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45
처음에는 그냥 그랬는데, 계속 보다보니 얼굴도 그런대로 봐줄 만했고, 성격도 나름대로 견딜 만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는데, 자신의 거처까지 따라오니 조금 문제가 있었다.
“이보쇼. 대체 원하는게 뭐요? 난 이제 자야 하는데?”
“어머나. 이렇게 일찍 주무세요? 아직 술시(戌時: 오후 일곱시에서 아홉시 사이) 정도밖에 안 됐는데요?”
“소저는 개인적인 일도 없으쇼? 난 따로 수련을 할게 있으니 이만 갈 길을 가보쇼.”
종칠의 말에 장화영이 다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마침 잘 됐네요. 수련하시는 거 봐도 되죠?”
장화영의 말에 종칠은 떫은 감 씹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장화영의 키가 종칠보다 몇 치 작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종칠이 그녀를 내려다보는 형국이었다. 장화영은 고개를 쳐들고 종칠과 눈을 마주치고 또 웃었다.
‘젠장. 저 눈읏음 중독성 있네.’
종칠은 고개를 홱 돌렸다. 얼굴은 그냥 그런 것 같은데 눈웃음은 그렇지 않았다. 계속 보고 있다가는 자칫 빠져들 수도 있겠다는 생가이 들어 그빅 고개를 돌린 것이다.
장화영은 종칠이 고개를 돌리자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녀의 눈웃음을 정면으로 대하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정말로 드물었다. 종칠이 그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점점 더 호기심이 일었다.
“그런데 종대협.”
장화영의 부름에 종칠이 인상을 썼다.
“젠장. 그 대협 소리 좀 안 하면 안 되겠소?”
“왜요? 대협이 어때서요?”
“거 듣기 거북해서 그렇소. 여기 하남표국에는 대협 소리를 들을 만한 분이 딱 한 분밖에 안 계시거든.”
그 한 분은 당연히 단형우다. 종칠의 생각에 하남표국에서 대협이라 불릴 만한 사람은 단형우뿐이었다. 검왕이나 검마는 너무 종칠을 괴롭히니 그런 호칭을 달 자격이 없다 여겼다.
“그게 누군데요?
장화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검왕 어르신과 검마 어르신인가요? 어? 그럼 둘인데?”
검왕과 검마가 거론되자 종칠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만 하고 이제 슬슬 가보쇼.”
종칠이 다시 삐딱하게 나오자 장화영이 배시시 웃으며 종칠의 팔에 매달렸다.
“에이, 또 왜 그러세요? 그럼 빨리 종대협의 거처로 가시죠. 수련 하는 거 꼭 보고 싶거든요.”
장화영의 말과 행동에 은근히 말려든 종칠은 할 수 없이 그 상태로 자신의 거처까지 가야했다.
“그런데 종대협. 아까 그분은 누구죠?”
“아까 그분?”‘
“아까 종대협의 상처를 봐주신 분이요. 의원인가요? 꽤 큰 상처였던 것 같은데 금방 고치는 걸로 봐선 유명한 의원인가봐요.”
종칠은 장화영이 말하는 사람이 단형우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고 보니 단형우는 연무장에서 서 있기만 하니 장화영이 단형우가 어떤 사람이고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자신의 다친 손과 발을 고쳐주었으니 의원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세상에 어떤 의원이 뼈가 완전히 가루가 된 손을 순식간에 고친단 말요?”
종칠의 말에 장화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종칠은 그 모습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흠칫 놀라며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을 서둘러 지워 버렸다.
“뼈가 가루가 되었다고요? 설마요! 말도 안 돼요!”
장화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녀도 뼈가 부러진다거나 가루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충분히 알고 있다. 어쨌든 화산파에서도 기재로 통하는 재녀였다.
뼈가 부러지면 아무리 회복이 빨라도 한 달 이상은 정양을 해야 했다.
무림인의 경우 내공의 힘으로 회복을 도울 수 있으니 조금 더 빨라지긴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보름 이상은 필요하다. 더구나 뼈가 완전히 가루가 되었다면 아무리 대단한 의원이 달라붙는다 해도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데 그런 상태의 손을 순식간에 치료했다니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에는 종칠의 부상이 뼈까지 상한 것은 아닐 거라 믿었다. 그게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다.
“말이 안 되는 게 맞소. 하지만 단대협이기 때문에 또 말이 된단 말이거든.”
종칠의 말에 장화영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제대로 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오늘 종칠의 손을 고쳐준 그 사람이 바로 아까 종칠이 말하던 그 유일한 대협이라는 것 말이다.
그렇게 아리송한 대화를 이어가며 어느새 종칠의 거처에 도착했다. 장화영은 눈을 빛내며 종칠의 거처를 살폈다.
그녀가 느끼기에 종칠은 정말로 대단한 고수였다. 하지만 종칠의 거처는 그런 고수가 머물기에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
‘뭐야? 하남표국에서는 고수들한테 이런 대접을 하는 거야?’
