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29
“그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을 물어볼 경황이 아니고, 또 왠지 묻기가 꺼려지는 질문인지라……”
“하긴, 그렇겠지.”
검왕은 그렇게 말하며 제갈린을 쳐다봤다. 현재 이곳에서 가장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이 바로 그녀 아닌가. 검왕의 눈길이 제갈린에게 머물자 방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제갈린을 쳐다봤다.
제갈린은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며 생각한 바를 말했다.
“하남표국에 혈영검을 열흘이나 보관하겠다는 얘기는 허창에 있는 모든 무림인들의 표적이 되라는 뜻이에요. 그 이후에 혈영검을 주겠다는 얘기도 계속해서 표적이 되라는 뜻이죠.”
제갈린은 그렇게 말한 후, 좌중을 둘러봤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였다.
“하긴, 하남표국을 제대로 곤경에 빠뜨리려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군.”
“바로 그거예요. 하지만 그는 왠지 원한과는 관계가 멀어보여요. 그러니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을 확률이 커요. 그는 분명히 어떤 암중 인물의 부하일 거예요. 하남표국에 뭔가를 원하고 있는.”
“그럴 수도 있겠군요. 국주님. 그의 행동이나 표정이 어땠나요? 그는 진짜 상인처럼 보였나요?”
조설연의 질문은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형표는 그제야 하벽의 얼굴이나 표정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혈영검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런 것을 살필 경황이 없었으나, 지금 이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몇 가지 이상한 점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형표가 사람 보는 눈은 탁월했다.
“그러고 보니…… 뭔가 느낌이 묘하긴 했습니다. 보통 상단주들과는 당당함이 다르다고 할까요?”
“당당함?”
“크건 작건 하나의 단체를 이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당당함이 있지요. 무인들의 기세와 비슷한 건데, 그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의 밑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표의 말에 제갈린이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그런 것을 알 수 있다니,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네요.”
제갈린은 그렇게 말해 주위를 환기시킨 후, 말을 이었다.
“그럼 결론이 났군요. 확실치는 않지만 그자는 누군가의 사주로 하남표국에 혈영검을 건네주러 온 거예요. 아마 거절하더라도 혈영검은 하남표국에 있게 되겠죠. 그건 오히려 좋지 않아요. 혈영검을 확실히 맡아서 보관하는 것이 훨씬 대처하기 편할 테니까요.”
제갈린의 말에 형표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의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뒷일은 부탁드리겠습니다.”
“염려하지 마라. 간만에 재미있겠구나. 이번 기회에 그놈 실전 훈련도 좀 시킬 수 있겠군. 잘 됐다.”
검왕의 말에 검마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죽음을 마주하고 실전을 겪으면 훨씬 얻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종칠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수련하지만 뭔가 모자란 부분이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메워줄 절호의 기회였다.
형표는 검왕과 검마를 보며 안도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하벽으로부터 혈영검을 받기 위해서.
형표가 나가자, 단형우가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하벽이 머무는 접객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혈영검의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혈영검의 존재감과 함께 강한 인연의 가닥도 느껴졌다. 혈영검도 자신과 인연이 있는 물건이었다.
천섬과의 인연이 끝나니 혈영검이 나타났다. 이것과의 인연도 정리를 해야 했다.
“재미있꾼.”
단형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하남표국이 일을 받아들였습니다.”
혈영은 무영대원의 보고에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무영대원은 혈영의 말에 고개를 숙인 후 사라졌다. 그의 얼굴은 하남표국에 혈영검을 전해 준 하벽과 똑같았다.
혈영은 미소를 지우지 않으면 중얼거렸다.
“사영, 슬슬 움직여라. 네가 해야 할 일은 단형우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과, 단형우가 혈영검을 깨우면 그것을 은밀히 가져오는 것이다.”
혈영의 말에 어딘가에서 사영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하지.”
혈영은 혀를 내둘렀다. 아직도 사영의 기척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말을 하는데도 알 수 없으니 정말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잠시 후, 혈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영의 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사영의 기척은 그렇게 갑자기 나타났다가 점점 멀어졌다. 사영의 기척이 향하는 곳은 하남표국이 있는 곳이었다.
혈영은 사영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굳은 얼굴을 풀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놀랐다.
사영이 기척을 혈영이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은 사영이 일부러 기척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혈영이 진짜 놀란 이유는 사영의 기척이 시작된 곳이 바로 혈영의 등 뒤였기 때문이다. 사영은 지금까지 혈영의 등 뒤에서 기척을 죽인 채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태에서 말을 했는데도 혈영이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성공할 수밖에 없겠군.”
혈영은 어쩌면 사영이 자신을 노린다면 절대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공격하는 순간에는 반드시 틈이 생긴다. 자신은 그 틈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사영의 은잠술과 기척을 지우는 능력은 발군이다. 아무리 단형우가 강하다 하더라도 사영이 실패할 일은 없어 보였다.
