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4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었다. 소리라도 지르기 전에 죽여버려야만 했다.
쉬각!
날카로운 검이 단형우의 목을 양단했다. 검을 휘두른 사내는 자신의 검이 단형우의 목을 정확히 양단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놀라 눈을 크게 떠야만 했다. 단형우의 신형이 마치 안개처럼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이형환위(以形換位)?”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움직이었다. 그리고 사내는 눈앞에 떨어지는 벼락을 보았다.
번쩍!
단형우는 검을 허리춤에 매달았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토막난 사람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마치 불로 지진 듯한 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시 평화로워졌군.”
단형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이런 자리는 좋지 않았다. 그 지옥에서도 휴식만큼은 깨끗한 곳에서 했다. 단형우의 몸이 또 주변에 녹아들어갔다.
한참을 떨어진 곳에 도착한 단형우가 다시 움직임을 멈추고 서 있었다.
가만히 팔을 내리고 서 있는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얼핏 보면 마치 자연의 일부분처럼 보일 정도였다.
“소란스럽군.”
단형우는 고개를 돌려 한쪽을 쳐다봤다. 그곳은 절벽이 있는 곳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단형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한다면.
단형우는 조설연을 살폈다. 아직까지는 멀쩡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리 몸이 상할 일은 없을 듯했다.
“크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목숨 하나가 또 쓰러졌다. 벌써 대부분의 녹림도들은 바닥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사도련 무사들은 크고 작은 상처투성이였다.
너무도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결과가 이렇게 된 데에는 현무단의 힘이 컸다.
사도련과 녹림의 뒤를 급습한 현무단 덕분에 그들은 제대로 진형도 갖추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으아아아! 대체 왜 오지 않는 것이냐!”
산적들을 이끌고 온 사내는 절벽 앞에서 괴성을 지르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도를 휘둘러 댔다.
그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함께 치기로 한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그들 때문에 이 일에 끼어들었고, 그들 때문에 이 일이 성공할 거라 믿었는데 그들이 오지 않으니 이런 피해를 입는 것도 당연했다.
사내의 기세에 청룡단 무사 몇이 단숨에 쓰러졌다. 독고운은 그 모습을 보며 몸을 날려 사내 앞에 섰다.
“슬슬 끝을 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독고운의 말에 사내가 크게 웃었다.
“으하하핫! 웃기지 마라!”
사내가 달려들었고, 독고운이 무거운 도를 들어올렸다.
콰과광!
거센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검기 조각이 비산했다. 주변에 있던 무사들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콰과광!
펑! 펑!
연달아 울리는 폭음과 함께 산적 우두머리의 목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일개 산적두목이라 한기에는 대단한 무공을 가졌지만 파산도 독고운을 상대하기에는 한참이나 멀었다.
사내의 목이 떨어지자 녹림과 사도련의 잔당이 결국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무단이 그 뒤를 쫓았다.
“맹주님, 고생하셨습니다.”
제갈중천이 다가와 말하자 독고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한 게 뭐가 있는가. 그나저나 별 피해는 없지?”
“예, 생각보다 피해가 적습니다. 역시 현무단을 은민히 이끌고 온 것이 주효했습니다.”
독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천기자의 비밀병기를 볼 시간이로군.”
하남표국(下南驃局)
단형우는 눈을 번쩍 떴다.
“천기자?”
방금 독고운이 한 말이 귀에 스며들어 뇌리에 틀어박혔다. 분명히 천기자라는 단어를 들었다. 단형우의 신형이 또다시 녹아들었다.
단형우가 다시 나타난 곳은 절벽 앞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벌썩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끝낸 무림맹 무사들은 벌써 절벽 뒤로 이동한 후였다.
단형우는 천천히 걸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 저 사람은?”
단형우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목소리는 상당히 귀에 익었다. 단형우의 시선이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조설연이 기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단형우게로 모였다.
“여기요! 여기!”
조설연은 손까지 흔들며 단형우를 불렀다. 단형우는 그녀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잠시 멈칫거리다 그녀를 향해 걸아갔다.
