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41
아직 객잔 밖에 있던 사람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있었다.
녹림도 하나가 용기를 끌어올려 공포심을 누르고 천천히 검왕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검왕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눈만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녹림도는 조금 더 용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품에 있던 작은 비도(飛刀)를 꺼내 검왕을 향해 던졌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힘을 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목표를 향해 날아갔따.
피슉!
비도는 검왕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가 튀었지만 여전히 검왕은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그제야 녹림도들과 사도련 무사들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무서운 검왕이 끝난 것이다.
“죽여라!”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때까지 공포로 억눌려 있던 감정이 터져 나오며 백 명이나 되는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검왕을 난자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맑은 벼락 한 줄기가 떨어졌다.
가장 앞에서 달려가던 녹림도가 둘로 갈라졌고, 장내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으으으……!”
모두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검왕은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들이 달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으아아아!”
누군가가 소리치며 도망쳤다. 그리고 그서을 시작으로 남아 있던 백 명의 사내들도 뒤로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그들의 뇌리에는 검왕에 대한 공포만 남아 있었다.
검왕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검왕의 눈초리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검왕은 주화입마 초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무리해서 내력을 끌어다 쓴 대가였다.
단형우는 그런 검왕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손을 들어 정수리에 갖다 댔다.
“쿨럭!”
짜릿한 뭔가가 검왕의 온몸을 관통했고, 그 순간 검왕이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허억! 허억!”
검왕은 그제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검왕의 얼굴은 그 잠시 새에 수 십년은 늙은 듯 했다.
“허억! 대, 대체 넌 누구냐…….”
그것이 정신을 잃기 전 검왕의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마영은 흥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멋지군! 검왕이라니!”
마영은 마영대를 물러나게 했다. 오늘은 더 이상 건드릴 필요 없었다. 검왕이 부상을 입지 않았는가.
검왕이 부상을 모두 회복하고 난 후에 싸울 생각이었다. 검왕의 등장은 마영의 승부욕을 한껏 자극했다.
“강해 보이기에 누군가 했더니 설마 검왕일 줄이야. 검왕이라면 우리가 나선 보람이 있지. 큭큭큭.”
마영이 기분 좋게 웃었다. 사실 진짜 목표는 검왕이 아니라 단형우였지만 지금의 마영에게는 그런 사소한 것은 아무래도 좋앗다. 어차피 모조리 죽여 버리면 그만이었다.
마영은 너무 검왕에 집중한 나머지 단형우가 싸우는 모습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덕분에 단형우는 검왕의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마영의 뇌리는 온통 검왕으로 채워졌다.
마영과 마영대가 객잔에서 철수해 소현 곳곳에 스며들었다. 앞으로 검왕과 그 주변의 움직임을 하나도 빠짐 없이 살펴야 했다.
남궁한은 소현이라는 마을에서 벌어진 참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화월루에서 본 그 충격적인 광경에 이어 길거리까지 이어진 시체의 행렬에는 아무리 그라도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검왕을 만났다.
소현객잔(簫縣客棧). 소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객잔이자, 검왕 일행이 머물고 있는 객잔이었다. 사도련과 녹림의 공격으로 여기저기 부서지고 망가지긴 햇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현 제일의 객잔이었다.
소현객잔의 주인과 종업원들은 일이 있던 날 모두 몸을 피했다가 모든 일이 마무리 된 후에야 다시 돌아왔다.
덕분에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객잔도 무리없이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객잔 후원을 통째로 빌린 검왕 일행은 벌써 이틀 째 머물고 있었다. 기절한 검왕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침상에 누운 검왕을 중심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었는데, 두 명의 의원과, 남궁한을 비롯한 남궁세가 사람들, 그리고 금유활르 비롯한 검왕 일행이었다.
단형우는 여전히 한쪽에 서 있었고, 그 옆에 종칠이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어떤가요?”
금유화의 질문에 맥을 짚어 보던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젊은 의원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별것 아닙니다. 그저 기가 조금 쇠하신 것뿐입니다. 내력이 고갈될 정도로 끌어 쓰셔서 아마 원기가 조금 상하신 모양입니다”
의원의 말에 금유화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원기가 상했다면 내공에 손실이 있지 않겠는가.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지어드리는 약을 며칠만 잘 드시면서 푹 쉬시면 금세 원기가 회복될 것입니다.”