장화영은 은근한 눈으로 종칠을 쳐다봤다.
“종대협. 하남표국에서 그다지 대접이 좋지는 않은가 봐요. 그렇지 않은가요?”
장화영의 질문에 종칠이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그런 소리를! 천하에 쟁자수한테 이런 대접을 해주는 표국이 어디 있단 말이오!”
종칠의 말에 장화영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쟁자수?”
“그렇소. 난 아직 쟁자수요. 가만, 이제 슬슬 표사가 될 때도 되었는데?”
종칠의 말에 장화영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아까 그 대협이라는 분도 쟁자수는 아니겠죠?”
“어라? 어떻게 알았소? 그분이야말로 쟁자수들의 꿈이지.”
종칠의 거칠 것 없는 말에 장화영은 자기도 모르게 풋 웃음을 흘렸다.
“알았어요. 그나저나 하남표국은 정말로 이상하군요. 제가 국주라면 종대협 같은 분은 절대로 쟁자수로 두지는 않을 거예요.”
종칠은 그 말에 손을 슬쩍 휘저었다.
“됐소. 어차피 표사가 돼 봤자 마차만 몰 텐데, 뭘.”
종칠의 말에 이해할 수 없는 장화영으로서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왠지 희망이 솟았다.
잘하면 종칠을 영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대우에도 감지덕지 하는 걸 보며 무림맹에서 해주는 대우에 따라 얼마든지 빼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슬슬 몸을 풀어 볼까.”
종칠은 어깨를 풀며 뜰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장화영은 딴 생각을 하다가 흠칫 놀라 고개를 들고 종칠을 쳐다봤다.
사실 다른 사람의 무공 수련 모습을 쳐다본다는 것은 큰 실례다. 오늘 장화영이 한 행동은 보통 대단한 결례가 되는 것이다. 자칫 칼부림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화영은 자신의 미모를 믿었다. 물론 종칠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종칠은 종칠대로 별로 자신의 수련 모습을 감춰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단형우가 전수해 준 보법은 옆에서 지켜본다고 뭔가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검왕이나 검마도 종칠의 수련만 보고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정도였으니 장화영 정도 되는 사람이 뭘 알 수 있겠는가. 움직임이라도 대충 파악하면 용한 것이다.
종칠은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뽑았다. 최근에는 그 보법 수련에 검을 도입했다.
아무래도 보법만으로는 반쪽짜리밖에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물론 검왕의 조언이 있었다. 주먹을 동반한.
검을 뽑은 종칠의 몸이 사라졌다.
장화영은 눈을 꿈뻑거리며 종칠이 어디로 갔는지 서둘러 찾았다. 종칠의 모습을 뜰을 막아 놓은 벽 앞에 있었다.
그리고 종칠의 모습이 또 사라졌다. 이번에는 반대편 벽에 나타났다.
장화영은 경악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어떻게 움직이는지 뭘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장화영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그리고 입가로 침이 흘렀다.
종칠은 그런 장화영 앞에서 이리저리 번쩍거리며 움직였다. 사방이 검광으로 뒤덮었다.
종칠은 오늘따라 수련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장화영 때문인 듯했다.
‘젠장, 그저 구경하는 사람 하나 있다고 집중이 안 되니. 실전에서 써먹으려면 아직 멀었군.’
종칠의 궁극적인 목표는 검왕과 검마다. 그 두 사람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도망가는 것이 최고의 목표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어림도 없었다.
종칠은 이를 악물고 수련을 집중하려 했다. 종칠이 이를 악무는 순간 장화영의 얼굴이 보였다. 떡 벌어진 그녀의 입가로 흐르는 모습을 본 종칠의 발이 한순간 꼬였다.
쿠당탕!
종칠이 꼴사납게 구르자 장화영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괘, 괜찮으신가요?”
장화영이 놀라 종칠에게 달려갔다. 종칠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그런 장화영을 향해 소리쳤다.
“거 입에 침 좀 닦으쇼!”
종칠의 외침에 장화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조용히 입가를 훔치는 장화영을 바라보며 종칠이 다시 일어섰다.
종칠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더욱 집중이 어려웠다. 자꾸만 장화영의 입가에 흐르던 침이 생각나며 웃음이 나려 했다.
‘젠장. 이러다 또 발 꼬이겠네.’
종칠은 되도록 조심하며 수련에 임했다.
당연히 평소보다 움직임이 훨씬 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화영은 종칠의 종적을 뒤쫓을 수가 없었다. 종칠은 몸이고 그녀는 눈인데도.
장화영의 입이 또 점점 벌어졌다.
하원후는 속으로 있는 대로 욕을 해댔다.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만큼 검마의 눈이 무서웠다. 그 공포를 떨치려면 앞으로 꽤 시일이 필요할 듯했다.
