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35
아무래도 이대로 서 있으면 곤란한 일을 겪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단형우가 언제 올지 모르는데 자리를 뜰 수는 없었다.
게다가 자리를 뜬다 해도 곤란한 일은 여전히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더러 보였다.
우문혜는 누군가 등 뒤로 다가오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우락부락한 산적같이 생긴 사내가 생긴 것답지 않게 고양이 걸음으로 몰래 다가오다가 우문혜와 눈이 마주쳤다.
“이것 참.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고 했더니 들켜 버렸구나. 으하하핫!”
사내는 잠시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크게 웃었다. 우문혜와 눈이 마주치고 나니 그 묘한 색기에 몸도 마음도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좋은 말로 할 때 나랑 같이 가자. 내 섭섭지 않게 해줄 테니.”
사내의 말에 우문혜가 피식 웃었다.
사내의 말에 우문혜가 피식 웃었다.
“뭘 해주겠다는 말이죠?”
“뭐긴 뭐겠느냐. 사내와 계집이 함께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뻔하지 않느냐. 으하하핫!”
사내의 뻔뻔한 말에 우문혜는 물론이고 제갈린도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제갈린은 감히 방심할 수가 없었다.
사내의 내력을 추측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분명 사내는 심상치 않은 고수였다.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었다. 무림인으로 보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모두 발을 땅에 붙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우문혜를 보고도 그렇게 참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다가온 산적 같은 사내에 대해서 다들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일행이 있어요.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세요.”
제갈린의 말에 사내가 더욱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핫! 일행이 여자라면 기다려 주지! 으하하핫!”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우문혜가 아니다. 우문혜의 몸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쉬익!
퍽!
우문혜의 손목이 어느새 사네에게 잡혔다. 우문혜는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우문혜의 무공은 절대 약하지 않다. 한데 그런 우문혜의 공격을 마치 어린애 손목 잡듯 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흐흐흐, 고년 참. 손목도 야들야들하군.”
“정체가 뭐냐?”
우문혜의 앙칼진 소리에 사내가 느물거리며 웃었다.
“나, 난 채옥룡이라고 하지.”
얼굴과 너무도 안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음흉함과 음탕함이 그대로 두 여인에게 전해졌다.
“자, 이제 난 슬슬 가봐야겠군. 참, 일행이 있다고 했지? 너희들이 그 일행을 정중히 모시도록 해라.”
채옥룡의 말에 주변에 흩어져 있던 무림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모두 한 패였떤 것이다.
제갈린은 그제야 왜 아무도 채옥룡의 행패를 보고도 나서지 않아는지 깨달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무림인들이 채옥룡의 수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다른 일반인들의 행동을 은연중 막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채옥룡의 나머지 한 손이 쾌속하게 움직였다. 그 손은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내지 않고 제갈린의 손목을 낚아챘다.
제갈린의 눈에 놀람이 어렸다. 채옥룡은 정말로 대단한 고수였다.
‘단공자님, 어서 오세요.’
제갈린은 속으로 열심히 단형우를 불렀다. 단형우의 걸음이라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왜 아직도 안 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자, 우리는 슬슬 움직여 보자고.”
채옥룡이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힘은 무지막지해서 제갈린도 우문혜도 반항할 수가 없었다.
“이것 놔! 이제 곧 우리 단공자님이 오실 거야! 그러면 너 같은 걸 가만 두실 같아? 벼락 맞아 단숨에 두 쪽이 나 버릴걸?”
우문혜가 소리쳤다. 하지만 채옥룡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일행이 남자였어?”
채옥룡은 수하들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죽여.”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죽이라는 명령에 수하들이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우문혜는 그제야 이 사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냉정을 찾고 다시 보니 수하라는 자들도 하나같이 대단한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 채옥룡도 강했지만 그의 수하들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 보니 이름 없는 자가 아니었군. 너, 정체가 뭐야?”
채옥룡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나? 여기 수채의 주인이지?”
이곳에 수채가 있다면 동정호채일 것이다. 하지만 동정호채는 그리 유명한 수채가 아니었다.
수적들 중 유명한 것은 얼마 전 단형우에 의해서 거의 박살이 나다시피 한 염왕채 정도였다.
동정호에 수적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명한 수채는 없었다. 더구나 채옥룡 정도 되는 고수가 즐비한 수채가 있다면 이름이 나도 크게 났을 텐데 그런 수채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무슨 수채지? 설마 이름도 없는 곳은 아니겠지?”
“당연하지. 나는 염왕채의 채주다.”
“말도 안 돼!”
