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3
“크윽!”
날카로운 검이 형표의 어깨를 살짝 스쳤다. 형표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러 그것을 쳐냈다.
챙!
쥐 눈을 한 사내가 그 모습을 보며 살기어린 표정을 지었다. 자신보다 약하다는 확신이 들자 살기가 짙어졌다.
촤촤촤!
사내의 검이 뱀처럼 형표를 노리며 휘어져 들어갔다.
챙! 챙!
형표는 두 번의 공격은 막아냈지만 세 번째 심장을 노리는 찌르기를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형표의 눈에 다급함과 절망이 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벼락이 떨어졌다.
번쩍!
형표는 놀란 눈으로 검과 함께 두 동강이 나 버린 쥐 눈 사내를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에서 산악 같은 기세를 흘리고 있는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는 형표 옆에 서서 묵묵히 주변을 둘러봤다. 표사들이 하나둘 죽어 갔다. 실력이야 두말할 것이 없었지만 녹림도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녹림도들은 동료의 시체를 밟고 무기를 휘두르며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크아악!”
“크윽!”
연달아 비명이 울렸다.
결국 표사들이 대부분 쓰러졌다. 표두인 마육이 아직까지 분전 하고 있긴 했지만 그나마도 오래갈 것 같지 않았다. 마육 부변에 다섯이나 되는 녹림도가 있었다.
형표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는 표사들이 모두 죽어 가는데도 움직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죽음의 위기에 처 했을 때 도와준 것이 다였다.
“뭐야? 이놈은? 쟁자수 뒤에 숨은 거냐?”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녹림도 하나가 형표에게 다가갔다. 형표가 흠칫 놀라 그를 쳐다봤다. 녹림도는 비웃음을 가득 안고 형표를 향해 몸을 날리며 도를 휘둘렀다.
번쩍!
녹림도의 도가 채 형표 앞에 이르기 전에 벼락이 떨어졌고, 처음 단형우에게 죽은 자와 마찬가지로 무기와 함께 둘로 쪼개졌다.
그제야 녹림도들의 주의가 단형우에게 쏠렸다.
“뭐야? 이 쟁자수는?”
표사들은 거의 처리하고도 여전히 녹림도는 많이 남아 있었다. 오십 가까운 사가 남아, 일부는 마육을 상대하고 있었고, 일부는 주변을 포위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없도록 감시했다.
그러고도 남은 다섯 사람이 단형우와 형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쟁자수 주제에 칼은……”
녹림도 하나가 비웃음을 머금으며 도(刀)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하지만 동료의 죽음을 알고 있던 터라 섣불리 덤벼들지는 않았다. 동료와 함께 움직일 생각이었다.
다섯 명이 단형우와 형표를 둘러쌌고, 남은 녹림도 중 둘이 핏발 선 눈을 부라리며 쟁자수들을 향해 다가갔다.
“쟁자수들까지 죽일 생각이오?”
형표가 소리치자, 녹림도 하나가 피식 웃었다.
“그럼 살려둘 것 같으냐? 어차피 표사들도 다 죽였는데 쟁자수들을 살려둘 이유가 뭐냐?”
녹림도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쟁자수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커다란 도를 휘둘렀다. 그의 도세(刀勢) 안에 갇힌 쟁자수는 다름 아닌 종칠이었다.
종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무리 무공을 배웠다 하지만 이제 걸음마를 겨우 뗀 수준이었다.
표사들을 도륙할 정도로 뛰어난 무위를 가진 고림도의 공격을 어떻게 피하겠는가.
번쩍!
막 종칠의 목에 떨어지려던 도가 벼락과 함께 두 동강 나버렸다. 그리고 그 도의 주인도 서서히 둘로 나뉘었다.
단형우는 무심한 눈으로종칠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들의 몸에서 살기와 함께 공포가 퍼져나갔다.
단형우는 그것을 느끼며 슬쩍 웃었다. 아무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입이 살짝 늘어난 정도였지만 왠지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섬뜩함을 안겨 주었다.
어쨌든 단형우의 그 한 수는 녹림도들을 한껏 긴장시켰다. 아무도 단형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움직이는 것은 볼 수 있었다.
종칠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과 검을 들어올리는 것까지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를 볼 수 없었다.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 단형우의 검은 원래자리로 돌아와 있었고, 시체가 생겼다.
녹림도들은 섣불리 쟁자수들을 향해 덤벼들 수가 없었다. 일단은 단형우가 먼저였다.
“뭣들 하고 있어! 저놈은 혼자야! 한꺼번에 달려들면 지가 어쩔 거야! 반은 쟁자수들을 처리하고 나머지는 저놈을 처리해!”
