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36
표국을 재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형표의 많은 경험과 인맥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일을 해나갈 수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한 것은 전각을 새로 올리는 일이었다. 제대로 쓸 수 있는 건물이 없으니 표국주(驃局主)의 집무실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최소한 국주의 집무시과, 표사와 쟁자수들이 쉴 수 잇는 공간, 그리고 식당은 있어야 했다.
형표는 그것들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완성시켰다. 그리고 남은 공간은 천천히 건물을 지어 나가기로 했다. 표국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건물보다는 일이 필요했다.
처음 표국의 기반을 다지는 동안 남기로 한 쟁자수들은 할 일이 없었다. 그들이 그동안 한 일은 단형우와 함께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었다.
비록 이들이 검격(劍擊)에 뇌기(雷氣)를 실을 수 있다지만 그것은 단형우가 근처에 있을 때뿐이었다. 단형우가 없는 곳에서는 그렇게 쉽게 뇌기를 뿌릴 수 없었다.
만일 단형우가 그들의 손에 기운을 심어준다면 홀로 떨어져서도 뇌기를 쓸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형우 옆에서 수련을 해야 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당호관조차 천뢰(千雷)를 쓰려면 단형우 옆에 있어야 했다.
당호관 역시 하남표국에 와서 다른 쟁자수들과 함께 수련을 했다.
덕분에 새로운 당가의 분가를 만드는 일은 당문영이 도맡아서 해야 했다. 비록 아직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비봉(飛鳳)이라는 별호는 괜히 주는 것이 아니라는 듯 척척 일을 처리해 나갔다.
형표나 조설연 역시 함께 수련을 하고 싶었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문혜 역시 매일 하남표국에 들러 함께 무공을 수련했다.
물론 우문혜의 목적은 무공 보다는 다른 데 있었지만.
우문세가는 소문에 걸맞은 금력을 가지고 있었다.
천하 상권의 상붐지 일을 장악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허창에도 우문세가의 지단(枝團)이 있었다. 물론 규모는 하남표국보다 훨씬 컸다.
허창의 상권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의 규모였고, 그 규모에 걸맞게 장원의 크기도 어마어마했다.
우문혜는 그곳에 머물며 매일 하남표국에 가서 단형우와 함께 무공을 수련했다.
수련을 할 때마다 매번 느껴지는 단형우의 강함에 그녀의 마음이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치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단형우의 마음에 또 빠져 들어갔다.
덕분에 알게 모르게 우문세가가 하남표국의 재건에 도움이 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맞물리며 하남표국이 다시 비상할 여건이 만들어졌다.
천기자의 장보도가 나타난 이후부터 무림맹은 항상 바빴다. 가장 말단에 있는 시종들까지도 항상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연일 손님이 넘쳐났고, 근처의 소문도 넘쳐났다. 그 소문을 잠재우느라 모두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또 새로운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맹주의 집무실에서 파산검 독고운 장로들과 각 단의 단주들을 불러 모아놓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무림맹에는 모두 다섯 개의 단이 있었고, 각각 고유한 역할을 맡아 무림맹을 지탱해 나갔다.
청룡단과 백호단은 무림맹의 무력(武力)을 대표했다. 청룡단은 외부에 무슨 일이 있을 대 무력을 행사하는 단체였고, 백호단은 무림맹의 수비를 담당하는 단체였다.
그리고 주작단은 무림맹이 눈과 귀였다. 각종 정보 수집부터 소문의 이용까지 다양한 일을 해 나가는 단체였다.
현무단은 비밀스런 임무를 수행하는 단체였는데, 맹주의 명만 수행하는 직속의 무력부대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승룡단이 있었다.
무림맹을 구성하는 문파와 세가의 후기지수들로 구성된 단체로, 앞으로 무림맹을 이끌어 나갈 인재를 키우고 경험을 쌓게 하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 다섯 단의 단주들과 무림맹의 장로 여덟이 모여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최근 무림에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소. 얼마 전에 화가장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소.”
맹주의 말에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대체 누가……”
사실 화가장은 그리 잘 알려진 문파는 아니었다. 그런데 멸문한 뒤에 조사를 해 보니 그들이 예전 벽력문의 후손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곳곳에 화탄의 흔적이 있는 걸로 봐서 화가장이 벽력문의 후손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하오.”
맹주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흉수들은 아마 화가장에 있던 벽력탄을 노린 것 같소.”
“끄응.”
“역시……!”
장로들의 안색이 더욱 침중해졌다. 벽력탄은 그만큼 무서운 물건이었다.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오?”
