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50
당호관의 질문에 단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더 많다.”
단형우의 대답에 당호관은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더 많다면 얼마나 많은 건가?”
“처음 천 번까지는 헤어렸지만 그 이후로는 세는 걸 포기했다.”
단형우의 말에 당호관의 입이 벌어졌다. 자그마치 일천 번이라 했다. 아니, 그 이후로는 세는 걸 포기했다 했으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질문과 대답이 약간 모호해 그것이 일 대 일의 경험인지, 아니면 많은 적을 상대한 경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라도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했다. 그리고 당호관의 이해력을 부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대적을 했는데도 어찌 알려지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당호관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단형우가 적으로 대하고 싸웠다면 상대는 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일천 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수가 죽어나갔는데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단형우와 상대할 정도의 강자들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이해할 수가 없군.”
당호관은 그렇게 중어러리며 앞을 바라봤다. 어느새 기척만 느낄 수 있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곳까지 다가왔다. 당호관은 눈에 내력을 더욱 집중했다.
그들의 복장이나 어굴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북해빙궁 무사들은 얼굴 형태부터가 다르니까.
“북해빙궁이 아니로군. 저 복장은…… 무황성인가?”
당호관의 중얼거림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온 것이다.
얼마 후, 무황성 무사들이 단형우와 당호관이 있는 곳에 도착했가. 그 수가 무려 백 명이었다.
무림맹에 흡수되며 자연스럽게 빠져나간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었다.
원래 무황성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진짜 고수라 할 만한 사람은 서른 정도였고, 그 외에도 강함에 미쳐 있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 인원을 모두 합하며 삼백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무황이 죽음녀서 자연스럽게 무황을 보고 무황성에 온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무림맹에 흡수되면서 무림맹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빠져나갔다. 그리고 조직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모두 빠져나갔다.
그렇게 다 빠져나가고 남은 사람들이 지금 단형우와 만나고 있는 백 명이었다.
이들 역시 무림맹과는 그리 맞지 않았다. 무황성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무림맹의 경직된 분위기가 너무 달라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들보다 무림맹 쪽이 더했다.
사실 제갈중천은 아무리 그래도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산적한 문제는 많고, 터지는 일도 많았기에 이들을 끌어안을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그래서 이번 북해빙궁과의 싸움에 끌어들인 것이다.
무황성 무사들은 그들대로 무림맹에서 적응 못해 곤욕을 치르느니 차라리 화끈하게 싸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이리로 왔다.
하남표국에는 십대고수가 둘이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그나마 좀 가벼운 마음으로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도착해 보니 상황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뭐지? 하남표국은 이게 다인가?”
현재 무황성 무사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사마협이라는 자였다.
사마협은 무황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다.
그는 무황성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무림맹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무림맹에 그대로 흡수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사마협은 눈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허헛, 이것 참. 하남표국에선 달랑 둘이라…… 아, 그렇군. 다른 사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게야. 그렇지 않소?”
사마협은 기대감이 서린 눈으로 단형우와 당호관을 쳐다보며 물었다. 당호관은 그 말과 눈빛에 쓴웃음을 지었다.
“하남표국에서는 우리 둘 뿐이오.”
당호관의 말에 사마협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무림맹이 날 속인 것이오? 아니면 하남표국이 날 우습게 본 것이오?”
사마협의 말에 당호관이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아니오. 무림맹은 하남표국이 설마 둘만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거요. 그리고 하남표국에서는 모든 전력을 다 투입한 것이오.”
하남표국에서 단형우 외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단형우가 지킬 사람이 없다는 것과 같다. 즉, 전력을 투입한 것이다.
당호관은 지킬 것 없이 마음대로 힘을 발휘하는 단형우를 떠올려봤다.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당호관이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나랑 장난 하자는 걸로 판단되는군. 그래, 날 가지고 노니 재미있나?”
