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48
빙천후의 싸늘한 말에 네 제자가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지만 이내 자신감이 가득하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빙천후는 제자들의 대답에 슬쩍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준비를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하남표국을 박살내고 무림맹을 접수하는 것뿐이었다.
정천맹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무림맹을 제외한 웬만한 문파들을 움직이지 않을 거라 했다. 빙천후는 새삼 회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만만치 않은 놈들이야.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조심해야겠어.’
빙천후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작 깊은 곳에 있는 마음속에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누가 감히 빙천후를 건드리겠는가.
지난 천 년 내 북해 최고의 고수라고 일컬어지는 북해의 마검을 말이다.
“북해빙궁이 움직였습니다.”
제갈중천의 보고에 독고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그렇게 되는군. 하남표국에 갔던 하단주와 검매화는 어쩌고 있는가?”
“검매화는 아직 하남표국에 있고, 하단주만 돌아왔습니다.”
“하단주 혼사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겐가?”
“글쎄요, 검매화의 변덕이겠지요.”
검매화는 성정이 변덕스럽고 이기적이라 알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너무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라서는 뭇 남자들로부터 선망의 눈길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 성격을 당해낼 자가 없다고 알려졌다.
물론 실제로 확인한 사람은 몇 안 되지만.
“하단주는 뭐라던가?”
“하남표국이 거절을 했답니다.”
“거절?”
독고운은 깜짝 놀랐다. 설마 거절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무황성까지 붙어주는데다 하남 무림을 이끌 수 있또록 지원까지 해주고, 나중에 무림맹의 물로 이송권을 주겠다는 조건을 달았는데도 거절할 줄은 몰랐다.
“무림맹 물류 이송권이 그렇게 보잘 것 없는 거였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다른 것을 원하는 모양입니다.”
“다른 것? 그게 뭔가?”
독고운의 질문에 제갈중천은 잠시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제갈중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직 확실한 것을 알려면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아마 허창에 서가를 하나 만들 모양입니다.”
“세가? 조가장을 말하는 건가?”
독고운도 예전 조장이 무너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이 몰락한 것이 천기자의 장보도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조가가 아니라 단가라고 합니다.”
제갈중천의 대답에 독고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단가? 하남표국의 주인은 조설연이라는 아이 아니었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새로 만들 세가는 단가라고 합니다.”
“설마 하남표국 뒤에 또 다른 세력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남표국의 주인이 조설연이 얼마나 다시 조가장을 일으키고 싶어 했던가. 그런 조설연이 새로운 세가를 세우는데 그것이 조가가 아니라 단가라면 분명히 뭔가 뒤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 독고운의 추측에 제갈중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남표국의 뒤에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뭔가?”
“하남표국에 단씨 성을 가진 사내가 하나 있습니다.”
제갈중천의 말에 독고운이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그럼 군사는 지금 조설연이라는 아이가 고작 사내에 홀려서 그에게 세가를 만들어 준다는 말인가?”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전혀 다른 얘기지만, 어찌 생각하면 틀리지도 않는 말이었기에 제갈중천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렇게 보입니다. 하남단가가 하남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제갈중천의 말에 독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고작 남자 하나 잡겠다고 세가를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하남표국에 있다는 그 사내가 상당한 고수라는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소문을 믿을 수는 없었다. 소문이 너무 허황됐다.
그것은 독고운뿐 아니라 제갈중천도 마찬가지였다. 제갈중천은 제갈린으로부터 직접 단형우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었으면서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단형우에 대한 자세한 사항들을 독고운에게 보고 할 수도 없었다.
“예전에 천중산에서 봤을 때는 분명 그 정도로 생각이 없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독고운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람이란 언제 어떻게 변할 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거기에 애정관계가 얽힌다면 그것은 더욱 심해진다.
“일단 북해빙궁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 조건을 들어주더라도 북해빙궁을 막아야합니다.”
제갈중천의 주장에 독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어쩔 수 없지. 지금으로선 정천맹도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니, 게다가 모용세가도 심상치 않아. 아무래도 조만간 무림에 피바람이 몰아칠 것 같네. 만일 지금 상황에서 천마신교가 몰려오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끝장이겠지.”
제갈중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심려 마십시오.”
“그렇지. 또 그래야만 하고.”
독고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뒷말을 삼켰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끔찍해질 것이라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하면 말이 현실이 되어 세상을 덮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무림의 정세가 상당히 급박해졌다. 북해빙궁의 움직임은 이제 눈과 귀가 있는 곳이라면 대부분 파악했다. 당연히 혼란이 온 무림을 덮쳤다.
수많은 무림인들은 무림맹과 정천맹이 나서 주길 희망했다. 북해빙궁이 노골적으로 무림을 집어 삼키기 위해 움직이는데 정파의 하늘과 땅인 무림맹과 정천맹이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림맹도 정천맹도 조용하기만 했다.
현재 북해빙궁은 북해를 떠나 산서를 향해 이동 중이었다. 물론 많은 수가 한꺼번에 이동하는 만큼 속도는 조금 느릴 수밖에 없었다.
북해빙궁이 산서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하남표국과 무림맹을 동시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산서에 들어서면 바로 하남으로 넘어가 허창의 하남표국을 박살내고, 곧장 호북으로 넘어가 무한에 있는 무림맹을 접수할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준비도 철저히 해야 했지만 힘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렇기 문에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북해빙궁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문은 당연히 하남표국에도 들려왔다. 아니, 소문이 퍼지기 훨씬 전부터 그 움직임을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제갈린은 무영각이 얼마나 대단한 정보 조직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다뤄왔던 제갈세가의 정보나 무림맹의 정보보다 한차원 높은 정보를 한 발 빨리 얻을 수 있었다.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뼛속 깊이 인지하고 있는 제갈린으로서는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이며, 굉장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그 정보를 토대로 하남표국의 주요 인물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대체 북해빙궁이 왜 하남표국을 노리는 거죠?”
