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58
독고운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자신을 이리로 이끌고 온 장본인 팽진평이었다. 팽진평은 독고운이 자신을 쳐다보자 말을 이었다.
“취월 공께서 그러시더군요. 맹주님이 계시는 곳이 무림맹이라고. 무한에 있는 무림맹은 그저 전각을 빌려줬을 뿐이라고요.”
팽진평의 말에 독고운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직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아직 북해빙궁 무리들은 활개를 치고 다닌다. 그들을 몰살시키기 전까지는 절대 무너질 수 없었다.
“그리고 저들이 있지 않습니까?”
독고운은 고개를 돌려 팽진평이 눈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말을 탄 사람들이 있었다. 분개한 얼굴로 말을 달리는 사람들, 제갈중천을 비롯한 무림맹 장로들, 그리고 주작단과 현무단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사실상 무림맹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저들이 아직 남아 있었구려.”
독고운이 마치 독배하듯 중얼거렸다. 팽진평은 그런 독고운을 쳐다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도움을 주시다니 팽가주께 진심을 감사를 드리오.”
독고운의 인사에 팽진평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가 무에 도움이 되었다고, 그저 취월 공이 시킬 대로 여러분을 피신시키는 게 다인 것을요.”
팽진평은 그렇게 말하며 내심 취월의 능력을 감탄했다. 취월은 이번 북해빙궁의 침공을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들의 목표가 분명 무림맹이 될 것이라 확신했고, 그들에게 그만한 힘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팽가를 움직인 것이다. 지금 무림맹 주요 인사들은 팽진평을 비롯한 팽가 무사들의 도움으로 무림맹을 빠져나올 굿 있었다.
진천뢰가 터지기 직전에 미리 준비한 도주로로 맹주를 비롯한 모두를 피신시킬 수 있었다. 그 도주로는 신기하게도 불길의 침입을 전혀 받지 않았다. 진법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진천뢰의 무지막지한 힘에는 버틸 수 없었다. 간신히 지금 있는 이들만을 구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 취월이라는 분, 아직도 날 만나고 싶어 하시오?”
독고운의 말에 팽진평이 반색을 했다.
“물론이지요. 아직까지 애가 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팽진평의 대답에 독고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허헛, 내 진작 그를 찾지 않은 것이 휘될 따름이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셨습니다. 취월 공을 만나신다면 모든 것이 명쾌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무림맹도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테니 심려 놓으십시오.”
독고운은 자신 있게 말하는 팽진평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진정으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북해빙궁주가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북해빙궁주를 죽인 당호관은 역시 뇌황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당연히 무황성 무사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허창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르는 객잔마다 자신들이 본 광경을 마구 쏟아냈다. 그 말들이 다양한 소문으로 만들어져 천하에 퍼져나갔다.
덕분에 당가의 위상이 한 단계 올라갔다. 뇌황 당호관은 당연히 십대고수의 반열에 올라섰다.
사실 실제 실력은 십대고수가 되기에 조금 간당간당했지만 북해빙궁을 홀로 물리친 뇌황이라는 이름 아래 순식간에 그렇게 되어 버렸다.
실제 실력보다 상당히 과대평가 되어 사람들의 인식에는 거의 십대고수의 선두였다. 천마를 제외하면 뇌황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듯 소문이 퍼져 나갔다.
빙궁주의 죽음은 중원을 침공한 북해빙궁 무사들에게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무림맹에 진천뢰와 벽력탄을 쏟아 붓고 달아났던 두 무리의 빙궁 무사들은 방향을 급선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산서로 향했다. 산서에 있는 남은 두 무리와 힘을 합해서 뭔가를 해보기 위한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도 있었다. 무림맹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청룡단과 백호단이었다.
청룡단과 백호단은 무림맹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믿었다. 설마 그들이 그 와중에 안전하게 빠져나갔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무림맹이 있던 자리에는 그저 재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북해빙궁 무사들과 청룡단, 백호단이 산서로 들어섰다.
하남표국에는 때 아닌 사람들로 북적였다. 당호관이 무황성 무사들을 모조리 이끌고 도착한 것이다.
당호관은 당당하게 하남표국으로 들어가 자신이 알아서 무황성 무사들이 쉴 곳을 마련해 줬다. 하도 하남표국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이젠 그런 일조차 가볍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했다.
