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5
하지만 당철기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 문제는 그냥 규모가 작은 표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오히려……”
당철기의 말에 당호관이 인상을 썼다.
당철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당철기는 처음 표국을 선정할 때부터 그렇게 주장했다. 그가 원하는 바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표국에 의뢰를 하고 나중에 깨끗이 정리를 해버리는 것이었다.
“그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으냐. 그렇게 하면 드러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느냐? 오히려 훨씬 위험하다.”
당철기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의견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금 일행의 책임자는 당호관이었다.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다른 어떤 표국도 한 달 내에 이 물건들을 사천까지 이동시키지 못한다.”
당호관은 그 말을 한 후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르는데 어찌 저들을 돌려보낸단 말이냐.”
당철기는 당호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면 훨씬 강한 표사들을 고용하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닌가. 물론 당가 무사보다 강한 표사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하남 표국의 쟁자수들이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호관은 당철기의 얼굴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설마 정말로 모르는 것이냐?”
“저는 숙부님꼐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호관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당가 무사들을 쳐다봤다.
표물 주변에 늘어서 사방으로 눈빛을 빛내는 당가 무사들은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리고 그 틈으로 단형우의 모습이 보였다.
당호관은 당철기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제 흉수들을 처리한 게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당철기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야 숙부님이잖습니까. 과연 당가 비전의 천뢰(千雷)라고 생각합니다.”
당호관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뢰라니, 현재 당가에서 그걸 익힌 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당호관은 그제야 당철기가 왜 그런 제의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당호관이 천뢰를 익히고 있다 착각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숙부님께서도 천뢰를 완성하셨으면 이 우질(愚姪)에게 언질이라도 살짝 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하하하.”
당호관은 다시 한 번 당가 무사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제야 왜 이렇게 이들에게 자신감이 가득하지 알 수 있었다.
천뢰 때문이었다.
당가가 가진 무공 중 가장 유명하고 위력적인 것을 꼽으라면 단연 만천화우(滿天花雨)를 들 수 있다.
백 명에게 물으면 백 명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당가 사람에게 물으면 백이면 백 천뢰라 대답한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암기를 쏟아내는 것이 만천화루라면 그 쏟아지는 암기 하나하나에 뇌기(雷氣)를 담는 것이 천뢰다. 말 그대로 일천 개의 벼락을 쏟아내는 당가 최고의 비전이다.
물론 지금까지 당가 역사상 그것을 익혀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한 명 있었다. 천뢰를 만들어 낸 장본인인 당악이었다.
당악은 천뢰 덕분에 뇌황(雷皇)이라 불렸다. 그리고 당대의 이름난 고수들을 모조리 꺾은 후, 무림을 집어 삼키려는 북해빙궁을 괴멸시켰다.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의 일이다.
당호관은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조차 눈앞으로 지나가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따. 당철기나 다른 무사들이 못 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수많은 벼락이 동시에 떨어지는 듯했으니.
‘천뢰라고 착각할 많도 하군.’
전해지기로는 천뢰가 펼쳐지면 동시에 수백 개의 벼락이 떨어진다 했다.
뇌기를 머금은 암기들이 쏟아지는 모습이 아마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까 짐작하지만 그 실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후우, 철기야. 넌 정말로 내가 천뢰를 익혔다 생각하는냐?
“당연하지요. 숙부님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그것을 익히겠습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당철기의 눈에는 존경과 함께 질시의 빛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천뢰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어하는 탐욕의 빛도 언뜻언뜻 비쳤다.
“뭔가 크게 착각을 하고 있구나. 만일 내가 그것을 익혔다면 우리 식구가 열이나 죽어 나가는 걸 구경만 하고 있었을 것 같으냐?”
당호관의 말에 당철기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 그럴 리가…… 그럼 대체 어제 그것은……”
“쟁자수다.”
당철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남표국 쟁자수 중 하나가 한 일이란 말이다. 이제 왜 저들과 반드시 함께 가야 하는지 알겠느냐?”
