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69
“젠장, 헉헉헉.”
종칠은 가빠오는 숨을 고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방금 썼던 기술은 내력을 꽤 많이 잡아먹는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내력까지 쑥 빠져나가니 더욱 힘겨웠다.
종칠이 지쳤다는 사실을 눈치챈 빙궁 무사들이 무더기로 달려들었다. 종칠은 질린 눈으로 그것을 쳐다봤다. 정말 끈질기고 지독한 놈들이었다.
“으아아아!”
종칠은 괴성에 가까운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쉬가가각!
종칠의 손에서 화려하게 피어나는 검화가 적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종칠은 점점 힘이 빠졌다. 이대로라면 채 몇 각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 뻔했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딸깍거리는 소리와 뭔가가 핑 하고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종칠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오는 덩어리를 발견했다. 진천뢰였다. 어찌나 빠른지 ‘진천뢰!’하고 소리 지를 틈도 없었다.
꾸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화연이 사방을 삼켰다. 종칠은 순간적으로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진천뢰는 검왕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만일 검왕이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종칠은 불안한 눈으로 화염이 걷히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한 번 딸깍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젠장!”
핑!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진천뢰가 다시 날아왔다. 이번에는 화염에 가려 어느 쪽으로 가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추측은 할 수있다. 당연히 검마쪽으로 갔을 것이다.
꾸아아앙-!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화염이 휘몰아쳤다. 혹시라도 살아 남았을지 모르는 검왕을 위한 안배였을 것이다.
쿠오오오오!
화염이 점점 커져갔다. 종칠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주변에 있는 적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헉!”
종칠은 깜짝 놀랐다. 너무 당황해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자신은 화염의 한가운데 있었다.
온통 화염이 뒤덮인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다. 물론 화염이 몸에 닿지는 않았다.
“이건…… 단대협……”
종칠은 자신을 중심으로 일 장 안에 화염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단형우를 떠올렸다. 진천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뜻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자 검왕과 검마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종칠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화염은 여전했다.
하지만 종칠의 움직임에 따라 화염이 길을 내주었다. 종칠은 용기를 내서 주변을 둘러봤다. 검왕과 검마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열심히 돌아다녀 봐야 했다.
빙궁 무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불길이 어찌나 지독한지 안에 있는 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재로 만들어 버렸다.
순식간에 사람을 태워버릴 정도로 굉장한 화염이었다. 신기하게도 종칠은 그 어떤 열기도 느끼지 못했다. 화염이 만들어내는 열기가 종칠에게는 전혀 다가오지 않았다.
종칠은 결국 검왕과 검마를 찾지 못했다. 불안감이 점점 가증되는 상황에서 화염이 그 힘을 잃고 서서히 잦아들었다.
화염이 사라진 자리는 시꺼멓게 탄 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반경 수십 장이나 되는 공간이 화염에 먹혀 버린 것이다. 그 안에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검을 들고 오연한 자세로 서 있는 검왕과 검마, 그리고 종칠뿐이었다.
조칠은 환한 표정으로 검왕과 검마를 쳐다봤다.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찾지 못한 것이다. 검왕과 검마는 옷에 그을음조차 묻지 않은 깨끗한 모습이었다.
“과연 단대협.”
종칠은 단형우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진천뢰는 전설에 걸맞은 위력이었다. 만일 단형우가 아니었다면 두 개의 진천뢰에 의해 검왕과 검마는 물론이고 종칠도 한꺼번에 죽었을 것이다.
“수하들을 버려가면서까지 우리를 죽이려 하다니, 비정한 놈이로군.”
검마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그것을 듣지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검마의 중얼거림은 마치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려왔다.
빙곡은 흠칫 놀라 주변을 살폈다. 빙궁 무사들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들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료의 희생 없이는 절대 검왕과 검마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빙곡이 진천뢰를 사용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한데 결과는 이렇게나 처참했다.
남아 있는 빙궁 무사는 이제 백여 명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아도 검왕과 검마에게 당해 급격히 수가 줄었는데, 진천뢰의 화마에 수많은 무사들이 먹혀 버렸다.
빙곡은 궤짝에서 남은 진천뢰를 모두 꺼내 가슴에 안았다.
“내 저놈들만은 반드시 죽이리라!”
빙곡이 한 자 한 자 씹어 뱉었다. 빙곡의 말에는 분노와 후회가 가득했다.
빙곡이 막 진천뢰를 가동시키려 할 때, 종칠이 몸을 부를 떨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기괴한지 빙곡의 몸이 한순간 멈z했다.
종칠은 종칠대로 크게 당황했다.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데 왜 그러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검왕과 검마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종칠을 바라봤다.
종칠은 검왕과 검마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그들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칠의 머릿속에 단형우의 모습이 지나갔다.
“아! 그럼 이게……!”
종칠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종칠의 어깨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파아앗!
