를 검에 밀어넣었다. 이번에는 상당한 양이었지만 검은 무리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몸속에서 하나로 합해 검에 밀어넣는 일련의 작업을 쉬지 않고 계속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행은 질린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차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기운은 점점 더 거대해졌다. 그리고 모이는 기운이 크면 클수록 하나로 합하는 순간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해졌다.
단형우의 칙칙하고 투박한 검은 그 거대한 기운을 남김없이 빨아먹었다. 그리고 단 한줄기의 기운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모두 안으로 갈무리한 것이다.
“지금 뭘 하는 겁니까?”
결국 가장 궁금증을 참지 못한 영사가 물었다.
단형우는 영사의 질문을 받고 하던 일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영사를 쳐다봤다.
영사는 단형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두려웠다. 하지만 여전히 호기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 것으로 만들었다.”
단형우의 대답에 일행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렇게 검에 기운을 불어넣는 것만으로 어떻게 자신의 검을 만든단 말인가.
“그게 무슨 뜻입니까?”
영사는 결국 다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형우는 허리춤의 검을 풀어 영사에게 내밀었다. 친절한 대답이었다. 영사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검을 받아들였다. 어쨌든 호기심이 넘쳤기 때문에 확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을 받아들었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영사는 조심스럽게 검을 검집에서 뽑기 시작했다.
스르릉.
검이 자연스럽게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비록 단형우나 검왕등에 가려 별다른 활약을 하거나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영사도 고수였다. 그것도 나름대로 검에 조예가 있는.
하지만 단형우의 검을 들고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별 볼일 없는 검이었다.
영사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벼락에 맞아 감전되는 듯한 충격이 영사의 몸을 관통했다.
“크아악!”
영사는 너무나 놀라고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렀다.
철컹!
검을 떨어뜨렸다. 더 이상 검을 쥐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단형우는 천천히 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영사의 손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검집을 건네받아 허리춤에 찼다.
영사는 직접 몸으로 그 검이 왜 단형우의 것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영사는 여전히 고통이 남아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마차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억울했다. 그냥 말로 설명해도 되는데 굳이 검을 건네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영사가 억울함을 담은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그리고 단형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깜짝 놀라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젠장. 왜 나만 그렇게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쳐다봐?’
영사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앞을 쳐다봤다. 마차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느릿하게 달리고 있었다.
진국호는 다시 천마를 잡기 위해 무림맹에 증원을 요청했다. 일단 천마가 어디 숨었는지 찾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정보조직에 의뢰까지 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자신은 현무단과 멸마대를 이끌고 직접 천마를 찾아다녔다.
멸마대는 일단 진국호의 지시에 따랐다. 천마를 제압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해야 했다. 무림맹에서의 공식적인 서열을 계산하면 대주(隊主)는 부단주(副團主)보다 아래에 있다.
하지만 멸마대는 보통 다른 대(隊)와는 달리 맹주 직속의 특수한 집단이다. 일반적인 무림맹의 서열이 적용될 수 없다.
지금이야 진국호의 명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천마를 제압한 후에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멸마대는 전혀 새로운 지위에 올라서게 된다.
멸마대주는 멀리 앞서가는 진국호의 뒤를 따르다가, 자신에게 다가온 대원을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냐? 함부로 자리를이탈하면 대열이 흐트러진다.”
멸마대주에게 다가온 대원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멸마대주도 그 표정을 보고서는 심상치 않은 일을 예감하고 살짝 긴장했다.
“방금 전에 우리가 지나쳐온 그 마차 말입니다.”
멸마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의 손아귀에서 우리가 구해 준 그 마차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대원은 그렇게 대답하고 말을 이었다.
“그 마차에 검마가 타고 있느 것 같았습니다. 아니, 검마가 틀림없습니다.”
대원의 말에 멸마대주가 경악했다.
“검마라고? 그게 정말이냐?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 얼굴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예전 임무 때문에 미리 얼굴을 익힌 데다, 죽을 고비까지 넘기지 않았습니까.”
그런 호된 경험을 했는데 사람 얼굴을 그리 쉽게 잊을 리가 없다. 멸마대주도 검마의 용모파기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잘 기억나지는 않았다. 그림만으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그것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구나. 그럼 그들의 정체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남표국이 분명합니다. 요녕에 간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아마 일을 끝마치고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그럼 천마와 검마가 이미 접촉을 끝냈다는 뜻이로군.”
멸마대주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와 검마가 그저 잠시 만나기만 했다면 별일 아니다. 하지만 만일 금마공을 푸는 열쇠를 건네받았다면 정말로 큰일이다.
금마공은 마인들에게 있어선 족쇄와도 같다. 그 족쇄를 풀어주겠다고 한다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지 모른다. 자칫하면 정마대전이 벌어진다.
“어쨌든 아무리 뭔가를 얻었다 하더라도 금마공에서 그리 간단히 벗어날 수는 없다. 지금은 천마를 잡아야 한다.”
멸마대주의 말에 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정론이다. 하지만 불안했다. 뭔가 거대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진부단주에게는 내가 말해둘 테니, 너는 대원 몇을 이끌고 맹으로 돌아가라. 이 사실을 맹주께 보고 드려야 한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리고 그 후에 넌 그곳으로 돌아가 지금 수련하고 있는 멸마대의 후기지수들을 이끌어라.”
멸마대주의 명에 대원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명을 받듭니다.”
대주의 명에 깃든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대주 역시 불길한 예깜이 드는 것이다. 만일 정말로 천마가 금마공에서 벗어났다면, 이들은 모두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대원은 멸마대 몇을 이끌고 일행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멸마대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남표국, 위험한 곳이야.”
멸마대주는 잠시 진국호를 쳐다봤다.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굳이 지금 보고할 필요 없었다.
맹주에게 직접 보고가 들어갈 것이고, 진국호는 이대로 천마를 찾으면 된다. 자칫 다른 곳에 신경을 쓰다가는 천마를 잡는 일이 더욱 늦어질 수 있다.
천마에게 시간을 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금은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멸마대주는 진국호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굳게 입을 다문 채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여행의 끝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동정호 위, 작은 조각배 한 척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고작 한두 사람 앉아 낚시나 드리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배였는데, 그 배 위에 한 사람이 가만히 서서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멀리서 물결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배가 다가왔다. 커다란 배는 마치 조각배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듯 멀찍이 멈춰 섰다.
그 배에서 한 사내가 솟구쳐 올랐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하늘을 멋지게 한 바퀴 유영한 사내는 조각배 위로 깃털처럼 가볍게 착지했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렸는데도 조각배는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실로 놀라운 신법이었다.
사내는 조각배에 내려서자마자 공손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회주님. 슬슬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그런가?”
배 위에 있던 사람은 혈마자였다. 그리고 그 앞에 공손하게 서 있는 사내는 혈영이었다.
혈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혈마자를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그 동안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다.
혈마자는 언제나 자신만만했으며 냉혹하고 잔인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보통 촌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