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4
“며칠 함께 지냈습니다. 그리고 사실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저 세상 물정에 아직 어둡다는 것과 삼재검법을 익혔다는 것, 그리고 오늘 보여준 그 초식이 천뢰(天雷)라는 것 정도가 전부입니다.”
“천뢰라……”
당호관은 정말로 어울리는 초식명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눈에도 분명히 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천뢰가 아니면 대체 무엇을 천뢰라 하겠는가.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던 당호관이 문득 형표를 쳐다봤다.
“자네 보통이 아니로군.”
당호관의 말에 형표는 크게 당황했다.
“저, 저 말입니까?”
당호관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이 넘어. 어쨌든 이제 어쩔 텐가? 난 계속해서 표행을 마무리해 줬으면 하네만.”
당호관의 질문에 형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육을 향했다. 마육 역시 당호관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현재 이곳의 총 책임자는 표두 마육이었다.
마육은 그때까지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내외상이 심해 잠깐 운기조식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 운기조식을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내상이 너무 심해져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끄응……”
마육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일단 운기조식을 통해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더 이상 무리해서 표행을 계속하기도 어려웠다. 마육은 단형우를 슬쩍 쳐다봤다.
조금만 더 일찍 도와줬어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단형우 덕분에 목숨을 구하기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어쨌든 괘씸한 마음이 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휴우, 아무래도 전 힘들 것 같습니다. 있어봐야 방해만 될 듯하군요.”
마육의 말에 형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지금은 표행을 계속 해야 했다.
어차피 호위는 당가 무사들이 맡을 것이다. 하남표국에서 필요한 것은 쟁자수들뿐이었다. 표행을 계속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럼 표행을 포기하겠나?”
당호관이 재차 묻자, 마육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부터는 형 표사가 표행을 맡을 겁니다. 물론 어르신께서 허락을 해 주셔야 가능합니다만.”
마육의 말에 당호관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난 상관없네.”
상관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나았다. 당호관은 한눈에 현재 마육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봤다.
만일 함께 간다면 표행이 지체될 가능성도 있었다. 당가에 필요한 것은 표국의 쟁자수들이지 표사들이 아니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그럼 자네는 어쩌려는가?”
당호관의 질문에 마육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 표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당호관이 고개를 끄덕였따. 당연한 질문이고 당연한 대답이었다. 표행 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고를 해야 할 테니 말이다.
표사가 거의 서른이나 죽었다. 표국으로서는 정말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을 정도로.
“그렇게 하게. 어차피 오늘은 더 움직이기 어려울 것 같으니 내일 출발하는 게 좋을 걸세. 몸도 안 좋아 보이는데 내가 좀 봐주겠네.”
당호관은 말을 마치고 당가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육은 그런 당호관에게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당가의 의술은 독술 만큼이나 유명하고 대단하다. 그런 당호관이 직접 봐주겠다고 한 만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호관이 돌아가자, 형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건 별 탈 없었다. 이제부터는 오늘 쉴 곳을 찾아야 했다. 일단 쟁자수들을 시켜 주변을 정리했다.
적의 시체는 구덩이에 넣고 불에 태웠고, 표사들의 시체는 일단 양지 바른 곳에 묻었다. 지금은 이렇게 방치하지만 마육이 표국에 돌아가 보고를 하면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당가에서 나온 시체 열 구는 당철기가 뭔가 처리를 한 후, 표물을 실은 마차에 나눠서 함께 실었다. 썩을 염려는 없다고 했으니 그럴 것이다.
그렇게 대충 정리를 하니 해가 떨어진 지 한참이 지났다. 지금 있는 자리도 노숙하기 나쁘지는 않았지만 시체들이 묻혀 있고, 주변이 피 냄새로 가득하니 쉴 수가 없었다.
형표는 서둘러서 주변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냈다.
산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나오는 공터였는데 지금 있는 사람들이 쉴 수 있을 정도로 넓었고, 주변에 물도 있었다.
표물을 실은 마차를 중심으로 당가 무사들과 ㄷ쟁자수들이 여기저기 몸을 뉘었다. 표사들이 없으니 불침범은 오로지 당가 무사들 몫이 되었다. 어차피 표사들이 있어도 그들이 믿지 않으니 마찬가지였지만.
당가 무사들은 비록 열이나 죽었지만 남은 사람들은 부상이 별로 없었다. 그저 무리한 덕분에 가벼운 내상을 입었을 뿐이고,그나마도 당가 비전의 단약을 복용해 대부분 치료해 버렸다.
그 단약의 힘을 빌려 마육도 치료를 했지만 마육의 상태가 워낙 안 좋아 단 기간에 낫기는 어려워 보였다.
어쨌든 그렇게 치열했던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실패?”
장막 안에서 음산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코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엎드려 있던 사내의 몸이 움찔 떨렸다.
“주, 죽여 주십시오.”
“그렇게 떨 것 없다. 계획은 네가 세웠을지언정. 그것을 허락한 것은 나다. 널 죽일 리 없지 않는냐.”
그 말에 엎드려 있던 사내의 표정이 천천히 살아났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깊숙이 부복했다.
“그래, 실패를 했다고?”
“전멸했습니다. 시체를 되찾고자 했으나, 그들이 모두 태워버려서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찾아온 것은 이것뿐입니다.”
사내가 서둘러 뭔가를 앞에 내 놓았다. 그것은 불에 타다만 시체였다.
“속하가 갔을 때는 이것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시체가 둥실 떠올라 장말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계속됐다.
“그놈이로군.”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 말씀은……?”
