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60
“나도 그렇다 들었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음고를 취한 사람은 양고의 주인을 자연스럽게 따릅니다. 스스로도 눈치챌 수 없는 강제력입니다. 만일 복용자도 모르게 음고를 복용시킨다면 그는 맹주님을 충실히 따르게 될 것입니다.”
취월의 설명에 독고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만일 그것이 진짜라면 천기자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다.
어찌 사람이 사람을 강제로 따르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음양고는 마음을 빼앗는 독이었다.
“무섭군.”
“예. 무섭습니다. 하지만 맹주님게서는 이미 양고를 복용하셨으니 뭄서울 이유가 없지요.”
“그건 그렇군.”
독고운이 그렇게 대꾸한 후 잠시 침묵을 지켰다. 취월도 더 이상 말이 없어다. 그렇게 일 각쯤 무의미한 시간이 흘렀다. 결국 다시 입을 연 사람은 독고운이었다.
“그래, 내게 그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취월이 빙긋 웃었다.
“맹주님의 믿음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취월은 그렇게 말한 후, 호월궁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힘주어 비틀었다.
그그그극.
기괴한 소리와 함께 호월궁이 비틀렸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빙글 돌아간 호월궁은 결국 둘로 분리되었다.
딸깍.
뭔가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고, 둘로 갈라진 호월궁 중심에서 작은 상자가 떨어져 나왔다.
“이것을 한 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취월의 말에 독고운은 잠시 긴장했다. 상자 뚜껑을 자신이 열기에는 조금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권하는데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결국 독고운은 손을 뻗어 상자를 가볍게 쥐었다.
상자는 고작 엄지손가락만 했다. 상당히 정교했고, 기이한 문양이 미약하나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독고운은 긴장을 풀지 않고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파아앗.
상자 안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밝지는 않았지만 사방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 독고운을 충분히 놀라게 했다.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상자 안의 내용물을 보존하는 빛이니까요.”
취월의 말에도 독고운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결국 뚜껑이 완전히 열렸다. 빛은 온데간데없었고, 상자 안에는 콩알만 한 벌레 한 마리가 있었다. 그냥 얼핏 보기엔 그것이 벌레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독고운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벌레였다.
“이, 이것은……!”
독고운의 눈에 경악이 담겼다.
취월은 그런 독고운을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독고운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독고운은 이것을 처음 본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을 본 순간,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것이 담겨 있는 상자의 뚜껑을 연 순간 알 수 있었다.
“음양고로군.”
“맞습니다. 그것은 음고입니다.”
독고운은 뱃속에 있는 양고가 꿈틀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고를 본 순간부터 양고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내 단전에 있는 양고가 요동을 치는군.”
“아마 그럴 것입니다. 양고는 음고를 보면 흥분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양고의 정신은 이미 맹주님과 연결된 상태입니다. 양고를 취하신 후로 머리가 더 맑아지지 않으셨습니까?”
독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취월의 말은 정확했다. 양고를 취한 후로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의 상태가 되었다.
내력은 매일같이 일취월장했고, 머리가 맑아져 무리(武理)를 이해하는 데도 큰 성취가 있었다.
“음양고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취월의 질문에 독고운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 음양고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양고와 정신이 이어졌기에 가능한 이해였다.
“확실히 알겠네. 그 음고를 취하는 자는 날 따를 것이 분명하네.”
그것은 확신이었다.
취월은 빙굿 웃으며 독고운 앞에 놓인 상자를 집었다. 그 안에서 공기에 노출된 음고가 꿈틀대고 있었다.
“이제 맹주님께서 절 믿도록 만들겠습니다.”
취월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음고를 입으로 가져갔다. 취월의 입으로 들어간 음고가 순식간에 취월의 단전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단숨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음고는 취월이 죽기전까지 그곳에서 살아가리라.
취월의 행동을 보고 있던 독고운은 크게 놀랐다. 놀란 것은 독고운뿐이 아니었다. 제갈중천은 물론이고 팽진평도 더 이상 놀랄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
“자, 자네 그게 무슨 짓인가!”
팽진평이 놀라 소리쳤다.
취월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빙긋 웃으며 가볍게 대꾸했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길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제 뜻이자 천기자의 뜻이기도 합니다.”
