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47
“아무튼 감사합니다. 피곤하실 텐데 쉬도록 하세요.”
조설연의 말에 두 사람이 일어나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이제 조설연은 어엿한 표국의 국주가 되어 있었다. 그들도 감히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표사의 안내로 숙소에 도착한 팽철영과 남궁진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별다른 꿍꿍이 없이 그냥 순수하게 도와줬으면 좋았을텐데. 안 그런가?”
팽철영의 말에 남궁진이 살짝 웃었다.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닌가. 우리야 천기자의 비동에 대해 조사할 수 있어서 좋ㅇ고, 조 소저야 승룡단 무사들이 하남표국 일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테니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지만, 난 왠지 찜찜하네.”
사실 두 사람이 받은 명은 하남표국의 일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하남에 있는 천중산(天中山)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맹주의 밀명이었다. 천중산에 있는 천기자이 비동을 찾아내라는. 그리고 그를 위해 승룡단 전원이 나섰다. 하남표국을 도와준다는 명목을 내세워서.
외부의 눈에 띄지 않게 일을 처리하려는 계획이었다. 천기자의 비동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무림에 알려지면 크나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어쨌든 다 무림을 위해서 하는 일일세. 고민하지 말고 푹 쉬게.”
남궁진이 그렇게 말하고 침상을 몸을 뉘었다. 앞으로 올 승룡단 무사들을 생각해서 그들의 숙소는 상당히 큰 곳으로 정해 주었다.
덕분에 방도 많았고, 침상도 많았다. 팽철영은 혼자 생각하고 싶어서 남궁진과 따로 방을 썼다.
그리고 며칠 후, 승룡단주 하원후가 이끄는 승룡단 무사들이 하남표국에 들어섰다.
“확실히 수적들이라 그런지 배 모는 솜씨가 일품이군.”
검왕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배를 몰아준 공로로 남아 있는 염왕채 수적들은 죽이지 않았다.
단지 단전을 폐해 다시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했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죽이는 것보다 더한 처사였지만 염왕채 수적들은 죽지 않은 것으로 만족했다.
어쨌든 수적들 덕분에 일정을 훨씬 앞당길 수 있었다. 이제 마차를 구해 조금만 더 가면 소주였다.
종칠은 금세 마차를 구해 왔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꽤 좋은 마차였다. 종칠이 구해 온 마차에 금유화가 오르고, 검왕과 단형우가 지붕에 올라가자, 종칠이 마차를 출발시켰다.
마차가 소주에 거의 도착할 무렵 관도를 막고 서 있는 다섯 사내가 보였다. 종칠은 그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이번 표행은 왜 이리 가로 막는 사람이 많단 말인가. 종칠이 고개를 슬쩍 돌려 마차 지붕을 쳐다봤다.
그리고 검왕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했다.
“뭐요?”
종칠의 말이 부드러울 리 없었다. 종칠은 빨리 소주에 도착해 질펀하게 논 다음 서둘러 허창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검왕에게 시달린 생각을 하면 정말로 치가 떨렸다.
종칠의 거친 말에 다섯 사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들은 모두 하얀 옷에 까만 검을 차고 있었다. 검영대(劍影隊)였다.
“너 따위에겐 볼일 없다.”
검영대 무사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며 마차 지붕을 쳐다봤다. 그들은 검왕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검왕은 그것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단형우를 찾아 온 자들인 줄 알았는데 이번 목표는 자신인 모양이었다.
“그래, 날 찾아왔다고?”
검왕이 슬쩍 마차에서 내려섰다. 검왕은 다섯 사내를 자세히 훑어봤다. 상당한 수련을 거친 자들이었다. 날 선 기세가 느껴졌다.
“호오, 꽤 열심히 수련을 한 모양이구나. 그래, 좋다 내가 한 번 봐주지.”
검왕의 말에 다섯 사내가 포권을 취했다.
“감사하오.”
그리고 어딘가를 형해 몸을 날렸다. 검왕은 그것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마차를 비우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단형우를 쳐다보니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왕은 그제야 다섯 사내를 따라갔다.
검왕과 다섯 사내가 사라지자, 잠시 후 또 다른 사내들이 다가왔다. 그들 역시 검왕을 데리고 간 사내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네놈의 실력을 알아보러 왔다.”
다짜고짜 그렇게 말한 다섯 사내가 검을 뽑았다. 그들의 검에서는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그 살기에 종칠이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종칠은 항상 검왕의 기운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단형우와 함께 꽤 많은 경험을 쌓았다. 살기만 가지고 종칠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단형우는 그런 종칠을 힐끗 쳐다본 후, 검을 뽑았다. 다섯 사내가 눈을 빛내는 순간, 단형우가 횡으로 검을 슬쩍 그었다.
