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77
“드디어 연락이 왔군. 준비해라.”
천마의 명에 앞에 공손히 서 있던 사내들이 동시에 읍을 했다.
“명을 받듭니다.”
혈도객을 중심으로 하는 천마신교의 강력한 무사들은 언제라도 달려 나갈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천마는 끓어 넘치는 천마신교의 힘을 발산한 곳을 찾았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안도했다.
이대로라면 교를 안정시키기도 전에 터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단형우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겠지만 천마는 단형우가 나서는 것이 싫었다. 아니, 두려웠다.
“하늘에서 내려온 마신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이것은 성전(聖戰)이다.”
“와아아!”
천마의 말에 교도들이 함성으로 화답했다. 사실 그들에게는 성전이고 뭐고 중요치 않았다.
그저 힘을 터트리는 것이 더 급했다. 그간 마인들은 너무 억눌러 있었다.
덕분에 이렇게 쉽게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모았던 것을 잠시 풀어줘야 할 때다.
“개전(開戰)!”
웅혼한 내력을 가득 담은 천마의 외침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천마신교의 무사들이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중원을 향해. 정천맹이 있는 곳을 향해.
일단의 무리가 하북에 스며들었다. 그들은 밤의 어둠을 틈타 팽가로 향했다. 적어도 천 명이 넘는 인원이 팽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밤의 팽가는 진법으로 철저히 보호된다. 아무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당연히 팽가를 둘러싼 그들도 침입은 불가능했다. 대신 그들은 팽가를 완벽하게 포위했다. 물 샐 틈 없이.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팽가 가주 팽진평은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이 경계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아침에 일어나 하는 진의 해체만은 언제나 팽진평이 직접 했다.
팽가 주변을 일차적으로 감싸는 진의 중심이 되는 곳은 정문에 있었다.
정문 근처에 무사들이 모여 담장을 돌며 밤새 경계를 서고, 담장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을 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팽진평이 그들의 보고를 받은 후 진을 해제한다.
팽진평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데 오늘은 왠지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무사들이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무사들은 팽진평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자신들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의논하는 중이었다.
“밤새 별일 없었는가?”
팽진평의 말이 들리자 그제야 무사들이 팽진평을 바라봤다. 무사들의 표정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팽진평은 직감적으로 뭔가 일이 터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얼마 전에도 수백의 무사들이 팽가에 몰려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무사들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은 듯했다.
“가주님, 장원이 완벽하게 포위됐습니다.”
“포위? 그게 무슨 말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단의 무리가 나타난 갑자기 장원을 포위했습니다. 저희도 날이 밝고서야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밤에는 달이 뜨지 않아 워낙 어두워서……”
밤이 어두운 것도 문제가 있었지만 사실 그들이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것은 팽가를 포위한 자들이 간단한 진을 사용?기 때문이었다.
어둠과 함께하면 훨씬 효과적인 진법이었기 때문에 밤에는 발견하지 못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간신히 발견한 것이다.
팽진평은 무사의 보고를 듣고 심각한 표정을 말했다.
“두 번째 방어진을 발동시키게.”
팽진평의 명에 무사들이 포궈을 취하며 대답했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무사들이 두 번째 진을 발동시키자 팽진평은 무림맹으로 향했다. 무림맹을 받아들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로 너무 일이 크게 벌어지니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해결하려면 무림맹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팽가를 완벽하게 포위할 정도라면 그 인원이 대체 몇이나 된단 말인가.
적어도 천 명은 되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 그 천명이 그저 그런 무사인지 아니면 고수인지에 따라 팽가가 무사할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후우……”
팽진평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밖이 소란스럽네요.”
조설연의 차분한 말에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구나.”
검왕은 그렇게 대꾸한 후 종칠을 쳐다봤다. 종칠은 왜 자신을 쳐다보느냐는 듯한 눈으로 검왕을 마주보다가 결국 뒤통수에 혹을 하나 달아야 했다.
쾅!
“커억! 이게 대체 무슨 만행입니까!”
종칠이 바락바락 대들자 검왕이 인상을 팍 썼다.
“가서 알아봐.”
검왕의 말에 종칠은 더 대드는 것을 포기하고 숨을 씩씩대며 밖으로 나갔다.