무림맹 무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취운루 일층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단형우를 단번에 알아봤다.
“여긴 웬일이세요? 설마 쫓아오신 건 아니죠?”
“천기자가 여기 있나?”
“예? 천기자요?”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쫓아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이 스슨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마철은 사태가 심각해짐을 느끼고 급히 나섰다.
“대체 천기자는 왜 여기서 찾는 건가? 이미 십 년 전에 죽고 없어진 사람을 말일세.”
사마철의 말에 단형우의 신형이 잠시 흔들렸다.
“죽……었다고?”
단형우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순식간에 삶의 목표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왜 그를 찾는지는 모르瑁嗤?그는 여기 없네.”
단형우는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몸에서 허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그러한 기운이 흘러나오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그저 기운에 반응해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몸이 나른해지고,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어쨌든 그로 인해 무림맹 무사들이 가지고 있던 적대감마저 사라져 버렸다.
“괘, 괜찮으세요?”
조설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제야 단형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허무지기(虛無之氣)가 멈췄다. 사람들도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단형우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설연이 다행이라는 듯 환하게 미소 지었다.
단형우는 조설연의 미소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자 조설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돌렸다.
단형우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천기자가 죽었다니 일단 그에 관한 것은 미련 없이 버려야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칼로 끊듯 할 수 없겠지만 단형우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그들을 찾아봐야 하는 건가.”
단형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혼잣말을 들은 조설연이 눈을 빛냈다.
“찾는 사람이 있는 건가요?”
조설연이 단형우에게 한 발 더 다가가며 물었다.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설연이 사마철과 조인을 쳐다봤다. 도와달라는 듯 눈을 반짝이며.
사마철과 조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조설연의 저런 귀여운 표정을 보면서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 저 반짝이는 눈에서 눈물이라도 난다면 그 안타까움을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표국에서 한 번 일해 보겠나?”
사마철의 말에 단형우가 그를 물그러미 쳐다봤다. 그것이 사마철이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하지만 단형우는 표국이 뭔지도 몰랐다.
“표국?”
단형우는 표정변화가 워낙 없었기에 의중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사마철은 기대에 가득 찬 누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조설연을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단형우를 쳐다봤다.
“표국에서 일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드나?”
사마철의 말에 조설연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그냥 표국도 아니고 하남표국이라면 아무나 함부로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님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표국이 뭐지?”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살풋 웃었다. 하지만 단형우의 표정이 여전히 변함없자 그게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표국이라는 건요.”
조설연은 최대한 친절하게 단형우에게 표국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조설연의 설명을 들은 단형우는 그제야 표국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단형우는 상당히 머리가 뛰어난 편이었다. 오성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천기자에게 선택을 받았을 리도 없었다.
단형우는 표국에 대해 생각을 했다.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비록 세상에 다시 나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이 찾고자하는 사람들을 찾으려면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세상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단형우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
단형우의 대답에 조설연이 마치 아이처럼 기뻐했다.
“잘 됐네요, 아마 찾으시는 분들을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돈도 벌 수 있고요, 후훗.”
조설연이 단형울르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단형우는 그런 조설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럴 때 해야 할 말이 듯한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마워요, 제가 하자는 대로 해 주셔서.”
조설연의 말에 단형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바로 그 말이었다. 자신이 잊고 있었던 말. 단형우의 눈가가 살짝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주루에서도 그 말을 했어야 했다.
“고맙다.”
단형우의 무뚝뚝한 말에 조설연이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 분위기는 일방적으로 조설연이 만들어 내고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했다.
특히 남궁진과 팽철영은 얼굴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심하게 기분이 나빴다.
현재 조설연 일행은 다른 무림맹 무사들과 약간 떨어져 있었다. 조설연이 원했기 때문이다. 조설연은 과한 친절을 베푸는 남궁진과 팽철영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절벽 뒤에 있는 비밀통로로 들어간 인원은 십여 명이었다. 맹주 독고운과 군사 제갈중천, 그리고 청룡단과 승룡단의 단주와 청룡단에서 뽑은 무사 몇 명이었다.