아직 북해빙궁이 하남표국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무영강의 정보를 토대로 제갈린이 내린 결론이었다.
무영강의 다섯 수장들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갈린은 좀 더 확실히 그들의 행보를 파악했다.
“아마 누군가가 뒤에서 그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무림에 기이한 암류가 흐르고 있거든요.”
제갈린의 말은 심각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해빙궁을 막아내는 일이다.
“일단 무림맹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었으면 해요. 어차피 싸워야 할 상대라면 최대한 이득을 뽑아내야지요.”
제갈린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얘기였다.
“그리고 무림맹에서 지원해 주는 무황성은…… 솔직히 다루기가 쉽지 않아요.”
제갈린의 말에 형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황성은 이제 완전히 무림맹에 흡수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긴 한데 문제가 있어요. 무림맹도 그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들을 통제하지 못한다고요? 그럼 아무 쓸모가 없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대로다면 전혀 쓸모가 없죠.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무황뿐이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무림맹조차 통제를 못 한다는 것은……”
“제 할아버지한테 직접 들은 얘기니까 믿으셔도 돼요.”
제갈린의 할아버지는 무림맹 군사인 제갈중천이다.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은 그제야 제갈린이 제갈세가의 사람이자, 무림맹 군사인 제갈중천의 손녀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동안 워낙 하남표국에 오래 머물렀고, 마치 한 식구처럼 생각되어 인지조차 못하고 있던 일이었다. 사람들은 묘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생각해 보면 제갈린이 하남표국에 남아 표국의 일을 도와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게다가 하남표국을 무림맹보다 더 우위에 두고 있지 않은가.
“그들을 무황이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조설연이 물었다. 제갈린은 조설연의 빛나는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핵심이야. 무황은 무영각의 힘과 자신의 무력을 교묘히 이용했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들이 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 상황마다 교묘한 대처를 했어.”
“그럼 그런 일은 무황 외에는 할 수 없겠군요.”
조설연에게 무황만큼의 힘을 보여 달라면 그 이상을 해낼 수 있지만, 무황이 한 것처럼 여우같은 언변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조설연은 그렇게 잠시 동안 단형우를 쳐다봤다.
“무황성의 일은 오라버니께 맡겨 보는 것이 어떨까요?”
조설연의 말에 제갈린이 약간 당황한 얼굴로 조설연과 단형우를 번갈아 쳐다봤다. 단형우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부탁하면 들어줄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생각하던 제갈린이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는 수가 없겠네.”
제갈린은 조설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 역시 처음에 그 생각을 했으니까.
때로 엄청나게 강력한 힘은 교묘함을 확실히 눌러 버릴 수 있다.
무황의 교묘한 언변이나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의 능력은 때로 단형우처럼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함 앞에 힘을 잃게 된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공자님이니.’
제갈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형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믿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제갈린이나 조설연이 이렇게 무황성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 북해빙궁을 막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 이후의 일이 더 중요했다.
무황성 무사들을 잘 포섭해 하남다가로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세가를 만들기 위한 다른 모든 것은 준비가 되었다.
돈도 충분히 준비했고, 세가의 발판이 될 만한 사업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이제 진짜 북해빙궁과 싸울 일을 의논하죠.”
제갈린은 그렇게 말하며 좌중을 둘러봤다. 하나같이 믿음직한 사람들이었다.
“한 번도 전력을 비교하거나 재본 적은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질 것 같지는 않에요.”
제갈린은 그렇게 말했다. 검왕과 검마가 있다. 게다가 단형우의 가르침은 받은 낙뢰대가 있다. 그리고 최근 급성장하는 종칠도 있다.
우문세가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당가까지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단형우가 있다.
사실 제갈린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원인이 바로 단형우였다. 단형우가 있으니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다.
단형우가 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만일 단형우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무림은 그날로 끝장 날 것이다.
제갈린은 단형우를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어디까지 도와주실 생각이신가요?”
제갈린의 물음에 단형우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제갈린을 쳐다봤다. 제갈린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아직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북해빙궁을 단공자님 혼자 막을 수는 없으니까. 도움의 범위를 명확히 했으면 해요. 그래야 계획을 세울 수 있을테니까요.”
제갈린의 말에 단형우는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라 수 있었다.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단형우의 뜬끔없는 제갈린은 물론이고 방 안에 있던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예? 모, 못 들었어요.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렇게 한다고 했다.”
단형우의 대답에 방 안에는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렇게 한다니 뭘 그렇게 한단 말인가.
“설마 혼자서 북해빙궁을 막으시겠다는 얘끼는…… 아니시죠?”
“곤란한가?”
단형우는 그렇게 물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세상은 지옥보다 훨씬 복잡하다.
힘이 있으면 그 힘을 써서 그냥 부숴 버리면 될 일도 몇 번 꼬아서 여러 가지 목적을 달성시킨다.
“실전 훈련이라는 거로군.”
제갈린은 단형우의 말에 깃든 의미를 파악하곤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전 그저 공자님께서 혼자 북해빙궁을 상대하시다가 잘못 되기라도 할까봐…….”
말을 하던 제갈린은 문득 묘한 느낌이 들었다. 단형우가 누군데 지금 걱정을 한단 말인가.
사실 싸우다 불리하면 한 걸음에 여기까지 도망쳐 올 수도 있는 사람 아닌가. 그리고 아무리 북해빙궁이라도 단형우를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갈린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부탁드려요, 공자님.”
제갈린의 부탁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가면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