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53
“설마 성에서 나온 사람인가?”
검마의 목소리는 은은히 떨리고 있었다. 검마가 말하는 성이란 당연히 천마성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질문하면서도 절대 그것은 아니라 확신했다. 천마성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천마였다.
하지만 아무리 천마라 하더라도 이렇게 순수하고 많은 양의 마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는 없었다.
검마와 혈도객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뒤에 서 있는 부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키운 제자나 다름없는 부하들이었다.
당연히 마인들이었고, 마기에 민감했다. 그들 역시 단형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항거할 수 없는 마력을 경험한 상태였다.
그것은 마공을 익힌 마인이라면 누구라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었다.
“우리를 믿지 못해서 성주가 보냈나 보군.”
검마의 중얼거림에 혈도객의 표정이 굳었다.
“우리를 믿지 못해? 성구가? 자신을 믿으라며 불러 모을 때는 언제고, 우리는 못 믿겠다고?”
검마와 혈도객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조설연은 뭐가 큰 오해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조설연은 묘하게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는 천마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남표국에서 나온 표사들일 뿐입니다.”
조설연의 차분한 말에 검마와 혈도객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하남표국? 하남에 있는 표국인가?”
하남표국이 비록 표국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지만 천마성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천마성이 있는 곳은 신강(新疆)이었다. 그들은 중원의 소식이나 정보에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남성 허창에 있는 표국입니다.”
조설연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더 이상 두렵지는 않았다. 검마와 혈도객에게서 아무런 기세도 느낄 수 없을뿐더러 단형우가 이들을 압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검마와 혈도객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성에 있을 때부터 앙숙처럼 지내온 사이였지만 지금은 묘하게 마음이 맞아 떨어졌다.
“그럼 저자가 일개 표국의 표사란 말이냐?”
혈도객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단형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물론이고 검마의 표정에도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조설연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말이 안 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쟁자수다.”
단형우가 말했다. 그 말에 검마와 혈도객이 잘못 들었다는 듯 다시 물엇다.
“뭐라고 했나?”
“쟁자수?”
“물건을 나르고 마차를 모는 그 쟁자수 말인가?”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설연을 쳐다봤다. 조설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쟁자수가 좋다고 하시네요.”
“크, 크하하하핫!”
혈도객이 크게 웃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자신들을 놀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너무 기가 막히는 상황 아닌가.
“지금 우리를 놀리는 건가?”
검마의 스산한 목소리가 조설연의 귓가로 흘러갔다. 그 소리에 지독한 마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하지만 전혀 조설연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조설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왜 두 분을 놀리겠어요. 제가 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검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단형우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조설연 또한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강력한 마기를 정통으로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보통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무공을 익힌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데……’
검마는 고개르 저었다. 자신과 혈도객의 협공을 한 수에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겉보기엔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지만,
검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혈도객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이들을 못 가게 막은 것은 이들의 움직임이 다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천기자의 비동을 찾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에 잡아 세웠다.
잠시 고민하던 혈도객이 과감하게 물었다. 사실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는 건 혈도객과 맞지 않은 일이었다.
“천기자의 비동을 찾은 건가?”
혈도객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조설연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예상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그것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허창으로 돌아가는 중이예요.”
조설연의 말을 검마는 다른 식으로 해석했다.
“그 말은 이미 천기자의 비동을 찾아 얻을 건 다 얻었다는 뜻이로군.”
검마의 말에 혈도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정말이냐?”
혈도객이 살짝 살기가 이는 눈으로 조설연을 노려봤다. 하지만 조설연은 그 무서운 눈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넘기며 대답했다.
“그런 것은 발견한 적도 없고, 찾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우리는 아직 네 말을 믿을 수 없다.”
검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뭘 어떻게 하겠ㄴ느가. 어차피 이곳에 있는 무사들 모두가 덤벼도 단형우 하나를 어쩌지 못할 게 분명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검마는 그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위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윽고 검마가 혈도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저들을 따라가겠다. 그러니 넌 계 비동을 찾아라.”
검마의 말에 혈도객이 인상을 썼다.
“바꿔.”