어깨에서 시작된 빛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너무나도 꼭?빛줄기라 모든 사람들의 눈을 휘어잡을 수 있었다. 그 빛줄기는 순식간에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꾸아아앙!
빛줄기가 떨어진 곳은 빙곡이 있는 곳이었다. 아니, 빙곡이 들고 있는 진천뢰가 목표였다.
빛에 직격당한 진천뢰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아니, 빛에 휩싸인 진천뢰와 벽력탄이 한순간에 모조리 터져 버렸다.
어마어마한 빛과 화염이 빙곡을 감쌌다. 진천뢰 네 개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광경은 정말로 놀라웠다. 반경 수십 장이 불꽃에 뒤덮이며 거세게 타올랐다.
빙곡 주변에 있던 빙궁 무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화염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반의 반 시진 정도 지나자 화염이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화염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검왕과 검마는 여전히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수십 정도 남은 빙궁 무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몸이 굳은 채로 검왕과 검마의 눈치를 살폈다. 더 이상 싸울 의지도 기력도 엿보이지 않았다.
“돌아가라. 죽기 싫으면.”
검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빙궁 무사들이 몸을 날려 도주했다. 그들은 오늘 벌어진 일을 북해에 널리 소문낼 것이다. 믿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북해빙궁은 끝났다.
북해빙궁이 다시 힘을 되찾아 무림을 도모할 계획을 세우려 면 적어도 수백 년은 더 필요할 것이다.
빙왕도 그의 제자들도 하나 남지 않았으니 어쩌면 더 오랜시간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끝났군.”
검왕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검마도 같은 감정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별로 한 일이 없었다. 대부분의 일은 진천뢰가 했다. 단형우가 그들을 보호하고 진천뢰를 터트려 일을 마무리 지었다.
“단대협은 역시……”
검왕와 검마의 허탈한 표정에 반해 종칠은 감격과 존경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종칠에게 있어서 단형우는 말 그대로 신(神)이었다.
검왕과 검마는 그런 종칠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종칠처럼 단형우에 대해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 가자, 이놈아. 네가 무슨 천마신교냐?”
검왕의 말에는 심통이 약간 섞여 있었다. 종칠은 오늘은 왠지 검왕이나 검마의 기분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길을 떠나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검왕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천마신교는 단형우를 신으로 모시는 교다. 종칠이야말로 단형우를 신처럼 떠받드니 그 누구보다 신심이 깊은 신자가 아니겠는가.
“거 참. 열성 신자 나셨구먼.”
검왕의 비틀린 말이 화마에 휩쓸린 대지 위로 흩어졌다.
“빙궁이 무너졌다고?”
혈마자는 깊이 부복한 무영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무영은 더욱 깊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가지고 있는 진천뢰와 벽력탄을 모두 쓰고 거의 몰살당하다시피 했습니다.”
“몰살이라……”
혈마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눈을 빛냈다.
“그렇게 몰살까지 당하면서 적어도 검왕이나 검마는 죽였겠지?”
검왕과 검마가 북해빙궁을 치러간다는 정보는 혈마자도 들어 알고 있었다.
달랑 세 명이 북해빙웅을 치러간 데다가 진천뢰까지 있었으니 적어도 검왕이나 검마는 처리하는 것이 정상이다.
무영은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놈들은 멀쩡합니다. 다치지도 않았다고 ㅎ바니다.”
혈마자의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무영은 온몸을 긴장으로 가득 채웠다.
“멀쩡하다고? 육백 명이나 되는 북해빙궁의 정예무사들에 다가 진천뢰까지 있었는데 검왕이나 검마도 어쩌지 못했단 말인가? 검왕과 검마가 그렇게나 대단했던가? 내가 모를 정도로?”
혈마자의 말에 무영이 급히 대꾸했다.
“그놈들이 혈영검과 천섬을 가지고 있습니다. 혈영검과 천섬의 위력이 생각보다 너무 뛰어나 어쩔 수 없었다 합니다.”
무영의 대답에도 혈마자의 살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살기를 무영에게 쏟아 부을 수는 없었다. 남아 있는 그림자들 중 그나마 무영이 쓸만한다. 무영을 죽이기엔 너무 아까웠다.
“됐다. 가 봐라. 당분간 활동을 중지하고 내실을 쌓는데 주력해라.”
“존명.”
무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어 봐야 좋은 꼴 못 볼 것이 분명하니 최대한 빨리 나가는 게 상책이었다.
무영이 사라지자 혈마자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기의 장막이 겹겹이 둘러싸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후우……”
정말로 최근에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였는지 모를 정도로 계획은 꼬이고 또 꼬여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할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게 그놈 때문이지. 으득.”
혈마자는 단형우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이렇게 꼬이고 꼬인 일의 중심에 단형우가 있었다. 하남표국이 있었다.
이를 ??틤쳄?지금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북해빙궁을 성급히 충동질 한 바람에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일을 진행시켰다.
