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48
“많은 무림인들이 지금 무림맹을 지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림맹을 도와준 하남표국까지도요.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무림맹 무사들이 하남표국에 머무르고 잇으니까요.”
유백상의 말에 단형우가 식사를 멈췄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식사가 끝나셨나 보군요. 술이라도 한 잔 하시지 왜 일어나십니까?”
유백상의 말에 단형우가 그를 쳐다봤다. 유백상은 단형우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단형우가 검왕을 쳐다봤다.
“돌아갑니다.”
단형우의 말에 검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하루는 자고 가야지. 지금 가나 내일 가나 똑같아.”
검왕의 말에 단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종칠을 쳐다봤다.
종칠은 잠시 고민을 했다. 자신도 내일 가고 싶었지만 단형우가 가자고 하는데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종칠은 아주 잠깐 동안만 고민했을 뿐이다. 하지만 단형우는 그 잠깐도 기다리지 않았다.
“먼저 갑니다.”
단형우가 뒤돌아 한 걸음 걸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검왕은 멍한 표정으로 단형우가 방금까지 있었던 자리를 쳐다봤다. 걸음을 옮기는 것까지는 확인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전혀 보지 못했다.
이것은 단순한 빠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눈이 빠름을 못 따라갈 수는 있다. 하지만 검왕 정도 되는 고수는 절대 눈만으로 뭔가를 보지 않는다.
검왕은 기를 본다. 만일 단형우가 단순히 빠를 뿐이었다면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는 단형우 특유의 기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형우가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형체만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기도 느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사라진’것이다.
“허허. 그놈 참, 급하기도 하군. 허허허.”
검왕의 허탈한 웃음소리만 허공에 맴돌았다.
– 순수 타이핑본이고 검토를 하지 않아 오타가 있더라고 이해해주세요. –
나는 쟁자수다.
하남(河南) 천중산(天中山)
수많은 무림인들이 근처에 모여들고 있었다. 덕분에 천중산 근방 마을은 때 아닌 호황을 맞이했다.
객잔마다 사람이 넘쳐나고, 주루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숙소를 잡지 못해 그냥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워낙 많은 무림인들이 모여 있어, 심심찮게 충돌도 많이 일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문파 간에 싸움이 붙어 전쟁에 가까운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의 목표는 모두 하나였다.
천기자의 비동(泌洞)을 찾아 그 안에 있는 기보(奇寶)들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태에 가장 난감해하는 곳은 당연히 무림맹이었다.
“이거 다들 강제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정말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승룡단주 하원후의 말에 무림맹주 독고운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운은 갑자기 일파만파 퍼지는 소문에 놀라 청룡단과 현무단을 이끌고 천중산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남표국에 머물고 있던 승룡단은 절반만 표국에 남겨두고 천중산으로 왔다.
하원후는 어차피 천중산 근처에서 천기자의 비동에 대한 단서를 찾고 있었으니 따로 움직일 필요조차 없었다.
“하남표국의 상태는 어떤가?”
“지금은 조용합니다. 하지만 당분간 표국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원후의 대답에 독고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미안한 일이로군. 그렇게 난동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 한 일이었으니 하남표국에서도 이해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무림맹의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원후의 말에 독고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그래도 그게 아니지. 하남표국에는 차후 충분히 보상을 하도록 하게.”
“예, 일단 그렇게 지시를 내려놓겠습니다.”
하원후의 대답을 들으며 독고운은 넓게 펼쳐진 산자락을 내려다봤다. 독고운과 하원후는 천중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위에 있었다.
나머지 무림맹 사람들은 지금 모두 천중산을 이 잡듯 뒤지고 있었다. 물론 이곳에는 무림맹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천중산이 온통 들썩였다.
“조심해야 하네. 아무래도 이번 일은 뭔가 석연치가 않아.”
