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31
군중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져 갈 때, 그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모두 갑시다!”
그 외침은 군중의 뒤에서 앞으로 파도처럼 밀려갔다. 그리고 군중들 사이사이에 섞여 있던 무영대원들이 순식간에 검을 뽑으며 몸을 날렸다.
“하아압! 가자!”
그것이 시작되었다. 무영대원들의 행동 덕분에 수백의 군중들이 성난 파도가 되어 하남표국으로 짓쳐들었다.
검왕도 검마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형표를 비롯한 하남표국 사람들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었다. 이젠 결국 피를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라버니!”
조설연의 다급한 외침이 울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켜보던 단형우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콰아아아아!
어마어마한 기운이 단형우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검왕이나 검마, 그리고 철혈권이 하고 있는 기세의 힘겨루기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거대한 기운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흐어어어억!”
사람들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비명이었다. 사람들은 기의 폭풍에 밀려 이리저리 뒹굴었다. 공중에 떠 있던 사람들은 바람에 날려 훌쩍 뒤로 날아갔고, 땅에서 달려가던 사람들은 바닥을 뒹굴며 뒤로 밀려났다.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사람은 철혈권과 세 혈의인뿐이었다. 그나마도 자리에서 버티기 위해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실처럼 가는 핏줄기가 그들의 입가에 흘러내렸다.
“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철혈권이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친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저 기운의 폭풍으로 사람들을 뒤로 물러나게 한 것뿐이었다. 물론 조금 거칠긴 했지만.
그것이 어찌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그냥 바람이 아니었다.
만일 그저 강력한 바람이었다면 이곳에 있는 무림인들의 실력 정도면 뚫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氣)의 바람이었다.
기의 바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마치 내력 대결을 하는 것처럼 내공을 끌어올려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순간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도 내력이 모자라 결국 내상만 입고 날아가야 했다.
털썩.
철혈권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무나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해졌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검왕과 검마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철혈권을 쳐다봤다. 철혈권이 지금 느끼는 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절망감을 거의 매일 느껴보지 않았던가.
“이제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 물러가는 게 어떤가?”
검왕이 조용히 말했다. 철혈권은 그런 검왕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난 철혈권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물러갔다. 이 거대한 절망감은 평생 이겨낼 수 업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렇게 느끼는 절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십대고수쯤 되면 그것을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그런 면에서 검왕과 검마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단형우와 함께 수련을 하며 그 절망감을 이겨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 것도 모두 수련이었다. 정신을 단련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가는 수련 말이다.
그렇게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아무도 죽지 않고, 하남표국의 거대한 힘을 눈으로 확인한 수많은 무림인들이 조용히 돌아갔다. 그들 역시 거대한 절망감을 맛봤지만, 그것은 잠시 뿐이리라.
“생각보다 쉽게 끝났군요.”
조설연의 말에 모두가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조설연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자, 이제 들어가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뒤돌아 표국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럴 때 보면 간이 큰 건지 아니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둔치인지 알 수가 없었다.
표국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 잠시 중단했던 표국의 영업이 즉시 다시 시작되었다.
하남표국은 앞으로 더욱 번창할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힘을 목격한 수벽의 사람들이 그대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혈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하남표국 정문을 멍하게 쳐다봤다. 몸도 굳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설마 저렇게 강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방금 전 단형우가 사방으로 날린 기의 폭풍이 여기까지 날아왔다.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아 사방에 단형우가 뿌린 기의 잔재가 흩날리고 있었다.
“삼백 장이나 떨어져 있는 데도 이 정도라니……”
삼백 장이나 떨어진 전각의 꼭대기였다. 그런 곳까지 기의 폭풍이 날아와 온몸이 찌릿할 정도였으니 대체 얼마나 거대한 내공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그대로 자신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만일 혈영대 열 명이 도와 합공을 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거대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면 혼자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다. 그리고 혈영대 열 명을 모두 동원해 합공을 펼치더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오늘 그 앞에 나섰던 혈영대 세 명은 지금 혈영 앞에서 내상을 치료하고 있엇다. 억지로 버티는 바람에 내상을 더욱 심하게 입은 듯했다.
혈영이 굳은 몸을 풀며 고개를 저었다.
“믿을 수가 없구나.”
혈영대의 무력은 혈마대 다음이다. 혈마대야 혈마자가 직접 무공을 전수하고, 혈영이 그저 관리만을 맡았을 뿐이니 정확히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런 혈마대를 제외하면 혈영대가 가장 강했다. 비록 열 명에 불과했지만 하나하나가 십대고수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오랜 세월 무공을 연마해온 자들을 혈영이 끌어들여 훨씬 강력하게 탈바꿈시킨 자들이다.
그들 셋의 합공은 설사 처나말도 물리칠 수 있다 자신했다. 한데 단형우는 그런 그들을 그저 기합 한 방에 나려 버렸다. 그렇다. 기합이었다. 그 기의 폭풍은 그저 단형우의 기합일 뿐이었다.
혈영의 몸이 부를 떨렸다.