장로 중 하나가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화산파의 장로인 옥허자(玉虛子)였다.
옥허자는 좌중의 시선을 받자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만일 그 흉수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벽력탄을 이용한다면 무림의 재앙이 될 것이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하지 않겠소이까?”
옥허자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결국 맹주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일이 참으로 어렵게 되어 가고 있소. 사실 문제가 있는 사항은 그게 다가 아니오.”
“그게 다가 아니라면……”
맹주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곳곳에서 문파들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소. 대부분 최근 십 년 새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곳이오. 얼마 전에 사천 쪽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그곳에 있던 흑사방이라는 문파가 괴멸당했다고 하오.”
“흑사방이라……”
장로들은 약간 생소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흑사방이 사천에서는 유명할지 몰라도 그 명성이 무림맹을 건드릴 정도는 아니었다.
화가장과는 조금 다른 경우였다. 화가장은 벽력문의 후손이라는 것 때문에 관심을 받았지만 흑사방은 전혀 그렇지 못했으니까.
“그 흑사방이라는 곳이 불과 얼마 전까지 당가는 물론이고 사천 지역 전체에 있는 문파들을 압박했다고 하면 어떻겠소?”
“헉! 그런 말도 안 되는!”
누군가의 입에서 경악어린 외침이 튀어나왔다. 무례한 말이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만큼 맹주의 말이 주는 파장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당가를 압박할 정도였단 말이오?”
“압박 정도가 아니라 몰아붙였다고 하는 것이 맞을 거요.”‘
맹주의 말은 점입가경이었다.
“그, 그럼 대체 누가 그 대단한 곳을 멸문시켰다는 말이오? 아…..! 당가에서!”
장로 중 하나가 추측해서 결론을 내리자 맹주가 고개를 저었다.
“하남표국이라는 곳을 혹시 알고 있소?”
“하남표국?”
장로들 역시 하남표국이야 잘 알고 있었다. 천하오대표국 중 하나이고, 최근 몰락한 곳 아닌가.
조가장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라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곳이었다.
“그 하남표국이 뭘 어쨌다는 겁니까?”
몸이 달아오른 승룡단주 하원후가 나서서 물었다.
맹주는 그런 하원후를 슬쩍 쳐다봤다. 눈에서는 이채가 흘렀다. 하원후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겨났다.
“하나묘국이 흑사방을 무너뜨렸네.”
그 말이 가져온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대체 몰락한 하남표국이 어떻게 흑사방 같은 강력한 문파를 무너뜨렸단 말인가.
“물론 그 소문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네. 아마 당가와 사천의 다른 문파들이 큰 역할을 했겠지. 그래도 어쨌든 하남표국이 관련되어 있음은 분명하다네.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흑사방에는 진천뢰가 있었다고 했지.”
“진천뢰!”
장로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외침이었다. 그만큼 진천뢰라는 이름이 주는 파장은 벽력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대, 대체 그 마물을 누가 다시 만들어 냈단 말이오! 서, 설마 화가장에서……!”
충분히 그렇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화가장에서 결국 진천뢰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노린 흉수가 화가장은 지워버리고 그서을 차지한 것이다.
벽력탄 뿐이었다면 조금 모자라지만 그것이 진천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나만 있어도 웬만한 규모의 문파 정도는 순식간에 부숴 버릴 수 있는 화탄 아닌가.
“아무튼 복잡한 일이 여러 가지 얽혀 있소. 이 일에는 어쩌면 당가도 섞여 있을 수 있소.”
맹주의 말에 좌중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들은 내심 맹주의 정보력에 놀라고 있었다. 어찌 이런 다양한 정볼르 가지고 있단 말인가. 어쩌면 아직 내놓지 않은 정보가 더 있을 수 있었다.
“그 당가에서 비봉(飛鳳)이 나왔소.”
좌중은 여전히 조용했다. 비봉은 백 년에 한 명 날까 말까 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기재였다. 당가에서도 소중히 여기는 그 비봉이 갑자기 강호에 나왔다는 것은 뭔가 목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 비봉이 허창에 머물고 있소. 정확히는 조가장이 있던 곳이오.”
“그, 그렇다면……”
“뭔가가 있다는 뜻이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맹렬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뇌가 녹아 버릴 정도로 머리를 굴려댔다.
화가장이 멸문했고, 당가를 핍박하던 흑사방이 멸문했다. 그리고 당가가 허창으로 왔다. 허창에는 하남표국이 있었다. 비록 몰랐했지만.
“아, 그리고 하남표국이 다시 문을 열었소.”
