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46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거대한 뭔가가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해. 그 움직임이이번에 북해를 꼬드긴 거겠지.”
“하지만 그런 거대한 음모가 움직이는 것치고 하남표국은 너무 보잘 것 없는데……”
모두가 비슷한 의문을 가졌지만, 지금은 더 이상 알 수 있는게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다. 조금이라도 빠른 편이 좋다. 그들 역시 시간이 없으니까.
“그럼 그렇게 결정하지. 하남표국의 포섭은 삼호가 맡는게 좋겠다. 네가 만들어 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삼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꺼지듯 사라졌다.
잠시 삼호가 있던 자리를 응시하던 네 사람도 각자 흩어졌다. 이제 곧 다시 활발하게 움직일 날을 기대하며.
조설연의 꿈.
혈영은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었다. 그 위에는 작은 패(佩)가 하나 놓여 있었다. 취월이 준 잠룡패였다.
혈마자는 그것을 받아들고 안에 새겨진 문양을 유심히 살폈다.
“월영의 능력이 이렇게나 대단했던가.”
혈마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작은 패에 새겨진 문양은 기가 움직이는 통로였다. 그것은 주변의 기를 왜곡시켜 원하는 결과를 나타내게 되어 있었다.
“나를 뛰어넘은 지는 오래군.”
혈마자가 혀를 내두르자 혈영이 놀란 눈으로 혈마자의 손에 있는 잠룡패를 쳐다봤다. 가지고 오는 내내 살펴봤지만 그게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 줄은 알 수 없었다.
혈마자는 그런 혈영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빙긋 웃으며 잠룡패의 진기를 불어 넣었다. 잠룡패가 살짝 빛난다 싶더니 주변으로 안개 같은 기운이 흩어졌다.
혈영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눈앞에 있던 혈마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혈마자는 정말로 사라졌다. 몸뿐 아니라 기척까지 완벽히 지워졌으니까.
“회, 회주님!”
혈영의 부름에 혈마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여전히 잠룡패를 들고 있었고, 서 있는 위치도 그대로였다.
“이제 이 패의 효능을 알겠나?”
혈영이 고개를 숙였다. 설마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진 패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만일 사영이 저 패를 이용한다면 그 누구도 사영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저 패는 사영과 거의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기감까지 완벽하게 막아주는 패였다.
혈마자는 잠룡패를 한쪽으로 슬쩍 던졌다. 잠룡패는 조금 날아가다가 어느새 나타난 사영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북해빙궁이 스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완전히 믿을 수는 없으니 알아서 잘 활용해라. 자신 있다면 그들이 하남표국을 처리하기 전에 검을 빼돌리고, 조금이라도 미심쩍다면 그들이 싸우고 있을 때 하는 게 좋겠지.”
혈마자의 말에 사영이 고개를 깊이 조아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잠룡패의 성능은 이미 확인했다. 이 패와 자신의 능력이 합해지면 아무리 괴물 같은 작자라도 자신을 더 이상 어쩌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혈마자는 그런 사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번에는 절대 실패할 리가 없었다. 혈영검이 검마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형우야 어떨지 몰라도 검마라면 굳이 잠룡패가 없더라도 사영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영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한시라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혈영검을 손에 넣어야 했다. 더 이상 계획이 삐걱거리면 대국에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까.
사영이 사라지자 혈마자가 지그시 혈영을 쳐다봤다. 혈영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예상보다 북해빙궁을 일찍 움직였으니 다른 일들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나?”
“존명.”
혈영은 대답을 남기고 급히 사라졌다. 더 이상 남아 있어봐야 좋은 꼴은 못 볼 테니까.
어쨌든 최근 혈영의 행보는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었다. 임무에 실패했고, 월영에게 눌렸다.
혈영이 사라지자 혈마자가 나직이 혀를 찼다.
“쯧쯧, 자신감을 확 잃었군.”