쉬익!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궤적에 맞춰 다섯 사내의 앞 땅이 갈라졌다.
콰콰콰콰!
다섯 사내는 깜짝 놀라 뒤로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그 공격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길게 호선을 그리며 갈라진 땅에서 지룡(地龍) 다섯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마치 두더지가 땅 속을 헤집고 나아가듯 꿈틀대며 다섯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다섯 검영대 무사는 깜짝 놀라 기를 모아 호신강기를 두르며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지룡은 그들이 있던 곳에서 위로 폭발하듯 튀어올랐다.
콰과과광!
마치 작은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땅속에서 돌멩이와 흙들이 위로 솟구쳐 오르며 다섯 사내를 휘감았다.
돌멩이 하나한, 흙 알갱이 하나하나에 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다섯 사내는 검을 휘둘러 그것들을 떨쳐내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콰지지직!
“크아아악!”
돌멩이에 부딪친 검이 박살났고, 그들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피분수로 변해 사방에 흩어졌다.
그야말로 일순간의 일이었다.
종칠은 그 광경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고, 이런 무공도 처음이었다.
잠시 후, 검왕이 너털너털 걸아왔다. 처음 그들을 따라갔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이 멀쩡했다.
종칠이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검왕을 쳐다봤다.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왜 이래?”
“아. 어, 어르신. 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으면? 내가 설마 그런 허접스레기 같은 놈들한테 당할 거라 생각했느냐?”
“그,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그, 그저 저는……”
“됐다. 걱정해 준다는데 뭐, 고마워해 줘야지.”
검왕이 이렇게 말하며 마차 위로 훌쩍 올라섰다. 그리고 단형우를 쳐다보며 코를 벌름거렸다.
“큼, 큼. 그나저나 어디서 피 냄새 안 나냐?”
검왕의 말을 신호로 마차가 출발했다. 검왕은 자신을 데려간 다섯 사람에 대해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종칠은 그들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 확신했다.
검영은 인상을 찌푸린 채 앉아 있었다.
시험 삼아 수하 열다섯을 보냈다.
검영은 확신이 없으면 절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일은 수하들을 시켰다.
덕분에 검영대는 다른 대에 비해 인원이 가장 많았고, 가장 인원 유입도 많았다. 물론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었지만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검영 자신의 실력이었다.
수하 열다섯을 보내 다섯은 검왕을 상대하게 하고, 너머지 다섯은 단형우를 상대하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은 단형우가 싸우는 동안 마차에 있는 금유화를 데려오도록 시켰다. 물론 마부로 있는 종칠을 죽이고 말이다.
헌데 그중 다섯만 돌아왔다.
“뭐, 이길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만 좀 충격이군.”
마차 위에 서서 단 한 번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검영대 다섯을 죽였다 했다. 그것도 완전히 핏물로 변해 형체도 남지 않을 정도로.
검왕을 상대하게 한 다섯은 어떻게 되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검왕도 예상 이상이란 뜻인가?”
검왕을 상대하는 다섯에게는 여차 하면 도망치라고 했다. 하나라도 살아 돌아오라고. 헌데 모두 죽었다는 것은 그 여차 할 틈조차 없었다는 뜻이다.
“그동안 예측했던 십대고수의 실력을 조정했야겠군.”
검영은 그 후로도 계속 고민을 했다. 검영 역시 마영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영은 스스로를 합리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그리고 자신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라 믿었다. 마영과 달리.
헌데 마영이 먼저 손을 잡자고 말했다. 이런 것은 자신이 제안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마영이 할 만한 제안이 절대 아니었다.
“역시 뭔가 있는 게 분명해.”
검영의 중얼거림에 그 앞에 서 있던 다섯 검영대 무사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영대에서 진천뢰 세 개를 쓴 일을 알고 계십니까?”
검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자신은 그저 마영에게로 가서 명을 전하고 마영이 실패하면 임무를 이르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었다.
“진천뢰를 세 개나? 당연히 그놈들에게 썼겠지?”
“정확히는 홍택호를 장악하고 있는 염왕채가 세 개를 썼습니다.”
“그래? 결과는?”
“이제 더 이상 염왕채는 없습니다.”
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천리를 써도 어쩌지 못한 놈일 줄은 몰랐다. 물론 검영도 염왕채 정도가 진천뢰를 쓴다고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일행을 지키면서는 절대 아니었다.
“마영에게 다녀와라.”