“말도 안 되지. 그걸 기합이라 생각하다니, 내가 너무 놀랐나 보군.”
놀랄 만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승산은 자신들에게 있었다. 어쨌든 혈영검은 깨어났다. 그것만 얻으면 앞으로 하남표국 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다. 앞으로는 전 무림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사영이 잘 해줘야 할 텐데……”
혈영의 마음에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오늘 확인한 단형우의 무위는 정말로 대단했다.
아무리 사영의 은잠술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과연 단형우의 눈을 피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니지. 회주게서도 분명……”
혈마자도 사영의 은잠술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했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설사 무의 신이 강림한다 해도 사영의 은잠술은 절대 알아낼 수 없다 했다.
“회주께서 그 정도로 말씀하실 정도면 그것이 진실이다. 무공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겠지.”
무공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 혈영도 혈마자 옆에서 그런 것들을 꽤 봐왔다.
혈영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쿨럭.”
혈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등 뒤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혈영이 깜짝 놀라 뒤로 돌아서자, 그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영이 보였다. 사영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영.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혈영의 눈가에 불안감이 맴돌았다.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다. 혼란스런 와중에 접근하려 했었는데, 그게 패착이었어.”‘
사영의 말에 혈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영은 아까 무림인들이 몰려들 때, 혈영검을 탈취하려는 시도를 했음이 분명하다.
“가까 그 기의 폭풍에 휘말린 것인가?”
혈영의 말에 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런 식으로 기의 폭풍을 일으킬 수 있을 줄은 몰랐어.”
혈영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사영은 그런 혈영을 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훗, 걱정하지 마라. 다음번에는 꼭 성공할 테니까. 설마 자면서까지 혈영검을 몸에 두지는 않겠지.”
사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정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무영대원들에게 휘둘린 군중들이 하남표국을 향해 달려들고, 그 혼란을 틈타 혈영검을 들고 있던 단형우에게 다가간 것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아무도 사영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사영의 은잠술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몸을 마치 안개처럼 만들어 사방에 흩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사영의 은잠술을 눈치챌 수 없었다. 그 은잠술은 사영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정말로 공교로운 순간이었다. 막 목표물 옆에 도착한 순간 그런 엄청난 기의 폭풍이 몰아치다니 말이다.
그 기의 폭풍은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펼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영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덕분에 내상을 입고 말았다. 비록 가볍긴 했지만.
거기까지 떠올린 사영이 이를 갈았다.
“너무 방심했어. 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혈영검은 반드시 가져와 주지.”
사영은 그렇게 다짐한 후, 은잠술로 몸을 숨겼다.
혈영은 눈앞에서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지는 사영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건 단형우와 다른 의미로 괴물이었다.
눈앞에서 형체와 동시에 기척이 사라지는데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혈영검이 필요해.’
혈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사영이나 단형우 같은 괴물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려면 자신도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괴물이 되기 위해서는 혈영검이 반드시 필요했다.
사영은 은잠술로 몸을 숨긴 채,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 내상을 치료했다. 내상 자체가 가벼워서 치료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사영이 혈마자로부터 배운 무공은 파심비(破心匕)라는 살수무공과 사영행(死影行)이라는 은잠술이었다.
파심비는 이름 그대로 심장을 부수는 무공이다. 비수를 심장에 찔러 넣거나 몸에 손을 대 내력을 밀어넣어 심장을 부술 수 있는데, 사영은 심장에 비수를 찔러 넣는 확실한 방법을 좋아했다.
사영행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살수들이 쓰는 은잠술에 가까운 신법이었다. 어디에든 몸을 숨기며 이동할 수 있는 상승의 살수 무공이었다.
파심비든 사영행이든 보통의 노력으로 완성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사영은 죽음을 각오한 수련을 통해 그 무공들을 대성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접목해 훨씬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아무리 높은 경지의 고수라도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은잠술과 그들의 심장을 부술 수 있는 파심비는 죽음의 그림자라는 사영이라는 이름에 그야말로 걸맞은 능력이었다.
사영은 내상을 치료한 후,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근처에 혈영을 비롯한 혈영대와 무영대원 몇이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사영의 모습을 볼 수조차 없었다.
사영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쉬어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이윽고 밤이 찾아왔다. 달도 뜨지 않은 칠흑 같은 밤이었다. 사영은 자신만만하게 움직였다. 여전히 은잠술을 풀지 않아 누구도 사영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사영은 혈영과 혈영대 세 명 사이를 유유히 지나쳐 하남표국으로 향했다.
밤이 되었는데도 하남표국의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물론 정문을 지키는 표사가 있었다. 표국에는 밤에도 손님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거의 문을 닫지 않았다.
사영은 당당하게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혈영검이 있는 곳을 찾으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단형우는 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밤에는 혼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오랜 시간을 홀로 살아온 단형우는 이렇게 밝고 평화로운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래도 밤이 싫지는 않았다. 가끔 밖에 나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그것도 상당히 괜찮았다.
쏟아져 내릴 듯 박혀있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편해진다. 그럴 때는 영락없이 누워서 잠을 청한다. 물론 언제나 실패하지만.
