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17
“무슨 걱정거리라고 있으십니까?”
“요즘 우문세가는 어떠한가?”
“아무 문제없습니다. 두 번째 명으로 황금 오만 관을 받았고, 그 이후로 일단 연락을 끊었습니다.”
혈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우문세가는 건드리지 말게.”
혈영은 혈마자의 명이 의아했으나 깊이 고개를 숙였다.
“존명.”
“요즘 우문황 그자의 손녀가 화중화라 불리며 이름을 날리고 있다지?”
혈영은 숙였던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최근 하남표국의 그자와 함께 여행 중이라 합니다. 한데 왜 그러시는지……”
혈영은 혹시 혈마자가 우문혜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만일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령하면 그뿐이다.
아무리 우문황이 아끼는 손녀라지만 혈영에게는 힘이 있었다. 그 정도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아닐세. 그보다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는가?”
혈마자의 질문에 혈영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보고했다.
“대부분은 제대로 진행 되고 있습니다. 다만 사천 쪽은 전혀 진척이 없습니다. 그곳을 일임했던 흑사방이 망하는 바람에 당가도 악가장도 그대로입니다.”
혈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쯤이야 별것 아니지. 어차피 그놈과 관계된 일이니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하기로 하지. 그럼 하남표국과 사천 쪽을 제외하면 모두 계획대로 된 것인가?”
“그렇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모용세가까지 얻었습니다. 단형우, 그놈이 거의 몰락에 가깝게 부숴놨기 때문에 전혀 힘들이지 않고 접수할 수 있었습니다.”
“허헛, 그놈이 도움이 될 때가 다 있군.”
혈마자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음 지었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독영은 어쩌고 있는가?”
“아직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성공할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한 달 내로 투입이 가능할 거라고 큰소리를 치더군요.”
“독영도 꽤 쓸만한 놈이지.”
“한데 회주님, 단형우 그놈은 어떻게 할까요?”
“단형우라……”
혈마자는 갑자기 골이 지끔거렸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다.
단형우는 검왕과 검마를 꺾었고, 패룡을 동강냈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청룡검까지 단숨에 죽였다. 그리고 마영대와 검영대 전원의 협공을 이겨냈다.
“거기다 진천뢰를 막아냈단 말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보통 놈이 아니다. 혈마자의 가슴에 순간 패배감이 스며들었다. 천기자는 고작 십 년 만에 그런 강자를 키워냈다.
혈마자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혈영과 사영, 그리고 혈마대다. 하지만 아무리 혈영이라도 일 수에 청룡검이나 패룡을 죽일 수는 없다. 사영은 조금 상황이 다르지만 어쨌든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일단 혈마대가 폐관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게. 그놈은 혈마대가 상대하게 해야지. 처음 계획대로.”
처음 계획은 천기자가 키워낸 일백 고수를 혈마자가 키운 일백 혈마대로 상대하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천기잔 쪽은 한 명뿐이 안 남았다. 혈마대에게 적절한 합격진을 익히게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대체 천기자가 무슨 수를 쓴 건지 파악할 수가 없군. 어쩌면 백 명이 생존경쟁이라도 벌였을지도 모르겠어.”
혈마자의 중얼거림에 혈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불가능한 가정은 아니지만 천기자가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
“아무리 강한 자라도 한 명과 백 명은 차이가 너무 큽니다. 게다가 비슷한 시간을 들여서 완성한다면 더 차이가 납니다.”
혈영의 말에 혈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혈마자가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어쨌든 혈마대도 거의 십 년 가까이 수련을 해왔다. 게다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천기자가 천재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혈마대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월영에게 다녀오게. 합격진이 필요해.”
혈마자의 말에 혈영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혈마자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 역시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이 파악하고 있는 단형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혈영이 막 사라지려 할 때, 혈마자가 그를 불러 세웠다.
“참, 혈영검은 어떻게 되었는가?”
혈마자의 질문에 혈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쉬이 마음을 열지 않더군요.”
“천기자가 만든 필생의 역작인데 쉬울 리가 없지. 어쨌든 혈영검을 완벽하게 다술 수 있어야 하네.”
“심려 놓으십시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혈영은 그렇게 말한 후, 몸을 날렸다. 혈영의 몸이 커다란 배로 스며들어갔고, 배가 다시 출발했다.
