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67
“이,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제갈중천이 벌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려 말을 꺼냈다. 취월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최악의 결과입니다.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저도 생각도 못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러는 겐가. 난 도저히 모르겠네. 저자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했는지, 그리고 맹주께서 왜 이러시는 것인지……”
제갈중천의 얼굴은 혼란으로 일그러졌다. 취월은 그런 제갈중천의 물음에 담담히 대답했다. 물론 마음은 겉과 달리 거세게 흔들렸다.
“음고에 제압당하신 것 같습니다.”
“뭣이!”
제갈중천의 눈이 또 찢어지기 직전까지 커졌다. 취월은 그 모습을 보며 아무래도 오늘 제갈중천의 눈이 찢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농담거리라도 떠올리지 않으면 지금 상황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음양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했다. 천기자가 남긴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양고였다.
음고와 양고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단연 양고라 할 수 있다. 양고는 음고처럼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정해져 있다.
그 양고를 얻은 사람이 바로 독고운이다. 이는 천기자가 처음부터 정해놓은 인물이었다.한데 그 독고운이 당했다. 다른 것도 아닌 음고에게.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저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절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 어찌 이런 일이……”
“음고는 양고에 절대 복종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것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입니다. 그 증거로 전 맹주님께 절대 복종하고 있지 않습니까.”
취월이 그렇게 말했지만 제갈중천은 그 말마저도 믿기 어려웠다. 지금 눈앞에서 요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찌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서 맹주님께 가야 합니다. 만일 정말로 양고가 음고에 제압당해 절대복종을 하고 있다면, 그자의 한 마디에 맹주님께서는 목숨을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취월의 말에 제갈중천이 흠칫 놀랐다. 그 순간 제갈중천의 몸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취월은 사라진 제갈중천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독고운은 무림맹 안에서 가장 큰 객실로 단형우와 제갈린을 안내했다. 제갈린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독고운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를 처음에는 당황해서 생각지 못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추측이 가능했다.
“단공자님.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제갈린이 조심스럽게 단형우에게 물었다.
“글쎄. 아마 내가 가진 고가 더 강한 모양이지.”
제갈린이 질린 표정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그녀 역시 그렇게 추측하긴 했지만 막상 진짜로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천기자가 어떤 사람인가. 고금에 다시없을 천재다. 그런 사람이 만들어낸 고를 이렇게 무력화시키는 것도 모자라 성질을 뒤바꿔 버리다니, 만일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단형우가 아니었다면 그녀 역시 굽?못했을 것이다.
단형우는 생각에 빠진 제갈린에게서 고개를 돌려 독고운을 쳐다봤다. 독고운의 표정은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군. 하지만 이제 믿지 않을 수 없겠어. 음양고의 효과는 절대적이로군.”
독고운이 중얼거렸다. 사실 아직도 조금은 못미더운 구석이 있었다. 취월이 음고를 취했음에도 제갈중천을 믿는 것만큼 취월은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젠 믿을 수 있었다. 이건 너무나 이상한 기분이었다.
머릿속 깊숙이 침투한 뭔가가 작용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자. 자신은 분명 그대로였다. 독고운인 채였는데, 단형우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아니, 단형우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저절러 만들어졌다. 조금만 더 지나면 거의 맹종에 가깝게 단형우를 따르게 될 것만 같았다.
“날….. 날 놔주게. 부탁이네.”
그것이 독고운의 마지막 몸부림이자 마지막 저항이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단형우로부터 벗어나려는 그 어떤 행동과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런 짓을 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
독고운이 그렇게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을 때, 취월과 제갈중천이 나타났다.
“맹주님!”
제갈중천이 독고운을 보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독고운은 지극히 평온한 표정이었다.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표정으로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제갈중천과 취월을 보고 천천히 일어섰다.
“돌아가지.”