당철기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당호관의 말이 머리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쟁자수가 대체 뭘 어쨌단 말인가. 설마 쟁자수가 천뢰를 익히고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당호관은 그런 당철기의 반응에 가볍게 고개를 저은 후, 걸음을 재촉했다. 당철기는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당가 무사들의 자신감은 여전히 하늘을 찔렀다.
당호관은 깊이 생각하며 기계적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단형우의 정체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보니 어느새 하남을 벗어나 섬서(陝西)로 접어들었다.
조가장주 조일현은 창으로 일가를 이룬 고수였다.
무림에 창을 쓰는 무사들이 상당했고, 또 고수 소리를 듣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는 경우는 조일현이 유일했다.
조일현은 하남제일창(河南第一槍)이었고, 허창제일고수였다. 그리고 당연히 조일현보다 창을 잘 쓰는 고수가 없으니 천하제일창이기도 했다.
조일현은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결코 연공을 쉬지 않았다. 오십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연공시간만큼은 결코 어긴 적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두 시진의 수련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밤에 모든 일을 마친 후, 한 시진의 마무리 수련을 통해 하루를 마감했다.
오늘도 조일현은 일과가 끝난 후, 연무장을 찾았다.
조일현은 일단 연무장 한가운데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조용히 운기조식을 하며 내기를 다스렸다.
창을 연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공을 수련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리고 점점 경지가 높아질수록 직접 몸을 움직이는 수련보다는 이렇게 내기를 조절하거나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나가는 수련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된다.
한창 운기조식을 하던 조일현은 문득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운기조식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음직한 기운이었다.
조일현이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집중해 감각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잘못 느낀 것인가?”
조일현은 고개를 저었다. 잘못 느꼈을 리가 없다. 너무나 확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운이 사라져 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조일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도착한 조일현은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지만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늘은 조인과 조설연도 하남표국에 가 있어 만일 조가장과 표국에 동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훨씬 위험할 터였다.
조일현이 한창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따. 조일현이 고개를 들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 장주님.”
사마철의 목소리였다. 조일현은 서둘러 대답했다.
“들어오게.”
사마철이 방으로 들어왔다. 표정에 다급한 기색이 완연했다.
“장주님, 방금 마육이 돌아왔습니다.”
“마육? 마육이라면 이번 당가에 가는 표행을 책임지는 표두 아닌가. 그런데 벌써 돌아왔다고?”
“그 표행을 누군가가 습격했습니다! 표사들이 모조리 죽고 마육만 간신히 살아났다고 합니다.”
조일현의 눈이 커졌다. 계속해서 불길했는데 이 일 때문이었던 듯했다.
“어찌 그런 일이…… 그럼 흉수는?”
“흉수의 정체는 아직 모른다고 합니다. 마육의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표물이 뭔가 중요한 물건인 듯합니다.”
“그렇겠지. 그러니까 당가의 정예 무사들이 서른이나 따라왔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가 무사들까지 있는데 표사들이 전멸이라니……”
“그 당가 무사들도 열이나 죽었습니다. 단형우라는 쟁자수가 없었다면 모조리 몰살당했을 거라고 합니다.”
“단형우?”
조일현은 단형우라는 이름에 금세 조설연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도 따라간다고 했었지. 그나저나 그래서 살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사람이 대단한 고수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그렇다고 합니다. 당가 무사들조차 힘겨워하던 흉수들을 단숨에 처리했따고 하니 정말로 엄청난 고수입니다.”
사마철은 말을 하면서도 약간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니 확신을 가질 수가 없어다. 그리고 단형우가 고수라는 얘기는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고작 삼재검법도 못 익힌 둔재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대단한 고수로 거듭날 수 있단 말인가.
“알 수가 없군. 어쨌든 표사들이 모두 죽었다니 다른 표사들을 보내야겠군. 당가에선 뭐라고 했다던가?”
“그냥 쟁자수들만으로 표행을 계속하겠다고 했답니다. 다행이 형표라는 표사가 하나 살아남아서 표행을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쟁자수들은 모두 무사합니다.”
“쟁자수들이 무사해? 표사들이 모조리 죽었는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아마 흉수가 쟁자수들을 공격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단형우, 그 친구가 움직인 모양입니다.”
