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22
조설연의 부름에 단형우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조설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우문혜가 눈을 빛내며 쳐다봤다.
조설연은 우문혜의 눈치를 잠시 살핀 후, 단형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표사님이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죽이면 되는 건가?”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의 안색이 변했다.
“다 죽이면 되는 건가?”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의 안색이 변했다.
“예?”
“숨어 있는 자들.”
“수, 숨어 있다니요?”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깜짝 놀랐다. 그럼 정말로 이 근처에서 누군가 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 아닌가.
“그게 정말인가요?”
이번에는 우문혜였다. 우문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그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헌데 누군가가 습격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은 그녀나 영사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백 명쯤 되는군.”
단형우의 말에 우문혜의 얼굴에 짙은 불신이 새겨졌다. 한 명도 아니고 백 명이라니, 절대로 믿을 수 없었다.
단형우는 우문혜가 믿든 그렇지 않든 그런 것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 죽여 주지.”
“자, 잠깐만요!”
조설연이 황급히 단형우를 말렸다. 조설연의 머리가 민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단형우를 보통의 상식으로 판단해선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들이 대충 어디쯤에 있는 건가요?”
단형우의 손가락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관도와 그리 어긋나지 않은 곳이었따. 즉, 관고에서 약간 벗어난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문제는 그곳에는 전혀 사람이 숨을 만한 공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우문혜는 그것을 보며 살짝 웃었다.
“그쪽에는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요?”
우문혜의 말투에 섞인 비웃음에도 단형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것이 비웃음인지조차 아직 모르고 있었다.
우문혜는 비웃었지만 조설연은 그렇지 않았다. 조설연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얼마나 떨어져 있죠?”
“내 걸음으로 한 걸음.”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단형우의 한 걸음은 조설연의 능력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호호호홋! 한 걸음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럼 내 발 밑에 숨어 있다는 말 인가요?”
우문혜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조설연이 다시 물었다.
“그럼 제 걸음으로는요?”
조설연의 질문에 우문혜가 웃음 멈췄다. 단형우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계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잠시 속으로 거리를 가늠하던 단형우가 입을 열었다.
“대충 이만 걸음.”
사람마다 보폭에는 차이가 있지만 조설연의 경우 일곱 걸음이 일 장(丈)쯤 된다. 즉, 이만 걸음이라면 대충 삼천 장(丈)이라는 뜻이다. 삼천 장이면 이십 리(里)가 넘어가는 거리다.
“말도 안 돼!”
우문혜가 소리쳤다. 이십 리 밖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우문혜 자신이 스스로 평가한다면 십 장이 고작이었다.
십 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척은 어찌어찌 알아챌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어려웠다. 아무리 고수라도 수십 장 밖의 기척을 알아채는 것도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삼천 장이라니.
“장난이 심하군요.”
우문혜가 화난 표정으로 단형우를 쏘아봤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조설연의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조설연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습격하기 전까지는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조설연의 부탁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고마워요, 오라버니.”
조설연이 따뜻한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조설연을 똑바로 쳐다봤다.
“약속은 지킨다.”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녀는 붉은 얼굴을 하고 도망치듯 형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우문혜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우문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허황된 말을 그대로 믿다니.
조설연이 그 정도로 멍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로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우문혜는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단형우가 한 허풍 같은 말이 정말인지가 궁금했다.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십 리가 비록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이 정도 강행군이라면 머지 않아 도착할 것이다.
우문혜가 슬쩍 고개를 돌려 영사를 쳐다봤다. 영사는 마차 오른 쪽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단형우가 걸어가고 있는 왼쪽과는 정 반대에 위치한다.
“어떻게 생각해?”
우문혜의 질문에 영사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인간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문혜의 눈이 빛났다.
“그럼?”
“조력자가 여럿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것도 정보에 관계된.”
우문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나랑 같은 생각이네. 어디 두고 볼까?”
표행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안고, 거의 뛰는 속도로 사천 성도를 향해 나아갔다.
