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80
단형우는 여전했다. 그녀들을 대하는 태도도 똑같았고, 행동도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벌써 단형우가 세상에 다시 나온지 삼 년이나 되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에 거릴시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제갈린의 말에 단형우가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봤다. 맞는 말이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면 그녀들이 걱정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단형우가 아예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혈마자의 말은……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 사람이 옳은 말을 했을 리 없잖아요.”
우문혜가 말했다. 우문혜는 그날 이후로 약간 말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단형우를 대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단형우의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는데 그녀 혼자 애를 끓일 이유가 없었다.
단형우는 그런 그녀들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런 것이 의심이군.”
단형우가 중얼거렸다. 그동안 없었던 감정들이다. 의심, 시기, 질투, 아직도 시기나 질투는 느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런 감정은 느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심은 혈마자 덕분에 지겨울 정도로 느끼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친구들의 죽음에 대해서. 그저 진법 안에서 죽었다면 왜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상념이 단형우의 머리를 흔들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놈아! 거기 안 서!”
“미쳤어요?”
담장 너머에서 검왕과 종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쫓고 쫓기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검왕 옆에는 검마가 함께 달리고 있을 것이다.
“어르신들께서 표행을 마치고 돌아오셨나 보네요.”
조설연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검왕과 검마가 표행에 한 손을 거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무료한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하려는 걸 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종칠의 수련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기 서! 그냥 서면 딱 한 대로 끝내주지.”
“아, 그러니까 내가 미쳤냐니까요!”
두 사람의 외침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래도 이쪽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여전하시네요. 저분들도.”
세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하남표국의 식구들은 단형우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들의 존재가 느껴질 때마다 단형우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단형우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단형우는 잠시 웃다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단형우의 얼굴에는 다시 의심이 깃들었다.
자신도 혈마자의 그 단순한 한 다미가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하지만 왠지 그것을 쉽게 떨쳐 낼 수 가 없었다.
또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이번 침묵을 깬 것은 제갈린이었다.
“공자님이 그 지옥에 계실 때, 어떻게 나오실 수 있었나요?” 제갈린의 질문에 단형우는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단형우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마물이 나타나면 죽이고 또 걷고, 할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거대한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은 발견했지. 묘한 향수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곳을 검으로 가르고 나왔다.”
“검으로 기운을 가르고 그냥 나오셨다고요?”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그 기운이 뭉친 곳은 마치 자신을 갈라달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단형우는 그 기운을 정말로 온 힘을 다해 갈라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기운은 검에 갈리며 시커먼 공간을 드러냈다. 그곳으로 들어가니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단형우는 제갈린이 왜 그 질문을 했는지 이해했다. 어떻게 나왔는지 알면 다시 그곳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는 그런 거대한 기운이 뭉쳐 있는 곳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합일을 하려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보군.”
단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왜 검의 합일을 이루려고 하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것을 추구했다.
그저 수련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제 와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검의 합일에 새로운 길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이다.
단형우는 눈을 감았다. 혈마자를 죽인 후로 더 이상 수련을 하지 않았다. 그저 세상을 살았을 뿐이다.
아른다운 세 여인과 함께, 하남표국의 가족들과 함께. 친구의, 이제는 자신의 아버지가 된 어른들과 함께.
단형우가 검을 뽑았다.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군.”
단형우가 검을 내리쳤다. 검에는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었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그저 가볍게 내리친 것처럼 보일뿐이었다.
쩌억!
검의 궤적을 따라 공간이 갈라졌다. 아니, 그냥 공간이 갈라졌다고 말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했다. 갈라진 틈으로 시커먼 공간이 보였다.
단형우는 그 공간이 자신을 지옥에서 세상으로 이어주면 그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이 지옥의 그것과 똑같았다.
“확인하고 오지.”
단형우는 미련 없이 검은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검의 합일을 이루었으니 지옥에서 이곳에서 이곳으로 통하는 길도 분명히 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단형우가 검은 공간 안으로 사라지자, 세 여인이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단형우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저 확인만 하고 돌아온다 하지 않았던가.
그때, 멀리서 종칠의 외침이 들려왔다.
“비, 비켜요! 비켜!”