우문혜가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염왕채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뭐가 말도 안 되지? 홍택호에 있던 근거지를 동정호로 옮겨 왔을 뿐이야. 우리에게는 힘이 있거든. 적어도 동정호쯤은 되어야 놀 만하지.”
“염왕채가 망했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고.”
우문혜의 말에 채옥룡이 피식 웃었다.
“지금 시간을 끌려고 하는 건가? 그래, 그 무슨 공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가 보지? 오기만 하면 우리들을 다 쳐죽이고 너희들을 구할 수 있단 말이지?”
“흥, 당연하지.”
우문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당장 무슨 일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기세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래, 이 정도 가시는 있어야 품는 맛이 있지.”
채옥룡의 눈이 붉게 물들며 순식간에 얼굴이 탐욕으로 가득해졌다. 그의 눈이 우문혜와 제갈린의 몸을 샅샅히 훑었다.
두 여인은 마치 벌레가 온몸을 기어가는 듯한 끔찍한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그만큼 채옥룡의 눈길은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빴다.
“멀리 갈 필요 없지. 여기서 한다. 더 참을 수가 없구나. 흐흐흐흐.”
채옥룡의 손이 눈부신 속도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우문혜의 상의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우문혜는 너무 놀라 눈을 부릅뜨며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한 손이 여전히 채옥룡에게 잡혀 있으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제갈린은 어느새 혈도가 마비되어 그저 우문혜와 채옥룡이 하는 양을 볼 수밖에 없었다.
“큭큭큭. 잘 지켜봐라. 너도 곧 이렇게 될 테니까.”
채옥룡의 말에 우문혜와 제갈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느새 채옥룡의 수하들이 다가와 그녀들을 빙 둘러쌌다.
아무도 근처에 다가오지도, 보지도 못하게 인의 장막을 친것이다.
“저, 저리가! 공자님! 단공자님!”
우문혜는 단형우를 마구 불러댔다. 지금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단형우뿐이었다. 어서 단형우가 오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그 순간, 벼락이 떨어졌다.
쩌저저적!
수십 개의 벼락이 땅에 꽂히며 장막을 치고 있던 채옥룡의 수하들을 둘로 쪼개 버렸다. 쓰러진 사람들 틈으로 단형우와 조설연의 모습이 보였다.
우문혜는 그제야 안도한 듯 눈물을 쏟아냈다.
“흐윽, 왜 이제야 오신 거예요.”
단형우가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채옥룡은 갑작스런 상황에 너무나 당황해 어찌할 바를 찾을 수 없었다. 수하들이 벼락에 맞아 모두 쪼개져 버렸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흥, 내가 그랬지? 벼락에 맞아 쪼개질 거라고.”
우문혜가 눈물을 훔치며 말하자, 채옥룡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우문혜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야말로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 중 가장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단형우였다.
콰직!
채옥룡이 손목이 단형우의 손에 잡혀 허무하게 부서졌다.
“끄아아악!”
손목이 가루가 되는 고통에 채옥룡이 비명을 질렀다.
단형우는 그의 비명에 개의치 않고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채옥룡의 몸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단형우는 그의 손목을 잡은 채로 조금씩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채옥룡의 비명이 더욱 처절해졌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뭐라 말을 할 수도, 행동을 할 수도 없었다. 물론 뭔가 행동을 하려 했다 해도 할 수 없겠지만.
단형우는 고개를 슬쩍 돌려 우문혜를 쳐다봤다. 우문혜의 상의가 갈기갈기 찢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화가 났다.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으허허헉! 대, 대협. 제, 제발! 제발!”
채옥룡은 제발 그냥 죽여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살고 싶었다.
“제, 제발 살려주시오! 제발!”
단형우가 그의 손목을 놓았다.
쿵!
공중에서 떨어진 채옥룡은 잠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이내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단형우는 다시 그 앞에 서 있었다.
콰직!
이번에는 반대쪽 손목이었다. 잡는 순간 산산이 바스러져 더 이상 손목으로써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고통만은 생생히 전달해 주었다.
“끄어어어억!”
단형우가 팔을 휘둘러 채옥룡을 내팽개쳤다.
퍼억!
채옥룡은 숨이 멎는 듯한 고통에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양 손목에서 오는 고통과 바닥에 부딪친 등에서 퍼져나가는 고통이 그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단형우의 발이 채옥룡의 다리 위에 살며시 올라갔다.
“으아아아아악!”
채옥룡은 지금까지 토해냈던 비명보다 더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단형우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다리 위에 발을 얹어놓고 서 있었다.
조설연이 우문혜를 바라봤다. 우문혜는 조설연이 바라보자 쓴웃음을 지었다. 조설연이 고개를 젓자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단형우에게 다가갔다.
