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51
“크으윽!”
예상과 전혀 다른 소리에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검을 바닥에 떨어뜰니 채 경악한 얼굴로 서 있는 사내를 쳐다봤다.
“너, 넌 뭐냐!”
사내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형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그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회의(灰衣)를 입은 사내가 검을 아래로 비스듬히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방금 들린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검기를 머금은 검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막힌 것이다. 형표 옆에 서 있는 기이한 사내에 의해.
“넌 뭐냔 말이다!”
사내가 다시 소리쳤다. 사내는 이미 단형우가 자신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고수라는 것을 알아챘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검기를 머금은 검을 떨어뜨렸다. 이는 부딪치는 순간 자신의 기가 산산이 흩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표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사내의 외침이 다시 울려 퍼졌다.
“대체 뭐냐고!”
단형우가 그제야 사내를 쳐다봤다.
“쟁자수다.”
단형우의 대답에 말문이 막힌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옷차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이 상황에 당황했다는 뜻이다.
사내는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강하긴 하지만 우리는 수가 많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우리 쪽에도 고수는 있으니까.’
사내의 눈에 다시 자신감이 흘렀다. 사내는 조용히 바닥에 떨어진 검을 지어 들었다.
“아주 수상하군. 쟁자수라고? 고작 쟁자수가 이렇게나 강하다니…… 이제 보니 하남표국, 정말 대단해. 고독의 해약도 분명히 있겠어. 안 그런가?”
사내가 형표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형표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대꾸할 수 없었다. 이중에 가장 놀란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단형우는 지금 소주에 있어야 하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 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은?”
단형우가 형표에게 물었다. 형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는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형표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사내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뭣들 하는 건가! 저들을 이대로 보낼 셈인가!”
포위하고 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단형우를 먼저 해치워야 했다. 형표는 이미 더 이상 싸우거나 도망갈 힘을 잃었다. 단형우만 해치우면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추적자들은 대부분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조설연 쪽을 쫓고 있었다. 물론 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도 잡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수가 많았으니까.
어쨌든 그 실력만큼이나 화려한 공격이 단형우게게 쏟아졌다.
사방을 빽빽이 메운 검기가 단형우를 뒤덮었다.
번쩍!
한 줄기 뇌전이 떨어졌다. 그리고 단형우를 뒤덮었던 모든 검기가 그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단형우의 서늘한 시선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닿는 곳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번쩍!
가장 앞에 있던 사람이 둘로 쪼개졌다.
고작 두 번이 벼락으로 모두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저절로 발이 멎었다.
항거할 수 없는 공포가 모두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설연은?”
단형우가 물었다. 형표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네. 나만 따로 떨어져 나왔으니까.”
형표의 대답에 단형우가 지체하지 않고 형표의 팔을 잡았다. 형표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단형우에게 이끌려 벌떡 일어났다.
단형우가 한발 걸었다. 형표는 갑자기 얼굴을 거세게 때리는 바람 때문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한순간이었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 강한 바람이 얼굴에 쏟아졌다.
바람이 사라진 후, 형표가 눈을 떴다. 사방이 나무로 메워진 빽徨?숲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사람들이 보였다. 뭔가를 찾고 있는 듯했는데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누구냐!”
그들 중 누군가가 형표와 단형우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형표는 깜짝 놀랐지만 단형우는 그저 한 걸음을 걸었을 뿐이었다.
다시 바람이 얼굴에 휘몰아쳤다. 형표는 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형표는 그제야 단형우가 지금 조설연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일곱 번을 반복했을 때, 형표는 결국 조설연과 쟁자수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추적자들에게 포위된 것이다.
“아, 아가씨!”
형표가 소리쳤다. 조설연이 놀라 형표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오, 오라버니……”
조설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물론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고 바라기는 했다. 마지막으로 단형우를 한 번만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이렇게 현실이 되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조설연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어쩌면 이것은 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벌써 죽었고, 이것은 그 죽음 후에 꾸는 꿈일지도 몰랐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순간, 단형우가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조설연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눈물이군.”
단형우의 가슴이 움직였다. 뭔가 기이한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렁거렸다. 생각해 보니 눈물을 볼 때마다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조설연의 눈물을 처음 봤을 때 그랬고, 우문혜의 눈물을 봤을 때도 그다. 그리고 지금 다시 조설연의 눈물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보 보니……’
그동안은 여자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지옥에서 자신과 동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던 그 여자들은 아름다움과 웃음, 그리고 요염함으로 유혹했지 눈물로 유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그들은 눈물 자체가 없는지도 몰랐다.
“울지 마라.”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단형우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단형우는 조설연의 눈물을 한 번 더 닦아주고 몸을 돌렸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무사들이 보였다. 강양각색의 옷을 입고서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 나타난 인물때문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뭔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단형우가 조설연 앞으로 다가가는 동작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저 한 걸음 걸었을 뿐인데 어느새 조설연 앞에 서 있었다. 그것도 물샐 틈 없이 서 있는 포위망을 뚫고서.
단형우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검신이 조금씩 밖으로 드러나며 어마어마한 예기를 삽가으로 뿌려대기 시작했다. 포위하고 있던 무사들은 그 예기에 섬뜩한 느낌을 받으며 동시에 한발씩 뒤로 물러섰다.
결국 단형우의 검이 완전히 밖으로 나왔다.
