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59
“하남표국?”
하남표국이라는 말에 제갈중천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곳은 제갈린이 머무는 장소다.
제갈린으로부터 몇 번이나 하남표국의 대단함에 대한 서찰을 받았다. 아니, 정확히는 하남표국이 아니라 단형우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설마 취월 공께서도 그 ?㈎異遮?자를 염두에 두신 건 아니겠지요?”
제갈중천의 말에 취월의 눈이 빛났다.
“과연 무림맹의 군사이십니다. 제 생각을 그리 정확히 집어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군사께서도 이미 단형우라는 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는 말씀이시군요.”
취월의 말에 제갈중천은 살짝 당황했다.
“……”
“맞습니다. 그자가 변수입니다. 그자는 혈마자가 신경을 곧두세울 정도로 큰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혈마자는 말에 독고운의 안색이 변했다. 예전에도 혈마자에 관한 서찰을 취워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솔직히 당시에도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물론 염두에는 두고 있었지만.
“이번 북해빙궁의 움직임은 모두 혈마자가 벌인 일입니다.”
취월의 말에 독고운의 눈이 커졌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사실 혈마자는 오래전부터 북해빙궁을 이용하려고 준비를 해왔습니다. 북해빙궁이 오래전에 잃었던 힘을 모두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다 혈마자의 힘이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취월의 말에 독고운도 제갈중천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것은 팽진평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혈마자라는 자가 누구인가? 그렇게 대단한 자가 왜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도저히 모르겠군.”
독고운이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혈마자라는 인물이 존재한다고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천기자는 아십니까?”
“천기자? 그야 당연히……”
천기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비록 없지만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천기자 아닌가.
“제가 바로 그 천기자의 전인입니다.”
취월의 말에 세 사람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검마는 심각한 얼굴로 눈앞에 놓여 있는 검을 쳐다봤다. 은은한 핏빛을 뿜어내는 검신이 눈에 파고든다.
“과연 내게 이 검을 쥘 자격이 있을 런지.”
검마는 혈영검을 움켜쥐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정제된 마기가 손을 타고 스며든다.
온몸이 깨어난다.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뜨는 느낌이다. 검마의 몸을 한바탕 휘저은 마기가 다시 혈영검으로 스며든다.
그렇게 검과 다시 하나가 되었다.
검마는 문득 혈영검이 이미 자신을 주인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누가 혈영검을 쥐어도 이와 같은 현상은 벌어지지 않는다.
혈영검을 깨운 것은 단형우였지만 그 주인은 이제 검마가 되었다. 진짜 주인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젠 어쩔 수가 없는 건가.”
혈영검의 주인이 되었으면 혈영검에 깃든 진정한 힘을 깨우쳐야 한다. 그것을 알아야 진짜 주인이라 할 수 있다.
그 힘은 바로 마기에 있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검마는 혈영검을 이리저리 몇 번 휘두른 후, 검집을 마무리했다.
“그 녀석이라도 좀 패 줘야겠군.”
검마는 그렇게 종칠이 들었으며 기겁을 할 만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검마는 연무장에 도착했을 대, 연무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은 처음 보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는데, 덕분에 연무장이 너무 비좁게 느껴졌다.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검마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서 있자, 어느새 다가온 검왕이 툭 말을 던졌다.
“몸은 좀 괜찮은가?”
검마은 검왕의 말에 피식 웃었다. 혈영검을 탈취당한 날, 검마는 피를 토했다. 그답지 않게 심마에 빠진 것이다.
그 이후로 처음 검왕을 만나는 것이니 이리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진짜로 별일 없었다. 단지 피를 한 번 토했을 뿐이다. 피를 토하지 못했다면 조금 심각한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물론 검왕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검마는 문득 검왕을 쳐다봤다. 매일 보던 얼굴이고, 그리 살가운 관계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동안은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맙군.”
검마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 버렸다. 말 하고서도 고개를 돌려 약간 붉어진 얼굴을 감춰야 했다.
검마가 그런 반응을 보일진대 검왕은 오죽하겠는가. 검왕은 너무 놀라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검마를 쳐다봤다.