누군가가 외쳤다. 그리고 그 외침을 신호로 오십이나 되는 녹림도들이 한꺼번에 몸을 날렸다.
자칫 쟁자수나 형표가 포위를 푸는 틈을 타서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수밖에 없었다.
녹림도들이 살기를 풀풀 날리며 몸을 날린 순간 단형우의 눈에서 번쩍 빛이 일었다.
쩌저저적!
연달아 벼락이 떨어졌다. 어찌나 빠른지 마치 비가 쏟아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 벼락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녹림도들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장내에 사십여 구의 시체가 생겨났다. 불로 지진 듯한 흔적과 함께 둘로 쪼개진 시체들이.
형표는 너무나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어, 어떻게 한 순간에 수십을……”
형표는 물론이고 쟁자수들도 놀라서 단형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크윽!”
그러는 와중에 마육이 어깨에 큰 상처를 입고 비틀거렸다. 다른 녹림도는 모두 죽었지만 마육을 공격하던 다섯 녹림도는 멀쩡했다.
단형우의 공격 범위 안에 있었음에도.
“이, 이보게. 왜 가만히 있는 건가. 저, 저 사람은……”
형표가 단형우에게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단형우는 무심한 눈으로 형표를 쳐다볼 뿐이었다.
“왜?”
“왜, 왜라니…… 저 사람도 동료 아닌가.”
형표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동료?”
단형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무심하게 마육이 허벅지에서 피를 뿜어내는 광경을 지켜봤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 달라니 해 주지.”
단형우는 그렇게 대답하며 한 걸음 걸었따. 단지 한 걸음 움직였을 뿐인데 어느새 마육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벼락이 떨어졌다.
“허억, 허억.”
마육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대체 정체가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너무 숨이 차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묻고 싶지 않은지도 몰랐다.
“괜찮으십니까, 마 표두?”
마육이 그렇게 호흡을 고르고 있을 때, 형표가 다가와 물었다.
“괘, 괜찮네. 다른 사람들은……”
마육은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묻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정신없이 당하고 있을 때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지금 살펴보니 서 있는 표사는 형표 하나뿐이었다.
“젠장.”
마육이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동료의 시체가 쌓여 있는 족을 더 이상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마육의 눈에 당가 사람들이 보였다.
당가 무사들은 악전고투 속에서 용케 버티고 있었다. 당가 무사들을 공격하는 흑의인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도와가며 방어에 치중하는 당가 무사들을 간단히 제압할 수는 없었다.
흑의인들은 당가 무사와는 달리 주변의 움직임과는 전혀 상관없이 공격했다. 덕분에 번번이 결정적인 공격 시기를 놓쳐버리곤 했다.
마육은 그것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흑의인들 중에는 아직도 싸움에 끼어들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강해 보였다.
마육은 고개를 돌려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 역시 당가 무사들과 흑의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가만있는 거요?”
마육이 물었다. 하지만 단형우는 대답은커녕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마육은 속으로 발끈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단형우의 정체를 모르는 이상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마육 생각에 단형우는 절대로 평범한 쟁자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억지로 이번 표행에 국주가 끼워 넣은 것을 보면 이런 일을 예상해서 영입한 고수일 수도 있었다.
“저들을 도와줘야 하오. 급하단 말이오.”
마육의 말에 단형우가 슬쩍 그를 한 번 쳐다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단형우는 여전히 구경만 했다.
결국 보다 못한 형표가 나섰다.
“저…… 이보게. 조, 조금 도와주는 게 어떻겠나?”
형표의 말에 단형우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단형우는 속으로 잠깐 고민을 했다. 처음 검을 휘두른 이유는 형표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계쏙해서 검을 휘두른 이유 역시 종칠이나 다른 쟁자수들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표는 단형우에게 상당히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종칠이나 다른 쟁자수들을 단형우에게 엄청나게 잘해 줬다.
물론 힘에 눌렸기 때문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형우가 그들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육을 구해 주는 것부터는 조금 얘기가 달랐다. 마육은 죽어도 관계없었다. 사실 단형우는 마육을 이번 표행을 떠날 때 처음 봤다.
만일 그렇게 당하고 있는 사람이 사마철 정도만 됐어도 그다지 거부감이나 망설임 없이 도와줬을 것이다.
그래도 형표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도와줬다. 사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형표가 다시 부탁을 해 왔다.