빙궁이 하남표국을 제거하는 데만 성공했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그것을 실패했으니 모든 일이 뒤틀려 버렸다.
“당분간은 어쩔 수 없지.”
당분간은 물밑으로 진행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혈마자의 목적은 무림의 말살. 그렇게 하기 위한 첫 단계가 바로 무림맹의 몰락이었다.
“월영. 정말로 아깝구나.”
월영이 아니었다면 무림맹은 벌써 끝장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무림맹은 월영의 그늘 아래로 숨어들었다. 당분간은 건드릴 수가 없다. 월영의 진법은 그만큼 뛰어나니까.
“그래봐야 내 손바닥 안이다. 조만간 날 배신한 것은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마.”
혈마자는 그러헥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기자. 네놈이 그렇게 아끼던 무림이 이제 곧 끝난다. 지옥에 가서도 이 모습을 보며 통곡을 하도록 해라. 크크크큭.”
혈마자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혈마자는 조용히 대전에서 나갔다. 당분간 화영루에서 머물 생각이었다.
제갈린은 제갈중천의 눈을 마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엇다. 제갈중천이 제갈린과 단 둘이서만 만나고 싶다하여 그렇게 해주었떠니 난데없이 혼례 얘기를 꺼낸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 저는 아직……”
“됐다. 네 생각은 중요치 않다. 이건 가문의 일이야. 너도 세가의 일원이라면 응당 내 말에 따라야 한다.”
제갈중천은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번 혼례는 반드시 성사시켜야만 했다.
“네가 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은 진작 눈치챘다. 하지만 그 사람은 포기해라.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그 사람이 단형우라는 것은 뻔하다. 제갈린은 제갈중천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가문의 일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저도 제 뜻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제갈린의 말에 제갈중천은 한숨을 쉬었다.
“허어, 정말 그리 고집을 부려야겠느냐? 상대가 누구인지는 좀 들어보고 고집을 부리더라도 부리는 게 어떠하냐?”
제갈린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마음이 없는데 상대가 누구인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제갈린은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그것은 세가의 이름으로 혼례를 올리는 순간 모두 손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긴말하지 않겠다. 다음 달에 취월 공과 혼례를 올릴 테니 그리 알아라. 너도 취월공이라면 별 불만 없지 않겠느냐.”
제갈중천의 말에 제갈린은 살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설마 취월공께서도 허락을 하셨단 말인가요?”
제갈중천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그는 너보다 훨씬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네가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너와 진법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하니 조만간 한 번 찾아가도록 해라.”‘
제갈중천은 그렇게 말하며 손녀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취월과 자주 대화를 나누며 정이 좀 더 깊어진다면 목적한 바를 쉽게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상대가 취월이라면 제갈중천으로서도 제갈세가의 입장에서도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진에 대한 능력도 그렇고 무림맹에서의 위치도 그러하다. 취월만 한 신랑감을 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다.
“후우, 전 그 말씀을 따를 수 없어요. 제 마음에 취월 공이 들어설 자리는 조금도 없으니까요.”
제갈중천은 여전히 고집을 부리는 손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손녀의 마음에 꽉 들어찬 사람이 누구인지는 뻔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다르게 이용해야 한다.
“네 마음에 있는 그 사람도 슬슬 짝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
제갈중천의 말에 제갈린이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 사람에게도 짝을 찾아줘야겠다 이 말이다. 맹주님께서 그 사람을 아주 좋게 보셨다. 맹주님께 늦둥이 딸이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제갈중천의 말에 제갈린의 안색이 변했다. 맹주의 딸인 독고영령은 외부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상당한 미인이다. 게다가 마음 씀씀이도 고와 뭇 사내들이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제갈린이 걱정하는 것은 독고영령이 얼마나 예쁘고 좋은 여자인가 하는 점이 아니었다.
단형우의 태도였다. 얼마 전 단형우와 대화를 나누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단형우의 당시 대답은 ‘원한다면’이다. 원한다면 혼례를 올리겠다는 뜻이다. 지금 제갈중천이 말한 것처럼 독고영령으로 하여금 단형우와 가까워지게 만든 후, 혼례를 올리자고 하면 단형우는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지만 왠지 단형우라면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덜컥 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불안했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라. 그리고 앞으로 넌 이방에서 지내도록 해라. 무림맹 청룡단 무사들이 잘 지켜줄 게다.”
제갈중천은 그 말을 끝으로 방에서 나갔다. 제갈린은 멍한 표정으로 그런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탁.
방문이 닫혔다.
제갈린은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지만 마땅한 대응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은 청룡단 무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을 것이다.
청룡단은 무림맹의 주요 무력단체이자, 요인의 보호나 감시를 주요 임무로 한다. 제갈린이 지금 실력으로 이곳에서 도망칠 방법은 거의 없었다.
“하아, 이를 어쩌나……”
제갈린의 한숨소리가 조용히 방 안에 울렸다. 제갈린의 한숨에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짙은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단형우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