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34
단형우의 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사람들의 시선도 그를 따라 올라갔다. 단형우의 검이 스윽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너무도 단순한 내려치기였다.
“해 봐라.”
단형우의 말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로 그게 다인가요?”
당문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단형우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해 봐라.”
결국 다른 사람들 모두 그것을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스윽.
모든 사람이 정확히 그 동작을 따라했다. 거의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저 가볍게 내려칠 뿐인데 누가 못 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보던 단형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다.”
단형우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뭐가 틀렸단 말인가.
단형우가 다시 검을 들었다. 그리고 슬며시 내리쳤다.
스윽.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모호하게 변했다. 이건 정말로 알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날의 수련은 끝까지 단형우의 내려치기를 보고 그것을 따라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끝까지 단형우는 틀렸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당문영의 투덜거림에 당호관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겠더구나.”
그것은 비단 당호관뿐 아니라 어제 단형우에게서 천뢰를 배운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들어찬 생각일 것이다.
자그마치 두 시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동안 한 일이라고는 고작 내려치기가 전부였다. 그것도 힘없이 그저 내려 긋는 동작을 반복할 뿐인 아주 단조로운 수련이었다.
대체 그 안에서 뭘 발견해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하아, 정말일까요?”
“뭐가 말이냐?”
“정말로 우리에게 그 무공을 가르쳐 주려는 것일까요?”
당문영의 말에 당호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 역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그런 절세의 무공을 아무에게나 다 가르쳐 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 정도 무공이라면 설사 제자라 하더라도 함부로 전수해 주기 아깝지 않겠는가.
“분명 가르쳐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예요. 틀림없어요. 그게 말이나 되는 수련인가요? 내려치기는 걸음마를 떼자마자 질릴 정도로 했어요. 기초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제 저에겐 더 이상 내려치기는 필요 없어요. 제게 필요한 것은 천뢰라고요.”
당문영의 말은 하나 틀린 곳이 없었다. 당호관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하지만 당장 수련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당호관은 며치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난 며칠 더 해 볼 생각이다. 넌 오늘부터 그만 두겠는냐?”
당호관의 물음에 당문영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호관은 진심으로 당문영이 이런 것을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문영도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죄송하지만 전 그만 두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당호관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무나. 나도 그게 더 좋을 것 같다.”
당호관의 말에 당문영이 약간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도 그만 두세요. 필요 없다는 걸 아시면서도 굳이 하실 필요 없잖아요.”
당호관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다. 어차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이런 것뿐이니까. 넌 조금 다른 방향으로 궁리를 해 보거라. 원한다면 내가 대련도 다시 시작하마.”
“아, 아니에요. 대련은 이제 됐어요. 그걸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고생하시는 모습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당문영의 말에 당호관이 빙긋 웃었다.
“그래, 어쨌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조금 더 궁리를 해 보도록 하자꾸나.”
“네, 할아버지.”
당문영과 그녀의 큰 할아버지인 당호관의 하루는 그렇게 마감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당문영은 수련에서 빠졌다.
하루 만에 수련을 포기한 사람은 당문영뿐이 아니었다. 영사, 금사, 은사도 포기해 버렸다. 당문영과 같은 이유였다. 하지만 우문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공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은 대부분 눈치채고 있었다.
형표를 비롯한 쟁자수들은 한 명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만은 단형우가 그렇게 복잡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단형우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단형우와 지낸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단형우는 절대 거짓을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라도 무공에 대한 열망을 채우고 싶었다. 어쩌면 그저 단순한 소모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았다.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천뢰 수련 둘째 날을 맞이했다.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는 이십에서 삼십 리가 고작이었다. 천 리 길을 가야 하는데 이런 속도로 계속 이동하면 사십 일 정도가 걸린다.
허창에서 사천으로 갈 때와 비교해도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지만 아무런 짐도 없이 걸을뿐더러 굳이 관도만을 이용하지 않고 짧은 지름길을 이용하기 때문에 드러난 숫자보다는 훨씬 여유로웠다.
사실 마차를 끌고 관도로 이동을 하면서 한 달 만에 허창에서 사천에 도착했다는 것은 정말로 기록적인 일이었다. 오로지 하남표국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인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이동하기 때문에 저녁에는 상당히 긴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덕분에 수련 시간도 길어졌다.
오늘도 모두 똑같은 수련을 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진지한 얼굴로 수련에 임했지만 전혀 뭔가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윽.
단순한 내려치기. 아니, 내려치기라고 하기에도 뭔가 조금 모자란 것 같은 단순한 움직임만을 반복하려니 점점 지루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게다가 수련을 포기한 사람들은 편안한 자세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살짝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 비웃음을 보니 더더욱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만.”
단형우의 말에 사람들이 수련을 멈추고 그를 쳐다봤다. 단형우가 고개를 꺄웃거렸다.
“대체 왜 못 하는 거지?”
스윽.
단형우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이 단순한 것을.”
단형우의 말에 결국 사람들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들의 내려치기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 중 가장 고수라고 할 수 있는 당호관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당호관은 더 이상 수련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을 마지막으로 자신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형우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조설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설연 뒤에서 검을 쥐고 있는 조설연 손을 덮어 싸듯 잡았다.
