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28
내원에는 표국의 주요 인물들이 기거하고, 외원에서는 표국의 다양한 일들이 처리되었다.
표국 내원에서 머무는 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조설연이었다. 조설연의 거처는 내원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위치했다.
그런 조설연의 거처에서는 몇몇 여인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최근 허창에 도는 소문을 들어봤나요?”
조설연의 질문에 우문혜의 눈이 빛났다.
“아, 그 혈영검에 대한 얘기?”
조설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갈린을 쳐다봤다. 제갈린은 쓴웃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처음 듣는군요.”
사실 허창을 제외한 중원 전체의 정보를 제갈린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허창에서 일어나는 일도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꿰고 있었지만, 혈영검에 대한 소문은 아직 듣지 못했다. 제갈린의 정보원들이 중요하지 않은 헛소문으로 판단한 것이다.
“혈영검이라면 천기자의 보물 중 하나 아닌가요?”
“그렇지. 천기자의 보물들 중에서도 꽤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소문이 파다하던데?”
“전 혈영검 하면 검마 어르신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조설연의 말에 우문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천기자의 비동에 간 것도 혈영검을 얻기 위한 거라고 했었던가?”
“맞아요. 비동이 무너지면서 사라지긴 했지만요.”
조설연과 우문혜의 말에 제갈린도 당시 기억이 떠올라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전 기기에 있다는 천기진해를 꼭 보고 싶었는데 정말로 아깝게 되었죠.”
그렇게 잠시 추억을 더듬던 제갈린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혈영검의 소문이라니 , 무슨 말인가?”
“아, 혈영검이 허창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혈영검이요?”
제갈린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혈영검은 형산에 파묻혔다. 게다가 그곳은 천기자의 진법으로 보호되고 있어, 발굴하고 싶어도 절대 발굴이 불가능했다.
천기자를 능가하는 진법의 대가가 나타나 진을 해체한다면 모를까, 그 전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해하기 어렵군요.”
“나도 믿기 어려워요. 하지만 아무래도 그냥 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조설연의 말에 제갈린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만일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검마 어르신이 가만 계실까요?”
제갈린의 말에 우문혜와 조설연이 표정이 굳었다.
“어쩌면 허창이 꽤 시끄러워질 수도 있겠군요.”
조설연의 말에 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설연의 말대로 허창은 상당히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것이 검마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검마는 혈영검에 대한 소문을 듣고서도 그저 담담히 평소대로 행동했다.
오히려 허창이 시끄러운 이유는 수많은 무림인들이 혈영검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몰려왔기 때문이다.
무림인들이 많이 모이자 자연 싸움이 잦아지고, 싸움이 잦아지니 조용할 날이 없었다. 지금도 허창에는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중심에는 언제나 혈영검이 있었다.
“혈영검이 나타났다는 얘기는 들었나?”
검왕의 질문에 검마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소문 정도는 검마도 충분히 듣고 있다.
“듣기로는 혈영검을 얻기 위해 여기 왔다고 하던데, 안 가봐도 되나?”
검왕의 말에 검마가 피식 웃었다.
“됐네.”
검왕은 그런 검마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꽤 애타게 찾은 모양이던데, 이젠 필요 없는 건가? 원한다면 내 좀 도와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검왕의 말에 검마가 고개를 저었다.
“됐다니까. 이젠 더 이상 그 검은 필요 없네.”
검왕이 으아한 표정을 짓자 검마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걸 원한 이유가 금마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기 위해서였네. 혈영검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얼핏 들었거든. 확실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는 그런 헛소문에 현혹될 정도로 절실했으니까.”
검마의 설명에 그제야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지. 검이 좋다고 실력이 좋아지는게 아니라는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테니 말이야.”
검마는 검왕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돌려 종칠을 쳐다봤다. 종칠은 만신창이가 되어 한쪽에 널브러져 있었다.
“요즘은 새로운 것들을 많이 깨닫고 있네. 반드시 수련만이 실력을 키우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 저놈을 가르치면서 깨달았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새로운 벽을 넘어설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된다는 것도 말이야.”
검마의 말에 검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가르쳐 본 것은 검왕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몇 마디 조언을 해준 적은 있어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종칠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검왕 역시 검마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고마운 놈이니 더 열심히 가르쳐야지.”
검왕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마도 고개를 끄덕이며 검왕의 말에 동의를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의 눈은 종칠을 향해 있었다.
종칠은 검왕과 검마의 타오르는 듯한 눈빛을 받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고마우면 좀 쉬게 해주던가!’
하남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혈영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을 때, 유일하게 그렇게 가만있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형표였다.
“이러다간 허창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겠군.”
요즘 허창이 너무 어수선하니 표국 사업에도 꽤 지장이 있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크게 위축된 것이다. 상단은 물론이고, 어딘가를 가야 할 일이 있는 사람도 되도록이면 움직이지 않으려 애썼다.
당연히 표국을 이용하는 사람도 크게 줄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표국의 재정을 압박했다. 아무리 일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있는 법이다. 게다가 하남표국은 규모가 큰 만큼 유지비가 상당했다.
단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별 문제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표국 일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위험할 때일수록 한번 표행을 떠나면 큰돈이 들어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장기적으로 바라보면, 이는 허창 자체가 망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시일이 지나면 결국 하남표국은 상당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형표는 어떻게든 위기를 헤쳐 나가 결국은 표국을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능력도 있고 자신도 있었다.
문제는 허창의 다른 사람들이었다. 즉, 허창에 있는 상단이나, 소규모 표국, 그리고 중소 무림문파들이 문제였다. 하남표국의 위상이 커지니 자연스럽게 하남표국이 그들을 이끌어나가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이번 일로 그들이 힘들어지자, 그들의 대표가 하남표국에 찾아와 형표에게 이 일을 해결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을 한 상태였다.
