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24
혈영은 혈마자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무공을 익혔다. 실전도 원 없이 치렀고, 영약은 밥 먹듯 먹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혈영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천기자의 것보다는 못하지만 진법을 이용해 훨씬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무림맹 전체가 덤벼들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런데도 단형우에게는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만큼 단형우가 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래도 자신이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후우, 그럼 방법은 하나뿐인가? 하지만 이 방법을 쓰려면 회주께 허락을 구해야겠군.”
혈영은 침울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회주는 허락해 줄 것이다. 문제는 이 방법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사영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사영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지.”
검왕과 검마의 공동제자
천마신교의 등장과 무림맹의 활발한 대응으로 무림이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하남표국은 거의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하남표국의 연무장에는 오늘도 기합 소리와 우레 소리, 그리고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으아악!”
종칠은 검왕과 검마의 합공에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난타를 당하고 말았다. 너무나 아파 절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다섯 수까지는 어찌어찌 피했는데, 그 이후는 절대 종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종칠은 결국 바닥에 대(大)자로 누워 버렸다.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용케 눈은 뜨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즉시 어마어마한 응징이 가해졌기 때문에 초인적인 의지로 의식의 한 줄기 끝을 붙잡을 수 있었다.
“에잉, 가르쳐 준 것도 제대로 못해서 어디에 쓰누. 쯧쯧쯧.”‘
검왕의 쳐 차는 소리에 종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정말로 억울했다.
“아니, 제가 무슨 천잽니까? 한 번 가르쳐 준걸 어떻게 익혀요!”
종칠이 악을 쓰며 대들자, 검왕의 손이 슬쩍 움직였다.
쾅!
“커억!”
종칠은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하지만 역시 의식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끄응……”
종칠은 그냥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항상 한 마디 더 하고 대들어서 언제나 뒤통수를 얻어맞지만, 그 버릇은 좀체 고쳐지지 않았다.
“이놈아,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서 쉴 생각이냐? 어서 일어서지 못해?”
검왕의 역정에 종칠이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종칠은 이제 고수고 뭐고 다 싫었다. 그저 이 두 늙은이에게서 벗어나 편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검왕과 검마는 전혀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검왕과 검마가 갑자기 종칠에게 달려든 것은 최근 허창을 중심으로 하남 지방에 널리 퍼진 소문 때문이었다.
‘검왕과 검마가 공동제자를 들였다.’
처음에는 헛소문이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었다. 당연히 출처는 하남표국이었다. 게다가 하북의 팽가에서도 그 소문을 증명해 주고 있으니 그 일은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소문이 나자 검왕과 검마는 즉시 종칠의 지옥수련에 들어갔다.
적어도 검왕과 검마의 공동제자라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검왕과 검마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 아닌가.
물론 그렇게 하며 자신들도 단형우와 함께 수련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당하는 당사자인 종칠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물론 강해지고 있었다. 정말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천재들이 이러한 속도로 성장할까? 죽음의 공포와 죽는 것이 나을 정도의 고통은 재능을 무시한 성장을 종칠에게 안겨주었다.
수련을 빙자한 매타작이 다시 시작되었다.
“정말 대단하네. 확실히 십대고수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우문혜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조설연과 제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부터 그녀들도 하남표국의 연무장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사실 단형우가 최근 연무장에만 있기 때문에 그녀들도 단혀우를 보려면 연무장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연무장에 왔으니 겸사겸사 수련도 병행했다.
세 명 중 우문혜의 무공이 가장 높았고, 조설연이 가장 낮았다. 하지만 조금씩 그 수준이 맞춰지고 있었다. 그녀들의 무공을 봐주는 사람은 바로 단형우였다.
그녀들은 수련을 쉬는 동안에 단형우에게 말을 걸거나 종칠의 수련을 구경했다. 종칠이 수련하는 모습은 그것대로 그녀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두 십대고수가 합공하는 모습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검왕과 검마가 단형우와 대련하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너무 수준이 높아 그녀들이 구경해도 거의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만큼 검왕과 검마의 수준이 높아졌다. 웬만한 사람들은 긍 움직임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어쨌든 종칠의 수련 모습은 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도움이 되는 구경거리였다.
“정말로 저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군요.”
제갈린도 은근히 감탄했다. 종칠에게 무재(武才)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지금 종칠은 그 어떤 천재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그것은 검왕과 검마가 종칠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것도 알지만, 사실 단형우가 함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들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단형우가 해준 얘기가 아니라 검왕과 검마가 해준 얘기였다.
하남표국의 연무장은 언제나 기(氣)가 충실한 상태였다. 그 어떤 영산보다 기의 밀도가 높았다. 그것은 수련을 위해서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렇게 상식에 벗아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할 수는 없다.
단형우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이 연무장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기의 그릇이 조금씩 부서져 나갔다.
기의 그릇은 단전을 파괴해 부수지 않은 한, 부서진 만큼 다시 복구하려는 성질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복구한 그릇은 부서지기 전보다 더 단단하고 커지는 것이 당연했다.