독고운은 이내 입을 다물고 신중한 표정으로 취월을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날뛰던 양고가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음고가 취월의 몸에 자리를 잡은 순간부터 양고는 잠자는 양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천기자,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군.”
천기자만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진짜로 시행한 취월이 더 무서웠다. 문득 흐른 한기에 독고운의 등이 싸늘하게 식었다.
혈마자는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사영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북해빙궁주가 죽었다는 소식까지 들었는데 사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임무에 실패했거나 아니면 아직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혈마자는 전자로 무게추가 기우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도대체 어찌 된 것인가.”
사천으로 간 혈영에게서도 연락이 없다. 악가장이나 당가를 부쉈다면 결과를 보고해야 할 텐데,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뭐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혈마자의 가슴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불안감이 극에 달했을 때, 혈마자가 있는 대전 안으로 무영이 스며들었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영은 장막으로 가려진 혈마자 앞에 부복하며 말했다. 혈마자는 그런 무영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해라.”
혈마자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무영의 입이 열렸다.
“혈영대가 실패했습니다.”
혈마자는 천둥벼락이 뇌리를 강타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뭐라고? 대체 어쩌다가!”
무영은 혈마자의 외침에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보고를 계속했다.
“악가장을 정리하던 혈마대가 갑자기 몰살당했다 합니다. 그리고 악가장을 포위하고 있던 철영대 이백도 함께 몰살당했습니다. 현재 조서단과 무영대가 일단 그곳에 있는 모든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그 시체들은 차후 강시로 만들기 위해 독영에게 보냈습니다.”
혈마자는 무영의 보고에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혈영대가 실패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혈영대는 비록 열 명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십대고수에 필적할 정도의 강자였다. 게다가 그들을 이끄는 혈영은 한꺼번에 십대고수 다섯이라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혈영은? 혈영은 어찌 되었느냐.”
혈마자의 질문에 무영이 즉시 답했다.
“혈영의 시체도 독영에게 보냈습니다.”
혈마자는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망치로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혈영이 죽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혈영이……”
혈마자는 문득 사영이 떠올랐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사영은 절대 그리 될 리 없었다. 잠룡패까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절대 죽을 리 없었다.
“아직 보고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무영의 말에 혈마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 해라.”
혈마자의 말에 무영이 더욱 깊이 고개를 조아리며 보고를 시작했다.
“모용세가에 대기 중이던 철강시 오백이 폐기되었습니다. 아울러 그곳에 함께 있던 독강시, 청룡검도 폐기되었습니다.”
무영의 보고에 혈마자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커졌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혈마자의 외침에는 경악을 넘어서 광기마저 엿보였다. 무영은 급히 말을 덧붙였다.
“보고에 의하면 그 단형우라는 놈이 나타나 그리 만들었다 했습니다.”
무영의 보고에 혈마자의 얼굴이 있는 대로 일그러졌다.
“단형우? 또 그놈인가? 그놈이 대체 심양에는 왜 간 거지? 그놈은 지금 심양에서 뭘 하고 있느냐?”
혈마자의 질문에 무영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놈은 지금 심양에 있지 않습니다. 허창에 있습니다.”
혈마자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혈마자는 옆에 있는 의자의 등받이를 꽉 움켜쥐었다.
푸쉬쉬쉬.
혈마자의 손에서 흘러나간 막대한 진기가 의자에 스며들자, 의자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럼 그놈이 허창에 있다가 순식간에 심양으로 날아가 철강시와 독강시를 박살내고 한순간에 허창으로 돌아왔단 말이냐? 지금?”
혈마자의 어조가 점점 격해졌다. 웬만해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지금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감정이 들끊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무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일단 보고를 했으니 판단은 혈마자가 할 것이다.
혈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영도 놀랐다. 혈영이 얼마나 강한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혈영은 무영의 목숨도 몇 번이나 구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 강함이 너무나 눈부셨다. 한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몰랐다.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정보니 그것까지 말할 수는 없지.’
무영은 속으로 정보 하나를 삼켰다. 그것은 혈영대와 철영대를 몰살시킨 것이 단형우라는 정보였다.