오늘도 단형우는 방 안에 가만히 서 있다가 문득 별이 보고 싶어져 밖으로 나갔다. 당연히 혈영검은 침상 위에 내버려 둔 상태였다.
밖으로 나간 단형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이 맑아 구름 한 점 없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온 신경을 별에 쏟고 있었지만 단형우의 감각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허창 전역에 퍼진 상태였다. 그리고 당연히 혈영 일행 역시 단형우의 감각 안에 존재했다.
색다른 기운이었고, 색다른 사람들이었지만 단형우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형우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한창 볕을 보던 단형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질적인 기운이 하남표국 안으로 은밀히 스며들어왔다. 그 기운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단형우의 감각 안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하남표국 담장에서 스르륵 생겨난 것 같았다.
그 말은 즉, 하남표국 밖에서는 단형우의 감각에서 걸려들지 않아다는 뜻이다.
지금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엿다. 하남표국 안에 있는데도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았다. 상당히 희미한 기운이 은밀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기운은 마치 뭔가를 찾는 듯 표국 구석구석을 살피며 돌아다녔다. 단형우의 고개가 그 기운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조금씩 움직였다.
그 기운은 결국 단형우가 머무는 방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방 안에서 잠시 멈춰 있었다. 기운이 약간 흔들린 것으로 미루어 뭔가를 찾은 듯했다.
단형우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이곳에 넘어와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옥에 있을 때는 드물지만 존재했다.
단형우의 감각을 속이고 가까이 다가오는 마물들이. 물론 가까이라고 해봐야 보통 사람 걸음으로 서른 걸음 이상 떨어진 곳이긴 했지만. 그나마도 단형우가 감각을 조금만 더 예민하게 하면 어림도 없었다.
단형우는 감각을 조금 더 예민하게 끌어올렸다. 희미하던 기운이 조금 더 확실하게 잡혔다. 하지만 여전히 두루뭉술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단형우는 가만히 서서 자신의 방에서 그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봤다. 그 기운은 침상 위에 놓여진 혈영검을 노리는 듯했다. 역시 혈영검의 기운이 그 은밀하고 희미한 기운과 뒤섞였다. 뒤섞인 기운 역시 희미했다.
그 기운이 움직이는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얻을 것은 얻었으니 이제 빨리 도망가려는 듯 보였다. 단형우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단형우는 그 기운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한 걸음 걸었다.
스윽.
단형우의 몸이 기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기운의 정체는 사영이었다.
사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갑자기 단형우가 눈앞에 생겨났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일단 은잠술을 펼치고 있는 이상, 빠져나가는 것도 별 문제가 없었다. 이 상태의 자신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단형우는 그런 사영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손을 아무렇게나 휘저었다.
퍽!
단형우의 손이 사영이 있는 곳을 정확히 휘저었고, 어둠에 녹아든 사영의 몸이 일순 흩어져 버렸다. 당연히 사영은 큰 타격을 받았다.
철컹!
사영은 혈영검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대한 몸을 감추며 도망갔다.
단형우는 사영이 도망가는 모습을 보며 손을 슬쩍 휘저었다. 단형우의 손에서 막대한 기운이 쏟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 기운은 사영이 있는 곳을 휩쓸었다.
사영은 죽을힘을 다해 몸을 숨겼다.
단형우가 손을 한 번 더 휘두르려다가 멈췄다. 놀랍게도 일순간 사영의 기척을 놓쳐 버렸다. 감각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기 때문에 갑자기 훨씬 더 은밀해진 사영을 놓친 것이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사이에 사영은 하남표국의 정문에 도착했다.
단형우의 감각에 다시 사영이 들어왔다. 단형우는 그 쪽을 향해 한 발 걸으려 했다. 하지만 정문을 넘어선 사영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완벽히 몸을 감춘 것이다.
아마 이리저리 이동하며 돌아다니면 찾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형우는 잠시 사영이 사라진 곳을 응시하다가 이내 혈영검을 집어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단형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오늘 사영과 한 숨바꼭질은 꽤 재미있었다. 아마 조만간 혈영검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사영이 움직일 것이다.
단형우는 기대감을 가슴에 품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취월과 혈영
혈영검을 두고 허창에서 있었던 하남표국과 무림인들 사이의 일은 금세 소문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소문은 바람처럼 천하를 질주했다.
하남표국에 검왕과 검마가 아닌 또 다른 고수가 존재한다는 소문은 호사가들이 즐거이 입을 놀릴 수 있는 소재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소문이 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남표국과 대적했던 무림인들이 모두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수백이나 되는 무림인들과 십대고수 중 하나인 철혈권이 살아남았으니 소문이 빨리 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퍼진 소문은 무림맹에도 당연히 스며들어갔다.
“군사. 하남표국과 철혈권이 싸웠다는 소문을 들어봤소?”
“그렇습니다. 정말로 이외였습니다.”
제갈중천은 상당히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하남표국에는 제갈린이 있다. 그리고 가끔 제갈린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제갈린의 혼사를 위해 불렀지만 제갈린은 한사코 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