하원후가 욕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침이 되어 장화영을 찾아갔을 때부터였다.
무림맹으로 돌아가자는 하원후의 말을 장화영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하원후에게 장화영은 “여기서 할 일이 있어요.” 라는 간단한 말을 남기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원후는 하남표국 정문을 나서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왠지 하남표국에 올 때마다 함께 온 여인만 남기고 떠나는 것 같아 기분이 상당히 더러웠다.
지난번에는 제갈린이 그렇게 남았고, 지금은 장화영이 남았다.
“제길. 어쨌든 다시 오는수 밖에 없군.”
원래는 다시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결심을 굳히고 걸어 나오던 하원후의 눈에 저 멀리 걸어가는 우문혜의 모습이 눈에 띄고 말았다.
그 순간만큼은 검마에 대한 공포도, 제갈린 때문에 나빠졌던 기분도, 장화영의 당황스런 결정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우문혜라고 했지. 우문혜. 우문세가에 기별을 넣어 봐야겠군. 보아하니 혼기가 다 찬 것 같은데 말이야.”
하원후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날렸다. 최대한 빨리 무림맹에 도착해야 했다. 자신을 위해서.
무영각의 다섯 수장들이 다시 모였다. 각자 흩어진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삼호가 소집을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지? 설마 벌써 찾은 건가?”
일호의 물음에 삼호가 눈을 빛내며 나머지 모두를 쳐다봤다.
“하남표국.”
삼호의 말은 너무나 의외였다. 일호를 비롯한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남표국은 좀 심하지 않은가? 지금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것은 맞지만 그래봐야 일개 표국. 우리를 쓸 만한 능력을 가졌다고 보기 힘들다.”
정보라는 것은 모으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더구나 무영각은 수장 다섯을 제외하고 수하들만 해도 백이 넘는다. 들어가는 돈이 엄청나다. 그런 돈을 일개 표국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모두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삼호는 여전히 눈을 빛냈다.
“최근 기묘한 소식 몇 가지를 들었지. 하나는 하남표국이 사업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그쯤 됐으면 당연히 확장하겠지.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
“세가를 만들 모양이다.”
삼호의 말에 나머지 넷의 눈이 커졌다.
세가를 만들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하남표국이 아무리 대단한 힘을 가졌다 해도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가장을 다시 만드는 건가?”
“일단 가지고 있는 정보만으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더군.”
“하남표국이 그렇게 부자였나?”
“우문세가와 당가에서 좀 도와줄 모양이더군. 우문세가와 당가의 자금 흐름이 하남표국 쪽으로 꼬여 있어.”
삼호의 부연설명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하남표국이 세가로 발돋움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대세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자신들이 가세한다면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할 것이다.
“잘하면 몸을 의탁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군. 안 되더라도 잠시 시간을 끌어 한숨 돌릴 정도는 충분하겠어.”
반드시 하남표국에 완전히 몸담을 필요는 없다. 그저 새로운 곳을 찾기 전까지 이용할 수만 있어도 감지덕지다. 하남표국의 능력이 모자라면 알아서 무영각을 내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우리 같은 정보 조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건데……”
“그건 쉽지 않겠지. 일단 하남표국의 국주는 정보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긴 하던데……”
문제는 형표가 아니라 조설연이다. 조설연이 정보에 관심이 많아야 하는데 그들이 판단하기에 조설연은 아직 너무 어렸다.
“설마 국주가 뒤에서 조종하고 그 조씨 계집은 꼭두각시가 되는 건 아니겠지?”
삼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다. 조설연, 만만치 않은 여자야.”
삼호의 판단이 그렇다면 진짜로 만만치 않은 사람일 것이다. 네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삼호는 점수가 절대 후한 편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그곳을 파고드느냐가 문제로군. 듣기로 거기에는 백봉도 있다고 하던데……”
제갈린은 분명 까다로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능력이 좋고 머리가 뛰어난 만큼 정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것도 별 문제가 없을 거다.”
삼호의 말에 네 사람이 그에게 집중했다. 벌써 그런 것까지 모두 준비를 해온 삼호에게 다시 한 번 감탄하며.
“북해빙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조만간 밀고 내려올 거야.”
“북해빙궁? 그런 움직임이 있긴 했지만…… 하지만 하남표국과 무슨 관계지?”
“북해빙궁에서 온 최근 정보에 따르면, 그들의 일차적인 목표가 바로 하남표국에 있다더군.”
삼호의 말에 넷이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이건 대단한 기회였다.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군. 북해빙궁이 왜 하남표국을 건드리지? 그들 입장에서는 서둘러 무림맹과 정천맹을 접수하는게 훨씬 편할 텐데.”
“글쎄. 아직 정확하지는 않지만 뭔가 기묘한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
정보에 관련된 일을 하다보면 세상의 음모에 자신도 모르게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삼호는 지금 자신이 그런 상황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