사마협의 몸에서 서서히 기세가 피어올랐다. 비록 십대고수에 끼지는 못하고, 무황과 비교하면 한참이나 아래였지만 그래도 무황성에서 알아주는 고수였다.
더구나 지금은 무황성 최고의 고수다. 그런 사마협이니만큼 기세가 상당했다. 하지만 그 기세는 단형우는 고사하고 당호관에게조차도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다.
“내 말을 안 믿는군.”
당호관의 중얼거림에 사마협이 소리쳤다.
“당연하지 않은가! 난 적어도 하남표국에서 검왕과 검마는 올 줄 알았다! 그랬다면 북해 놈들과 한 번 붙어볼 만했겠지! 하지만 이제 우린 다 죽거나 명예를 땅에 내던지고 도망갈 수밖에 없어!”
사마협의 외침에 당호관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자신이 말을 한다고 해서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눈앞에 있는 단형우가 바로 그 검왕과 검마가 한꺼번에 덤벼도 어쩌지 못할 고수라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어쨌든 우리끼리 싸울 필요는 없으니 일단 좀 쉬면서 기다립시다.”
당호관의 말에 사마협은 분노 가득한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이렇게 개죽음을 당하기 위해 온 것은 절대 아니었다. 자신들의 힘을 나름대로 무림맹에 과시하기 위해 왔다.
북해빙궁을 막아선다면, 비록 하남표국의 힘을 이용했다고는 해도 무황성의 이름을 무림맹이 가볍게 볼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개 죽음을 면치 못할 것 같았다.
“뭘 기다린단 말인가? 대체 뭘? 설마 이대로 북해빙궁을 기다리자는 말인가? 지금 우리 보고 그들을 알아서 막으라는 말인가? 정녕 그런 말인가?”
당호관은 사마협이 지나치게 흥분한 듯하자 그를 진정시켰다.
“자자, 진정하시오. 절대 그런 게 아니니까. 당신들은 북해빙궁과 싸울 필요가 없소. 그들은 나와 옆에 있는 이 사람이 해결할 테니 당신들은 일단 좀 쉬라는 뜻이었소. 먼 길을 달려 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말이오.”
당호관의 말에 사마협이 일순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를 생각했다.
잠시 후,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당호관을 노려봤다.
“아무래도 날 가지고 노는 듯하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구나.”
사마협이 등에 매달아 놓은 도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사마협 등에 서 있던 무황성 무사들도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었다.
채채챙!
도검이 내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당호관은 이마를 찌푸리며 그들을 쳐다봤다.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뜻인가? 나 당호관을?”
당호관은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당호관의 웅혼한 내공은 순식간에 주변을 장악했다.
사마협은 놀란 눈으로 당호관을 쳐다봤다. 방금 목소리에 실린 내공으로 판단하건대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가만 살피니 당호관의 화후를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마치 무공을 익히지도 않은 사람 같았다.
그런 사람이 북해빙궁과 싸우는 위험한 자리에 나올 리가 없다. 사마협의 눈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대단하군. 하지만 해명을 반드시 들어야겠소. 하남표국의 생각이 대체 무엇인지 말이오.”
사마협은 한풀 꺾인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당호관은 그제야 기세를 거둬들였다.
당호관이 기 세를 거둬들이자, 사마협은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당호관의 기세에 먹힌 줄도 모른 채 먹힌 것이다. 사마협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내가 더 이상 설명할 건 없소. 북해빙궁은 하남표국에서 막을 테니 당신들은 싸움의 여파에 다치지 말고 멀리 떨어져서 구경이나 하다가 우리가 위험해질 것 같으면 도망을 가든 도와주든 하면 되오.”
사마협은 당호관의 말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하지만 당호관은 그 정도 큰소리를 칠 수 있을만한 고수라 판단했다.
사마협은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단형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도, 알 수도 없었다.
사마협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좋소. 일단 당신의 말을 듣겠소.”