그렇게 무황성 사람들을 대충 처리한 당호관은 서둘러 조설연을 비롯한 하남표국 사람들을 찾았다.
일단 이들의 앞날을 정해야 했으니까. 당호관은 묘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오셨군요. 많이 늦으셨네요.”
당호관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조설연이 서 있었다.
당호관은 반가운 표정으로 조설연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 누굴 좀 기다리느라 그리 되었다. 그 사람은 제대로 돌아왔느냐?”
당호관의 말에 조설연이 빙긋 웃었다. 당호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당어르신게서 이해해 주세요. 오라버니도 많이 바쁘셨나봐요. 심양과 사천을 계속해서 오간 모양이니까요.”
조설연의 말에 당호관의 눈이 커졌다.
‘그럼 그대 그것이 심양과 사천을 오간 거란 말이로군.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심양에도 예전에 당호관도 함께 갔었다. 가서 단형우의 아버지라는 사람도 만나지 않았던가. 그곳에 있는 모용세가와는 좋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당호관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귀결되었다.
‘가만 심양은 그렇다 치고, 사천에는 대체 왜……’
사천에 있는 것은 당가다.
“설마 당가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당호관의 외침에 조설연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가가 아니라 악가장에요. 아마 오라버이께서 가시지 않았다면 당가에까지 피해가 미치긴 했겠지요.”
조설염의 말에 당호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끄응, 그럼 내가 그냥 갔을 줄 알고 나에게 오지 않은 거로군. 내가 이해해야지. 끄응.”
뭔가 조금 억울했지만 그렇게 이해해 버리려고 하니 마음은 편했다. 조설연은 그런 당호관을 보며 다시 한 번 빙긋 미소 지었다.
“참, 함께 오신 분들이 있다던데 그들은……”
“아, 그렇지 않아도 그 때문에 널 만나려 했다. 일단 좀 들어가자.”
당호관과 조설연은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사람들은 철막심이 있는 곳에 모여 있었다.
“그러니까 무황성 사람들을 당어르신께서 모두 데리고 오신 거라고요?”
“그래, 내가 데려왔다. 그놈들이 하도 나를 따라서 펼칠 수가 있어야지. 당가로 데려가기에는 좀 민감한 사항이라서 이리로 데려왔다. 어차피 세가를 만들 생각이라면 실력이 그럭저럭 되는 무사들이 많이 필요할 것 아니냐.”
당호관의 말에 조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안 그래도 린언니가 그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고 계시는데 잘 됐네요.”
“허허헛. 잘 됐구나.”
당호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함께한 시간은 며칠 되지 않지만 사마협을 비롯한 무황성 무사들과 상당히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들이 당호관을 워낙 잘 따르기 때문에 함부로 내칠 수가 없었다.
만일 하남표국에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한데 그 고민이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내 이럴 때가 아니지. 오늘 같은 날 술이 없으면 쓰나, 먼저 가 있거라. 내 금세 준비해서 그리로 가마.”
당호관은 그렇게 말한 후, 쏜살같이 달려갔다. 오늘은 술을 동이 째로 마시겠다고 다짐하며.
조설연은 그런 당호관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조설연에게 있어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언제나 감사해도 모자란 사람이었다.
조설연은 미소를 머금으며 발길을 옮겼다. 이제 그녀의 가슴을 가장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 단형우가 있는 곳으로 갈 시간이었다.
무림맹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북팽가에 도착했다. 사실 무림맹 장로들은 각자 갈 곳이 있었다.
무림맹 장로라는 것은 영향력이 큰 대문파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명도 문파로 돌아가지 않았다.
팽진평이 한 말이 묘하게 가슴에 남았다.
그렇다. 불탄 것은 무림맹이라는 이름이 앉아 있던 전각과 담벼락일 따름이다. 진짜 무림맹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맹주인 독고운이 건재한 이상 무림맹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니, 맹주가 사라지더라도 끝이 아니다. 사람이 있는 한, 무림맹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도 떠날 수 없었다. 그들이 떠나는 순간, 무림맹은 진짜로 끝날 것이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손으로 무림맹을 와해시킬 생각은 없었다.
팽가에 들어선 독고운은 팽가의 규모에 크게 놀랐다.
“팽가에 이렇게 거대할 줄은 몰랐소. 예전에 왔을 때와는 좀 달라진 것 같소이다.”