현무단은 절벽 주변에 숨어들어 또 다른 침입자가 없는지 경계 중이었다.
두 단의 단주가 없으니 부단주들이 남은 사람들을 통솔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남궁진과 팽철영은 한동안 조설연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어쨌든 맡은 바 소임은 다 해야했기 때문이다.
헌데 대충 정리가 끝나고 조금 한가해지니 조설연 옆에 이상한 놈이 붙어 있었다. 아무리 바빴다고 하지만 누군가 이곳에 왔는데 자신들이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 문제였다.
남궁진과 팽철영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서로를 한 번 쳐다봤다. 그리고 살짝 긴장하며 조설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조 소저, 이분은 누구십니까?
조설연은 두 사내의 눈에 서린 의심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이분은……”
조설연은 그제야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이토록 호감이 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조설연이 단형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단형우는 조설연을 뚤허이제 쳐다보며 대답했다.
“단형우.”
남궁진과 팽철영은 어이가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내와 어찌 이러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사도련, 녹림 무리와 치열하게 싸운 것이 조금 전이었다.
남궁진과 팽철영은 유심히 단형우를 살폈다. 특별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보면 검술을 조금 익힌 듯싶었다.
그나마도 대단치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검사라면 의당 가지고 있어야 할 예기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남궁진은 단형우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보고 눈을 빛냈다. 사람은 별 볼일 없었지만 검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현재 남궁진의 나이가 스물이었다.
태어나 걸어 다닐 수 있을 때부터 검을 만져왔으니 검과 함께 한 세월이 나이와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당연히 명검을 보는 안목도 어느 정도 있었다.
‘무슨 검의 예기(銳氣)가……’
근처에만 다가가도 무엇이든 갈라 버릴 듯한 예기가 검에 어려 있었다. 남궁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집도 없이 맨 검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저 정도 예기라면 담아낼 수 있는 검집을 찾기 어려울 터였다. 구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돈이 필요할 것이다. 행색을 보아하니 돈이 궁해 보였다.
하지만 남궁진이라면 달랐다. 남궁진은 저 검에 걸맞은 집을 구할 능력이 있었다.
남궁진이 슬쩍 팽철영의 눈치를 보니 아직 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남궁진은 단형우를 똑바로 노려봤다. 어쨌든 수상한 자임에는 분명했고, 더불어 좋은 검까지 가지고 있으니 이유는 충분했다.
“아무래도 수상하오. 대체 이 깊은 산중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남궁진의 말에 팽철영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아마 사도련이나 녹림의 잔당이겠지.”
“그럴 리 없어요!”
사도련이나 녹림의 잔당이라는 말에 조설연이 크게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남궁진과 팽철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 소저는 너무 마음이 여리셔서 저런 자에게 물드시면 안 됩니다. 저자는 수상한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시면 조 소저도 아실 수 있지 않습니까.”
조설연은 단형우 앞으로 한 발 나서서 남궁진과 팽철영을 막아섰다. 두 사람이 마치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단형우를 노려봤기 때문이었다.
조설연이 보기에도 단형우는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히지 ㅇ낳은 낭인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낭인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존재감이 없었다.
낭인들은 보통 자신의 기세나 기운을 다듬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게 마련인데 단형우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허리춤에 매달린 검만 아니었다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장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단형우는 그런 와중에도 전혀 변함없는 표정과 자세로 서 있었다.
남궁진과 팽철영이 기세를 내뿜었지만 단형우가 느끼기에는 그저 평화로울 뿐이었다.
“조 소저, 비키시오.”
남궁진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조설연은 비킬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비키면 단형우가 크게 다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찌 정황도 들어보지 않고 그렇게 몰아L이시나요? 우선 단 소협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순서 아닌가요?”
조설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진과 팽철영은 그녀가 단형우를 비호한다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했다. 두 사람은 일단 몸을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조설연이 앞으로 막고 있었지만 남궁진과 팽철영은 세가 내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승룡단의 부단주는 가문의 위세만으로 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