혈영검의 각성
하남표국에 혈영검이 있다!
소문이 허창을 뒤흔들었다. 그 소문은 허창을 넘어 하남 전체로 들불같이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소문뿐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혈영검을 노리고 허창에 온 무림인들이 하남표국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하남표국은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곳이다. 하남표국에는 십대고수가 둘이나 있다. 더구나 검왕과 검마는 십대고수들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한다.
무림인들이 하남표국 그너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하남표국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만일 혈영검이 무림맹이나 정천맹에 넘어갔다면 대부분은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하남표국이 포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한 가지 소문이 은밀히 퍼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천기자가 남긴 마지막 무공의 비밀이 혈영검에 담겨 있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의 진위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사람들은 그 소문을 무조건 확인하고 싶어 했다.
천기자가 남긴 마지막 무공이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 소문은 모든 무림인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혈영은 은밀한 장소에 숨어서 무림이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사영의 움직임도 살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아마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군.”
혈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무림인들이 더 모여들기를 기다렸다. 혈영이 노리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혈영검을 단형우가 깨우게 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무림인들을 선돈해서 단형우의 능력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이루기 위해서는 하남표국 근처에 모여든 무림인들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그들이 움직여 줘야 두 가지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지.”
혈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남표국을 바라봤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무림인들이 움직여야 할 시기는 혈영검이 각성을 한 이후여야 한다.
“이것이 혈영검이로군요.”
제갈린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혈영검을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검신이었다. 보통 철로 만든 것은 분명 아니었다. 천기자는 아마 특별한 금속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천섬도 그냥 철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만일 보통 철로 만들었다면 그렇게 강력한 뇌기를 담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혈영검 역시 특별한 철로 이루어져 있었다.
혈영검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제갈린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혈영검 역시 천섬처럼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천섬에는 천기자 진법의 정수가 일부 담겨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제갈린은 몇 단계 성장했다. 이미 천섬에 있는 모든 것을 연구했기 때문에 이젠 뭔가 더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제갈린은 혈영검을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천섬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제갈린의 눈이 순간 반짝 빛을 발했다.
제갈린은 고개를 들어 단형우를 쳐다봤다. 천섬의 경우 단형우의 도움으로 염혜미가 그 껍질을 벗겨냈다. 그렇다면 혈영검도 비슷하지 않을까?
“다 봤으면 나도 좀 보고 싶구나.”
검마의 말에 제갈린은 흠칫 놀라며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공손히 혈영검을 내밀었다.
검마는 아련한 눈으로 혈영검을 바라봤다. 한때는 이것만 있으면 금마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런 힘은 없는 듯했다.
금마공에서 벗어나 더 높은 경지에 발을 디딘 검마는 그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검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검왕에게 넘겼다. 이제 모든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검왕은 검마로부터 혈영검을 받아들고는 이리저리 살폈다.
“호오, 정말로 괜찮은 검이로구나. 천섬보다 뛰어난 것 같은데?”
검왕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혈영검을 조설연에게 넘겼다.
“좋긴 하지만 나한테는 필요가 없는 검이다. 그나저나 아무리 봐도 이걸 이용해서 금마공을 물리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검왕의 말에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봤다. 어쩌면 뭔가 다른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검마는 그렇게 말하며 단형우를 쳐다봤다. 이젠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단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해달라는 듯이.
단형우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묵묵히 혈영검을 쳐다봤다. 혈영검이 하남표국에 들어왔을 때부터 강한 인연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보니 그 인연이 확연히 보였다.
단형우가 손을 뻗자, 조설연의 손에 혈영검이 단형우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혈영검을 쥔 단형우의 몸에서 은은한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검왕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나가서 해라! 나가서! 다 죽일 생각이냐!”
검왕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물론 아무도 단형우가 어떻게 나갔는지 보지 못했다.
“허, 참. 문도 닫혀 있는데 어디로 빠져나간 건지……”
검왕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방에 있던 모두가 밖으로 나갔다.
단형우는 방에서 꽤 떨어진 공터에 가만히 서 있었다. 몸에서 기세가 피어올랐고, 혈영검에서 뭉클거리며 핏빛 안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리고 이내 단형우가 피안개에 싸여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혈무(血霧)는 점점 넓게 퍼져 나갔다. 공터를 집어삼키고, 전각을 집어 삼켰다. 그리고 이내 하남표국 전체를 집어 삼켰다.
하남표국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경악했다. 사방이 혈무로 뒤덮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검왕이나 검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높은 무공으로도 혈무를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그저 근처에 있는 사람들만 간신히 구분하는 정도였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단형우는 아예 윤곽조차 볼 수 없었다.
“허어, 이 무슨 괴사인가.”
검왕이 감탄하자, 검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검왕이 그저 혈무에 시야가 가려진 것을 보고 있는 것에 비해 검마는 좀 상황이 달랐다.