“그래, 경천단 서른을 도륙했던 바로 그놈이다. 꼬리를 잡을 수 없다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장막 안에서 다시 시체가 튀어나왔다. 사내는 서둘러 그것을 받아 밖으로 내던졌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이 그것을 받아 어딘가로 가져갔다.
“무영.”
“하명하십시오!”
“형산에 투입한 조서당을 철수시켜라.”
“존명!”
“그리고 조가장을 친다.”
혈마자의 명령에 무영의 몸이 일순간 멈치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존명.”
“서둘러라.”
혈마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무영의 몸이 그림자가 되어 바닥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적막이 모든 것을 감싸안았다.
우문세가(宇文世家). 비록 오대세가에 포함되지 않지만 결코 그에 못지않은 곳이다.
세상의 평가는 우문세가와 조가장을 나란히 두지만 실제로 우문세가가 가진 힘은 조가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우문세가가 가진 여러 가지 힘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바로 금력(金力)이었다. 우문세가가 위치한 섬서는 물론이고 천하 상권의 삼분지 일을 장악하고 있다 알려질 정도로 대단했다.
무력은 조가장보다도 못하다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았다. 우문세가에는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힘이 상당했다.
우문세가의 심처, 작은 밀실 안에서 두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사람은 얼굴에 인자함이 가득한 노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냉막한 표정의 중년인이었다.
“그래, 알아봤는가?”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확실치 않다는 말은 그대로 대충 윤곽은 잡혔다는 게로군. 내, 각주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노인의 말에 각주라 불린 중년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당문에서 구한 것은 아마도 벽력탄인 듯합니다.”
“벽력탄!”
노인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벽력탄이라는 말이 지닌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당문에서 어찌 그런 물건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허창 근처에 있는 화가장과 합작을 하여 만들어 낸 듯합니다.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화가장?”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가장은 노인도 익히 알고 있는 가문이었다. 일어선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다지 발전 가능성도 엿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가문이었다.
아무리 당문과 합작을 한다 하더라도 도저히 벽력탄 같은 절세의 기물을 만들어 낼만한 곳이 아니었다.
“벽력문(霹靂門)의 후손입니다.”
그제야 노인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벽력문의 후예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벽력문이 강호에서 사라진 지 수백 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벽력탄의 제조법이 사라졌다. 그때까지 벽력문이 만들었던 벽력탄만 남아서 과거의 위세를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할 뿐이었다.
그 벽력탄이 다시 나타났다. 벽력문과 사천당가의 힘에 의해서.
“이건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로군.”
노인의 말에 사내가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노인이 뭔가를 생각할 때는 그저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노인은 언제나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냈다.
“양이 얼마나 되던가?”
노인의 질문에 사내가 지체 없이 대답했다.
“커다란 마차 다섯 대 분입니다.”
“끄응, 어마어마한 양이군. 과거 벽력탄을 사용했던 기록을 생각해 본다면…… 어지간한 문파 몇 개는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수 있겠어.”
말을 마친 노인이 눈을 빛냈다.
“양 각주.”
“예, 말씀 하십시오.”
“그 벽력탄과 제조법, 우리가 가져와야겠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양 각주의 거침없는 대답에 노인이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표정은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 이어진 양 각주의 말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가씨께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노인의 급변한 표정으로 양 각주를 쳐다봤다.
“세가 내의 정보를 몇 개를 빼가는 건 영사(影蛇)에겐 너무나 간단한 일입니다.”
“끄응, 사령당(蛇靈黨)을 그따위로 이용하다니.”
“사령당을 아가씨께 맡기신 것은 가주님이십니다.”
“알고 있네.”
“사실 아가씨의 호위대로 쓰기에는 사령당이 조금 아깝습니다.”
노인, 아니 우문세가의 가주 우문황은 그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모자라네.”
우문황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양 각주는 고개를 숙여 그 말에 가볍게 동의했다. 물론 우문혜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혜아(慧兒)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이미 세가 내에 없습니다.”
우문황이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우문혜는 그의 머리를 아프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령당(蛇靈黨)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 마육이 떠났다.
마육은 조금 가벼워진 몸으로 서둘러 허창으로 향했다. 어차피 이틀밖에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무리하면 금세 하남표국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표사를 얼마나 더 지원할 것인지를 결정해서 처리하게 될 것이다.
형표는 멀리 사라지는 마육의 등을 바라보며 살짝 불안감이 들었다.
경험이야 차고 넘칠 정도로 많지만 그래도 표행을 지휘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했다.
게다가 함께 표행을 하는 사람들이 당가 아닌가.
“후우, 어쨌든 출발해야겠지?”
형표가 출발 신호를 보내자 마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쟁자수들은 어제 겪었던 일 때문에 이번 표행을 서둘러 마물리 짓고 싶었다.
덕분에 이동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당가 무사들은 표물을 크게 둘러싼 형태로 호위했다. 원래는 표사들이 있어야 할 자리이지만 이제 남은 표사가 없으니 당연히 당가 무사들이 해야 했다.
당호관과 당철기는 가장 앞에서 따로 떨어져 움직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굳이 하남표국을 고집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당철기의 표정은 회의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하남표국과 함께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 사흘째였다.
“어차피 표사들이 모두 죽었으니 하남표국으로서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냐?”
당호관의 질문에 당철기의 얼굴이 약간 펴졌다. 자신의 의견이 먹혀들어갔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평정산을 지난 후, 새로운 표국과 계약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남표국은? 그냥 돌려보내잔 말이냐?”
“어차피 표행을 완수 못 했으니 돈을 줄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당철기의 말에 당호관이 빙긋 웃었다.
“정말로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우리가 왜 하남표국을 선택했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해 보거라.”
당철기가 즉시 대답했다.
“신용 때문입니다.”
“그래 잘 아는구나. 그럼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