혈영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혈영은 혈마자가 키운 작품이었으니까.
혈마자는 혈영의 자신감을 조금 되찾아 줄 필요를 느꼈다. 혈영의 능력은 절대 보잘것없지 않다. 하지만 그 능력도 자신감을 잃고 있으면 모두 발휘되기 어려울 것이다.
“으음, 어떤 게 좋을까…… 그래, 이번 기회에 사천을 정리해야겠어.”
다른 곳은 혈영이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 어차피 대부분 내버려 둬도 자연스럽게 원하는 대로 흘러갈 테니까. 하지만 사천은 다르다.
사천은 완전히 계획이 실패한 곳이다. 흑사방에만 너무 의존했기 때문에 후속 조치를 취하기가 곤란했다.
“혈영대는 인원이 많지 않으니…… 철영대를 딸려 보내면 되겠군.”
무영각은 최고의 정보 조직이다. 무(武)를 제외하면 변변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다 규모가 거대하기까지 한 무황성을 무리 없이 이끌 수 있었던 것도 다 무영각 덕분이다.
그런 무영각이니 조직원 관리도 상당히 뛰어났다.
무영각의 다섯 수장 중 하나이자, 하남표국의 포섭을 맡은 삼호는 예전에 하남표국에 하인으로 위장해 침투시켰던 조직원 셋의 도움을 받아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으로 하남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보를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목표 근처에서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관찰하는 것이다. 무영가의 모든 요원들은 그런 방법에 능했다.
물론 은밀히 숨어들어가 도둑질을 하거나 암살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것이었다.
삼호는 수하들로부터 최근의 하남표국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보고를 들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아무래도 하인이다 보니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기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겉보기에 하남표국을 지탱하고 있는 두 십대고수 때문에 섣부른 움직임이나 의심스런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하남표국은 본래 금지(禁地)가 없었지만 하인들 입장에서는 표국 내 대부분이 가선 안 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더구나 몰래 움직이다가 검왕이나 검마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삼호는 예전과 거의 다름없는 정보만을 가지고 움직여야 했다.
“상관없지. 어쨌든 밤이 되길 기다려야겠군.”
삼호의 계획은 밤이 늦은 시간에 은밀히 조설연을 만나는 것이었다.
하남표국의 국주는 형표였지만 새로 건설되는 세가의 주인은 조설연임이 분명했다. 하남표국은 조설연이 세우는 세가의 사업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삼호는 겉으로는 열심히 일하는 척하며 밤이 되길 기다렸다. 이윽고 삼호가 원하는 정도로 밤이 깊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삼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삼호가 해야 할 일은 무영각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물론 실패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이 가져가는 것은 하남표국의 미래의 미래와도 질결된 정보였으니까.
삼호의 몸이 은밀히 움직여 조설연이 머무는 전각 근처로 스며들었다.
단형우는 조용히 서서 눈을 감고 평소와 다름없이 사방으로 기감을 퍼트렸다. 사실 단형우는 낮에도 항상 하남표국 안의 모든 기운을 살폈다. 그저 밤에는 조금 더 집중해서 살피고 영역을 하남표국 밖까지 확장하는 것뿐이었다.
단형우가 세상에 나오기 전, 그 회색 지옥에서도 나중에는 단형우를 위협하거나 기습하는 존재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단형우는 절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단형우가 세상에 나온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단형우는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긴장을 멈춘 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긴장감을 유지한 상태였다.
단형우는 하남표국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기운을 동시에 살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새로 들어오고 사라졌는지 언제나 파악하고 있었다.
최근 형표가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하는 바람에 하남표국에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단형우는 그들조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폈다.
당연히 무영각에서 하인과 일꾼으로 위장해 파고든 삼호와 그의 세작들도 단형우의 감각 아래 있었다.
세작들은 지금 잠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밤에 활동하는 일이 드물었다. 밤에 활동을 하기에는, 게다가 하남표국에서 그런 일을 하기에는 세작들의 실력이 상당히 모자랐다.