무공을 수련하다 보면 무수히 많은 벽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벽을 만나면 그것을 깨기 전까지는 성장이 멈춘다. 그리고 틈事습?얻거나 벽을 부술 수 있는 수련법을 찾아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다시 성장하게 된다.
그 성장의 결과가 바로 그릇을 새로 만들어낸다. 그러기 때문에 하남표국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게 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계속해서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새로운 수련법을 찾거나 스승의 조언을 얻을 필요가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에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걸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 벽을 부수기 위해서는 반드시 커다란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것만큼은 하남표국 연무장이 해결해 줄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지점까지 너무 쉽게 도착했기 때문에 벽을 깨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하남표국 연무장은 그야말로 무공 수련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곳 하남표국 연무장에서 수련하는 사람들 중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지옥을 방불케 하는 수련의 주인공인 종칠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종칠처럼 수련한다면 분명히 빠르게 강해지고 고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고수도 좋지만 일단 종칠이 수련하는 모습은 인간이라면 도저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
“저러다 정말로 고수가 되겠어. 저 정도면 이미 백사단 셋 정도는 충분히 상대하겠는데?”
우문혜의 말에 제갈린과 조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도 우문혜가 거느린 사령당이라는 조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백사단은 사령당에서 가장 강한 열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영사나 우문혜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고수들이었다.
그런 백사단 세 명의 합공을 견디려면 적어도 영사 정도는 되어야 가능했다. 즉, 종칠의 수준이 벌써 영사 정도로 올라섰다는 뜻이다. 물론 예전의 영사와 비교한 것이지만.
영사는 우문혜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단형우의 눈치를 살피며 수련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우문혜가 한 말을 들었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검왕과 검마에게 정신없이 얻어터지고 있는 종칠을 쳐다봤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늘은 좀 나은 편이었다. 어제는 종칠의 양팔과 다리가 부러졌다. 아마 그래서 오늘 수련의 강도가 조금 약한 것이리라.
‘만일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자살했을지도 모르겠군.’
영사는 농담을 반쯤 섞어서 그렇게 생각?다. 만일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든 견디고 버틸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절대로 저 자리에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영사는 다시 한 번 단형우의 눈치를 살핀 후, 다시 수련에 집중했다.
영사 역시 이곳 연무장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었다. 종칠만큼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크아악! 거기 어제 부러졌던 데란 말이에요!”
조칠의 처절한 외침이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종칠은 팔이 부러진 대가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검마와 검왕의 수련에는 절대 자비가 없었다. 팔이 부러져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양 팔과 양 다리가 다 부러지면 더 이상 수련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그 전에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젠장, 이게 대체 몇 번째야?’
팔이 몇 번째 부러진 건지 이젠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뼈가 부서지지 않고 아주 깔끔하게 부러진다는 것이었다. 잘 맞추기만 하면 충분히 완쾌되는 상처다. 그리고 그 상처는 단형우 덕분에 하루면 끝이었다.
그래서 종칠이 요즘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바로 단형우였다. 단형우는 종칠이 수련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면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게 나타나 머리에 손을 얹고 강렬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운을 받아들이면 검왕과 검마가 잘 맞춰놓은 팔다리의 뼈가 그대로 붙어 버렸다.
참으로 인간이 할 수 없는 경지의 치료였다.
종칠은 그렇게 며칠 쉴 시간을 빼앗아 버리는 단형우가 정말로 무서웠다.
어쨌든 이렇게 팔이 부러지면 잠시 쉴 수가 있었다. 팔이 부러져서 얻는 고통이 검왕과 검마에게 얻어맞는 고통보다 훨씬 참을 만했다.
종칠은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연무장 풍경을 바라봤다. 연무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매일 같은 수련을 반복하면서도 결코 질리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열심이었다.
“에휴……”
종칠의 입에서 한숨이 새나왔다. 저들처럼 수련을 하하면 백날이라도 쉬지 않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도망가고 싶었다.
그때 종칠의 눈에 들어온 사람들이 바로 낙뢰대였다.
낙뢰대는 처음부터 끔까지 같은 수련만을 반복했다. 그들이 낙뢰검법이라고 부르는 내려치기와 낙뢰보라 부르는 보법이었다.
낙뢰대는 모두 서른이나 되었지만 마치 한몸인 것처럼 움직였다. 검을 내리치는 것도 동시였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꽈르릉!
서른의 힘이 모여 만들어 낸 벼락이 떨어졌다. 종칠은 그 광경을 보며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검왕만 아니었다면 자신도 바로 저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낙뢰대보다 종칠이 훨씬 강하지만 그것은 지옥훈련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사실 종칠의 꿈은 딱 낙뢰대 정도였다.
십대고수의 제자가 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죽음을 한상 목전에 둔 제자라면 전혀 필요 없었다.
종칠은 넋 놓고 낙뢰대의 수련을 바라봤다.
낙뢰대 서른이 동시에 걸음을 옮겼다. 낙뢰대는 순식간에 연무장의 중앙에서 한쪽 끝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였다. 종칠의 눈에도 마치 그들이 원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종칠의 눈이 빛났다.
