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7
혈의 복면인들은 대부분 당가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고작 셋 만이 쟁자수들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들만으로도 쟁자수들을 도륙하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벼락 세 줄기가 떨어졌다. 그리고 시체 세 구가 생겨났다.
쟁자수들의 눈에 안도감과 공포가 동시에 어렸다. 아무리 한 번 겪어 봤다고 하지마 눈앞에서 사람이 벼락을 맞고 두 쪽 나는 모습은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당형우는 쟁자수들을 한 번 훑어본 후 고개를 돌려 당가 무사들을 쳐다봤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당가 무사들이 강하긴 했지만 흑의 복면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당가 무사들은 순식간에 위험에 처했다. 단형우의 시선이 형표에게로 향했따.
형표는 단형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단형우의 신형이 사라져 버렸다.
당철기는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그것과 정확히 때를 맞춰서 가슴을 파고드는 검 끝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끝이로군.’
당철기의 표정에 살짝 절망감이 감돌았다. 무림에 몸담은 이상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임무 를 완수하지 못해 세가에 누가 된 것은 정말로 아쉬웠다.
당철기는 가슴에 검이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번쩍!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것이 죽음인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느낌이군.’
당철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서서히 정신을 놓았다.
당호관은 쓰러진 당철기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그리고 무거운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는 스물이나 되는 당가 무사들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당가 무사들은 모두 경악한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호관이 천뢰(千雷)를 익힌 것이 아니라 단형우가 벼락을 떨어뜨려 자신들을 구했다는 사실을.
단형우는 당가 무사들의 시선을 등지고 흑의 복면인들을 쭈욱 둘러봤다. 단형우의 눈빛은 여전히 무심했다.
단형우의 등장으로 인해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당가 무사와 흑의 복면인 두 패로 나뉘어 기세만 쏘아 대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단 얘기로군.”
가장 처음에 나섰던 흑의 복면인이 단형우를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흑의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복면 이마에 사(蛇)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사내는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벼락이 떨어져 동료가 죽는 모습을 봤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은 그 벼락에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뇌정도(雷霆刀)라도 나타난 건가?’
사내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뇌정도는 팽가의 무공이다. 게다가 그 팽가 안에서도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다. 그런 것을 검으로 펼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분명히 뇌기(雷氣)를 쓴다. 뇌정도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수준의 검법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날 이길 수는 없다.”
사내가 검을 슬쩍 들어올렸다.
단형우는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쳐다봤다. 단형우의 갑작스런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몰렸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곳에는 그저 수풀과 나무만 존재했다.
“서둘러야겠군.”
단형우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사내를 쳐다봤다.
“헉!”
사내는 깜짝 놀랐다. 단형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불길함이 전신을 엄습했다. 그리고 뭔가를 몸을 옭아매는 듯했다. 검을 살짝 들어올린 상태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단형우가 한 발 내딛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쩌저저저적!
우르르르릉.
수십 개의 벼락이 동시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은은한 뇌성(雷聲)이 울렸다.
당가 무사들은 그 광경을 보고 멍하게 입을 벌렸다.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진 것은 분명히 천뢰였다. 당호관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 아닌 단형우의 검이 만들어 낸 천뢰였다.
투두둑!
흑의 복면인들이 둘로 갈라진 썩은 나무토막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의 몸에 난 흔적은 마치 강렬한 뇌전이 정수리를 관통해 몸을 둘러 나눠 놓은 듯했다.
단형우는 그 가운데 오연하게 서 있었다.
당가 무사들이 막 정신을 차리려고 할 때, 단형우의 시선이 조금 전 그곳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 그리고 한 걸음과 함께 또다시 사라졌다.
당호관은 방금 전까지 단형우가 서 있던 자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정리하지 않고!”
당호관의 외침에 당가 무사들과 쟁자수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들은 서둘러 바닥에 흩어진 시체를 정리했다. 이번에는 그냥 구덩이를 파고 묻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도 이르지 못했다. 최대한 빨리 시체를 처리하고 다시 이동을 시작해야만 했다.
당호관은 열심히 땅을 파고 시체를 처리하는 사람들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또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어쨌든 단형우가 돌아오기 전에는 출발할 수 없었다. 이제는 누가 자신들을 습격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윽!”
“숙부님!”
조설연의 다급한 외침에 사마철이 손을 휘저었다.
“멈추지 말거라!”
하지만 조설연은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잔신을 위기에서 구해 준 숙부였다. 아무리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거기까지다!”
내력이 가득 담긴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 사내가 검을 내리 찍으며 하늘에서 떨어졌다.
쩡!
“쿨럭!”
사마철은 그 검을 간신히 막아내며 피를 토했다. 내상이 너무 깊어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사마철의 검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챙강!
하지만 사마철은 여전히 쓰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독기 가득한 눈으로 사내를 노려봤다.
사마철의 등에는 작은 비수 하나가 꽂혀 있었다. 조설연은 그 비수를 보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때단하군. 그 계집이 그렇게 중요한가? 칼을 대신 맞아줄 정도로?”
사내의 말에 조설연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이내 눈무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수, 숙부님……”
“결국 이렇게……”
사마철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조설연과 조인만을 살리려 했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끝인 듯했다. 그저 무림맹이 알아서 나서서 자신들의 원한을 갚아주기만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사내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빠르고 은밀했다.
