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30
형표의 말에 검왕과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철혈권 정도는 내 상대가 될 수 없지. 뭐 저놈이 나서면 내가 손 쓸 기회도 없겠지만.”
검왕의 말을 들으며 형표가 슬쩍 웃었다. 검왕과 검마만 있어도 별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모든 무림인들과 싸울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한다.
하남표국의 강력함을 보여주던가 아니면 혈영검을 내놓던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설득해야 했다.
형표가 발걸음을 옮기자, 검왕과 검마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단형우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직 혈영검의 인연이 어디로 이어질지 확인하지 못했다. 아니,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단형우가 따라가자, 나머지 사람들 역시 그 뒤를 따랐다.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하남표국의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앞에 몰려들어 진 치고 있던 무림인들은 긴장하며 하남표국 정문을 바라봤다.
긴장해서 무기에 손을 얹은 사람, 마른침을 삼키는 사람, 몸을 덜덜 떠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앞에 서 있는 철혈권 진표는 담담한 눈으로 정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문이 완전히 열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하남표국의 국주 형표였다.
형표는 정문 앞에 모인 무림인들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하남표국의 국주 형표요.”
형표의 말과 태도는 당당했고, 기세는 앞에 서 있는 철혈권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무공으로는 한참 차이가 나지만, 자신감이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형표의 뒤에는 검왕과 검마가 있었다. 십대고수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형표의 당당함에 철혈권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 앞에 서면 하남표국의 국주 정도는 벌벌 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다앙하니 기분이 과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에 서 있는 검왕과 검마를 발견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보잘 것 없는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등에 업었다 이거로군.’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검왕과 검마를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 물론 이곳에 온 무림인들이 모두 합세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뒤를 장담할 수 없다.
‘그자가 도와준다고 했지만, 아직 믿을 수 없으니.’
철혈권은 이곳에 오기 전에 만났던 하벽이라는 사내를 떠올렸다. 하벽은 꽤 강한 무사였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해도 십대고수인 자신에 비하면 한참 아래였다.
문제는 하벽의 뒤에 서 있던 이름 모를 사람이었다. 그는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아니, 십대고수 중 그를 이길 수 있을 자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강한 자였다.
‘만일 일부러 기세를 흘리지 않았다면 나도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겠지.’
철혈권은 형표를 바라봤다. 그리고 형표 뒤에 버티고 서 있는 검왕과 검마를 확인했다. 검마와 검왕 역시 은은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기세로 철혈권을 누르려는 속셈이었다.
십대고수 둘이 동시에 내뿜는 기세는 대단했다. 철혈권이 아무리 십대고수에 속한다지만 끝자락에 간신히 이름을 걸치고 있을 뿐이다.
철혈권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들을 노려봤다. 힙겹긴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검왕과 검마의 기세를 한꺼번에 받아도 얼마 전 만났떤 그자보다 못했다. 그는 이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한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승산은 충분하군. 그가 약속만 지켜준다면.’
철혈권의 마음에 점점 자신감이 차올랐다.
“하남표국에서 혈영검을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소.”
철혈권의 말에 형표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렇습니다. 한게 그게 무슨 문제라도……”
형표의 말에 철혈권은 일순 할 말을 잊었다. 생각해 보면 문제는 없다. 하남표국이 혈영검을 얻은 것은 그들만의 능력이다. 그것을 주변에서 뭐라 할 수는 없는 법니다.
“혈영검은 상당히 위험한 물건이오. 자칫 강호에 피바람을 몰고 올 수도 있는 물건이란 말이오. 과연 하남표국이 그런 물건을 가질 자격이 있소?”
“대협께서는 하남표국의 힘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과연 하남표국에서 그것을 지킬 힘이 있느냐는 질문입니까?”
형표의 날카로운 말에 철혈권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 어지간히 설치는군.’
철혈권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형표를 한 방에 쳐 죽이고 싶은 마음과 한 번 참고자 하는 마음이 격렬하게 싸웠다.
형표를 죽이면 단번에 싸움으로 돌입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뒤에 서 있는 다른 무림인들이 과연 철혈권을 도와줄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철혈권은 한 번 참기로 결심하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살기가 담긴 눈으로 형표를 노려봤다.
형표는 철혈권의 눈빛에 살짝 놀랐지만 겉보기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철혈권의 가벼운 살기쯤이야 그간 단형우나 다른 사람들에게 단련된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이곳에 온 분들은 강호의 평화와 의를 지키기 위해 결성된 정심회(正心會)의 협사들이시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정심회라는 단체는 무영대원인 하벽의 머리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이곳에 모인 무림인들의 수는 많지만, 아무도 정심회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 모두는 암묵적으로 철혈권의 방법에 동의를 표한 것이다. 그만큼 혈영검과 천기자의 마지막 무공이 주는 매력이 크다는 뜻이었다.
“나는 잠시 정심회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소이다. 정심회의 입장에서 보면 자칫 강호의 의기를 흔들 수 있는 혈영검은 마땅히 폐기처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철혈권의 말에 형표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속셈이 빤히 보이고, 눈앞에 우글거리는 무림인들의 속셈이 훤히 보였다.