후아악!
단형우를 중심으로 강렬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받은 무사들은 모두 죽음을 강력하게 예감했다.
단형우의 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 검이 아래로 내려오기만 하면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남표국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올라간 검은 다시 내려오지 않았다.
단형우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어느새 조설연이 단형우의 팔을 붙잡고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설연은 단형우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세요. 저들도 복잡한 사정이 있오. 어쨋든 우리는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잖아요.”
조설연의 말에 그제야 단형우가 쟁자수들을 쳐다봤다. 다친 사람은 있었지만 다행이 모두 살아 있었다.
단형우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검이 집으로 들어갔다.
조설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무사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제발 그냥 돌아가 주세요. 맹세코 저희는 그 일과 관계가 없습니다. 만일 정말로 그랬다면 우리가 왜 이렇게 도망만 다니겠어요?”
조설연의 말은 단순했지만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포위하고 있는 무사들은 그냥 돌아설 수 없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입장이 있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소. 하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소. 그렇게 자신 있다면 그냥 우리르 따라가면 될 것 아니오.”
누군가의 말에 조설연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굳은 표정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하남표국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하남표국에는 그만한 힘이 없었다.
“따라가면 우리가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확신하십니까?”
조설연의 말에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속한 문파들은 다급했다.
고독에 중독된 사람들은 점점 이지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산 채로 강시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니 제발 그냥 돌아가십시오. 더 이상 피해가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조설연이 말을 얼핏 들으면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단형우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아무리 강하다 하나, 한 손이 열 손을 당할 수 없는 법 순순히 따라가지 않겠다면 우리도 손을 과하게 쓸 수밖에 없소.”
중년인의 말에 조설연이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결국 포위하고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굳게 쥐고 있는 무기에서 은은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단형우는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검을 뽑았다.
소리 없이 세상에 드러나 검이 빛을 받아 번득였다.
검이 드러나 순간 사방으로 예기가 뻗쳐 나갔다. 그 예기에 모두 눈을 질끔 감았다. 마치 온놈을 얇은 칼로 난자당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통스러웠다.
“크으윽!”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사방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으으……”
“크윽!”
하남표국 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무사들이 하나둘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무기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두려운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상대는 그저 검을 뽑았을 뿐인데 그 기세에 베이고 말았다.
단형우의 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무사들이 점점 창백해졌다.
“오라버니,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조설연이 다시 나섰다. 조설연은 간절한 눈으로 주변에 주저앉아 있는 무사들을 쳐다봤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그냥 물러나 주세요.”
조설연의 말에 무사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지금 명백하게 그들이 죽어야 할 상황이었다. 만일 자신들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죽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모두 그렇게 믿었고, 그래서 단형우의검이 올라갔을 때, 대부분 삶을 포기했다.
그런데 조설연이 또 막아섰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 상당히 느낌이 달랐다.
“저는 정말로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원해요.”
모두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돌아가겠소.”
처음에 나섰던 그 중년인이었다.
“전 대협! 안 됩니다! 돌아가다니요!”
“이대로 돌아가면 우리 광한문은 끝장이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파의 중요한 사람들이 모두 고독에 중독되어 이지가 사라져 갔다. 더 중요한 것은 이지가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점점 성격이 포악해져 간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어느 문파도 이름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에 큰 혼란을 가져올지도 몰랐다. 그들이 그렇게 되기 전에 고독에 중독된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다. 하지만 어느 누가 문파의 어른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고독을 제거하지 못하면 파멸뿐이었다.
“여기 있더라도 마찬가지요. 차라리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더 빠를 거요.”
중년인의 말에 모두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남표국 사람들은 눈앞에 있었다.
“진정, 진정으로 그대들이 한 짓이 아니란 말이오?”
중년인을 말리던 광한문의 사내가 핏발선 눈으로 조설연을 노려보며 물었다. 조설연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한 짓이 아니에요.”
“끄응……”
사실 그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남표국이 바로 그 지푸라기였다.
“나도 돌아가겠소.”
광한문에서 온 무사까지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자, 결국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돌렸다.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죽음뿐이다.
차라리 문파로 돌아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이다.
조설연은 그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멍하치 쳐다봤다. 그동안 그렇게나 자신들의 말을 믿지 않던 자들이었다.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핍박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단숨에 돌아설 줄은 몰랐다.
그녀의 시선이 단형우에게로 향했다.
단형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형우게는 그 무지막지한 힘 외에도 다른 기묘한 느낌이 있었다.
“오라버니……”
조설연이 조심스럽게 단형우를 불렀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꿈이거나 환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 아닌가.
단형우는 그런 조설연의 걱정을 단번에 날려 주었다. 환한 미소로.
조설연은 단형우의 그 미소를 멍한 얼굴로 쳐다봤다. 단형우가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처음 알았다. 그동안 미소라고 해 봐야 입가만 살짝 움직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오, 오라버니…… 도, 돌아오셨군요.”
조설연은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한심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작 한다는 말이 그것뿐이란 말인가.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단형우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조설연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직하게 대답했다.
“난 쟁자수니까. 하남표국의.”
단형우의 대답이 조설연의 가슴에 강하게 휘몰아쳤다.
천마성의 마인들
조설연은 긴장과 함께 다리가 풀려 버렸다. 바닥에 조용히 주저앉아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