우문혜는 단형우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려놓으면 속삭였다.
“이제 됐어요, 공자님. 이제 그만 하세요.”
우문혜의 말이 떨어지자 거짓말처럼 단형우의 얼굴에 살짝 표정이 생겨났다.
번쩍!
벼락 한 줄기가 떨어졌고, 채옥룡은 그 짧은 생을 마감했다.
“돌아가지.”
단형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세 여인의 손을 양손에 나눠 쥐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단형우 일행이 사라진 동정호변에는 자신들을 염왕채라고 주장하는 수적들의 시신들만 남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신출귀몰하게 등장했다 사라진 단형우와 세 선녀의 이야기가 근처에 있던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동정호에 다녀온 뒤로 단형우는 자신의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요즘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자신 안에 있는 뭔가가 조금씩 변해가는 느낌이었다.
침상 앞에서 가만히 서 있떤 단형우는 문득 침상에 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형우는 거침없이 침상에 누웠다. 평소와 달리 긴장감을 모두 풀어버린 채였다. 푹신한 침상에 몸이 잠겨들어갔다.
놀랍게도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다. 그저 편안한 느낌이었다.
“이런 게 눕는 것이었군.”
눕는다는 느낌을 알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뭔가 스멀거리는 것이 등판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스멀거림은 이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단형우의 온몸을 난자하려 했다.
단형우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역시 아직은 안 되는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단형우는 직감할 수 있었다. 편안히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을 때가 오면 자신 안에 있는 뭔가가 또 변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변화는 분명 자신의 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이다.
동정호에 다녀온 뒤로 달라진 사람은 단형우뿐이 아니었다. 우문혜도 달라졌고, 제갈린도 달라졌다. 그리고 조설연도 조금이지만 달라졌다.
조설연의 경우는 사실 별것 없었다. 그저 단형우가 이끄는대로 동정호에 갔다가 단형우가 몇몇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다시 돌아온 것이 다였다.
단형우의 그런 모습은 예전에도 몇 번이나 봐 왔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이번에는 단형우가 우문혜 때문에 분노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단형우 스스로 그것을 아는지 알 수 없지만, 우문혜가 이미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생각이나 행동이 조금이나마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조설연은 거의 평소와 다름없었다. 본인 외에는 변화를 느끼는 사람조차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문혜나 제갈린은 확연히 달라졌다. 일단 우문혜는 더더욱 단형우에게 매달렸다.
동정호의 일이 있은 후부터 단형우에 대한 마음이 훨씬 더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변화가 본인은 물론이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확연히 드러날 정도였다.
게다가 색기가 훨씬 더 강렬해졌다. 사랑이 깊어지니 그 사랑을 유혹하기 위해 색기도 짙어지는 것이 당연했지만, 우문혜의 경우에는 그것이 더욱 심했다. 스스로도 그것을 조절할 수가 없으니 사실 문제가 조금 있었다.
이제는 면사로도 그 색기를 가릴 수가 없었다. 자태에서 우러나는 색기를 어쩌겠는가.
하지만 우문혜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저 우문혜를 호위해야 하는 영사만 고달플 뿐이었다. 영사는 백사단과 청사단을 모조리 동원해서 우문혜의 호위에 만전을 기했다.
제갈린의 경우는 우문혜나 조설연과는 조금 달랐다. 앞의 두 여인이 단형우에 대한 마음이아 사랑 때문에 변화했다면 제갈린이 변화한 이유는 혈영검이었다.
동정호에서 있었던 일이 계기가 되었는지, 아니면 드넓은 호수를 봐 마음이 트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은연중 단형우가 도움을 주었는지는 몰라도 혈영검에 새겨진 문양의 비밀에 어느 정도 다가갈 수 있었다.
그 비밀의 끝자락을 쥐고 두문불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덕분에 검마가 혈영검을 이용한 수련마저 못할 정도였다.
물론 검마도 제갈린이 그 문양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었기 때문에 흔쾌히 제갈린이 하자는 대로 따랐다.
제갈린은 셋 중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렇게 또 열흘이 지나갔다.
“힘드네.”
제갈린은 말과는 다르게 개운한 얼굴로 침상에 몸을 던졌다. 열흘 동안 거의 먹지고 자지도 않고 혈영검에 매달렸다. 그 결과 중대한 비밀 하나를 캘 수 있었다. 그것은 천기자가 혈영검을 만든 목적이었다.
제갈린은 초췌한 얼굴로 침상에서 몇 번 뒹굴다가 몸을 일으켰다. 일단 좀 씻고 가벼운 마음으로 쉬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아낸 비밀을 검마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