“그래서 혈영검을 폐기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하남표국이 알아서 폐기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저이나, 자칫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그것을 정심회에서 진행해 주겠소. 아주 투명하게.”
철혈권의 말에 형표는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거절하면 분명히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철혈권이 이렇게 떠드는 이유는 뒤에 있는 무림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비록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명분을 만들지 않았는가.
하남표국을 둘러싼 무림인의 수는 수백을 넘어선다. 만일 검왕이나 검마, 단형우가 없다면 순식간에 하남표국이 무너져 버릴 것이다.
‘이건 정말로 무의미한 피로군.’
형표는 그렇게 생각하며 철혈권을 똑바로 쳐다봤다.
철혈권은 노골적인 탐욕의 빛이 드러나 얼굴로 형표를 보며 이를 살짝 드러내고 웃었다.
이제 형표는 어떻게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결단이 어떤 방향으로 내려지든 혈영검은 자신의 것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결국 형표가 떠올린 것은 조금이나마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번 후, 군중심리로 움직이는 무림인들을 일단 어떻게든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되도록 피를 흘리지 않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할 생각이었다.
‘과연 혈영검을 받은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군.’
형표는 그렇게 생각하며 철형권의 대답을 기다렸다.
“생각할 시간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소. 당신은 그냥 혈영검을 넘기기만 하면 끝이오. 그 이후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무나 노골적인 말이었다. 형표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렇게 대놓고 혈영검을 요구할 수 있는 자신감이 대체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하남표국에는 검왕과 검마가 있다. 철혈권이 비록 십대고수에 속하지만 검왕이나 검마보다는 한 수 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다가 이쪽은 십대고수가 둘이다.
형표가 막 뭐라고 말을 하려 할 때, 누군가 형표의 어깨를 잡았다.
“됐다. 어차피 작정을 하고 온 놈인데 말이 통할 리 있겠느냐. 이럴 때는 힘으로 해결하는 게 최고다. 그게 무림의 법 아니겠느냐.”
검왕이었다. 검왕은 그렇게 형표를 뒤로 물러나게 한 후, 철혈권을 노려봤다. 검왕의 몸에서 스멀스멀 살기가 흘러나왔다. 검왕의 살기가 근처 공간을 서서히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검왕의 살기에 장악당한 무림인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그저 서서 식은땀을 흘리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제야 십대고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압!”
철혈권이 기합을 내질렀다. 철혈권을 중심으로 강렬한 기파(氣波)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기파는 거미줄처럼 얽힌 검왕의 살기를 가닥가닥 끊어버렸다.
그제야 움직일 수 있게 된 무림인들이 주춤거리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과연 검왕이로군. 하지만 이곳에 모인 정심회의 수는 수백이 넘소. 아무리 고수라도 고작 두 명이서 뭘 어쩌지는 못할 거요.”
철혈권이 그렇게 말하자 검왕이 피식 웃었다.
“좀 모자라지만 나 네가 상대한다 치고. 그럼 저기 서 있는 검마는 어떻게 할 거냐? 설마 십대고수가 또 있는 건 아니겠지? 신창 매겸이라도 데려왔느냐?”
신창 매겸은 십대고수 중에서도 수위에 속하는 자다. 무당과 소림의 장문인보다 강하다 알려져 있을 정도의 고수였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이런 자리에 나왔을 리가 만무하다.
“흥, 더 강한 자가 준비되어 있으니 당신이 걱정할 필요는 없소.”
철혈권의 말에 검왕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대충 둘러봤지만 강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또, 강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근처에 없던가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뜻이 된다.
“그럼 사양할 것 없이 실력을 확인하면 되겠군.”
검왕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 한 발의 걸음과 함께 무지막지한 기세가 철혈권을 덮쳤다.
“헉.”
철혈권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검왕에게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호각에 가깝게 싸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기세를 받아보니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틈事?수 있었다.
‘같은 십대고수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차이가 나는 게 맞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철혈권은 갑자기 자신이 앞으로 나선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와주겠다던 자들이 아직도 나서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철혈권은 뒤로 한 걸음 더 물러나면 슬쩍 주변을 살폈다. 어딘가에 있을 하벽과 혈영을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뒤로 물러나기만 해서 나와 싸울 수 있겠는냐? 설마 도망가려는 것은 아니겠지?”
검왕은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면 그렇게 말했다. 처음보다 훨씬 더 거대한 기운이 해일처럼 밀려갔다.
철혈권은 결국 온몸의 기운을 끌어올려 그 기운을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몸을 날려 피하면 간단하겠지만 주변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더 이상 도망가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십대고수 아닌가.
“흐아압!”
퍼버벙!
강력한 폭음과 함께 기의 소용돌이가 넓게 퍼져나갔다. 그 회오리에 휘말린 사람들이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며 서로 엉켰다.
“크으윽!”
쿠당탕!