종칠 역시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때는 정보가 생명이라는 것도.
잠시 후, 나갔던 종칠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던졌다.
“팽가가 포위되었다는데요?”
종칠의 말에 검왕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포위? 대체 누가? 왜?”
“그걸 제가 어찌 압니까.”
종칠은 갑자기 올라가는 검왕의 주먹을 쳐다보며 급히 말을 덧붙였다.
“팽가에서도 모르는 것을.”
“팽가에서도 모른다고?”
“그렇다니까요. 정체를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던데요? 뭐 진법으로 막고 있으니 걱정할 건 없다고 하지만……”
종칠의 말에 검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으로 막았으면 우리도 여기서 나갈 수가 없겠군.”
검마의 말에 일행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은 지금 팽가를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럼 어쩌지요?”
“어쩌긴. 그냥 여기서 좀 더 기다려야지.”‘
일단 그렇게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뭔가 큰일이 터진 것 같아서 불안했다.
조설연과 우문혜의 불안한 표정을 본 검마가 중얼거렸다.
“불안해할 필요 없다. 위험하며 알아서 올 거다. 보통 사람이 아니니.”
검마의 말에 조설연과 우문혜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단형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들의 태도가 변하자 검왕과 검마가 슬쩍 웃었다.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팽가를 완전히 포위했다는 것은 물자의 유입이 막혔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사람은 먹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다.
독고운은 암담한 표정으로 앞에 앉아 있는 제갈중천과 취월, 그리고 팽가주 팽진평을 바라봤다. 사태가 너무 심각했다.
“그러니까, 비축해 놓은 식량이 거의 없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당연했다. 천하에 누가 팽가를 둘러싸서 포위할 생각을 하겠는가. 팽가처럼 거대한 장원을 둘러싸러면 막대한 인원이 필요하다.
설혹 막대한 인원을 들여 포위를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전력이 분산되어 피해가 커질 뿐이다.
그러니 팽가가 그런 일에 대비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혈마회였다. 혈마회는 정말로 작정하고 무림맹을 죽이려 마음먹은 듯했다.
“뚫으려는 시도는 해봤소?”
독고운의 질문에 팽진평이 쓴웃음을 지었다.
“맹호대가 전멸했소. 대주인 만호만 간신히 살아서 도망쳤고, 그 와중에 하마터면 진이 박살날 뻔했소.”
팽진평의 말은 좌중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맹호대가 어디인가. 팽가의 최정예 무사들만 모아 놓은 곳이다.
그런 맹호대가 전멸했다니, 대체 팽가를 포취한 자들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나 대단했소?”
“매호대가 전멸하는데 걸린 시간이 채 일 각이 안 됐다고 했소. 만호가 한 말이니 정확하오.”
“그럴 수가……”
팽가의 맹호대에 속한 무사들의 수준은 무림맹 청룡단에 속한 무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엄밀히 따지면 무림맹 쪽이 조금 위지만 수준을 논하자면 엇비슷했다.
그런 맹호대가 일 각도 되지 않아 전멸했다면 적의 능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포위를 뚫기가 쉽지 않겠군요.”
이들은 모르고 있지만 팽가를 포위한 포위망에는 강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혈마회에 남은 모든 철강시와 독강시 두 구가 있었기에 맹호대가 당할 수밖에 없었다.
혈마회의 독강시는 살아생전에는 무황과 패룡이라 불리던 자들이다. 십대고수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자들이 독강시로 다시 태어났으니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이대도라면 무림맹이고 팽가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하남표국 쪽으로 흘렀다. 현재 하남표국에서 온 사람들 중에 검왕과 검마가 있다. 그들을 이용하면 어찌어찌 해볼 수 있을 듯했다.
“일단 하남표국 사람들에게 말이라도 한 번 꺼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취월의 말에 독고운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보게. 자네가 조금 안면이 있으니 직접 해보는 것이 어떤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취월은 대답을 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이런 일은 뜸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아니, 지금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무영은 느긋한 자세로 팽가를 지켜봤다. 아직 진은 해제되지 않았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들 나오게 되어 있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렇게 간단한 임무를 받은 것이 정말 얼마만인지……”
무영은 지나간 나날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간 제대로 임무를 수행한 것이 드물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이 단형우가 나타난 이후부터였다. 혈마회의 계획이 꼬이기 시작한 것도 딱 그때부터였다.
