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43
“스읍.”
장화영은 순식간에 침을 빨아들이며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그리고 살짝 눈동자를 굴려 혹시라도 누가 보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다행이 아무도 본 사람은 없는 듯했다. 연무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수련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장화영의 눈에 문득 단형우의 모습이 들어왔다. 단형우는 가만히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장화영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단형우를 쳐다보도가 다시 종칠이 있는 곳으로 고개와 시선을 돌렸다.
종칠은 여전히 검왕과 검마의 협공을 받아넘기는 중이었다. 간간히 날카로운 반격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니 그야말로 엄청난 실력이었다.
장화영은 그런 종칠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장화영의 입장에서 종칠은 괴물이었다.
천하의 누가 있어 검왕과 검마의 협공을 받아넘길 수 있단 말인가. 그거도 저렇게 팽팽하게.
“대단해……”
장화영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종칠은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서른 정도로 보였다. 어쩌면 그보다 더 적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작 그 정도 나이에 십대고수 둘의 합공을 받아낼 정도라면 이건 천재 중의 천재 아닌가.
“크아악!”
장화영은 갑작스런 비명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종칠의 비명이었다. 그 비명 소리와 함께 종칠의 대련이 끝났다.
종칠은 오만상을 지었다. 손과 발이 동시에 박살났다. 검왕과 검마의 절묘한 합격술에 그만 당하고 말았다.
종칠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손과 발의 뼈가 가루가 된 것 같았다. 그동안 팔다리만 줄기차게 부러졌었는데 이렇게 손발이 박살나고 나니 그동안 겼었던 것보다 훨씬 큰 고통이 밀려왔다.
종칠은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장화영은 놀란 눈으로 그런 종칠과 검왕, 검마를 번갈아 보라봤다. 검왕과 검마는 제자의 손발을 박살낸 스승의 얼굴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안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꽤 나은 편이군. 내일부터는 조금 더 강하게 해도 되겠어.”
현재 검왕과 검마는 종칠과 대련을 하면서 공력의 이 할 정도 쓰고 있었다. 이 할에 불과하지만 자그마치 십대고수다. 그것이 평범한 수준일 리 없다. 그리고 둘의 합격술은 이제 경지를 넘어섰다. 종칠이 상대하기 쉬울 리가 없었다.
내일부터 조금 더 강하게 한다는 뜻은 공력의 삼할을 쓴다는 의미였다. 오늘보다 훨씬 빠르고 강해질 것이다.
공력을 많이 쓰는 만큼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의 다양성이 늘어날 테니까.
검왕과 검마의 말을 들은 장화영은 그제야 두 사람이 손속에 사정을 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단한 것은 대단한 것이다.
자신은 검왕과 검마의 움직임을 제대로 확인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괘, 괜찮으신가요?”
장화영은 종칠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종칠은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그녀를 쳐다봤다. 상당히 예뻤지만 그간 우문혜에게 단련된 종칠의 눈을 만족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끄응, 단대협이 있으니 괜찮을 거요.”
종칠의 말은 투박했지만 장화영은 그조차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그녀가 보기에 지금 종칠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딱 보기에도 손뼈가 박살났다. 발도 손과 별로 다르지 않은 듯 했다.
“어서 의원에게 가 보시는 것이 좋겠어요. 잘못하다간 더 이상 검을 쥐지 못할 수도 있어요.”
장화영이 다급하게 말했다. 검을 쥔 오른손이 박살났다. 이대로라면 뼈가 아물더라도 손의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뼈가 뒤틀려버릴 수도 있다.
어떤 경우건 검사로서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좌수검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높은 무공을 익힌 사람이 그것을 버리고 새로 뭔가를 익힌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괜찮다니까 그러시네. 아, 단대협.”
종칠은 어느새 다가온 단형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형우가 앉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종칠의 미소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장화영은 그 미소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고개가 다시 갸웃거렸다. 상당히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장화영은 고개를 들어 단대협이라 불리는 사내를 쳐다봤다.
고작해야 스물 정도로 보였는데,대협이라 불리다니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가 느끼기에는 단형우보다는 종칠이 더 대협 같았다.
단형우는 장화영을 지나쳐 종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부서진 손을 움켜쥐었다.
“꺄악!”
장화영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으스러진 손을 저렇게 꽉 쥐다니! 마치 자신의 손이 부서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장화영의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형우의 손에 힘을 주었다. 막대한 기가 단형우의 손을 통해 종칠의 손에 흘러들어갔다.
단형우는 다시 손을 움직여 이번에는 종칠의 발을 쥐었다. 그리고 손과 마찬가지의 작업을 했다.
단형우가 손을 떼자 종칠은 단형우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단대협.”
종칠의 인사에 단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장화영의 입이 다시 한 번 떨어졌다. 이번에도 침이 흘렀다.