종칠의 외침에 세 여인이 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종칠의 신법은 상당히 빠르지만 방향 조절에 약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종칠은 세 여인 틈으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검왕과 검마가 따라갔다.
세 사람은 단형우가 열어 놓은 새까만 세상의 틈 안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검은 구멍이 꿈틀대더니 순식간에 입을 닫아 버렸다.
세 여인은 그 광경을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신강의 천산에는 천마신교가 있다. 천마신교는 점점 그 교세를 불러가며 무림에 큰 위협이 되고 있었다.
무림맹과 구대문파가 점점 힘을 키우고 있었지만 천마신교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나마 무림맹에 있는 금마공이 천마신교를 간신히 억제하고 있었다.
천마시교의 교주인 천마는 넓은 대전에 앉아 앞에 있는 환마를 느긋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슬슬 그날이 오고 있지?”
“예, 한데 그곳에서 날짜를 조금 미뤄 달라 요청했습니다.”
“날짜를 미뤄?”
“예, 마신께서 잠시 여행을 떠나셨다 합니다.”
천마는 환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신이야 세상 어디든 한 걸음에 가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런 분이 여행을 떠났다 한들 천마신교에 왔다 가는 간단한 일을 못할 리 없었다.
“그리 쉬운 곳에 가신 게 아닌 모양입니다.”
“누구에게 들은 말인가?”
“삼신녀들이 직접 말했다 합니다.”
환마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없지. 우리야 그분의 신경을 건드려서 안 되니까.”
천마의 말에 환마가 고개를 저으며 불만을 슬쩍 말했다.
“그 삼신녀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마신은 인정해도 삼신녀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환마의 말에 천마가 빙긋 웃었다.
“자네는 똑똑한 것 같으면서 가끔 보면 기본적인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무슨 말씀이신지……”
“삼신녀가 왜 삼신녀가 되었는지 아나?”
환마가 그런 것을 알 리 없다. 삼신녀는 언젠가부터 그렇게 불렀다.
단형우 옆에 붙어 있는 세 여인이라는 뜻 외에도 환마도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삼신녀라는 말을 가장 앞서서 퍼트린 곳이 바로 천마신교였다. 그래서 모든 무림인들이 조설연, 우문혜, 제갈린을 삼신녀라 부른다.
“진짜 신녀이기 때문이지.”
천마의 말에 환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환마는 그것은 말도 안 된다고 외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삼신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네. 의도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거야. 마신이 세상에 터져 나가면 모두 끝장이라는 것을 말이지.”
환마는 천마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생각해 보게. 삼신녀 중 하나가 ‘어머, 무림맹이 마음에 안 들어요.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러면 마신이 뭐라 하겠는가? ‘그래?’ 그 다음은 그냥 번쩍, 하면서 무림맹이 사라지지. ‘천마신교 사람들이 제게 욕해요.’ 그러면 또 ‘그래?’ 그 다음은 번쩍이지.”
천마의 익살을 섞어가면 환마에게 말했다.
환마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충분히 가능하다.
그들이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충분히 가능하다.
그들이 마신으로 모시는 단형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설사 세상 모두를 멸해 달라 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래서 마신이고 신녀인 거야. 아마도 마신이 제대로 살아가는데 삼신녀가 지대한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지.”
천마의 말에 환마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마신, 단형우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세상에 나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종장
마계를 지배하는 왕이자, 모든 마족들의 아버지인 베르문트는 부하들을 이끌고 마계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천 년 전, 마계를 침입한 인간들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은 후, 마계는 정말로 회복에 안감힘을 써야 했다.
“상당히 좋아졌군.”
베르문트의 말에 옆에 있던 마족이 말했다.
“무려 삼백 년 동안이나 애를 썼습니다. 이제 그 결실이 슬슬 맺힐 때입니다.”
“그렇지. 너무 길었어. 그래도 아직 천족들에 비하면 너무나 모자란다. 더 노력해야 해.”
모두의 안색이 가라앉았다. 천년 전, 인간 백 명이 마계에 침입했다.
당시에는 신기한 일이긴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인간들이 척박한 마계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시가니 지나면 지날수록 생각을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은 비록 하나둘 죽었갔지만 결코 전멸하지 않고 꾸준히 버텨나갔다.