사마철의 대답에 조일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표사들이 모조리 죽어 나갈 때는 가만있다가 쟁자수를 죽이려하니 움직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어쨌든 그나마 다행이군. 죽은 표사의 가족들에겐 충분히 보상을 지급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마철의 대답을 듣는 조일현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점점 더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이상하군.”
“왜 그러십니까?”
“너무나 불길한 예감이 드네. 설연이와 인이 지금 뭘하고 있는가?”
“아마 지금쯤 잠자리에 들었을 겁니다. 설연이가 워낙 난리를 쳐서 아마 인이도 조금 피곤할 테지요, 허허.”
사마철이 쓴웃음을 짓자 조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자네나 인이가 잘못한 것은 없네. 아마 설연이도 나중에는 다 이해할 걸세.”
조일현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단형우가 놀라운 고수라는 사실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당가 무사들조차 어쩌지 못한 적을 물리쳤다면 정말로 대단한 고수일 것이다. 자신을 훨씬 능가하는 ‘설마. 마육 그 친구가 다급한 상황이라 과장되게 인식했던 거겠지.’
조일현은 가볍게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사마철도 같은 생각으로 가볍게 넘어갔다.
그런 고수가 쟁자수를 하라고 하는데도 군소리 없이 따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세상물정을 모른다 하더라도 말이다.
“음?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조일현이 고개를 번쩍 들며 말하자 사마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사마철의 안색이 변했다. 그의 귓가에도 억눌린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설마!”
조일현이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이제는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자, 장주님!”
사마철이 뒤따라 나오며 조일현을 불렀다. 조일현은 잠시 서서 뭔가 생각에 잠겼다가 뒤돌아 사마철을 똑바로 쳐다봤다. 조일현의 눈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자네, 내 말 잘 듣게.”
“자, 장주님.”
“즉시 표국으로 돌아가게. 그리고 인이와 설연이를 데리고 떠나게. 당가로 간 표행에 합류하는 것도 좋겠지. 아무튼 뒷일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조일현의 말에 사마철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장주님!”
“시간이 없네. 서두르게 어서! 아차, 그리고 무림맹에서 온 세 사람에게 도망치라고 알리게. 내 말을 꼭 명심해야 하네. 부탁하네.”
조일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비명소리가 가장 크게 들려오는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마철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몸을 돌렸다. 조일현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마철이 조가장에서 몸을 빼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흉수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빠져 나오기 위해 사마철은 비밀통로를 이용했다. 덕분에 은밀히 빠져 나올 수는 있었지만 내심 조가장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어쨌든 사마철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표국으로 돌아가, 자고 있는 조인과 조설연을 깨워 표국에서 빠져 나갔다.
마침 무림맹에서 온 세 사람도 표국에서 머물로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둠이 사라지기 전에 허창에서 몸을 빼냈다.
“숙부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이러시는 것입니까?”
조인의 질문에도 사마철은 묵묵히 경공을 전개할 뿐이었다. 벌써 허창을 한참 지나왔지만 사마철은 여전히 경공을 멈추지 않았고, 조인과 조설연도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조인과 조설연은 그렇다 치고 팽철영은 가슴 가득히 들어찬 의문 때문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남궁진과 팽미령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여섯 사람은 꽤 규모가 큰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적당한 객잔에 들어갔다.
평소 같았으면 여자인 조설연과 팽미령에게는 방을 따로 잡아 줬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커다란 방 하나에 여섯 모두 들어갔다.
조설연과 조인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숙부님.”
자리에 앉자마자 조인이 사마철을 불렀다. 사마철은 그제야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 얘기해 주마. 표행이 습격을 받아 크게 피해를 입었다.”
“예?”
조인과 조설연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사마철을 쳐다봤다. 물론 팽철영을 비롯한 세 사람도 놀라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팽미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표행이 습격 받은 것은 조가장이나 하남표국의 일이었다. 자신들이 이렇게 오밤중에 끌려나올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곳에 가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사마철의 말에 조인이 물었다.
“그럼 저희를 데리고 오신 것은……”
“너희들도 함께 데려가라는 장주님의 명이 있었다.”
그제야 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 역시 경험을 쌓으라는 취지로 가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아직 의문점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였기에 일단 오늘은 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