“대체 나보고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하라는 건지, 원.”
형표는 머리를 굴려봤다. 어쨌든 이렇게 허창의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부탁하는 일이니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이 일을 해결하면 하남표국은 허창은 물론이고 하남 자체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무림인들을 상대하는 일이다. 하남표국만으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검왕과 검마가 있다 하지만 허창에 모여든 무린인들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십대고수에 버금가는 사람들도 여럿 들어왔다는 소문부터, 실제 십대고수가 들어왔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그러니 하남표국이 아무리 성장을 했다 하지만 그런 큰일을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혈영검이 손에 들어오면 어떻게 해볼 텐데 말이야.”
형표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표사 하나가 형표를 찾아왔다.
“국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어디서 왔다던가?”
“금영상단에서 왔다 했습니다.”
“금영상단?”
형표는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좀처럼 금영상단이라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나 생소한 이름이었다.
“한데 날 만나자고 하던가?”
보통 하남표국 정도 되는 큰 규모이 표국인 경우 국주가 직접 만나 거래 상담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데 국주를 직접 지목했다면 상대가 큰 거래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표사는 형표의 질문에 즉시 대답했다.
“아주 중요한 물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형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보도록 하지. 아니, 이리로 모시는게 낫겠군.”
형표는 자신의 집무실로 손님을 모시기로 했다. 중요한 물건을 가져왔다면 좀 더 안전한 곳에서 만나는 것이 나았다. 아무래도 국주의 집무실이 연무장에서 가깝기 때문에 접객실보다는 훨씬 안전했다.
표사가 고개를 숙이고 급히 물러난 지 얼마 안 있어 한 사람을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모시고 왔습니다”
형표는 표사의 말에 집무실 밖으로 나가 손님을 맞이했다.
“형표라고 합니다.”
정중한 포권과 함께 인사를 하자 상대도 마주 포권하며 인사를 했다.
“하벽이라 합니다.”
하벽은 인사를 한 후, 한 마디를 덧붙였다.
“비록 작지만 금영상단이라는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형표는 그렇게 하벽을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표사가 물러가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데 중요한 물건을 맡기시려 한다 들었습니다.”
하벽은 지체 않고 옆에 놓아둔 상자를 내밀었다. 그 상자는 길쭉한 모양이었는데, 검을 넣어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형표가 상자를 받아들며 뚜껑을 살짝 열었다.
“혈영검입니다.”
하벽의 말에 형표는 하마터면 상자를 떨어뜨릴 뻔했다.
“혀, 혈영검이라니요?”
“요즘 허창을 시끄럽게 달구는 그 소문의 주인공이 바로 그것입니다.”
형표는 침을 꿀꺽 삼킨 후 상자를 완전히 열었다. 안에는 검집조차 없는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검신이 온통 핏빛 가득한 걸로 봐서 혈영검이라는 이름과 썩 어울렸다.
“이, 이것이 진짜 혈영검이라는 말씀입니까?”‘
“진품입니다.”
형표는 혈영검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진품인지 아닌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아니, 한 가지 있긴 ?다. 검마를 부르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검마가 그렇게 원하던 혈영검이었으니 아마 알아볼 수 있으리라. 그것도 아니라면 단형우에게 부탁해도 될 것이다. 단형우는 천기자의 무공을 익혔으니 천기자의 물건인 혈영검도 알아볼 수 있을지 몰랐다.
어쨌든 형표의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온통 헝클어졌다.
“이것을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혈영검같이 위험한 물건을 이송하려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남표국은 그것을 할 수 있었다. 단형우가 있었으니까.
“열흘 간 보관만 해주십시오.”
형표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물건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남표국에 가져왔지요. 보수도 만족하실 것입니다.”
형표가 하벽을 쳐다봤다. 하벽은 형표와 눈을 마주친 후,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수는 그 혈영검입니다.”
형표의 눈이 커졌다. 담담한 하벽의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그것을 열흘간 보관만 해주신다면 혈영검을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단, 혈영검이 하남표국에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남표국에서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조건입니다.”
형표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민을 했다. 이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지금 허창에 있는 모든 무림인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물론 전부가 대놓고 달려들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저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로군요. 다른 분들과 상의를 좀 해봐야겠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벽이 그렇게 말하자 형표는 한숨을 내쉬며 하벽을 내원에 있는 특별한 접객실로 안내했다.혈영검을 들고 있는 사람을 외원의 접객실에 방치할 수는 없었다.
“요즘은 왠지 자주 모이게 되네요.”
조설연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하자 방안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래, 우리 국주께서 대체 왜 이렇게 다들 보자고 한 겐가?”
검왕의 말에 형표가 좌중을 한 번 둘러봤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형표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내쉰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혈영검이 나타났습니다.”
형표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흠칫했지만 이내 평온한 신색을 되찾았다.
“왜? 혈영검이 갖고 싶나?”‘
검왕이 약간 비꼬듯 말하자 형표가 가당치 않다는 듯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나타났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그것이 하남표국으로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그제야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건 자칫하면 큰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조설연이 급히 물었다. 하남표국은 현재 조설연의 모든 기반이다. 표국의 위기는 즉, 조설연의 위기와 같았다.
형표는 하벽이 찾아온 일을 모두 얘기했다. 형표의 얘기를 듣는 동안 좌중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실로 놀라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검왕이 검마를 슬쩍 쳐다봤다. 검마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정말로 혈영검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린 듯했다. 검왕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을 버린 자의 검은 정말로 무서운 법이다.
“대체 그 하벽이라는 자의 목적이 무엇인가?”
검왕의 질문에 형표가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