맹주의 말은 모두의 머리에 확신을 심어 주었다. 하남표국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그것도 무림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대단한 뭔가가.
무영은 장막 앞에서 깊이 부복해 있었다. 여전히 긴장은 하고 있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오늘은 명확한 성과가 있었다.
이내 장막 안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더없이 인자하지만 더없이 무서운 목소리였다.
“수고했다. 아주 깔끔하게 처리?구나.”
“감사합니다.”
혈마자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그놈들의 흔적은 아직 못 찾았느냐?”
혈마자의 질문에 무영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서당에서 내린 결론이 조금 이상한지라 다시 한 번 확인라하고 지시했습니다.”
“그래? 뭐가 그리 이상하더냐?”
“조서당의 결론으로는 천기자가 키운 자는 하나라고 했습니다.”
“하나? 그럴 리가 있느냐. 분명히 백 명을 데려갔거늘.”
“그래서 다시 조사하라 지시했습니다.”
혈마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서당의 정점에 있는 사람은 무영이지만 실질적으로 조서당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비영(飛影)과 암영(暗影)이었다. 그들은 결코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판단했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 조서당에서 왜 그런 결론을 내렸다더냐?”
무영은 지체 않고 대답했다.
“형산에서부터 이어진 흔적이 하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천기자의 무덤에서 기어 나온 놈은 그놈 하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분명합니다. 흔적 따위야 얼마든지 지울 수 있지 않습니까?”
무영의 말에 혈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흔적쯤이야 얼마든지 지울 수 있지. 그래도 난 비영이나 암영의 능력을 믿어주고 싶구나. 만일 정말로 하나라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나라면 신경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혼자서 무엇을 어찌 하겠습니까. 신경 써야 할 것은 무림맹 쪽입니다.”
혈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무림맹이 중요하지. 그럼 일단 조단(鳥團)은 그들의 흔적을 계속 찾게 하고 서단(鼠團)은 무리맹 쪽에서 신경을 쓰도록 지시를 내려라.”
“존명!”
무영이 힘차게 대답하고 물러갔다. 무영이 연기처럼 사라지자 혈마자의 음산한 목소리가 그 자리를 메웠다.
“고작 한 명이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거 너무 일이 쉬워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혈마자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눈을 떴다.
“혈영.”
혈마자의 부름에 장막 앞에 혈의를 입은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의 눈에서는 핏빛 광망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마영(魔影)은 요즘 뭘 하고 있느냐?”
“하남(河南) 어딘가에서 술독에 빠져 있습니다.”
“허허허, 그놈답군. 그래, 마영대(魔影隊)는 어쩌고?”
“마영대가 그 녀석 주변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혈영의 대답에 혈마자가 빙긋 웃었다.
“그렇지. 그놈들은 그런 놈들이었지. 참으로 심심하겠어. 그렇지 않은가?”
혈마자의 말에 혈영이 허리를 숙였다.
“허창으로 보내겠습니다.”
혈영의 대답에 혈마자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 바로 혈영이었다.
대답을 마친 혈영의 몸이 꺼지듯 사라졌다.
혈마자는 혈영이 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허창이면 그 아이가 지금 있는 곳이로군.
형표가 다급히 집무실로 들어섰다 .현재 조설연이 쓰고 있는 집무실은 항상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었다 누구나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형표는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기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가씨,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형표의 말에 조설연이 반색했다.
“정말요? 첫 의뢰네요.”
조설연이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자 형표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의뢰자는 금자항입니다”
금자항은 조설연도 익히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하남에서만큼은 꽤 유명한 이름으로 상인 출신의 무림인이었다. 상인 출신답게 그쪽으로 머리를 잘 굴려 커다란 주르를 몇 개나 가진 부호였다.
“의뢰 내용은요?”
“그의 딸인 금유화를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까지 호위하는 일입니다.”
형표의 말에 조설연이 입을 다물었다. 사람을 호위하며 목적지까지 데려가는 것 역시 표국이 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였지만 현재 하남표국의 상황은 그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왜 그들이 이런 의뢰를 했는지 조사 하셨겠죠?”
조설연의 날카로운 질문에 형표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를 조금 이용하려는 속셈인 듯합니다. 금자항이 어떤 단체에 속해 있는지 들어 보셨습니까?”
조설연이 고개를 저었다. 형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얘기를 꺼냈다.
“금자항은 황금련(黃金聯)이라는 곳에 속해 있습니다”
“황금련이요?”
“상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최근 이 단체가 사도련과 반목하고 있습니다. 반목이라기보다는 사도련이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목적은 당연히 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