무림에는 여러 정보 단체들이 있다. 각 문파가 키우고 있는 작은 정보 단체들도 있고, 무림맹이나 정천맹처럼 커다란 집단이 조직적으로 키우고 이용하는 커다란 단체도 있다. 무림맹의 주작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모든 정보 단체 중 단연 최고라 일컬어지는 곳은 바로 무영가(無影閣)이었다.
무영각에는 무림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무영각의 실질적인 주인이 무황성의 성주인 무황 최극이라는 사실이었다.
최근 무영각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무영각의 주인인 무황이 천마에게 죽임을 당했기 문이었다.
무영각은 무황의 것이지 무황성의 것은 아니었다. 최극이 개인적으로 키운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무황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무황성이 이득을 위해 움직였지만 무황이 죽은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중심을 잡고 통솔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무영각의 각주가 바로 무황이었고, 그 아래에 무황의 명을 받아 무영각의 일부를 움직일 권한을 가진 다섯 사람이 존재 했다. 그들은 이름도 없이 각각 번호로 불렸다.
무영각의 정보원들은 총 백 명이 넘었고, 일호(一號)부터 오호(五號)까지 각각 스물의 정보원을 밑에 두고 있었다.
그 다섯은 함께 모일 일이 거의 없었다. 무황이 알아서 그들을 부르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무황은 그들 다섯을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로 서로의 임무가 도움이 되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 무황이 사라진 지금 그들 다섯은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모여야 했다.
이대로는 무영각이 다섯으로 찢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간 무황의 명만을 받아 움직였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 단체로 거듭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다섯으로 갈라지면 더 큰 타격을 받는다. 십중팔구는 거의 와해될 것이다.
“다 모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군.”
일호의 말에 나머지 네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연락할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덕분에 서로의 위치를 찾고 장소와 시간을 정하느라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했다.
“자금이 말라가고 있다. 돈을 벌어야 해.”
그들의 자금은 모두 무황으로부터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마땅히 자금을 얻을 곳이 없었다. 돈을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 정보를 팔아야 한다. 하지만 정보를 찾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그것을 팔 능력은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각주님이 원망스럽군. 잘못하면 다른 정보 단체에 먹혀버리겠어.”
정보원이 백 명이 넘어가는 정보 단체는 드물다. 말이 백 명이지 실제 정보를 얻기 위해 이용되는 사람은 훨씬 많다.
천하 각지에 실제로 정보를 흡수하는 세작들이 깔려 있다. 그들은 정식 정보원이 아니다 뿐이지 실질적으로 무영각의 정보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모두 관리하려면 보통 능력으로는 안 된다. 그 능력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돈이었다.
“일단 새로운 각주를 선출하는 것이 우선 아닌가?”
삼호의 말에 모두 동의를 표했다. 각주는 필요했다.
각주는 따로 떨어진 다섯을 하나로 뭉치게 해줄 것이다. 무황이 그랬던 것처럼.
“그럼 번호가 가장 낮은 내가 하는 것이 낫겠군.”
일호의 말에 나머지 네 사람의 인상이 동시에 찌푸려졌다.
“과연 네게 각주를 맡을 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안 될 건 또 뭐지? 스무 며의 정보원을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흥, 우리 중에 그 정도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있나?”
사호의 핀잔에 일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자장 먼저 각에 들어왔으니 내가 각주가 되는 것이 순리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먼저 들어온 것이 뭐가 중요하지? 제일 중요한 것은 능력이야. 우리를 모두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 그건 정보원을 다루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능력이야. 그거도 파악하지 못하는 너는 절대 각주가 될 수 없어.”
오호의 말이었다. 일호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오호의 말이 옳았기 문이다.
이 일은 냉정하게 판단해서 결정해야지 욕심으로 결정해선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 어쩌잔 말이지? 우리 중에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데 말이야.”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로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반 각 정도 침묵을 유지하던 오호가 입을 열었다.
“찾아야지.”
다른 네 사람의 시선이 오호에게로 돌아갔다.
“찾다니?”
오호는 강렬한 눈빛으로 나머지 넷과 하나하나 눈을 맞췄다.
“우리를 제대로 서 줄 사람을 찾아야지.”
“십 년이 넘게 공들여 온 각(閣)을 딴 사람에게 넘기잔 말인가?”
“믿을 수 있는 자라면. 그리고 능력이 있는 자라면.”
오호의 단호한 대답에 나머지 네 사람이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호가 중얼거렸다. 오호는 그런 이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대로 와해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더 나아. 무영각은 무영각으로 존재할 때 가장 큰 힘이 발휘된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이번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호의 말이 옳았다.
무영각은 따로 떨어져서는 결고 최고가 될 수 없다. 문제는 그렇데 다섯이 하나가 된 것처럼 움직이려면 최소한 무황 정도의 능력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무공이 아니라 머리가.
당금 무림에 그 정도 머리를 가진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다섯 사람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천하의 모든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 아닌가.
“끄응, 어렵군.”
어려운 문제였다. 그들이 파악하는 그 정도 머리를 가진 사람들은 이미 적당한 정보 조직을 가지고 있다.