당호관을 비롯한 당가 무사들은 사천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긴장해 있었다.
당가의 앞마당과 같은 사천에서 이렇게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흑사방(黑蛇幇) 때문이었다.
흑사방은 역사가 일백 년이 넘는 꽤 큰 규모의 문파였다. 하지만 일백 년이라는 시간만큼의 무공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다지 사천에서 영향력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십년 사이 급격히 발전해서 지금은 사천 최고의 가문인 당가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호관은 흑사방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 전에 표행을 공격했던 흑의인들은 흑사방이 분명했다. 사천에서 그만큼 강력한 무사를 동원할 수 있는 곳은 청성파와 아미파를 제외한다면 흑사방이 유일했다.
청성파나 아미파가 당가를 공격할 리 없으니 남은 것은 흑사방뿐이었다.
‘표물에 대한 정보가 벌써 새나간 것인가.’
당호관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번 일은 그야말로 극비리에 진행했다. 표물을 나르고 있는 하남표국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당가 내에도 이번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도 정보가 새나갔다는 것은 당가 내에 간자가 있거나 아니면 하남 화가장에서 새나갔다는 뜻이 된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그래서 서둘렀던 것이다. 정보에 민감한 단체가 공들여 조사했다면 화가장이 과거 벽력문의 후순이고, 최근 벽력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알아냈을 수도 있었다.
“끄응, 그래도 아직 늦었다고는 할 수 없지.”
당호관의 눈에는 그래도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정보를 알아낸 것과 그것을 대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흑사방에서 분명히 아직 벽력탄을 맞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당가 무사들이 던지는 벽력탄을 그들이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표행을 습격해 벽력탄을 탈취하는 것뿐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던 당호관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손을 들어올렸다. 당호관의 손짓에 표행이 일시에 멈췄따. 그리고 당가 무사들이 진형을 짜 맞추며 각자 무기를 슬며시 꺼내들었다.
당호관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당호관의 감각에 걸려든 기척은 모두 오십이었다.
표행이 멈추자,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복면조차 쓰지 않고 당당히 나타났는데, 하나같이 가슴에 조그맣게 사(蛇)자가 새겨져 있었다.
“흑사방 떨거지들이로군.”
당철기가 비웃음을 가득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반면 당호관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습격했던 자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던 사(蛇)자와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크기도 모양도 달랐다. 얼마 전에는 당호관 만이 간신히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았는데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고, 모양도 예전과 달리 지금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한 모양이었다.
“고작 스물인가? 실력도 고만고만하군.”
흑사방 무사들 중, 약간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흑의(黑衣)를 입었는데 이 사내만 팔이 특이하게 새하얀 선이 그어져 있었다.
당호관은 사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몇 번 본 적이 있는 사내였다. 흑사방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자였고, 당가에 몇 번 큰 피해를 입힌 적도 있었다.
“흑사방이 무슨 일로 길을 막는 것인가? 녹림에 들어가기라도 한 것인가?”
당호관이 침착하게 대꾸하자 사내가 호탕하게 웃었다.
“푸하하핫! 과연 당호관이로군. 당가 장로들은 하나같이 상대하기 어렵다니까. 푸하하핫!”
사내의 웃음소리에는 내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내력은 오로지 당가 무사들에게만 영향을 미칠 뿐이었다. 당가 무사들은 다급히 내력을 끌어올려 사내의 웃음소리에 대항했다.
한참 웃던 사내가 웃음을 뚝 멈추고 검을 뽑아 들었다.
“자,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지. 어떻소? 뒤에 있는 그 물건들을 내놓고 목숨을 부지하시겠소. 아니면 목숨도 잃고 물건도 내놓겠소?”
사내의 말에 당철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 입을 깨끗이 뚫어주지.”
당철기는 당호관이 채 말릴 새도 없이 사내에게 암기를 날렸다.
파파팟!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다섯 개의 철침(鐵針)이 날아갔다. 끝에는 당가 비전의 독을 묻힌 악독한 암기였다.