독고운의 얼굴은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누군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뜨렸다. 그것도 무림맹에 악의적인 방향으로.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무림맹이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덕분에 무림맹의 위신도 많이 떨어졌다. 지난 번 천기자의 무공이 관련된 장보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니 무림인들의 마음에 불신이 깃드는 것도 당연했다.
“어쩌면 천마(天魔)가 움직이는 것일지도……”
독고운이 중얼거렸다. 하원후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설마 그런 징후가 발견된 것입니까?”
독고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아직은 모르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하원후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좀 더 신중을 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만큼 천마라는 이름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나저나 하남표국에 더 이상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로군.”
독고운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독고운의 걱정대로 하남표국은 과히 편안한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원후의 말대로 그저 곤란하기만 한 정도도 아니었다.
전각 여기저기가 부서지고, 담도 상당부분 무너졌다. 그리고 사람들도 많이 다쳤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 죽은 자가 없다는 정도였다.
사실 하남표국으로서는 정말스러운 상황이었다. 이제 기반을 잡고 일어서려고 하는 찰나에 이렇게 다시 무너졌으니 웬만한 사람이라면 주저앉아서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조설연은 주저앉지 않았다. 조설연의 표정은 평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의지가 타올랐다.
“힘내십시오, 아가씨.”
형표의 말에 조설연이 빙긋 웃었다.
“전 괜찮아요. 어차피 쉽게 일어설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안했으니까요. 사실 여기까기 온 것도 너무 쉽게 이룬 것잖아요.”
조설연의 의연한 태도에 형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감탄은 감탄이고, 상황은 상황이었다. 어쨌든 지금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나마 자금이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번 황금련의 의뢰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힘들었을 겁니다.”
“맞아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이죠. 그래서 더 오라버리가 고맙고요.”
조설연은 단형우를 생각하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단형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문제는 허창에 있는 사람들이네요.”
조설연의 말에 형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대로는 정말 아무것도 못 해 보고 표국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으니까요.”
“후우, 그런 누명이라니……”
조설연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형표는 억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대체 무슨 힘으로 고독(蠱毒)을……”
형표가 밖의 무림인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들에게 하남표국은 벌써 철천지원수가 되어 있었다.
무슨 수를 쓰던 형표를 잡으려고 하는 바람에 제대로 말도 못 꺼내보고 도망쳐 들어왔다.
형표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원인을 파악해 갔다. 그래도 허창에서는 나름대로 정보를 모을 수 있는 길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원인을 파악해낼 수 있었다.
발단은 승룡단이었다. 그리고 천기자의 비동이었다.
천중산에서 천기자의 비동을 찾는 승룡단과 소문을 듣고 그곳에 찾아간 근처의 문파들 간에 시비가 붙은 것이다. 당시 승룡단은 그들을 무참히 죽여 버렸다.
무림맹 무사단인 승룡단이 그런 일을 했다는 소문이 허창을 중심으로 조용히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독 사건이 터병? 허창을 중심으로 하는 유수의 문파들에 소속되어 있는 주요 인물들이 고독에 중독된 것이다.
그들은 내공을 잃고 하루하루 폐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묘국이 그 일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포착되었다.
그것이 무슨 증거인지는 형표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또한 정말로 승룡단이 그렇게 무참하게 살인을 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어쨌든 흘러간 상황은 그랬다.
지금 밖에 진을 치고 있는 무림인들은 하남표국으로부터 고독의 해독약을 구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절박했다. 그리고 점점 난폭해져 갔다.
이런 상황이니 표국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새로 뽑은 표사들은 표국에 있지도 않았다.
그들이 아직 표국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일이 터져 버렸다. 이제 막 들어온 표국에 의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아무도 표국으로 오지 않았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요. 뭔가를 해 보긴 해 봐야 하는데……”
조설연과 형표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거듭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결국 생각해낸 것이라고는 이대로 표국을 버리고 도망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허창에 모여 잇는 무림인들은 결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조설연과 형표가 한창 이런저런 상의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두 사람이 있는 방으로 다가왔다.