제갈중천은 멍한 표정으로 독고운을 쳐다봤다. 생각 외의 반응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제갈중천은 고개를 돌려 방 한쪽에 서 있는 단형우를 노려봤다. 단형우 옆에는 제갈린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갈중천은 제갈린에게 뭐라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맹주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제갈중천이 독고운의 뒤를 따라 황급히 바에서 나갔다.
방 안에 남은 사람은 단형우와 제갈린, 그리고 취월뿐이었다.
취월은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취월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전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군요. 음양고의 능력은 절대적입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이라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음양고를 어떻게 벗어나신 것입니까?”
취월의 말에 단형우의 입가가 살짝 비틀렸다. 신이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에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그런 것을 천기자는 소년들에게 먹였다. 영원히 자신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글쎄.”
의미를 알 수 없는 단형우의 대답에 취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가 어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음양고로도 제압하지 못한 단형우를 그가 어떻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취월은 내심 소문으로 알려진 것보다 단형우의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그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취월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문이 사실이기만 해도 단형우는 인간의 경지를 훌쩍 뛰어 넘는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등선이라도 해서 신선의 경지에 올라섰다면 조금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하지만 아무리 선경에 들었다 하더라도 음양고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이 가장 취월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음양고는 그저 단순한 고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사 신이라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취월의 말은 그저 과장이나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음양고였다.
“후우……”
취월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문제는 지금 중요치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음양고의 효능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단형우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부탁드립니다. 맹주님을 돌려주십시오.”
취월은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단형우는 무심하게 그런 취월을 쳐다봤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단형우의 말에 취월의 가슴에 한기가 스며들었다. 아무래도 쉽지는 않을 듯했다.
취월이 머뭇거리자 제갈린이 나섰다.
“그게 가능한 일이기는 한 건가요?”
제갈린의 물음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
단형우의 단호한 대답에 취월의 눈이 커졌다. 사실 취월조차도 맹주를 음양고의 지배 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한데 단형우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단형우의 말에는 기이한 힘이 있어 취월조차 어느새 그 말이 진실이라 믿게 되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취월의 물음에 단형우가 씨익 웃었다. 취월에게는 그 웃음이 마치 사신의 미소처럼 보였다.
“벌레를 죽이면 되지.”
취월의 눈이 순식간에 화등잔만 해졌다. 그것은 절대 안 될말이었다.
“안 됩니다! 그것은 절대 안됩니다! 양고를 죽이면 맹주님도 죽습니다!”
양고는 이미 독고운의 몸 구석구석에 뿌리내린 상태다. 즉, 거의 독고운과 한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양고만 골라 죽일 수는 없다. 양고를 죽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독고운에게 피해가 갈 수박에 없고, 양고가 퍼진 정도에 따라 독고운이 죽을 수도 있었다.
취월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며 제갈린이 나섰다.
“맹주님을 돌아가시게 하면 안 돼요. 그분은 중요한 분입니다.”
제갈린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죽인다.”
단형우의 대답에 제갈린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단형우가 이렇게 대답한다는 것은 분명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갈린은 단형우를 굳게 믿었다.
단형우는 믿음이 가득한 제갈린의 얼굴을 보며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는 마치 음고를 취한 사람이 양고의 주인에게 보이는 무한한 믿음처럼 느껴졌다.
단형우는 자신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할 만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남표국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나 악가장 사람들, 그리고 철막심이 그랬다. 단형우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손을 떼면 심장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이런 기분은,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후우우……”
단형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미칠 듯 날뛰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단형우의 눈이 한층 깊게 가라앉았고, 조금 더 따뜻해졌다. 그렇게 변한 눈이 제갈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갈린은 갑자기 단형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원하나?”
“예?”
“내가 그 벌레를 없애주길 원하나?”
단형우의 질문에 제갈린이 환하게 미소지었다.
“네.”
제갈린의 대답이 들려오기 무섭게 단형우가 손을 슬쩍 들었다. 단형우의 손이 향한 곳은 앞에 서 있는 취월의 단전 어림이었다.
단형우가 손을 꽉 움켜쥐었다.
퍽!
“허억!”
