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56
사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런 긴장되는 순간은 그리 많이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순잡이를 꽉 움켜쥔 사영은 검마가 몸을 슬쩍 움직이는 틈을 타 그대로 검을 뽑았다.
스릉!
혈영검이 소리를 내며 뽑혔다. 그 소리에 네 사람 모두 화들짝 놀랐다. 나름대로 그들 모두 검지에 이른 사람들이었다.
한데 검마의 검을 뽑아갈 때까지 누구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네 사람의 눈이 동시에 검마의 등 뒤로 향했다. 하지난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혈영검이 잠깐 보였지만 그조차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누구냐!”
가장 먼저 소리친 것은 장화영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몸을 움직인 것은 검마였다.
쉬이잉!
검마의 손이 등 뒤를 훑었다. 이미 검이 있고 없고를 상관하지 않는 경지다.
검마의 손에서 날카로운 강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갔다. 사라진 것이 혈영검이었기 때문에 검마는 과하게 반응했다.
콰과광!
강기를 정면으로 얻어맞은 바닥과 벽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흉수를 잡을 수는 없었다. 이미 사라진 듯 보였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검마도 검왕도 충격에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등 뒤에 누군가가 다가와 검을 뽑아갈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만일 그가 암살이라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대로 당했을 것 아닌가.
검마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나저나 문제로군. 혈영검을 훔쳐가다니.”
혈영검은 자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은 제갈린의 것이기도 했다.
아마 혈영검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며 제갈린이 매우 실망할 것이다. 아니, 슬퍼할 것이다. 검마는 그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표사들을 움직여서 찾아야지. 그리고 우문세가랑 당가에도 도움을 요청하고.”
검왕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흉수의 솜씨는 그만큼 대단했다.
검마는 빈소을 올려 쳐다봤다. 방금 전에도 혈영검을 만졌던 손이었다. 검마가 빈손을 꽉 움켜쥐었다. 마치 혈영검을 쥐는 것처럼.
혈영검을 입수한 사영은 품에 그것을 넣고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하남표국을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검을 혈마자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다. 물론 혈마자는 이 검을 혈영에게 줄 것이다.
하남표국을 나온 사영은 최대한 빠른 경공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일단 허창을 빠져나가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언제라도 그 괴물 같은 단형우가 자신을 쫓아올 것 같아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 찼다.
‘됐다. 허창을 벗어났다.’
사영은 허창을 벗어나는 순간 희열에 젖었다. 이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놓는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쩡!
사영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마치 거대한 벽에 온몸을 내던져 부딪친 듯했다. 순간적으로 은잠술이 풀릴 정도였다.
자신이 몸이 드러난 것을 확인한 사영이 급히 다시 몸을 숨겼다. 사영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지자, 그곳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이 나타난 순간 사영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흡!”
“거기군.”
“커억!”
사영은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눈앞에 서 있는 사내를 쳐다봤다. 사영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사내는 바로 단형우였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영은 불안한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단형우의 눈빛은 상당히 복잡했다. 그중 가장 크게 빛나고 있는 감정은 분노였다.
사영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단형우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이 세상에서 몸을 숨긴 자신을 찾아내거나 건드리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단형우였다. 그 단형우에게 잡혀 있으니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대, 대체 왜 이러십니까.”
사영은 최대한 공손한 말로 물었다. 단형우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일단 이 자리만 무사히 빠져나간다면 훗날을 기약할 수도 있다. 혈영검만 무사히 가져간다면 말이다.
단형우는 그런 사영을 그저 가만히 쳐다봤다. 조금 전에 죽이고 온 혈영과 같은 놈이었다.
이런 놈이 설치게 놔두었기 때문에 악가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악비환이 죽을 뻔했다.
악비환의 몸에 심어 뒀던 기운은 다른 사람에게 했던 합기와는 조금 달랐다. 그저 친구의 아버지를 만났다는 기쁨에 자신도 모르게 흘러들어간 기운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기운이 악비환을 한 번 살렸고, 단형우를 악가장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악비환이 다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악가장 사람들이 죽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단형우의 손에 조금씩 힘이 더 들어갔다.