사내는 감히 그것을 손으로 잡지는 못하고 검을 휘둘러 떨쳐냈다.
채챙!
하지만 사내를 노리지 않고 날아가던 두 개의 침이 다른 흑사방 무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피슉!
하나는 무사들이 피해냈지만 하나는 흑사방 무사 중 한 명의 허벅지에 박혔다.
“크헉!”
철침은 박은 사내가 무릎을 휘청거렸다. 극독이 혈관에 파고들었기 때문에 살아날 가능성은 없었다.
털썩!
결국 입에서 검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고, 덕분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게 네 선택인가?”
사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몸을 날려 당철기를 향해 검을 뻗었다.
챙!
그 검을 쳐낸 것은 당호관이었다. 당호관은 사내의 검에 실린 힘을 흩어 놓으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당호관의 손에서 비수가 슬쩍 삐져나왔다. 그 비수를 이용해 사내의 검을 막은 것이다.
그것을 신호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동료의 죽음을 본 흑사방 무사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검을 휘둘렀고, 당가 무사들은 침착하게 진형을 유지하며 그 공격을 막아냈다.
비록 수는 스물밖에 안 됐지만 상당한 여유가 있었다. 당호관은 사내의 공격을 막으며 속으로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전 습격과는 너누나 달랐다. 흑사방 무사즐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현재 표행에 참여한 당가 무사들은 당가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하긴, 그렇게 쉽게 당한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지. 그럼 그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당가와 흑사방 무사들이 한창 싸우고 있을 때, 쟁자수들은 표물 주변을 둘러싸고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쟁자수들은 하나같이 기대어린 눈으로 단형우를 힐끗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우문혜와 영사는 놀란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숨어 있는 자들이 있었다.
지금은 오십 밖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오십의 무인들이 더 숨어 있다는 것은 우문혜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오십은 우문혜에게 있어서 상당히 익숙한 자들이었다.
우문혜가 영사에게 전음을 날렸다.
[어쩌지?]
우문혜의 전음에 영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세가 무사들은 그냥 물러가도록 하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지금 숨어 있는 자들이 흑사단을 능가한다고는 결코 절대 장담하지 못합니다.]
장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흑사단에 비하면 훨씬 모자랐다. 세가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저들에게 알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사는 전음을 날리며 단형우를 살폈다. 우문세가 무사들의 기척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곳까지 전음을 날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누군가 그쪽으로 가서 알려야 하는데 그렇게 한다면 자신들이 한패라는 것을 단숨에 들키게 된다.
영사와 우문혜가 고민하고 있을 때 단형우가 입을 열었다.
“가서 알린다면 말리지 않겠다.”
단형우의 말에 우문혜와 영사가 화들짝 놀랐다.
“서, 설마……”
우문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전음을 엿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러나지 않으면 다 죽인다.”
단형우의 말에는 섬뜩한 살기가 묻어 있었다. 숨어 있는 오십 인의 우문세가 무사들에게서 뿜어진 은은한 살기가 단형우의 신경을 상당히 자극하고 있었다. 그 불쾌함이 살기로 고스란히 묻어 나왔는데 그것은 우문혜나 영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 알아어요. 영사.”
“예, 다녀오겠습니다.”
영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날려 세가 무사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곧이어 순식간에 세가 무사들이 빠져 나갔다.
다시 돌아온 영사는 불안한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단형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서 당가와 흑사방의 싸움을 보고 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로군요.”
우문혜의 눈에 어린 호기심이 훨씬 짙어졌다. 그리고 그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 영사의 등줄기로 한 줄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흑사방과 당가의 싸움도 슬슬 종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비록 이십 대 오십이었지만 수준 차이가 너무 심했다. 결국 흑사방 무사들은 절반 이상이 죽었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호관 앞에 흰 줄 무사의 시체가 누워 있었다.
“후우, 힘들구나.”
“고생하셨습니다, 숙부님.”
당철기의 말에 당호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당가 무사들을 살폈다.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조금 보이긴 하지만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대승이긴 했지만 흑사방이 아직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