아무튼 오늘은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오는 놈들만 잡아 족치면 되는 간단한 임무다. 더구나 이쪽에는 아주 강력한 패를 준비 중이다.
무영은 한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무황과 패룡, 살아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우러름을 받던 무인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독강시가 되어 충실히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수족이 되었다.
팽가를 포위한 후, 맨 처음 등장한 자들이 바로 맹호대였다. 그들은 단숨에 포위망을 뚫어버리려 몸을 날렸지만 바로 패룡과 무황에 의해 전멸 당했다.
살아 있을 때도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던 두 사람이다.
독강시가 되어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으니 이젠 설혹 십대고수가 오더라도 어찌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영은 그렇게 믿었다.
“자아,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팽가.”
무영은 입가에 걸친 미소를 더욱 크게 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팽가 정문이 조용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린다 해서 진이 해제되는 것은 아니다. 문이 활짝 열려도 진은 그대로다.
다만 문 부분에 연결된 진의 흐름을 잠시 끊으면 문으로 사람이 들락거릴 수 있었다.
오전에 나왔던 맹호대 역시 그런 식으로 나왔다. 덕분에 팽만호가 도망칠 때 철영대 몇이 따라 들어가 팽가 안을 잠시 휘저을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죽임을 당했다.
무영은 밀린 문틈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거물이 나왔다. 이건 예정에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저자들이…….”
무영의 눈에 비친 사람은 검왕과 검마였다.
검왕과 검마는 취월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일단 가만히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했고, 팽가가 포위된 상황에서 밥까지 굶을 수는 없었기 문이다.
검왕과 검마 뒤에는 종칠이 못마땅한 얼굴로 따라 나오고 있었다.
“젠장. 내가 왜 마차를 몬다고 했을까. 그냥 표국에 남아 있었으면 아리따운 장 소저랑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에잇, 젠장.”
“이놈아, 조용히 못하겠느냐!”
검왕의 호통에 종칠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심통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북해빙궁과 싸운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한데 또 그런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한다니 기가 막혔다. 그리고 그렇게 기가 막힐수록 장화영이 떠올랐다.
종칠은 검왕과 검마를 따라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검왕의 손이 어느새 종칠의 가슴을 밀고 있었다.
“넌 거기 있어라.”
검왕의 말에 종칠의 눈이 동그래졌다. 농담은 아니었다. 검왕과 검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상황을 말해 주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종칠의 눈이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화등잔만 해진 눈을 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종칠의 눈이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화등잔만 해진 눈을 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정문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분명 죽었떤 사람들이다. 그들의 죽음은 종칠이 똑똑히 목격했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하나다.
“강시……”
“천하의 무황과 패룡을 강시로 만들다니. 혈마회인지 뭔지 보통 놈들이 아닌데?”
검왕이 섬뜩한 눈빛을 흘리며 말하자 무영이 앞으로 나섰다.
“그것이 하남표국이나 검왕만 하겠소이까. 하하하핫!”
검왕과 검마의 눈이 동시에 무영에게로 향했다. 진득한 살기가 사방에 흘러나갔다.
“입구를 막아라.”
검왕의 말에 팽가 무사들이 끊어졌던 진의 흐름을 다시 이었다.
이제 그 누가 오더라도 팽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이 단형우만 아니라면 말이다.
종칠은 긴장과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검왕과 검마를 쳐다봤다. 검왕과 검마가 얼마나 강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는 무황과 패룡이다. 게다가 강시다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왕과 검마는 피식 웃으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상대가 무황이고 강시라도 상관없었다.
두 사람은 예전의 십대고수가 아니다. 단형우로 인해 훨씬 강해졌다. 그리고 천섬과 혈영검이 있다. 검왕과 검마의 눈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자, 슬슬 시작해 볼까?”
검왕이 먼저 천섬을 뽑았다. 그와 동시에 천섬에서 벼락 다섯 줄기가 뻗어 나갔다.
빠지지직!
“크아아악!”
다섯 줄기 벼락은 무황 뒤에 서 있던 철영대 다섯을 새까맣게 구워 버렸다. 검왕은 만족한 눈으로 천섬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슬슬 오는 게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