사영은 이대로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형우의 분노는 자신을 죽여야 풀릴 것 같았다. 사영은 마지막으로 도박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사영의 품에는 혈영검도 있지만 잠룡패도 있다. 잠룡패를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진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진기랄 마음먹은 대로 움직였다.
신기하게도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는데 진기는 움직였다. 사영은 진기를 움직여 품에 있는 잠룡패에 그을 밀어 넣었다.
잘 될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냥 죽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않겠는가.
‘성공이다.’
사영은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진기가 잠룡패를 흘러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잠룡패가 미약하게 진동하며 빛을 발했다.
사영은 단형우의 눈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몸을 안개처럼 흩었다. 될지 안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도박이었다.
우우웅.
기이한 공명음이 울렸다.
단형우는 자신이 쥐고 있던 사영의 목이 그 순간 허전해 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안개를 쥔 것처럼 사영의 몸이 흩어지며 손가락 사이로 빨져나가 버렸다.
잠룡패의 힘과 사영의 능력이 동시에 발휘되며 만들어낸 상승작용이었다.
단형우는 들어올렸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주변으로 감각을 짙게 확장했다.
본능적으로 단순히 대처해선 사영을 찾아낼 수도, 잡아낼 수도 업다는 것을 알아챘다.
단형우의 몸에 짙은 서기(瑞氣)가 어렸가. 그 서기는 환하게 빛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편 사영은 단형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후, 뒤로 한참 물러섰다가 곧장 허창을 빠져나가기로 결정하고 몸을 날렸다. 이미 은잠술은 극성으로 펼친 상태였다.
게다가 잠룡패까지 쓰고 있다. 그렇게 해서 단형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으니, 허창을 빠져나가는 것도 할 수 있다 자신했다.
사영은 조심스럽게 몸을 날렸다. 물론 단형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멀찍 돌아서 허창을 빠져나가려 했다.
쩡!
사영은 몸을 가로막은 투명한 벽 때문에 기겁을 해야 했다.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설마 허창을 기의 막으로 감쌌단 말인가!’
물론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자신이 통과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건 기의 벽이었다. 그것도 틈이라곤 조금도 없는 촘촘한 기의 벽이었다.
‘빈틈을 찾아야 돼. 빈틈을.’
사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허창 외곽을 감싸는 거대한 기의 벽을 살폈다. 정말로 놀랍게도 그곳에 펼쳐진 것은 기의 벽이었다.
아직 조금밖에 확인을 못 했지만 허창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늘로도 도망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의 벽은 반구(半球)형태로 허창을 뚜껑처럼 덮고 있었으니까.
사영은 서둘러 움직였다. 방금 전에 부딪쳤던 자리에 어느새 단형우가 서 있었다.
기의 벽에 손만 대도 단형우가 알아내고 달려올 것이다. 아직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만, 거리가 가까워지면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사영은 조심스럽게 단형우에게서 멀어졌다. 어떻게 하든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 나았다.
두려웠다. 무서웠다.
사영에게는 단형우라는 존재 자체가 공포였다.
‘젠장, 웬만한 기의 막이라면 그냥 통과할 수 있을 텐데.’
사영은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절망에 휩싸여갔다. 빈틈이 전혀 없었다.
기의 흐름만 파악하면 그것을 타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흐름조차 파악이 불가능했다. 아니, 흐름 자체가 아예 없었다. 흐름이 없는 기라니, 지금까지 듣고 보도 못했다.
‘이런 건 팽가에서 월영이 펼친 진법 이후에 처음이군.’
월영의 진법도 이와 비슷했다. 하지만 달랐다. 월영의 진법은 기의 흐름을 자신이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흐름을 타고 움직인 순간 밖으로 튕겨 나간다. 흐름에 먹힌 결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흐름 자체가 아예 없었다. 빈틈도 없었다. 이런 곳에 달려들었다가는 흐름에 튕겨나는 게 아니라 막혀서 튕겨나게 되어 있다.