“뭐 잘못 먹은 건 아니지?”
검왕의 말에 검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끄럽다.”
물론 아직 얼굴에도 도는 붉은 기는 가시지 않았다.
“종칠! 어디 있느냐! 종칠!”
검마는 갑자기 종칠을 불렀다. 연무장 한구석에서 장화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던 종칠은 날벼락 같은 검마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종칠을 본 검마의 얼굴은 어느새 다시 무뚝뚝하게 변해 있었다.
“대련 시작이다. 오늘은 사 성이다.”
검마의 말에 종칠은 기겁을 했다.
“으악! 말도 안 돼요!”
하지만 말이 되건 안 되건 검마의 손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검왕의 손도 움직였다. 거의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다.
검왕과 검마는 그렇게 멋진 호흡을 자랑하며 대련을 빙자한 종칠의 구타에 들어갔다.
단형우는 연무장 한구석에서 종칠의 대련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꼭 종칠이 아니라 연무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봤다.
단형우 옆에는 우문혜가 영사의 호위를 받으며 서 있었다.
“공자님, 뭘 그렇게 열심히 보세요?”
우문혜가 애교를 섞어 말을 걸어오자 단형우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맺혔다. 이젠 우무혜의 이런 애교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너무나 당연했다.
단형우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우문혜를 한 번 쳐다봤다. 아름다운 얼굴이다.
단형우는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크게 경계한다. 하지만 우문혜는 이제 괜찮았다.
예전 지옥에서 겪었던 그 아름다운 말물들보다 이젠 우문혜가 더 아름답다. 하지만 우문혜를 경계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단형우의 머릿속에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조설연이었다.
단형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제갈린이 조설연의 뒤를 이어 지나간다. 그리고 형표를 비롯한 쟁자수들, 검왕과 검마, 종칠, 당호관……
그간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함께 살아왔다. 깊은 평화 속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군.’
단형우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행복이 깨지지 않고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이 참, 공자님, 무슨 생각하시냐니까요.”
우문혜가 다시 묻자 단형우가 우문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행복하다는 생각.”
단형우의 말에 우문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너무 당황해 입을 벌린 채 말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단형우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천기자의 전인이라고?”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천기자의 안배라고 해야 옳지요.”
취월의 말에 독고운도 제갈중천도, 그리고 팽진평도 크게 당황했다.
설마 취월이 천기자의 후인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럼 혈마자는 누군가?”
“천기자를 미워하는 사람이지요. 천기자의 모든 것을 부수려는 사람.”
취월의 대답에 독고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결국 혈마자는 천기자와 싸우려는 것이로군. 그 둘의 싸움에 무림이 말려든 것인가?”
취월은 가만히 독고운을 쳐다봤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혈마자의 목적은 무림의 말살입니다. 처음에는 어쨌을지 몰라도 제가 보기에 이젠 천기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대로 두면 혈마자의 손에 무림인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겠지요.”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은가!”
독고운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하지만 취월은 담담히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혈마자라면요.”
취월의 대답에 독고운은 소름이 끼쳤다. 취월의 말에는 묘하게 사람을 뒤흔드는 힘이 있었다.
“혈마자에게 그만한 힘이 있단 말인가?”
“현재 혈마자가 가진 힘에 대항하려면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손을 잡아도 모자랍니다.”
“말도 안 되네!”
이번에는 제갈중천이 소리쳤다.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어찌 손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두 집단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몇 번이나 전쟁을 했고, 몇 번이나 서로 죽이기 위해 싸웠다. 지금 와서 손을 잡을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차라리 정천맹을 끌어들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정천맹의 힘도 대단한 것 같던데 말일세.”
독고운이 조용히 말했다.
정천맹은 아직 믿을 수 없지만 무림을 말살하려는 공통의 적이 있는 이상 힘을 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천마신교보다는 나았다.
취월은 의견을 낸 독고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취월의 입가에 점점 짙은 미소가 어렸다.
“정천맹도 혈마자의 것입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무림맹이 왜 둘로 갈라졌는지?”
취월의 말에 독고운과 제갈중천은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취월은 은은한 미소를 띤 채 두 사람을 쳐다봤다. 취월의 미소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방 안에 흐르는 분위기도 점점 무거워졌다.