취월은 갑자기 단전이 터지는 듯한 느낌에 화들짝 놀랐다. 고통은 없었다. 그저 단전 부근에서 달결이 부딪쳐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이, 이럴수가……!”
취월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전에 자리를 잡았던 음고가 느껴지지 않았다.
단형우의 손짓 한 방에 음고가 허무하게 사라진 것이다. 그제야 방금 전 그 느낌이 바로 음고가 터져 나가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이렇게 간단히……”
취월의 표정이 허탈해졌다. 어차피 자신에게 음고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망가졌던 단전을 모두 복고했고, 처음부터 음고를 복용한 것도 독고운의 믿음을 얻기 위해서였으니까.
취월이 놀라거나 말거나 단형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형우는 맹주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사라졌다.
취월은 멍한 얼굴로 방금 전까지 단형우가 서 있던 곳을 쳐다봤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단공자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실테니까요.”
제갈린의 말에 취월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여렀다.
“그럼 지금 단대협이 맹주님께 가신 겁니까?”
제갈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취월은 급히 움직이려 했다. 이런 위험한 일을 하게 놔 둘 수는 없었다. 자신의 음고와 맹주의 야오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형우가 그것을 섣불리 제거하게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취월이 채 움직이기도 전에 단형우가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서 있던 것처럼 위월 앞에 서 있었다.
“허억!”
“끝났다.”
단형우의 말에 취월의 안색이 변했다.
“서, 설마 벌써 양고를 없애셨단 말입니까?”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있어서 음고나 양고나 별다를 거싱 없었다.
양고가 독고운의 몸 구석구석에 뻗쳐있어 조금 더 손이 갈 뿐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매, 맹주님께서는 무사하십니까?”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취월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하아, 감사드립니다. 그럼 전 이만.”
취월은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 맹주의 상태를 확인해 봐야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도 다시 세워야 했다. 취월이 판단하기에 단형우는 너무 위험한 자였다.
취월이 사라지자 제갈린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취월의 얼굴에 떠올랐던 감정을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취월이나 무림맹이 단형우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안다.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단형우도 인간인 이상 약점이 있을 수도 있다. 무조건 안전하다고 믿을 수는 없었다.
“슬슬 이것도 없애버려야겠군.”
단형우의 중얼거림에 제갈린이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단형우는 가만히 서 있었다. 순간, 단형우를 중심으로 거대한 기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퍽!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 소리가 기의 파동에 섞여 있었다. 단형우의 몸에서 끝없이 기의 파동이 흘러나왔고, 그 파동은 계속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제갈린은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 기의 파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 파동의 정체가 바로 음고일 것이다. 단형우의 기운을 받아 자라나는 음고. 그 음고가 이렇게 거대한 힘을 응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공자님의 음고로군요.”
제갈린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기자의 잔재일 뿐이다.”
제갈린은 단형우가 왜 그것을 없앴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천기자의 잔재였다. 그것도 단형우에게 좋지 않은 추억을 남기는 존재였다.
이제 세상에 남아 있던 모든 음양고가 사라졌다.
“맹주님, 괜찮으십니까?”
취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취월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독고운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취월이나 제갈중천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고운의 눈에 사라졌던 초점이 서서히 돌아왔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 내 몸에 있던 양고가 깨끗이 사라졌네.”
독고운의 말에 취월도 딱딱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제몸에 있던 음고도 사라졌습니다.”
“허어……”
독고운은 문득 두려움이 느껴졌다. 단형우의 능력은 오히려 소문보다 훨씬 위였다. 소문만 해도 허황될 정도인데 그보다 위라면 대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정말 무서울 정도의 능력이로군요.”
취월의 말에 독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위험한 자로군. 그가 우리의 힘이 되어 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곤란해지겠어.”
독고운의 말에 제갈중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긴 하지만, 그 능력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이용할 수 있다면 혈마자와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독고운과 취월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렇게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단형우를 끌어들여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세 사람의 심각한 논의는 깊은 밤까지 이어졌다.
빙궁의 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