‘헉!’
사영은 하마터면 기의 막에 부딪칠 뻔했다. 갑자기 기의 막이 자신 앞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 피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부딪쳐 위치를 들킬 뻔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기의 막이 다시 한 번 사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헉!’
사영은 기겁을 하며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기의 벽은 그 이후에도 몇 번이나 사영을 덮쳤다. 마치 그곳에 있는 걸 안다는 듯 계속해서.
연방 뒤로 물러나던 사영은 문득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절대 생각하고 싶지 않던 가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설마…… 설마!’
설마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기의 막은 사영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반경이 줄어들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잡힌다.’
사영은 뒤로 물러나며 주변을 살폈다. 기의 막은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물러나던 사영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허창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여 버릴 생각인가?’
이렇게 농도 짙은 기의 막이 압박하면 보통 사람은 그냥 죽어버릴 수도 있다. 부딪치면 아이들 같은 경우 충격으로 즉사할 수도 있다.
사영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설마 자신 하나를 잡기 위해 허창 모든 사람을 죽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해졌다.
사영은 뒤로 물러나다가 진짜 벽에 등이 닿았다. 사영은 망설임 없이 벽을 타넘었다. 기의 막은 벽을 뚫고 계속해서 반경을 줄어나갔다. 그 순간 사영의 눈이 빛났다.
‘어쩌면!’
사영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살폈다. 이번에도 등이 벽에 닿았다. 크고 작은 집이 잔뜩 있는 곳이니 당연했다. 벽을 타넘은 사영은 기의 막이 벽을 통과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지금!’
기의 막이 벽을 막 통과하는 순간 사영은 그 막을 꿰뚫으며 몸을 날렸다.
피슛!
가벼운 소리와 함께 사영의 몸이 깨끗하게 기의 막을 뚫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됐다! 역시 생각대로였어!’
사영은 기뻐하며 몸을 날렸다. 이제 혈마자에게 돌아가는 것만 남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커억!”
사영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극성의 은잠술에 잠룡패까지 썼는데 대체 어떻게 자신이 이렇게 잡혀 있는지 말이다.
분명히 조금 전에는 안개처럼 빠져나갔는데 왜 지금은 안된단 말인가.
“재미있는 기술을 쓰더군.”
단형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사영은 그 미소가 마치 사신의 미소처럼 보였다.
안간힘을 써 봤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새 잠룡패로 빠녀자가는 진기도 막혀 있었다.
단형우는 그런 사영을 보며 나머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이걸 찾나?”
단형우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잠룡패였다. 사영의 얼굴에 절망이 짙게 드리웠다.
“대, 대체 어떻게……”
사영은 어떻게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았는지 궁금했다. 기의 막을 줄이는 것은 좋은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허창같은 커다란 도시에선 절대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사영은 분명히 그 빈틈을 뚫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넌 다르거든.”
“무, 무엇이……”
“기(氣)가.”
단형우의 대답에 그제야 사영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괴물 같은 사내는 자신의 기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기억한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기의 형질을 모조리 구분하거나, 아니면 사영이 가진 기의 형질을 기억했다는 뜻이다. 둘 중 무엇이 되었건 괴물은 괴물이었다.
“이런 미친……”
그것이 사영이 한 마지막 말이었다. 단형우의 손에 쥐어진 사영의 목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드득! 우드득!
사아아아아.
사영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져갔다.
이번에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붉은 안개가 되어 버린 사영의 몸이 허공에 흩어져 바람에 날렸다.
사아아아.
잠시 근처에 붉은 안개가 피어났다.
땡강.
사영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검 하나가 떨어졌다.
단형우는 그 검을 주워들었다.
혈영검이었다.
단형우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검마가 이 검을 애타게 찾고 있을 생각을 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단형우는 고개를 들어 하남표국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하고자 했던 모든 일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