단형우는 삼호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눈을 빛냈다.
삼호의 움직임이 비록 은밀하기는 했지만 단형우 입장에서 보면 보통 사람들과 별다를 바도 없었다. 그런데 삼호가 가는 방향이 문제였다. 삼호는 지금 조설연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단형우는 삼호의 실력과 조설연의 실력을 가늠해 봤다. 둘다 너무 힘이 미약해서 비교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주 미묘한 차이로 삼호가 위라는 것을 파악했다.
단형우의 입장에서 미묘한 차이였지만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 차이라는 것이 상당했다. 최근 조설연의 실력이 상당히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무영각의 수장 중 하나인 삼호와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단형우는 조금 더 삼호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리고 삼호가 조설연이 머무는 방 안으로 스며들어가자 그제야 한 걸음 움직였다.
삼호는 손쉽게 조설연이 머무는 전각에 들어설 수 있었다. 가진 바 권한에 걸맞지 않게 조설연이 머무는 전각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호위무사는 물론이고 일하는 사람도 몇 없었다. 덕분에 삼호는 아주 쉽게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에서 조설연의 방을 찾는 것은 간단했다. 하남표국 내 전각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 있었고, 특히 조설연의 거처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파악했다.
삼호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고 문이 스르륵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침상에 누워서 규칙적인 숨소리를 흘리며 자고 있는 조설연의 모습이 보였다.
삼호는 미끄러지듯 방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역시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이제 방 안이 완벽히 밀폐되었다. 일단 가만히 서서 주변의 기척을 살핀 삼호는 전각 주변에 깨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삼호는 조설연이 자고 있는 침상으로 한걸음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목에 강렬한 통증이 일었다.
“컥!”
삼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누군가 삼호의 목을 틀어쥔 것이다. 삼호는 고통을 참으며 눈알을 굴렸다. 과연 누가 자신의 목을 움켜진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방 안은 어두웠지만 삼호의 눈을 가리지는 못했다. 삼호는 문득 아직도 내공이 활발하게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선명하게 어둠을 뚫고 방 안을 볼 수는 없었을 테니까.
삼호의 눈에 강인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사내의 생김새가 강인하다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그랬다.
그의 깊은 눈이 무심하게 삼호를 쳐다봤다. 삼호의 뇌리에 마구 경고가 울렸다. 너무나 위험하다고.
삼호는 목에 느껴지는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몸속의 내공을 움직였다. 너무나 잘 움직이는 내공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기회를 포착해야만 한다. 그리고 빨리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 상대가 자신의 내공을 금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움직여야만 했다.
단형우가 슬쩍 고개를 돌려 자고 있는 조설연을 내려다 봤다. 삼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흡!’
삼호의 눈이 커다래졌다. 속으로 신음을 마구 집어삼켰다. 분명히 발을 움직이려 했는데, 움직이지가 않았다. 혈도를 제압당한 것도 아닌데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내공은 터질 듯 발과 다리에 모여들었다. 한데 정작 다리가 나무토막처럼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단형우는 조설연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삼호를 쳐다봤다. 삼호와 단형우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흐윽!”
삼호는 단형우의 깊은 눈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것은 상당한 공포를 안겨주었다.
진짜로 몸 자체가 눈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에 빠지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삼호의 신음이 조금 컸는지 조설연이 잠에서 깼다. 조설연은 잠에서 깨 천천히 눈을 떴는데 눈앞에 사람이 서 있자 잠이 확 달아났다.
“누, 누구……”
조설연은 누구냐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둠 속에서도 단형우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단형우의 손에 잡혀 있는 사내도 볼 수 있었다.
조설연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의 방에 저 사내가 숨어들었고, 단형우가 와서 그 사람을 잡은 것이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조설연은 일단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단형우의 손에 잡혀 있는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의 눈은 당혹과 공포로 얼룩진 상태였다.