혈마자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물결을 내려다봤다.
동정호 위에 적막이 몰려들었다.
단형우 일행은 결국 허창에 도착했다.
일행이 떠나 있는 동안 표국은 완전히 안정을 되찻았다. 이젠 하남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버렸다. 모두 형표의 능력이었다.
조설연은 형표에게 감탄하지 안을 수 없었다. 확실히 능력이 뛰어난 사내였다. 파란만장한 순간들을 겪지 않았다면 일개 표사로 썩어갔을 터인데, 그렇게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 아닌가.
어쨌든 덕분에 조설연은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표국이 상당히 변했구나.”
검왕이 감탄하자, 나머지 일행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 떠나기 전과 지금은 확실히 모양새부터 달라졌다. 새로운 전각도 몇 개 생겨났고, 무엇보다 표국의 규모가 조금 더 커진듯한 느낌이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니,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각을 새로 짓는 것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는 장원들을 부수고 표국을 넓히는 대공사였다.
“총표두님이 너무 일을 크게 벌이시는 것 아닌가요?”
제갈린이 약간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조설연은 그 말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갈린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잘 알지만 조설연은 그 이상으로 형표의 능력을 믿었다. 형표는 결코 아무렇게나 일을 진행할 사람이 아니다.
“아, 드디어 오셨군요! 기다렸습니다!”
형표가 일행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뛰어왔다. 형표는 일행 하나하나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설연에게 허리를 숙였다.
“고생 많으셨어요.”
조설연의 말에 형표가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고생은요. 미리 닦아 놓은 것들이 많아 제가 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조설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시 후에 따로 시간을 내주세요.”
조설연은 하남표국의 국주다. 국주가 하는 부탁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형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겠습니다.”
형표의 눈가에 잔잔한 미소가 감돌았다. 조설연은 이번 여행으로 한 단계 더 성장을 한 듯했다. 적어도 형표가 보기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국주의 집무실.
조설연은 다소곳이 앉아 형표를 쳐다봤다. 형표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채고 긴장한 표정으로 조설연을 마주봤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오늘부터 하남표국의 국주는 총표두님입니다.”
그 벽력탄 같은 조설연이 말에 형표의 눈이 커졌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채긴 했지만 설마 표국을 넘기겠다는 말인 줄은 몰랐다.
“그,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아직 하남표국에는 아가씨의 힘이 필요합니다.”
조설연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확실히 알았어요. 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이제 저는 표국에서 손을 떼고 다시 조가장을 일으킬 방도를 궁리하고 싶어요.”
조가장을 다시 일으킨다는데 형표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조가장을 다시 일으킬 방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때는 조가장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 되겠지만.
“단대협을 어떻게든 잡으셔야 합니다.”
형표의 뜬금없는 말에 조설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고마워요.”
어쨌든 그렇게 하남표국에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났다. 국주가 바뀐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지만, 그동안 형표가 해온 일이 국주의 업무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형표가 더 이상 자제심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하남표국은 앞으로 훨씬 더 크고 강력해질 것이 분명했다.
단형우가 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히 식사였다. 이제는 미각도 상당히 발달해서 제대로 맛을 음미하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단형우가 식사를 마치고 향한 곳은 하남표국의 연무장이었다.
하남표국에는 한가하면서도 바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무려 서른 명이나 된다.
그들은 언제나 연무장에 있다. 하남표국에는 몇 개의 연무장이 존재하는데, 그중 가장 작은 연무장을 이들이 독차지했다.
서른 명의 사내들은 모두 쟁자수를 나타내는 회의(灰衣)를 입은 채 검을 휘두르는데 여념이 없어다. 다른 어떤 동작도 없이 그저 검을 내려치는 것만 반복했다.
옆에서 누군가 그 모습을 지켜본다면 채 일 각도 지나지 않아 지겨워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는 당사자들은 더없이 진지했다.
우르르.
그들의 검이 아래로 떨어질 때마다 미약한 진동이 일었다. 누군가 눈이 좋고 기감이 예민한 사람이 봤으면 그것이 뇌기(雷氣)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예전 사천으로 가는 표행에서 살아남은 쟁자수들이었다. 형표와 조설연이 표사로 대우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한사코 그것을 거절하고 이렇게 수련에 매진했다. 자신들은 아직 표사가 되기에는 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이들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수련에 투자했다. 먹고 자는 약간의 시간을 제외하면 언제나 이렇게 연무장에서 검을 휘둘렀다.