정보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 밑으로 들어가면 무영각은 더 이상 무영각이 될 수 없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이 필요했다. 정보를 잘 알고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일단 찾아 봐야지. 최대한.”
“앞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고작해야 석 달 정도로군.”
“시간이 빠듯하지만 할 수 없지. 그래도 해볼 수밖에.”
만일 안 되면 이대로 흩어져 각자 살 길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싫었다. 무영각은 앞으로도 무림 최고의 정보 조직이어야만 했다.
다섯 사람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시간이 아까웠다. 이렇게 한가하게 얘기할 시간조차도.
단형우는 연무장에 가만히 서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해가 넘어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은 단형우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단형우가 세상에 나와 가장 흥미롭게 지켜본 것이 바로 하늘이었다. 시간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하늘이 단형우에게 있어선 대단히 신기한 것이었다.
세상에 나오기 전, 그러니까 단형우가 말하는 지옥의 하늘은 언제나 회색빛이었다. 밤과 낮이 구분되긴 했지만 하늘색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저 주변 분위기와 느낌으로 밤낮을 구분해야 했다.
처음 그곳에서 어떻게 적응을 했는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굳이 그런 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 하늘은 그런 무미건조한 회색이 아니라 변화무쌍하게 살아있는 색이니까.
지옥과 세상은 다른 점이 대단히 많았다. 하지만 그중 가장 대단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비였다.
지옥의 비는 말 그대로 피의 비였다. 피처럼 붉은 방울이 하늘에서 쏟아지는데, 그것을 아무런 방비 없이 맞았다간 맞은 자리가 그대로 녹아 버린다.
하지만 세상의 비는 그렇지 않았다. 이 세상을 적시는 비는 지옥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옥에서는 죽음을 쏟아내는 비지만, 이곳에서는 생명을 쏟아내는 비다.
한동안 노을을 바라보며 단형우의 머릿속은 지옥과 세상을 오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해가 완전히 지고 말았다.
단형우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다 고갤ㄹ 내렸다. 연무장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열심히 수련 중이었다. 단형우는 고개를 끄덕인 후, 연무장 밖을 향해 걸어갔다.
그제야 사람들이 하나둘 수련을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곳 하남표국 연무장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단형우가 연무장에서 나가기 전까지는 아무도 수련을 그만 두지 않는다는 것이.
종칠도 단형우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입에서는 절로 한숨이 새나왔다. 이렇게 모진 수련을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기약이 없으니 한숨이 날만도 했다.
“하아아……”
종칠의 한숨에 검왕이 손을 들어 뒤통수를 한 대 치려다가 그냥 손을 내렸다. 생각해 보면 종칠이 불쌍하기도 했다.
매일같이 부러지고 부서지는 수련을 해야 하니 죽기보다 수련이 더 싫을 수도 있었다.
“에잉, 칠칠치 못하긴. 쯧쯧쯧.”
검왕은 그렇게 혀를 찬 후 몸을 돌려 연무장에서 나가 버렸다. 검마도 검왕을 따라 사라졌다.
종칠은 그런 두 사람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뭘.”
종칠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가서 피곤한 몸을 최대한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한밤중의 수련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종칠은 언젠가 단형우가 알려준 그 보법을 완성해서 검왕과 검마로부터 완벽하게 도망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게 요즘 종칠이 가진 유일한 낙이었다. 당연히 밤의 수련은 즐겁기 그지없었다.
“저……”
종칠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멀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장화영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종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직도 안 가고 거기서 뭐 하쇼?”
종칠의 약간은 거친 말에 장화영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최대한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지은 회심의 무기였다.
하지만 종칠에게 그런 무기가 통할 리 없었다. 종칠의 눈은 지금 어느 누구보다 높다. 매일 지척에서 보고 지내는 여인들이 하나같이 대단하다.
우문혜만 해도 천하에서 따를 수 없는 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문혜와 함께 여행까지 한 사이다. 그리고 조설연은 또 어떤가. 우문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단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다. 게다가 마음 씀씀이는 얼마나 대단한가.
모든 사람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능력을 가진 여인이다. 그리고 제갈린이 있다. 제갈린 역시 아름답다. 적어도 장화영보다는 위다 종칠이 보기에는 그랬다.
그뿐인가. 제갈린은 세상 누구보다 현명한 여인이다.
그런 여인들을 매일 보고 지내는 종칠이 장화영의 미소에 홀릴 리가 있겠는가.
“에휴, 나도 모르겠다. 대답을 하건 말건.”
종칠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버렸다. 장화영은 크게 당황했다.
종칠의 반응은 자신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어찌 그 아름다운 미소를 보고 저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봐요! 그냥 갈 건가요?”
장화영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잠시 억눌렀던 성격이 살짝 드러난 것이다. 장화영은 자신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어쨌든 종칠이 다시 돌아보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종칠은 짜증이 살짝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원하는 게 뭐요?”
종칠의 질문에 장화영이 다시 한 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표국 구경을 좀 하고 싶은데,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