의원의 말에 금유화가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남궁한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남궁 공자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남궁가의 의원을 소개해 주시다니……”
이곳에 있는 두 의원은 남궁가를 담당하다시피 하는 의원들이었다. 당연히 무공에 대해서도 해박하고, 내공이나 기의 흐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인들을 치료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의원들이었다.
“무슨 말씀을. 검왕 어르신이라면 검을 익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목표와도 같은 분 아닙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남궁한의 말에 금유화가 다시 한 번 감탄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무사히 한 고비를 넘겼다. 아마 앞으로 다시 사도련이 던벼들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도련 본단이 무너졌을 수도 있었다.
비록 녹림과 함께였다지만 무려 삼백이나 되는 고수를 동원했다 이런 시기에 본단을 공격당한다면 회생하기 어려울 정도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남궁한은 금유화로부터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사도련이 그들을 죽이기 위해 습격했다는 말에 남궁한이 분개했다.
“후안무치한 놈들 같으니. 저A 가만둬선 안 될 놈들입니다. 무림맹에선는 대체 왜 그놈들을 그냥 보기만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래도 이제는 그들이 더 이상 설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야지요. 어쨌든 무림맹에서도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이렇게나 압도하는 상황인데 가만히 있을리 없지요.”
남궁한의 말대로 무림맹의 힘은 사도련을 압도한다. 사실 그렇게 힘의 균형이 무너진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리고 지난 번 형산 사태가 결정타가 되어 그 간극은 영원이 메울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하지만 무림맹은 굳이 나서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다른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 각 지역에서 문파간의 다툼이 잦고, 여러 가지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따. 그리고 각종 소문으로 시달려야 했다.
사건에 휘말린 문파들 중에는 무림맹과 관련된 문파들도 상당히 많았기 대문에 무림맹으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덕분에 무림맹 사람들은 대부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런 와중이니 사도련이 별다른 일만 벌이지 않는다면 굳이 손댈 생각이 없었던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번에 거창하게 일을 벌였으니 무림맹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황금련보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늦겠지만.
남궁한과 금유화가 무림의 정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검왕이 눈을 떴다.
눈을 뜬 검왕은 잠시 누운 상태로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순식간에 전시을 휘돈 기운(氣運)이 검왕의 근육과 세포들을 깨워 나갔다.
검왕이 몸을 일으켰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검왕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해일 같은 기세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검왕이 몸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기운을 돌리기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못 보던 얼굴들이 늘었군.”
검왕의 말에 재빨리 남궁한이 나서서 인사했다.
“무림말학 남궁한이 검왕께 인사드립니다”
남궁한의 공손한 인사는 검왕의 기분을 살짝 누그러뜨렸다. 검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한의 인사를 받았다.
“남궁학. 그 친구는 잘 있나?”
남궁한이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할아버님께서는 여전하십니다.”
“그렇군. 그 친구도 이제 많이 늙었겠어.”
검왕이 그렇게 중얼거린 후,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금유화를 쳐다봤다.
“너에게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렇게 무사하니 됐다. 앞으로는 좀 더 신경을 써서 지켜 주마.”
검왕의 다정한 말에 금유화는 가믓이 따뜻해졌따.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져 급히 고개를 숙인 금유화가 공손히 대답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그래, 그래.”
검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방 한쪽에 서 있는 단형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네.”
검왕의 말에 종칠이 순식간에 앞으로 달려와 꼿꼿하게 섰다.
“옛!”
종칠의 날렵한 움직임에 검왕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사실 단형우를 부른 것인데 종칠이 달려왔으니 할 말이 있을리 없었다.
“자네도 무사했군.”
“모두 검왕 어르신 덕분입니다!”
종칠의 우렁찬 대답에 검왕이 슬쩍 웃었다. 어쨌든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그래. 그건 그렇고, 거기 서 있는 자네 말일세.”
검왕이 시선이 단형우에게로 향했다. 단형우와 눈이 마주친 검왕이 씨익 웃었다.
“정체가 뭔가?”
검왕의 질문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울려 퍼졌다. 단형우는 그런 검왕을 보며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남궁한이 앞으로 나섰다.