핏빛 혈무에는 마기가 뒤섞여 있었다. 너무나 미약한 양이라 검왕조차 인지하지 못했지만, 검마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핏빛 마기라……. 이것이 혈영검의 힘인가.”
이 마기가 분명 특별한 작용을 하는 것이리라. 혈영검이 금마공에서 벗어나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이 그저 헛소리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남표국이 혈무로 뒤덮이자, 혈영이 눈을 빛냈다.
“드디어 혈영검이 각성을 시작한 것인가.”
혈영검이 깨어나면 사방이 피에 잠긴다 했다. 피에 잠기나는 말은 보통 수많은 죽음에 빗대어 쓰지만, 혈영검의 경우는 저 광경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월영이 알려준 대로군.”‘
혈영이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림인들 틈에 섞여 있는 무영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남표국을 뒤덮었던 혈무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혈무를 혈영검이 모두 흡수했다.
단형우는 가만히 혈영검을 들고 서 있었다. 단형우가 혈영검을 들고 한 일은 별것 아니었다. 그저 삼재기공을 일으킨 것뿐이었다.
단형우는 삼재기공의 끝을 본 후, 그 벽을 부수고 다시 쌓았다. 완전히 새로운 삼재기공이 된 것이다.
본래 천기자의 의도는, 극성의 삼재기공이 혈영검에 흘러가면 자동으로 껍질이 벗겨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단형우의 삼재기공은 천기자의 삼재기공을 넘어섰다. 그래서 천기자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덕분에 혈무가 하남표국을 뒤덮고 말았다.
원래대로라면 혈영검을 든 사람을 뒤덮는 정도로 끝나야 하는데 말이다.
사방이 피로 뒤덮인다는 것은 혈영검을 든 사람의 시야가 혈무로 가려진다는 뜻이었다.
검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단형우가 들고 있는 혈영검에 주목했다. 혈영검의 검신에서 요사스런 핏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혈영검은 여전히 마기를 내뿜고 있었지만, 그 기운은 마기라기보다는 차라리 요기에 더 가까웠다.
파앗!
혈영검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그 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조리 혈영검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허어, 정말로 대단하군. 천기자,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야.”
검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검마는 여전히 단형우 손에 있는 혈영검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어느새 혈영검에서는 더 이상 마기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요사스러운 핏빛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거무튀튀한 철검이 되어 있었다.
놀란 것은 검왕과 검마뿐이 아니었다. 구경하고 있던 모두가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이런 기사(奇事)를 겪어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그 대단한 일을 고작 검 하나가 만들어 냈다니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놀라고 있을 때,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표사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형표를 향해 소리쳤다.
“국주님! 큰일입니다. 무림인들이……!”
표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형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림인들이 최근 하남표국 근처로 모여들고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비록 혈영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그 소문에 반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표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무림인들이 지금까지 참고 견딘 것이 용했다. 물론 검왕과 검마의 이름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겠지만.
“무림인들이 날 보자고 하는가?”‘
형표의 말에 표사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한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겠지. 이 혈무를 모두 봤을 테니……”
형표가 지금 허창에 도는 소문을 모를 리 없다. 하남표국에 혈영검이 있고, 그 혈영검에 천기자의 마지막 무공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 정도는 형표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들었다. 그만큼 소문이 크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허창에 사는 사람치고 혈영검에 대한 소문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심지어는 하남에도 상당히 소문이 퍼져 나가 소림사에서 사람이 나오네 마네 하는 소문까지 함께 돌 정도였다.
“그래, 누가 날 보자고 하던가?”
“무림인들이 구름같이 몰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은 철혈권 진표입니다.”
철혈권 진표라는 말에 형표의 안색이 변했다. 철혈권 진표는 십대고수 중 하나다. 십대고수의 끝자락에 있는 자로, 무림맹주와 비슷한 실력이라 알려져 있다.
최근 검마나 정천맹주의 등장으로 잠시 십대고수에서 밀려난 적도 있지만, 무황이 죽고, 패룡이 죽으면서 다시 십대고수로 올라섰다.
철혈권은 검왕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단체에 적을 두지 않았다. 사실 적을 두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것이었다. 철혈권은 불같은 성격을 가졌고, 욕심이 많았다. 특별히 사람들을 이끌 만한 재목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 상황은 무림인들이 무공이 강한 철혈권을 중심으로 뭉친 상황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절로 와해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하남표국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어쩌시겠습니까?”
표사가 조심스럽게 물으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형표 주위에는 검왕도 검마도, 그리고 단형우도 있었다. 단형우가 얼마나 강하지는 하남표국에서 조금만 비중이 있는 표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남표국이 인정하는 표사는 검왕과 검마가 수련하는 중앙연무장에서 수련을 할 수 있다. 당연히 단형우와 검왕과 검마를 동시에 상대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끄응…… 일단 만나는 봐야겠지.”
형표는 그렇게 대답한 후, 검왕과 검마를 쳐다봤다.
“조금만 도와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