사마협의 대답에 당호관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때론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어설픈 설득보다 효과적일 때가 있는 법이다.
무황성 무사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큰 싸움이 벌어질 테니 충분히 쉬어 둬야했다.
한동안 쉬던 사마협이 다시 당호관에게 다가갔다.
“한데 북해빙궁이 이쪽으로 오는 건 확실하오?”
“그렇소. 아마 조만간 나타날 거요. 이 근처에 거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으니.”
당호관의 말에 사마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말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온다.”
사마협은 고개를 돌려 방금 말한 단형우를 쳐다봤다. 여전히 표정은 없었다.
나이도 어린 자가 참으로 건방지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굳이 겉으로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굳이 얽히지 않는 편이 이로울 듯했다.
“드디어 오는 건가?”
당호관이 살짝 긴장된 얼굴로 말하자 사마협 역시 긴장감 어린 얼굴로 물었다.
“북해빙궁이 오는 거요?”
“그런 듯하오. 자, 아까 내가 해준 말을 잊지 마시오. 다친 사람만 손해니까.”
당호관의 말에 사마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이 또 상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마협은 급히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싸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구경을 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뭔가 도움을 줘야 했다. 물론 이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알려진 북해빙궁의 인원은 이백이 넘는다. 당호관이 아무리 고수라지만 홀로 그들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무황성 백 명이 합세를 해도 마찬가지다.
북해빙궁 무사들은 정예 중 정예를 추려서 온 고수들이고, 무황성은 고수들이 빠져나간 쭉정이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사마협은 싸울 준비를 하며 당호관과 단형우가 있는 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신색은 너무나 고요했고 평온했다. 죽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를 희망이 솟아났다.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하지만 사마협은 고개를 저어 그 희망을 털어냈다. 바보 같은 희망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중천, 그 늙은 여우한테 당했어. 완벽하게.’
무림맹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정이 깨끗이 떨어져 나갔다.
이제 사마협도 북해빙궁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멀었지만 엄청난 기세를 일부러 뿜어내는 듯 차갑고 야수처럼 광포한 기세 그대로 느껴졌다.
사마협의 얼굴에 어린 절망이 조금 더 짙어졌다.
격돌
혈마자의 명을 받은 혈영은 자신의 부하인 혈영대 열을 모두 이끌고, 최대한 빠르게 사천 쪽으로 이동했다.
혈마자가 혈영에게 내린 명은 사천을 정리하라는 것이었다. 현재 사천은 혈마회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 사천의 모든 것을 담당했던 흑사방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현재 사천에서 가장 큰 세력을 떨치고 있는 곳은 단연 당가다. 한때 흑사방 때문에 세가의 존폐 위기까지 겪었지만, 단형우가 혼자서 흑사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당시 벽력탄까지 다수 확보한 덕분에 강대한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
악가장은 당가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세력을 확보했다. 천기자로부터 전해진 무공을 이용해 강력한 무사들을 키워, 힘만으로 거의 당가에 근접할 정도가 되었다.
악가장과 당가 외에도 다양한 문파와 가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비교적 세를 떨치지 못했다.
두 가문의 힘에 눌린 것도 이유가 되지만, 예전 흑사방이 사천을 통합할 때 입은 피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피해를 입지 않고 그냥 흑사방에 투신한 문파들의 경우 당가나 악가장이 심하게 견제했기 때문에 더 크기가 어려웠다.
이래저래 사천은 악가장과 당가가 마음껏 휘젓고 있었다.
혈영의 임무는 그 악가장과 당가를 괴멸시키는 것이었다. 악가장도 당가도 쉽게 볼 수만은 없는 곳이었기에 혈영대를 모두 이끌고 왔다. 그리고 사천에서 혈마자가 지원해준 철영대와 합류했다.
철영대는 혈마자가 보유한 무사단 중, 무사들의 수가 가장 많긴 했지만 개개인의 무력은 그리 높지 않은 무사단이었다.