서른 명의 쟁자수가 단형우로부터 배운 것은 비단 검뿐만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보법이라 보를 수 있을 만한 것도 하나 배웠다. 그저 단순히 앞으로 빠르게 돌진하는 것이 전부인 보법이었지만 그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서른 명의 쟁자수는 단형우로부터 배운 검과 보법을 쉬지 않고 수련했다. 하지만 진전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단형우가 표국에 머물고 있을 때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단형우가 요녕 쪽으로 여행을 떠난 순간부터 발전이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른 명의 쟁자수는 결코 실망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단형우에게 배운 무공은 그들의 전부였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결국 깨달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단형우와 같은 위력을 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처음부터 인지한 사항이다. 하지만 막상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허탈했다. 그들이 낼 수 있는 힘은 너무나 미약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절망할 만한 그런 상황에서도 쟁자수들은 절대 포기하거나 약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방법을 궁리하면서 수련에 매진했다.
단형우는 연무장에 향해 느긋하게 걸어갔다. 지금 그의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으니 각자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연무장으로 걸어가던 단형우는 갑자기 느껴지는 기운에 눈을 빛냈다. 단형우가 한 걸음 내딛자, 어느새 그는 연무장 앞에 서 있었다.
우르르르.
연무장 안에서는 은은한 뇌성이 울렸다 .쟁자수들이 천뢰를 수련하는 소리였다. 단형우는 여전히 빛내며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서른 명의 쟁자수가 수련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쟁자수들이 선택한 방법은 힘을 합하는 것이었다. 하나하나가 가진 힘은 미약하지만 그 미약한 힘 서른이 모이니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서른 명의 쟁자수는 동시에 검을 들어 올렸고, 동시에 아래로 내리 그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뇌기가 요동쳤다.
그들은 힘을 모으는 법을 터득했다. 그저 동시에 검을 내리친다고 힘이 모이는 것이 아니다. 뇌기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불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들은 결국 해냈다.
꽈르릉!
벼락 한 줄기가 연무장에 떨어져 내렸다. 작은 뇌기 서른이 모여 만든 강대한 힘이었다.
벼락이 떨어진 후, 쟁자수들은 그제야 단형우를 발견했다.
“아! 단대협.”
쟁자수들 중 하나가 소리치자, 그들 모두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단형우는 연무장 입구에 서서,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슬쩍 미소 지었다.
쟁자수 하나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우리가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단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좋은 방법이다.”
단형우의 말에 서른 개의 웃음꽃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단형우가 확인해 주지 않았는가. 쟁자수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힘이 끓어올랐다.
“이렇게 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지.”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동시에 우르르 몰려갔다. 연무장 중간에 선 서른 쟁자수의 검이 다시 춤을 췄다.
꽈릉!
꽈르릉!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벼락이 연무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단형우가 돌아왔기에 뇌기도 훨씬 강력하게 모여들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단형우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더 이상 이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이들은 이미 훌륭하게 자신의 자리에 안착했다.
쟁자수들이 궁리해 낸 방법은 단형우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큰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단형우가 알려준 보법을 적절하게 섞는다면 실전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수련을 하면 성장 속도도 훨씬 빨라진다. 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벌써 벽 하나를 넘어섰다.
혼자서도 꽤 대단한 위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형우와 비교하면 반딧불과 태양의 차이겠지만.
무림맹주의 집무실은 폭풍전야와도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맹주님. 게다가 시체마저도 수습하지 못했다합니다”
제갈중천의 말에 독고운이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이제 명실상부하게 천마가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무황을 죽였으니 더할 나위 없는 증명을 한 셈이다.
천마가 무황과 싸워 이길 수 있다.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들은 분명 심상치 않았다.
“시체가 사라졌다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갈중천이 말끝을 흐리자 독고운이 불길함을 느끼며 그를 쳐다봤다.
“주작단의 보고에 의하면, 패룡의 시체도 사라진 모양입니다.”
“패룡의 시체까지? 패룡은 이미 장례까지 치르지 않았던가?”
“장례에 사용된 시체가 가짜인 모양입니다. 주작단에서는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독고운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