단형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한 걸음을 걸었다. 당가 무사들이 있는 곳은 그래도 십여 장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한 걸음으로 단숨에 그 거리가 사라졌다.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마치 단형우가 원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연달아 벼락이 떨어졌다.
당호관은 경악했다. 눈앞이 번쩍하는 순간 흑의인들이 모조리 바닥에 쓰러졌다. 당호관이 본 것은 그저 벼락이 떨어지는 것과 희미한 사람 그림자뿐이었다.
그나마도 당호관 정도나 되니까 볼 수 있었다. 다른 당가 무사들은, 심지어 당철기마저도 그저 흑의인들이 벼락 맞아 죽는 모습밖에 못 봤다.
“이, 이게 대체……”
당철기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당철기와 당가 무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쟁자수들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일단 시신을 수습해라.”
당호관이 당철기를 쳐다보며 명하자 당철기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당철기는 서둘러 무사들을 지휘했다. 비록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방어에 치중해 피해를 최소화 하긴 했지만 그래도 큰 피해를 입었다.
서른이 함께 왔는데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스물이었다. 이번 공격으로 열이 죽은 것이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적들이 벼락에 맞아 죽었으니까.
당철기가 시신을 수습을 하는 동안 당호관은 쟁자수들이 있는 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흐릿해서 확실히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쟁자수 옷이었다.
당가 무사들은 모두 흑의를 입는다. 독이나 암기가 쉽게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하남표국 표사들은 모두 청의를 입는다. 가슴 부분과 등에 하(河)자를 수놓은 옷이다. 그리고 쟁자수들은 짙은 회의(灰衣)를 입고 있었다.
당호관이 본 것이 바로 그 회의였다.
당호관은 조금 당황했다. 녹림도들 역시 모두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대부분이 절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그리고 표사들도 거의 바닥에 누운 반면, 쟁자수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당호관이 천천히 쟁자수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쟁자숟를 하나하나 자세히 관찰했다.
순간 당호관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특이한 쟁자수가 하나 보였다. 허리에 칼을 찬 쟁자수였다.
“자네인가?”
당호관은 다짜고짜 물었다. 하지만 단형우는 그런 당호관의 물음에 답할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당호관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겐가?”
“자, 자네 뭐 하고 있나. 어르신께서 묻는데.”
형표가 다급히 옆에서 거들었다. 당호관은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자그마치 당가의 장로가 아닌가. 하지만 단형우는 당호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급해진 형표가 급히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이 친구가 저희들을 구했습니다.”
형표의 대답에 당호관이 형표를 쳐다봤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해서 괘씸하긴 했지만 어쨌든 답을 구?으니 일단은 넘어갔다.
“사문이 어디인가.”
당호관의 질문에 형표가 놀란 눈으로 단형우를 쳐봤다. 그리고 보니 이렇게 고강한 무공을 익혔으니 당연히 스승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보통이 아닌 대단한 사문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단형우는 당호관을 쳐다봤다. 당호관에게 처음으로 보인 반응이었다.
사문이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천기자가 생각났다. 단형우의 스승은 천기자라 말할 수 있지만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지금 단형우가 가지고 있는 무공은 천기자로부터 유래했을 수는 있지만 그 무공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자신만의 무공이었다.
“없다.”
단형우의 간단한 대답에 당호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점점 더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하며 전혀 공경심이 없는 말투까지 다 기분 나빴다.
“어, 어르신. 이 친구가 산속에서만 살다 와서 세상 물정이나 예의에 많이 어둡습니다. 어른신께서 제발 이해해 주십시오.”
형표의 말에 당호관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남표국 같은 곳에서 왜 이렇게 예의에 어긋난 놈을 쟁자수로 쓴단 말인가. 게다가 이렇게나 고강한 무공을 지닌 사람을.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로군. 좋아, 일단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지. 그래, 좋다. 사문이 없다는 말도 일단 믿어주기로 하지. 그럼 무공의 이름이 뭐냐.”
당호관은 이제 완전히 하대를 했다. 반말을 들으면서 조금이라도 존중해 줄 이유가 없었다.
“사, 삼재검법입니다.”
형표는 단형우가 대답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둘러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들은 당호관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지금 나랑 장난을 하자는 겐가!”
당호관이 무공명을 물은 것은 그것을 가지고 단형우의 정체를 유추해 보기 위함이었다.
헌데 삼재검법이라니, 놀리는 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 아닙니다. 정말로 이 친구가 익힌 검법은 삼재검법이 맞습니다. 다만 보통 알려진 삼재검법과는 다를 뿐입니다.”
형표의 부연설명에 당호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크흠, 정말 복잡하구나.”
당호관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형표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