무력이 높지 않다는 것은 혈마회의 다른 무사들과 비교해서였지 결코 일반적인 무인들과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도 나름대로 혈마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무공을 익힌 무사들이었다.
철영대는 대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수가 많은 만큼 필요할 때마다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임무를 수행하는 각 대주들의 명령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번에 혈영과 합류한 철영대는 무려 이백이었다. 물론 혈영은 그들을 전면에 내세워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싸움은 혈영과 혈영대가 맡고 이들에게는 포위, 추적의 임무를 맡길 생각이었다. 혈영이 혈마자에게 받는 임무는 두 가문의 말살이었으니까.
혈영은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철영대를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꽤 강해졌군.’
혈영의 입장 상, 철영대와 함께 움직일 일이 거의 없다. 당연히 철영대를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철영대는 예쩐에 비해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혈영이 느끼기엔 적어도 두 배 이상 강해진 듯했다.
‘이 정도면 거의 무영대 수준이로군.’
무영대는 그 특성상 강한 무공보다는 빠른 경공 위주의 무공을 익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싸움에 약한 것은 절대 아니다.
비록 예전의 검영대나 마영대에 비하면 훨씬 떨어지지만 그래도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한다.
그런 무영대와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혈영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먼저 악가장을 친다. 철영대는 악가장을 포위하고 한 놈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아라. 혈영대는 나와 함께 악가장을 몰살시킨다.”
“존명.”
혈영이 악가장이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나머지 부하들이 그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악가장에 도착한 혈영은 철영대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철영대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악가장을 넓게 포위했다.
일단 공격은 기습에 가까웠다. 악가장을 치고 다시 당가도 쳐야 하기 때문에 이 일이 새나가는 것은 곤란했다. 당가는 악가장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곳이다. 미리 방비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철영대가 악가장을 포위하자 혈영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살육의 시간이다.
혈영의 몸이 빗살처럼 악가장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열명의 혈영대가 그 뒤를 따랐다.
혈영이 악가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을 무렵, 요녕 땅 심양에 위치함 모용세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현 모용세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모용후였다. 모용세가의 장자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세가를 이끌어나갈 정도의 역량을 없었다. 오히려 그를 보좌하는 모용설이 가주에 걸맞은 능려글 가졌다.
하지만 모용후에게는 힘이 있었다. 모용후는 혈마회와 손을 잡고 그곳에서 강시를 잔뜩 세가로 들였다. 그것도 그냥 가시가 아니라 철강시다.
철강시는 도검이 불침하고 몸놀림이 빨라 웬만한 무림고수들조차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다. 그런 철강시가 무려 오백구나 있었다.
그리고 그 오백 철강시보다 더한 존재가 하나 있었다.
모용후는 음산한 얼굴로 집무실 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이제 힘이 생겼다. 더 이상 아무도 날 무시하지 못해.”
현재 모용후가 가장 두려워 하는 자는 바로 단형우다. 눈앞에서 그런 신위를 목격했으니 너무나 당연하다.
자신으로서는 영원히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조부를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 죽인 단형우가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내겐 힘이 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떨쳐낼 준비가 끝났다고 해야 옳다. 이제 힘이 있으니 그 힘을 이용해 단형우라는 존재를 떨쳐버릴 계획이었다.
모용후는 결심을 굳히고 집무실에서 밖으로 나갔다. 아직 혈마회로부터는 별다른 언질이 없었다. 아무런 요구사항도 없었고, 그저 철강시를 제공했을 뿐이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지만 마음껏 이용해 주지.”
집무실 밖으로 나온 모용후는 품에서 작은 피리 하나를 꺼내 입에 대고 힘껏 불었다. 그것은 철강시를 조종할 수 있는 피리였다.
아무런 소리도 울리지 않았지만, 어느새 오백 철강시가 모용후 앞에 나타났다. 모용후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그 철강시들을 둘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