“조 소저, 들어가도 되겠소이까.”
조설연이 있는 집무실은 항상 열려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쳐다보니 팽철영과 남궁진이었다.
형표의 표정이 살짝 냉랭해졌다. 하지만 눈빛에는 불안감이 어려 있었다. 원인을 따지자면 승룡단이지만 지금은 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조설연의 허락이 떨어지자 팽철영과 남궁진이 방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얼굴 가득 미안함을 안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두 살마이 자리에 앉자마자 조설연이 물었다. 조설연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팽철영과 남궁진은 마치 말 속에 가시가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미안하오.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소.”
팽철영이 어렵게 꺼낸 말에 조설연이 미소를 지었다.
“이미 끝난 일입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지요.”
팽철영과 남궁진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주저 말고 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테니까요.”
조설연의 말은 마치 팽철영의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결국 팽철영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승룡단 전원이 나가야 할 듯하오.”
팽철영의 말에 조설연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어쩔 수 없지요. 사실 부담이 좀 되던 참이었습니다.”
조설연의 말은 여전히 차분했다. 그리고 냉정했다. 팽철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상황에서 승룡단이 모두 나가 버리면 하남표국이 어떻게 될지는 명약관화한 상황이었다.
표국 근처에 있는 무림인 중에는 팽철영이라 해도 감히 경시하지 못할 고수들이 꽤 있었다.
만일 승룡단이 하남표국에서 싹 빠져 나간다면 하남표국은 절대 그들로부터 버티지 못할 것이다.
“조 소저, 그러지 마시고 우리와 함께 천중산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소?”
팽철영은 신중한 얼굴로 조설연을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우리가 하남표국에서 나간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조 소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러니 차라리 우리와 함께 천중산으로 갑시다.”
팽철영의 말에 남궁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미리 말을 맞춰 온 것이다. 어쨌든 남궁진도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다.
자신들로 인해 하남표국에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거라 자신했었다. 헌데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조 소저, 그렇게 하십시오. 그게 최선이오.”
남궁진의 말에 조설연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럼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죠? 설마 하남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천중산으로 가자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조설연의 말에 팽철영이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건 좀…… 어렵소이다.”
팽철영은 조설연의 기세에 눌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조설연은 자신이 예전에 봐 왔던 그 조설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 소저와 이쪽의 형 대협 정도라면……”
남궁진이 서둘러 말을 이었지만, 조설연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죠. 그러니 승룡단은 이쯤에서 물러가도록 하십시오.”
팽철영과 남궁진은 멍한 표정으로 조설연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침중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조설연에게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그럼, 조 소저의 앞날에 무운이 깃들기를 기원하겠소.”
두 사람은 결국 가 버렸다. 조설연은 그들의 뒷모습을 의연한 얼굴로 끝까지 쳐다봤다.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자 조설연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문제가 하나 더 늘었네요.”
“그렇군요. 승룡단이 이 시점에서 빠진다면 우리로서는 대책 마련이 곤란합니다.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을 테니까요.”
조설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머리를 이러저리 굴려 봤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당가나 우문세가에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둘 다 천중산에 있는 천기자의 비동 때문에 하남표국을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사람은 한 사람의 고수였다. 모두를 압도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고수. 바로 단형우 말이다.
“오라버니는 지금쯤 소주에 도착했겠지요?”
“황금련으로부터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피해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합니다.”
“다행이네요.”
조설연이 환하게 웃었다. 아무런 피해가 없다니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단형우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제 한 가지 시름을 덜 수 있었다.
“자, 이제 우리만 남았군요.”
조설연의 말에 형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위기는 다른 말로 하면 기회이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기만 하면 하남표국은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형표는 그렇게 믿었다.
조설연은 한참 동안이나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승룡단을 아주 조금만 이용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