“오, 오라버니……”
조설연이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마치 뒤에서 끌어안는 듯, 약간 민망한 자세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형우는 전혀 표정 변화 없이 조설연의 검을 위로 들어올렸다. 손을 쥔 채로 들어올렸으니 당연히 조설연의 손도 함께 올라갔다.
스윽.
그리고 검이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 알겠지?”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
“다시 한 번 한다.”
단형우가 다시 조설연의 손을 쥐고 들어올렸다가 내리그었다.
스윽.
조설연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형우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충분히 알겠는데 그것만으로는 조금 전 시범을 보일 때와 차이가 전혀 없었다.
단형우는 잠시 그 자세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뭔지 알겠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설연의 손으로 뭔가가 가득 밀려 들어왔다. 조설연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비명을 지르는 추태는 피할 수 있었다.
“오, 오라버니?”
“자, 다시 한다.”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정신을 집중했다. 손에 모인 이상한 기운과, 굳게 쥐고 있는 검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검이 위로 올라갔다.
스윽.
그리고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아……!”
조설연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대체 단형우가 자신들의 검이 왜 틀렸다고 하는지.
“이제 알겠지?”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 수는 있었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할 것이 분명했다.
지극히 단순해 보이던 단형우의 검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검이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숨낳은 충돌이 있었다. 기(氣)와 기(氣)의 충돌이었다.
공기 중에 퍼져 있는 수많은 기운들을 그대로 가르고 지나간 것이다.
지금이야 단형우가 손에 모아준 기운이 있었기에 그것을 느낄 수나 있었지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기운들을 갈라냈는지 아니면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뭔데? 뭔데? 대체 뭘 알았는데? 나도 좀 알려 줘요.”
우문혜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자 조설연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저 혼자서 펼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로군요.”
조설연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단형우가 다시 움직였다. 남아 있는 모두에게 같은 방법으로 조설연과 똑같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당호관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었다.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했다. 천뢰(千雷)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분명했다.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단형우가 없이는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는 당호관까지도 그랬으니 점점 그들의 얼굴에 절망감이 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심정을 모두 검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수련 둘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셋째 날, 단형우는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기운을 넣어 주었다. 상당히 많은 양을 넣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몇 번 검을 휘두르며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단형우가 하는 것처럼 능숙하게 할 수는 없었다. 이것만은 반복이 중요했다.
밤새 단형우가 고민해서 만들어 낸 결과였다.
단형우의 기운을 얻은 사람들은 검에 깃들어 있는 기운으로 공기 중에 퍼져 있는 기운을 가르는 생소한 수련을 해 낼 수 있었다.
검을 휘두르다가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단형우가 기운을 넣어 주었고, 그것을 반복하며 하루가 또 지나갔다.
“할아버지, 정말로 뭔가 다른가요?”
당문영의 말에 당호관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르더구나.”
“저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 같은가요?”
“글세, 그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천뢰(千雷)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어쩌면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당호관의 말에 당문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고작 하루를 참지 못해서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너무나 분했다.
“정말로 아까워요. 조금만 더 참아 볼 걸……”
하지만 이미 늦은 것을 어쩌겠는가. 사실 오늘은 다시 배우겠다고 단형우를 찾아갔었다. 하지만 단형우는 너무도 단호하게 거절해 버렸다.
설마 단형우가 그렇게 매정하게 거절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당황하긴 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싫다고 떠난 사람이 다시 찾아왔는데 누가 좋다고 하겠는가.
어쨌든 당문영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어차피 내가 비밀을 풀어낸다하더라도 현재 당가에 그것을 익힐 만한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당호관의 말에 당문영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예, 할아버지. 그렇게 할게요.”
당문영의 기분이 풀어진 것을 확인한 당호관이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열흘의 시간이 지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하게 기운을 잘라낼 수 있을 때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줄 알았는데 막상 시도를 하니 훨씬 복잡했다. 덕부에 당호관조차도 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당호관은 익숙하게 기운들을 툭툭 잘라내며 살짝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한 단계 나아갔을 뿐인데 벌서 열흘이 지났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단형우가 없으면 그나마 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예 수련 자체가 불가능했다.
“끄응……”
오늘도 수련이야 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일찍 기를 기를 수 있게 된 당호관으로서는 그냥 하루를 날려 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남은 열흘 동안 과연 천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 할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천뢰를 쓸 수 있게 되어 봤자 단형우 없이 쓰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당호관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단형우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이보게.”‘
단형우가 고개를 돌려 당호관을 쳐다봤다. 당호관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단형우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단형우와 눈이 마주친 당호관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대련 한 판 어떤가?”
당호관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형우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사실 단형우는 당호관과의 대련이 즐거웠다. 누군가와 목숨을 걸지 않고 가볍게 대결하여 승패를 가른다는 것은 단형우에게 즐거운 경험이었다.
최근 단형우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즐거웠다.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것도 즐거웠고, 자신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는 것도 즐거웠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걸어간다는 것도 너무나 즐거웠다. 새로운 감정을 하나하나 익혀 나가는 것도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고맙네.”
당호관의 말에 단형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한 곳으로 걸어갔다.
최근에는 무공 수련 때문에 상당히 넓은 공터가 있는 곳에서 노숙을 했다. 덕분에 대련 장소는 따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단형우가 적당히 자리를 잡고 서자, 당호관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단형우와 마주보고 섰다. 그리고 대련이 시작하기 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내가 공격할 테니 자네가 한 번 막아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