결국 마족들이 직접 나서야 했고, 인가과 마족간의 싸움이 점점 커져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 하나는 정말로 무서웠다. 그는 눈에 보이는 족족 마물과 마족들을 해치웠다. 그 인간은 점점 강해졌고, 결국 마족들은 그 인간을 피해 숨어야 했다.
“무서운 시간이었지. 무력 칙백 년이었다. 칠백 년.”
인간들이 마계에 침입하고서 칠백 년 동안이나 마족들을 괴롭혔다.
특히 마지막 남은 인간은 숨어 있는 마족들까지 찾아내 기필코 죽였다. 마치 마족의 씨를 말려 버리려는 듯했다.
그래서 결국 베르문트는 살아남은 모든 마족의 힘을 하나로 모아 그 인간을 원래 있던 세상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마침 그 인간 역시 마계의 삶에 지쳐가고 있었기에 그 시도가 먹혀 들었다.
인간의 힘은 놀라웠다. 비록 마족들이 힘을 모아 도왔다고는 하지만 당당하게 차원을 가르고 워래 있던 세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것이 삼백 년 전 일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응? 이건?”
베르문트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차, 차원의 틈이 벌어지려 한다.”
이건 천 년 전 그때와 거의 흡사한 상황이었다. 차원의 틈이 갈라지려는 징조가 보였다.
“모두 따라와라!”
베르문트는 순식간에 차원의 틈이 갈라지는 곳에 도착했다. 공간에 검붉은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이 완전히 열리면 안에서 또 누군가가 튀어나올 것이다.
균열의 상태로 볼 때, 이 틈과 연결된 곳은 예전 그 인간들이 살던 그곳일 확률이 높았다.
“이, 이 일을 어쩌면 遊?말이냐.”
베르문트는 크게 당황했다. 이제 간시히 마계가 살아나려는 참이다. 한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제 마계는 끝장이었다.
베르문트 옆에 있던 마족 하나가 의견을 내놓았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모두 끝장입니다. 모험을 해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모험?”
“이 균열을 베스란으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베스란은 이곳 마계가 영향을 미치는 인간계이다. 지금 열린 틈과 연결된 인간계는 그들과 전혀 연관이 없지만 베스란은 그렇지 않다.
“혹시 그들이 베스란에서 천족의 힘을 약화시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마족의 말에 베르문트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마족들이 힘을 모았다. 이것은 마족만의 힘이 아니었다. 마계의 힘을 모으는 것이었다.
삼백 년 동안 모은 마계의 힘 중 상당한 양을 사용해야만 했다. 차원의 틈이라는 것은 그렇게나 많은 힘을 들여야 열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차원의 틈을 다른 곳으로 연결하기만 했는데도 엄청난 힘을 소진해야 했다.
갈라진 차원의 균열이 점점 메워졌다. 그리고 그 틈은 다른 곳으로 연결되었다. 마계과 천계 사이에 위치한 중간계 베스란으로.
단형우는 시꺼먼 공간을 통과해 새로운 곳에 발을 디뎠다. 회색빛 세상을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눈앞에 나타난 것은 짙은 녹색과 새파란 하늘이었다.
“숲인가.”
이곳은 그 지옥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곳이었다. 단형우는 고개를 젓고 다시 돌아가려다가 틈에서 튀어 나오는 종칠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종칠 뒤로 검왕과 검마가 달려 나왔다.
“응? 뭐야? 여긴 대체 어디지?”
검왕이 놀란 눈으로 말하자 종칠도 검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세 사람의 눈에 단형우가 보였다.
“다, 단대협. 대체 여기가 어디입니까?”
종칠의 물음에 단형우가 간단히 대답했다.
“모른다.”
단형우의 대답에 허탈해진 종칠은 주위를 살폈다. 어느새 갈라진 차원의 틈은 메워져 있었다.
종칠의 눈에 피를 뒤집어 쓴 시체들이 보였다.
“헛, 저, 저기……”
종칠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본 검왕과 검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체를 보고서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두 사람은 시체를 보다가 근처에 있는 마차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