“정말로 대단한데? 빠르기로는 그 어떤 신법보다 뛰어날 것 같아.”
종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왕과 검마가 있는 쪽을 슬쩍 쳐다봤다. 검왕과 검마도 낙뢰대의 수련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조금 더 쉴 수 있겠군.’
종칠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낙뢰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낙뢰대는 계속해서 신법을 펼쳤다. 서른이 하나가 되어 연무장 여기저기로 이동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쉬익! 쉬익!
낙뢰대가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연무장을 울렸다. 그렇게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던 낙뢰대는 어느 한순간 동시에 검을 내리쳤다.
꽈르릉!
꽈광!
벼락 한 줄기가 연무장 바닥에 떨어져다. 단단한 청석이 벼락에 맞아 산산이 부서졌다. 대단한 파괴력이었다.
떨어지는 것이 벼락인 만큼 공격속도도 대단했다. 미리 공격을 예측해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거의 막거나 피하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낙뢰대는 정말로 대단한 능력을 보여줬다. 한 명 한 명은 보잘 것 없을지 모르지만 서른 명이 힘을 합하니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낙뢰대가 내리꽂는 벼락은 절정고수의 일격보다 훨씬 파괴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종칠이 눈여겨 본 것은 그런 파괴력이 아니었다.
‘정말로 빠르다!’
종칠이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낙뢰대의 속도였다. 낙뢰대의 낙뢰보는 직선으로 움직이는 속도가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종칠이 눈으로 따라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니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저 정도로 빠르면 도망갈 수도 있겠는걸?’
종칠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낙뢰보 정도로 빠르다면 검왕과 검마를 피해 도망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솟아났다. 문제는 어떻게 배우느냐 하는 것이다.
종칠이 슬쩍 눈동자를 굴려 단형우를 쳐다봤다. 낙뢰보의 출처가 바로 단형우다.
낙뢰대는 단형우로부터 검법 한 초식과 보법 하나를 배웠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낙뢰검법과 낙뢰보가 되었다.
종칠 역시 그 검법을 배웠지만 지금은 쓸 수가 없었다. 아마 이제 더 이상 종칠은 그 검법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모두가 검왕 때문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것을 아쉬워 할 때가 아니다. 낙뢰보가 필요했다.
아니, 낙뢰보의 모태가 되는 단형우의 보법이 필요했다. 그것만 있으면 검왕과 검마로부터 도망칠 수 있으리라.
일단 결심을 한 종칠은 검왕과 검마의 눈치를 보며 단형우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행여 검왕이나 검마가 눈치챌 새라 한 걸음을 이동하는 데도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검왕과 검마는 종칠이 하는 양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지켜봤다.
종칠이 단형우에게 뭔가를 얻는다면 그들로서도 나쁠 것이 없었으니까. 지금은 수련을 위해 괴롭히고 있지만 종칠은 두 사람의 제자가 아닌가.
검왕과 검마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종칠은 최대한 조심해서 단형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단대협.”
종칠이 다가오기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던 단형우는 슬쩍 고개를 돌려 종칠을 쳐다봤다. 그리고 열망에 가즉 찬 종칠의 눈을 발견했다.
단형우는 종칠이 묻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종칠은 단형우에게 상당히 소중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눈을 불태우며 열망하는 것을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종칠은 단형우가 다짜고짜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이 허락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자신이 말도 꺼내기 전에 허락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단형우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지도 않은 상태 아닌가.
종칠은 크게 감동했다. 자신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단형우의 발톱에 붙어 있는 때보다 못한 존재라 여겼다. 한데 그런 자신을 생각하는 단형우의 마음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종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슴이 벅차올라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말을 해라.”
단형우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종칠은 급히 숨을 고른 후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제, 제게도 저 보법을 가르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종칠의 말에 단형우는 지체 않고 앞으로 한 걸음 걸었다. 단형우의 신형이 순식간에 종칠 뒤로 이동했다. 종칠은 단형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해봐라.”
단형우의 말이 떨어졌다. 그제야 종칠은 단형우가 사람들을 가르치는 방식이 떠올랐다. 단형우는 결코 뭔가를 말로 설명하는 법이 없다. 그저 몸으로 죽어라 움직여서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종칠은 지체 않고 한 걸음 걸었다. 생각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어서 이 보법을 터득해야 지긋지긋한 구타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
종칠이 한 걸음을 걷자 단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종칠에게 다가가 등에 손을 얹었다.
순간, 종칠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발이 앞으로 뻗어 나가는 기이한 경험을 해야 했다.
쾅!
연무장 벽이 거세게 흔들렸다. 종칠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감싸며 벽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발이 뻗어나간 순간 어느새 연무장 끝에 도달했다.
뭔가를 느끼고 자시고 할 시간조차 없었다. 이건 단순히 빠른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종칠이 고개를 들어 단형우를 찾았다. 단형우는 어느새 종칠 옆에 서 있었다.
“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