검왕과 철혈권이 부딪친 힘의 여파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의 바닥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반경 십여 장이 텅텅 비어 버렸다.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십대고수는 십대고수군. 그나저나 어떤가? 아직도 나와 싸울 마음이 남아 있나?”
검왕은 처음 이곳에 오기 전에 형표로부터 들은 당부를 떠올리며 물었다.
형표는 되도록 피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저들을 설득해 돌려보내고자 했다. 그리고 검왕은 그런 형표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로 약속했다.
“우리 국주가 마음이 여려서 되도록이면 피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하네. 그러니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어떤가?”
검왕의 목소리는 표국 앞에 모여 있는 수백 무림인들의 귀에 같은 크기의 소리로 울렸다. 정말로 놀라운 공력이었다. 이렇게 강한 사람이 둘이나 있는 곳과 대적한다는 것이 너무나 무고하게 느껴졌다.
검왕은 당당한 얼굴로 철혈권과 무림인들을 둘러봤다. 곧 물러갈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하남표국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을 지켜보며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존재했다.
혈영은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검왕의 무공이 대단하군.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지 않은가.
혈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느새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사내들을 슬쩍 쳐다봤다.
혈영 뒤에는 세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검붉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마치 피를 뒤집어 쓴 듯했다. 그들의 눈에서조차 붉은 빛이 언뜻 비치는 게 그야말로 피(血)에 어울리는 자들이었다.
“어쩌면 너희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되도록이면 살아 돌아와라.”
혈영의 말에 세 사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하남표국과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그 세 사람이 하남표국 앞에 도착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놀라운 신법이었다.
그들은 철혈권 뒤에 나란히 섰다.
철혈권은 갑자기 나타난 강렬한 존재감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셋이나 되는 절대고수가 등장한 것이다.
그들의 옷차림을 본 철혈권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옷차림은 얼마 전 봤던 혈영과 거의 비슷했다.
‘역시 약속을 지켰군.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셋이나!’
철혈권이 보기에 지금 나타난 세 사람의 능력은 얼마 전 봤던 혈영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철혈권의 한계이긴 했지만 어쨌든 놀라운 일이었다. 이들의 무공이 철혈권을 능가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철혈권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검왕을 쳐다봤다.
“자, 이제 형세가 역전된 듯하지 않소?”
검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대로라면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지금 타나난 자들은 결코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느껴지는 기도는 십대고수급인데 전혀 짐작을 할 수가 없군. 그대들은 대체 누구인가?”
얼굴만 보자면 나이가 오십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닐 것이다. 이들의 경지는 그런 것이었으니까. 검왕만 해도 팔십이 훨씬 넘은 나이인데 고작 마흔 정도로밖에 안 보이니 말이다.
검왕의 질문에도 세 사내는 그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서서 기운만 사방으로 뿌려댈 뿐이었다. 정말로 굉장한 존재감이었다.
“그대들이 강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지만 그래도 좀 모자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검왕이 결국 기세를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런 검왕의 행동에 맞춰 검마도 한 발 나서면 기세를 끌어올렸다. 두 사람의 기세가 순식간에 근처를 장악했다.
철혈권은 놀라서 기절할 지경이었다. 이렇게나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철혈권은 일단 오늘은 물러나는 게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손해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전력을 보강하던지 가다듬어서 다시 오던지 아니면 이쯤에서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철혈권뿐 아니라,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생각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하벽은 무림인들 틈에 숨어서 분위기를 살폈다. 이대로 흐지부지 될 것 같았다. 하벽의 임무는 그 분위기를 다시 띄우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불가능하다.
하벽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그것을 신호로 철혈권 뒤에 있는 세 사람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비록 한 명 한 명은 검왕이나 검마보다 약하지만, 그들은 셋이었다.
쿠오오오!
거대한 기세가 피어올랐고, 잠깐이나마 검왕과 검마의 기세를 밀어냈다. 그리고 철혈권이 거기에 가세했다. 철혈권은 갑자기 들려온 전음에 어쩔 수 없이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자 양측의 기세가 거의 백중세를 이뤘다. 그곳에 모여 있던 무림인들은 자신들을 압박하던 기운이 사라지자 조금씩 용기가 솟아났다. 하지만 이대로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바로 그때, 군중의 뒤쪽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이건 너무 하는 것 아니오!”
그 외침은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 외침은 계쏙해서 들려왔다.
“우리는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 이렇게 왔는데 그런 우리를 이렇게 핍박해도 된단 말이오!”
그 외침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뒤흔들었다.
형표가 그 외침에 다급히 소리쳤다.
“먼저 핍박한 것은 당신들이지 않소! 우리는 그저 최소한의 방어만 하고 있을 뿐이오!”
“웃기지 마시오! 우리는 그저 혈영검을 보고 싶을 뿐이오!”
말도 안 되는 논리였고, 처음 하던 주장과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모여 있는 군중들에게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혈영검을 보고 싶었다.
“혈영검을 보여 주시오!”
“맞소!”
처음에는 조금씩 웅성대던 군중들이 점점 소란스럽게 떠들기시작했다.
“우리를 왜 핍박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