독고운의 말에 팽진평이 허허 웃었다.
“최근 세가를 조금 증축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원이 조금 늘어날 것 같아서요.”
팽진평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이었지만 독고운은 대충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세가의 규모 자체를 증축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결정했다고 바록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즉, 세가의 인원이 늘어날 것을 오래 전에 예측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증축된 모습을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인원이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들을 말함이겠지요?”
독고운의 말에 팽진평이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허험. 그, 그렇지요.”
독고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 취월이라는 분, 정말로 보고 싶소이다.”
독고운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예전 서찰에서도 느꼈지만 취월은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아니, 그저 특별하다는 말로는 이제 부족할 지경이다. 대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어찌 예측한단 말인가.
“그럼 다른 분들은 쉬게 하고 맹주님께서는 우선 취월 공을 만나 보시겠습니까?”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독고운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독고운 뒤를 제갈중천이 서둘러 따라붙었다.
“저도 함께 가지요.”
팽진평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팽진평은 능숙하게 세가 무사들을 불려 무림맹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독고운과 제갈중천을 데리고 취월의 거처로 향했다.
제갈중천은 팽가에 들어와서부터 계속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을 거듭했다. 제갈중천 역시 뛰어난 진법가, 팽가에 진버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제갈중천이 보기에 팽가의 진법은 그 수준이 엄청났다. 아무리 제갈중천이라도, 아니, 제갈세가가 달려들어도 이 정도 진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취월의 거처에 도착한 제갈중천은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이번에는 진법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곳의 진법은 지금 작동하고 있었다.
“진법이 펼쳐져 있군요.”
제갈중천의 말에 팽진평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팽가에 지어진 전각들을 모두 진의 일부입니다. 팽가 자체가 거대한 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저도 확인했습니다. 정말로 대단하군요.”
“취월공게서 설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팽가는 마음만 먹으면 그 누가 공격하더라도 막아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팽진평의 말에 제갈중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들어 취월의 거처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켰다.
“그야 그렇지요. 한데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곳에 펼쳐진 작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제갈중천의 말에는 팽진평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진법의 기운이 새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보통 사람은 알아채기가 쉽지 않겠지만, 저는 워낙 익숙한지라……”
제갈중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거처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저 주변을 살피기 편하게 하기 위한 진일뿐입니다. 걱정 마시고 들어오십시오.”
취월의 말이었다. 팽진평은 그제야 안심한 듯 손을 내밀어 독고운과 제갈중천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했다.
“드시지요.”
제갈중천은 약간 찜찜했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취월조차 못 만나고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취월의 거처는 소박하지만 정갈했다.
독고운은 나직이 탄성을 자아냈다.
“호오, 마음에 드는 곳이오.”
독고운의 취향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독고운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 조그마한 전각을 향해 걸어갔다.
독고운이 막 전각에 도착할 무렵 문이 활짝 열렸다. 마치 독고운을 맞아들이려는 듯이.
“호오……”
독고운은 나직이 탄성을 흘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앞에는 취월이 예의 그 바퀴달린 의자에 앉아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탁자를 마주하고 앉은 취월과 독고운은 한참이나 서로를 쳐다봤다. 두 사람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팽진평과 제갈중천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독고운과 취월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팽진평과 제갈중천이 압도된 것이다.
“취월입니다.”
취월이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한 것이다. 물론 서로 누가 누군인지 잘 알고 있으니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취월의 포권에 독고운도 마주 포권을 취했다.
“독고운일세.”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무림맹에 이끄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노고랄 것이 있나. 집도 절도 잃고 내몰린 신세인데.”
독고운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 그겋게 말하자 취월이 빙긋 웃었다.
“집과 절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요.”
“그 말이 옳네. 내 그래서 찾아왔네.”
독고운의 말에 취월은 독고운뿐 아니라 제갈중천과 팽진평과도 한 번씩 눈을 마주쳤다. 다시 독고운을 쳐다본 취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오셨습니다. 사실 북해빙궁이 움직이기 전에 오셨으면 했는데 조금 아쉽긴 하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가 정말로 중요하니까요.”
취월의 말에 독고운도 제갈중천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설마 북해빙궁이 이런 짓을 벌일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취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습니다. 변수가 조금 있었죠. 하남표국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