상식적으로 말아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할 수 없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단형우는 심양과 사천에서 동시에 나타나 일을 벌인 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빨리 사천 쪽에서 벌어진 일을 정리해야겠어.’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무영은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하며 부복한 채 혈마자의 명을 기다렸다.
“북해빙궁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여전히 산서에서 미적대고 있습니다. 산서에 있는 대부분의 문파를 정리했는데, 무림맹 청룡단과 백호단 따위와 대치하는 바람에 활동을 완전히 멈춘 상태입니다.”
“멍청한 놈들, 진천뢰를 몇 개나 줬는데 아직도 미적대고 있는 게냐?”
“아마도 아끼는 모양입니다.”
“아껴? 흥, 하찮은 것들이 생각할 만한 일이로군.”
혈마자는 코웃음이 나왔다. 그들의 생각이 눈에 훤히 보였다. 진천뢰와 벽력탄을 아끼면 아낄수록 다음 대 궁주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나마 무림맹을 박살냈으니 다행이군. 만일 그조차도 못했으면 그따위 쓰레기들을 남겨둘 이유가 없지.”
혈마자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무림맹에 살아남은 놈은 몇이나 있느냐?”
무영은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이 보고는 아마 혈마자의 기분을 가장 크게 흔들어 놓을 것이다.
“맹주를 비롯한 수뇌부 전원이 살아남았습니다.”
“뭣이!”
혈마자의 목소리에 강력한 내공이 깃들었다. 분노가 고스란히 내력으로 바뀌어 목소리에 실린 것이다.
“크으윽!”
무영은 등을 짓누르는 압력에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보고를 늦출 수는 없었다. 지금 할 말을 다 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계속 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팽가로 갔습니다. 아마 지금쯤 도착했을 것입니다.”
무영의 보고에 혈마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압력이 몇 배나 강해졌다. 무영은 이제 더 이상 신음도 낼 수 없었다. 온몽의 혈관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무영은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 모든 압력이 씻은 듯 사라졌다. 혈마자가 이성을 되찾은 것이다.
무영은 그래도 유능한 부하였다. 그저 한순간의 기분으로 무영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하북에 있는 팽가로 간 것이냐?”
“그렇습니다.”
“월영이겠구나. 그들을 도와주고 불러들인 것이.”
“아직 정확히 확인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정황상 그렇습니다.”
혈마자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다시 온몽에서 기세가 뭉클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돌아가라. 다시 부를 때까지 이곳으로 오지 마라.”
혈마자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무영의 몸이 흐릿해졌다.
“존명.”
그 말을 남기고 무영이 사라졌다.
콰콰콰콰!
무영이 사라짐과 동시에 혈마자의 몸에서 강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대전을 온통 뒤흔들었다.
쿠구구구구궁.
부스스스.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졌다. 혈마자의 몸에서 나오는 기운이 점점 더 강해졌다.
콰과과광!
결국 대전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지는 돌덩이와 건물의 잔해 틈으로 새파랗게 빛나는 혈마자의 몸이 보였다. 혈마자는 쏟아지는 건물의 잔해를 맞으면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모용세가에서 철강시를 제조했다!
무림이 들끓었다. 모용세가에 대한 소문이 삽시간에 온 무림을 장악했다. 자그마치 오백 구나 되는 철강시를 비밀리에 제조해 무림의 전복을 노렸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방파들의 정보망이 급격히 바빠졌다. 결국 모용세가에 얽힌 소문들이 어느 정도 사실로 판명되었다.
모용세가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자, 곤란해진 것은 정천맹이었다. 모용세가는 얼마 전 무림맹에서 나가 정천맹에 가입한 상태였다.
정천맹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단숨에 모용세가를 내쳤다. 별다른 제재를 가하진 않았지만 발 빠르게 모용세가를 맹에서 빼 버렸다.
덕분에 모용세가는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되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혈마회에서 제공했던 무사들까지 썰물 빠지듯 사라져 버려 사실상 모용세가의 힘은 바닥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예전의 위세는커녕 지닌 바 무력이 중소 문파보다도 못할 지경이었다.
모용세가가 급격히 몰락하자, 소문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바뀌었다. 대체 오백이나 되는 철강시를 누가 없앴느냐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