“무슨 무례인가. 어르신께서 묻는데 대답을 하지 않다니. 어서 예를 갖추게.”
남궁한의 말에 단형우가 그를 한 번 힐끗 쳐다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잠시 더 시간을 끈 단형우가 결국 입을 열었다.
“쟁자수.”
단형우의 대답에 사람들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검왕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쟁자수? 그러니까 쟁자수란 말이지? 그 수많은 사도련 고수들을 두 쪽 내고, 내 목숨을 구한 자네가 고작 쟁자수라 이건가?”
검왕이 말에 남궁한이 경악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검왕을 구했다니.
“난 아무래도 자네에 대해서 뭔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 어떤가? 나랑 한 번 싸워 볼 텐가?”
검왕의 말에 방 안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만일 방안에 있는 다른 사람이 검왕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죽을 텐가?’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단형우에게로 향했다. 단형우는 검왕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싸우자는 얘기는 죽여도 된다는 뜻인가?”
단형우의 말에 검왕이 크게 웃었다.
“으허허허헛!”
한참을 웃던 검왕이 만면에 웃음을 가득 안고 입을 열었다.
“과연! 내 생각이 틀린 게 아니었군. 죽여도 된다는 뜻이냐고? 천하의 누가 이 검왕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단 말이렷다!”
검왕의 얼굴은 말과는 달리 기쁨이 넘쳐흘렀다.
“사실 죽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손녀딸 얼굴은 한 번 봐야 할 것 아닌가! 우리 죽이지는 말기로 하지. 허허허헛!”
검왕이 크게 웃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경악으로 인해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천기자가 남긴 것들
넓은 뜰, 둘이서 대련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넓었지만 그 사람이 검왕이라면 그리 넓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검왕은 단형우와 마주 서서 검을 들어올렸다. 단형우의 무심한 눈빛이 새삼 검왕의 뇌리를 아프게 찔렀다. 무서웠다. 무서운 눈이었다.
“어디 그 벼락같은 검을 한 번 구경해 볼까?”
검왕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단형우의 신형이 검왕 앞에 나타났다.
구경하는 사람 모두 그 귀신같은 보법에 경악을 금치 못햇다. 하지만 검왕은 침착하게 검을 움직였다.
번쩍!
벼락이 떨어졌다.
쩌어엉!
그리고 그 벼락이 중간에 막혀 버렸다. 천뢰가 막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공격을 막은 검왕의 눈은 경악에 경악을 담아 찢어질 듯 커져갔다.
쩌저저적!
단형우의 검이 비틀거리며 검왕의 검을 파고들었다.
쩡!
결국 검왕의 검이 박살났고, 단형우의 검이 검왕의 정수리 한 치 앞에서 멈췄다. 검왕은 멍한 눈으로 단형우와 단혀우가 들고 있는 검을 쳐다봤다.
이것은 검이 좋아서 생겨난 일이 절대 아니었다. 검의 날카로움으로 이득을 보는 경지는 가마득히 넘어섰다. 검왕의 검에는 그의 강력한 기가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에 절대 부러질 수 없었다. 하지만 부러졌다.
검왕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빠르게 해 보지.”
단형우의 말에 검왕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단형우가 손을 뻗자, 남궁세가 무사 중 하나가 들고 있던 검이 소리 없이 빠져 나와 단형우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찌나 빠르고 은밀했는지 단형우의 손이 쥐고 있는 검을 보기 전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사람들의 입이 또 한 치 벌어졌다.
단형우가 검을 검왕에게 던졌다. ㄱ검왕은 그것을 받아들며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일부러 느리게 했단 말인가! 대체 왜……!’
“다시 한다.”
단형우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그 비밀을 파헤쳐 보리라 결심하면서.
번쩍!
벼락이 떨어졌다.
쩡!
단형우의 검은 검왕의 검을 부수고 정수리 한 치 위에 멈췄다. 검왕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검왕은 문득 부러진 두 개의 검을 비교해 봤다. 비슷한 모양으로 부러졌다. 그리고 잘린 자리가 마치뇌전을 그린 듯 구불구불했따.
검왕의 뇌리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헛! 서, 설마!”
단형우는 검왕이 외침을 뒤로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뜰에 남은 사람들은 너무나 경악한 나머지 일각이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멍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