검영이 부하 하나에게 명했다. 결국 검영도 최소한의 피해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회주(會主)는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영의 등줄기로 한기가 스며들었다.
소주로 들어선 마차는 곧장 황금련으로 향했다. 천하 각지에 지단(支團)을 두고 있는 황금련의 본단(本團)은 그 위명에 걸맞은 규모였고, 또 화려했다.
마차에서 내린 일행은 황의를 입은 예쁜 시녀들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사내가 서 있다가 공손히 인사했다. 이십 대 중반쯤 보이는 사내였는데, 은은한 금빛이 도는 옷을 입은 미남자였다.
“금매,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야.”
“유가가.”
금유화가 환하게 웃으며 사내에게 뛰어가듯 다가갔다. 사내가 황금련의 소련주 유백상이었다.
“금매를 무사히 데려다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유백상이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일행은 유백상의 안내로 건물 깊숙한 곳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상당히 넓은 방이었는데, 커다란 탁자에 산해 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일행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음식을 준비해 놓은 것이다.
“일단 점심때도 되었고, 시장하실 테니 천천히 식사를 즐기도록 하십시오.”
일행이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단형우는 최근 미각이 많이 발달해서 음식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다시 질긴 마물의 고기를 먹으라면 절대 못 먹을 것 같았다. 단형우가 종교의식을 치르는 듯 식사하는 모습은 유백사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충 배를 채운 일행은 이제 술을 즐기면서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갔다.
“일단 우리 금매를 지켜 주신 검왕 어르신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뭐 한 게 있었야지. 그렇지 않으냐?”
검왕이 금유화를 쳐다보며 말하자 금유화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유백상의 귀에 대고 몇 가지를 말했다.
유백상은 황금련이 소련주답게 계속해서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고 금유화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금유화의 말을 모두 들은 유백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의 기분을 상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아닐세, 내가 기분 상할 게 뭐가 있겠는가.”
“아닙니다. 그래도 그게 아니지요, 제가 해 드릴 수 있는게 고작 돈 뿐이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유백상의 말에 검왕은 내심 감탄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사람이 대단하군. 앞으로 대성하겠어.”
검왕의 말로 분위기가 점점 좋아졌다. 유백상은 은글슬쩍 단형우를 쳐다봤다.
겉으로 봐서는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유백상 역시 적지 않은 무공을 익혔고, 꽤 고수라 자부했다. 당연히 누군가 무공을 익혔다면 그것을 알아볼 눈은 있었다.
하지만 단형우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무공을 익힌 흔적 자체를 발견할 수 없었다.
“단 대협께서는 상당히 특이하신 분이로군요.”
유백상이 말을 걸었지만 단형우는 여전히 음식에 집중할 뿐이었다. 머쓱해진 유백상이 검왕을 쳐다봤다. 지워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검왕도 그저 고개를 돌렸다.
이럴 때의 단형우는 건드려 봐야 소용도 없고 무리해서 건드리면 손해라는 사실을 검왕도 함께 생활하는 동안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백상은 상인답게 어색한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미소 띤 얼굴로 화제를 재빨리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재미있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혹시 들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무슨 일인데 그러나?”‘
“천기자의 비동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천기자의 비동이라는 말에 검왕이 흥미로운 눈으로 유Y아을 쳐다봤다. 어쨌든 천기자는 그만큼 관심을 가질 만한 희대의 천재였다.
“그게 대체 뭔가?”
“천기자가 가진 능력이 다양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실 겁니다. 천기자는 살아 있는 동안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물건들을 모아둔 곳이라고 합니다.”
“호오, 그거 흥미롭군. 그 물건들이라는 게 뭔가?”
“일단 무기들이 많다고 합니다. 기상천외한 암기도 있다하고, 화탄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하의 명검도 있다고 하니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재미있군. 그래, 황금련에서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
“물론 찾아봐야지요. 아, 그나저나 하남표국도 상당히 바빠지겠더군요.”
하남표국이라는 말에 종칠의 시선이 유백상에게 돌아갔다. 유백상은 종칠과 한 번 눈을 마주친 후, 말을 이었다.
“천기자의 비동이 바로 하남 천중산에 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하남으로 수많은 무림인들이 몰려가고 있습니다. 특히 무림맹에서는 벌써 허창에 있는 하남표국에 무사들을 대거 이동시켰습니다.”
“무림맹이 하남표국에?”
“사실 무림맹은 소문이 돌기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비밀리에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죠. 헌데 무림맹이 막 활동을 시작하려는 찰나 시기도 참 공교롭게 소문이 퍼져 버렸습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트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유백상의 말에 검왕이 눈을 빛냈다. 최근 등장하던 그놈들과도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