“제 방에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삼호는 공포에 잠겨가는 와중에 조설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동아줄 같았다.
놀랍게도 단형우의 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건져주었다. 삼호는 간신히 눈동자만 굴려 조설연을 쳐다봤다.
조설연은 어느새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채로 삼호와 단형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라버니 옷을 갈아입어야겠어요.”
조설연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 이 과정에서 삼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방 안이 분명히 밀폐되어 있었는데, 단형우가 걸음을 옮기는 순간, 문밖에 있었다.
삼호는 그저 눈을 껌뻑이며 굳게 닫혀 있는 방문을 쳐다봤다.
방에 다시 들어간 삼호는 그제야 바닥에 내려설 수 있었다. 단형우의 손에서 벗어난 삼호는 조설연과 단형우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그 앞에는 조설연이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앉아 있었다.
“이 늦은 시각에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조설연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삼호는속으로 감탄했다.
만만치 않은 여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밤중에 습격을 당할 뻔하고도 전혀 흔들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물론 습격을 하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조소저께 드릴 제안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삼호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조금 떨려나왔다. 아무래도 단형우에게 당한 고통과 충격이 상당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도 단형우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조설연 옆에 서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무서운 눈으로 삼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려웠다.
“정말인가요?
“저,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삼호의 어투는 간절했다. 여기서 조설연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렵고 또 두려웠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단형우의 존재 자체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안겨줬다.
“그런데 왜 이런 늦은 시간에 오신 건가요?”
조설연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삼호는 그것을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말로 안 되면 힘이라도 쓸 생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얘기라……”
조설연은 약간 서늘해진 눈으로 삼호를 지그시 쳐다봤다. 삼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자났을까. 삼호의 옷이 온통 식은땀으로 흔건히 젖을 무렵 조설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제안이라는 게 뭔가요?”
조설연의 질문이 떨어지자 삼호는 구명줄이라도 잡은 듯한 표정으로 급히 말을 쏟아냈다.
“정보 조직에 관한 일입니다. 무영각이라는 조지긴데, 제가 그곳의 수장 중 한 명입니다. 그 조직과 손을 잡으실 생각이 없는지 의논하러 왔습니다. 조소저께서 새로운 세가를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세가를 일으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정보의 수집과 활용은 필수입니다. 제대로 된 정보 조직이 있다면 훨씬 수월하게 일을 진행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삼호는 한순간에 그 말을 쏟아내고는 잠시 숨을 헐떡였다.
무영각은 상당히 유명한 정보 단체다. 그런 무영각이 하남표국과 손을 잡겠다고 하는 말에 조설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영각이라면 상당히 유명한 곳인데 왜 하필이면 표국에 온 거죠?”
“하남표국이 세가로 발돋움 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다른 중소 문파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요. 그리고 우리 무영각은…… 생각보다 돈을 많이 잡아먹습니다.”
조설연은 삼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무영각은 현존하는 최고의 정보 단체다. 그런 곳이 왜 하남표국과 손을 잡으려 한단 말인가. 말이 손을 잡자는 거지, 정보 조직의 특성상, 아래로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굳이 그런 이유라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텐데요, 전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네요. 대체 왜 하남표국에 들어오려는 건지.”
조설연의 말에 삼호의 눈이 살짝 난감한 빛이 띠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순간, 아무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단, 상대가 그냥 인간이었다면 말이다.
삼호의 눈이 한 번 빛을 발한는 순간 단형우의 눈이 그를 훑었다. 삼호는 갑자기 온몸을 엄습하는 기이한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숨기는 게 있군.”
단형우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단형우의 목소리에는 기이한 힘과 울림이 뒤섞여 있었다. 삼호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혼이 흔들렸다.
“컥!”
삼호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삼호는 질린 눈으로, 아니 공포에 가득 찬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