모두 짙은 혈의를 입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흑의처럼 보일 정도로 색이 짙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의 손에 머리만 남은 조인이 들려 있었다.
쉬익!
조인의 머리통이 사마철을 향해 날아갔다. 사마철은 급히 손을 들어 그것을 받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받아낼 수 없었다.
퍽!
사마철은 가슴에 틀어박힌 조인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꾸역꾸역 피를 흘렸다.
“쿨럭.”
사마철은 울컥 피를 토한 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조설연을 쳐다봤다.
조설연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따. 그리고 그 눈물 뒤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자, 이제 끝내지. 정말 끈질긴 놈들이었어.”
사내가 중얼거리며 조설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쌔애애액!
날카로운 검기가 공기를 찢으며 조설연을 향해 날아갔다. 조설연에게는 그 검기를 막을 힘도 능력도, 그리고 체력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퍼버벙!
눈물로 가려진 조설연의 시야에 뭔가가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른거리던 것이 조설연의 눈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눈에 맺혀 있던 눈물을 닦아 냈다.
잠시 흐릿했던 시야가 되돌아오며 얼굴 하나가 한가득 들어왔다.
“이게…… 뭐지?”
손가락에 묻어 있는 눈물을 보며 묻는 사내를 향해 조설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 단 오라버니……”
단형우는 조설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조설연은 뭔가가 정수리를 관통해 들어오는 화끈한 느낌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 온몸에 쌓여 있던 모든 피로가 발을 통해 말끔히 빠져 나가는 듯했다.
“닦아라.”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화들짝 놀라 눈물을 마저 닦았다. 단형우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의 죽어 가다시피 하는 사마철이 있었다. 단형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사마철의 입에서는 연방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머리만 남은 조인이 있었다.
“부, 부탁하네……”
사마철이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서 만들어 낸 말이었다.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마철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털썩.
“수, 숙부님……”
사마철이 쓰러졌다. 조설연은 그 모습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단형우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단형우의 눈에 스무 명의 사내들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세를 쏘아 보내고 있었다.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내가 한 발 나섰다. 갑자기 나타난 단형우 때문에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 봐야 변하는 건 없었따.
단형우가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설사 상대가 무림맹주라고 하더라도 자신들 스물의 협공을 버틸 수는 없었다.
그곳에 있는 스물은 조가장을 없애고 하남표국을 부순 장본인들이었다. 그들만으로 그것을 이뤄냈다.
“어차피 시체가 하나 더 늘어날 뿐이다.”
사내의 중얼거림을 신호로 사내들 중 열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단형우를 천천히 포위했다. 그들은 단형우를 완전히 얕보고 있었다.
쉬익!
한 명이 먼저 몸을 날렸다. 그는 순식간에 단형우 뒤로 다가가 등을 검으로 찔렀다.
그 일련의 동작이 너무도 빠르고 자연스러워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서 검을 그렇게 들고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경악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느낌이 전혀 없다.’
분명이 검이 등을 관통했는데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단형우의 잔상이 흐릿하게 흩어진 것이다.
단형우는 어느새 그 사내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서.
번쩍!
사내의 몸이 검과 함께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한 수에 남은 열아홉 사내들이 경악했다. 그들은 단형우의 움직임을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어디서 이런 고수가!’
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앞에 있던 아홉 사내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 뒤를 이어 곧장 뒤에 서 있던 열 명의 사내들도 움직였다.
그중 둘은 단형우가 아닌 조설연을 노리고 몸을 날렸다. 단형우의 시선을 분산시켜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부질없었다.
쩌저저적!
가장 앞에 달려든 아홉이 거의 동시에 벼락을 맞고 둘로 갈라졌다.
스걱!
조설연을 노리던 둘의 목이 날아갔다. 남은 여덟 사내는 목숨을 걸고 단형우의 몸에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그 중 단 한 개도 단형우의 몸을 건드리지 못했다.
번쩍!
벼락이 떨어졌다. 벼락이 공간을 가르며 여덟 사내의 목숨을 가지고 사라졌다.
우문혜
조가장. 한때는 허창에서 가장 큰 장원이었지만 이제는 그나마 남은 전각조차 부서지고 불에 타 폐허가 되어 버렸다. 그 폐허의 잔재 위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서른쯤 돼 보이는 사내였다. 둘 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사내의 허리춤에는 검이 매달려 있었고, 그 검에 걸맞은 날카로운 기세가 주변을 잠식했다.
“완전히 무너졌군요.”
“그래, 무영이 생각보다 일을 잘 처리했어.”
노인은 폐허가 된 조가장을 마치 감상하듯 둘러봤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고개와 눈을 돌리며 감상하는 노인의 태도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곧 무림맹 놈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슬슬 피하시는 것이……”
사내의 말에 노인이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얼굴의 주름이 자글자글 표정을 만들었다.
“무림맹 따위가 두려운가?”
노인의 말에 어린 웃음기를 느낀 사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내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무림맹 전체가 몰려오지 않는 한, 혈영(血影)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노인의 말에 사내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리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사내의 눈에서는 자신감이 빛이 되어 뻗어 나왔다. 사내가 바로 혈영이었다.
혈영의 자신 있는 태도에 노인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들이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혈영이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