독고운과 제갈중천, 그리고 팽진평은 혼란에 빠진 채 그런 취월의 미소를 멍하니 쳐다봤다.
– 순수 타이핑본이고 검토를 하지 않아 오타가 있더라고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문맥이나 전, 후권의 책을 토대로 오류가 있는 부분은 임의로 수정했습니다. –
음양고
침묵이 시작된 지 반 시진이 넘었다. 아직 날은 어두워지지 않았지만 마치 한밤중이라도 된 것처럼 분위기가 어두웠다. 그 어두운 분위기의 중심에 무림맹주 독고운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정천맹의 정체를 밝힌 취월은 그 이후로 전혀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 기나긴 침묵을 깨고 싶지 않다는 듯 그저 묵묵히 독고운을 쳐다볼 ?湛潔駭?
제갈중천과 팽진평은 그 두 사람 틈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했다.
제갈중천은 취월이라는 기묘한 사내가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한 그 말을 종합해 보면 결국 혈마자를 막고 싶다는 듯했다. 하지만 미묘하게 뭔가가 거슬렸다.
“난 아직도 모르겠네. 대체 혈마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천기자가 누군인지.”
오랜 침묵을 깨뜨린 독고운의 말은 너무나 평범하게도 조금 전 했던 말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긴 했다.
“천기자는 알고 계신 그대로의 사람입니다. 거기다 하나 더하자면 무림의 앞날을 염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다르군. 천기자는 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라 들었는데.”
“진실은 가끔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지요. 특히 사람의 마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군.”
독고운은 맹렬히 생각을 거듭했다. 눈앞에서 담담히 미소 짓고 있는 취월이라는 사내의 진의를 파악해야만 했다.
“그럼 혈마자는 누구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정확한 정체는 저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천기자에게 강렬한 악의를 품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불쑥불쑥 적의를 드러낼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인데도 그럴 정도로 엄청난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취월의 말에 독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겠네. 자네의 정체는 뭔가? 어떻게 천기자의 전인이면서 그렇게 혈마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가? 혈마자가 북해빙궁을 움직였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알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럽지 않은가?”
독고운의 말에 취월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제야 절 궁금해하시고, 절 봐주시는군요. 전 이제 취월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는 월영이라 불렸습니다. 혈마자의 수많은 그림자들 중 하나였죠.”
“자네…… 정말로 날 혼란스럽게 하는군.”
독고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취월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복잡한 것은 전혀 생각라실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천기자가 무림을 위해 뭔가를 준비했고, 전 그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며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것이 독고운의 입장이었다. 무림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중 하나인 무림맹을 이끌어 나가려면 단순한 문제도 가끔 복잡하게 꼬아야 할 필요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이런 중요한 일을 그냥 그렇게 넘길 수가 있겠는가.
독고운이 대답하지 못하자 취월이 품에서 호월궁을 꺼냈다.
“혹시 음양고를 아십니까?”
취월의 말에 독고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음양고에 대해 아는 사람은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뿐이었다. 예전 천기자의 장보도에 나타난 곳을 찾아가 얻었고, 지금은 독고운의 체내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역시 아시는군요. 그럼 맹주께서 양고를 복용하셨습니까?”
취월의 질문에 독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애써 감출 필요는 없었다.
“그렇네. 내가 양고를 취했네.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
양고를 흡수한 순간부터 훨씬 많은 공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공력을 양분삼아 양고도 엄청나게 자랐다. 양고가 자라면 자랄수록 공력은 더욱 커졌고, 결국 양고는 한 번의 변이를 거쳤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품고 있는 기운은 훨씬 대단했다.
“음양고에 대해서 제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음고를 품은 사람은 양고의 주인에게 절대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독고운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역시 양고를 얻을 때와 함께 있던 양피지에 자세히 적혀 있었다.
“알고 있네. 정말로 그런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정말로 그렇습니다. 천기자는 백 명의 기재를 모아 무공을 가르쳤습니다. 일종의 비밀병기로 키우고 싶어던 것이죠. 하지만 그저 무공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음양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