혈도객은 천기자의 비동 따위보다 단형우에게 훨씬 더 큰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검마는 전혀 혈도객에게 그것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비동에는 천섬(天閃)이 있다.”
검마의 말에 혈도객이 멈칫했다. 천섬은 전설의 도(刀), 도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절세의 기보였다.
물론 혈도객 역시 그것을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이번 일에 나선 것이다.
“너도 혈영검을 원하지 않았었나?”
혈도객의 말에 검마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필요 없다.”
결국 혈도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지. 대신 부하는 모두 내가 데려간다.”
“좋을 대로.”
검마는 그렇게 말한 후, 단형우에게 다가갔다. 단형우 바로 앞에 선 검마가 고개를 돌려 조설연을 쳐다봤다.
“반대하나?”
조설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는 여전히 아무런 말없이, 그리고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난감해하는 조설연을 대신해 결국 형표가 나섰다.
“우리에게는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형표의 말에 검마가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검마의 타는 듯한 눈이 형표에게로 향했다.
“나에게 대가를 원한다고 했나?”
형표는 깜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검마가 보통 사람에게 주는 대가는 죽음이다. 검마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검마는 더 이상 형표를 노려볼 수가 없었다.
어느새 단형우의 검이 검마의 눈앞을 가렸기 때문이다.
“따라오지 마라.”
단형우의 한 마디에 검마의 몸이 굳었다. 조설연과 형표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에서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 바로 단형우라는 사실을.
검마는 결국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묵직한 주머니를 하나 꺼내서 형표에게 던졌다.
형표는 무의식중에 그것을 받았다. 혹시 진기라도 실려 있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주머니 안에는 금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거면 되겠지?”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지금의 하남표국에는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다. 어쨌든 돈은 꽤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로는 곤란합니다.”
형표의 단호한 말에 검마의 눈이 다시 타올랐다. 핏빛 광망이 눈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검마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단형우가 검마를 노려봤다. 검마는 그 눈길에 흠칫 놀라 눈에 모인 마기를 거둬들였다.
“내 앞에서 다시 그게 보이면 가져가겠다.”
단형우의 말에 검마는 속으로 경악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결국 검마는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단형우나 다른 사람을 쳐다볼 수 없었다. 치밀어 올랐던 마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뭘 원하나?”
검마의 입에서 나온 말에 형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형우가 있어서 안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상대는 검마였다. 천마성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강자이자, 마인(魔人)이었다.
“천마성에서 그냥 소문만 듣고 여기에 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형표의 말에 검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대로다.”
형표가 눈을 빛냈다.
“정보를 원합니다.”
검마가 눈읖 빛내며 형표를 쳐다봤다.
“보통내기가 아니군.”
“그저 간단한 추리였을 뿐입니다.”
천마성이 있는 곳은 신강이었다. 신강에서 여기까지 오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급히 달려오더라도 그저 소문만 듣고 천중산으로 오기에는 다른 무림인들이 움직이는 것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헌데 이들은 다른 무림인들과 거의 동시에 천중산에 도착했다. 마치 소문이 이쯤 퍼질 거라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이.
당연히 다른 정보망이 있다는 뜻이고, 또한 그것이 꽤 높은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좋아, 내가 알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주도록 하지. 이제 됐나?”
“감사합니다.”
형표는 감사를 표하면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검마 정도되는 사람이 허언을 할 리는 없지만, 이렇게 순순하게 승낙한 걸로 봐서는 많은 정보를얻을 수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도 괜찮았다. 지금 하남표국에 필요한 것은 정보였다.
이번 사건의 배후를 알아낼 수 있는 정보.
“그나저나 정말로 비동에는 관심이 없나? 너희 정도 되는 실력이라면 한 번 도전이라도 해 볼만 할 텐데.”
검마의 말에 형표가 난처한 기색을 띠며 조설연과 단형우를 쳐다봤다.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결정권은 조설연과 단형우가 쥐고 있었다.
사실 형표는 찾고 싶었다. 지금 하남표국으로 돌아가 봤자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검마가 알고 있는 정보를 들으면서 이곳 천중산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는 와중에 천기자의 비동까지 찾으면 일석이조 아닌가.
형표의 마음을 알았는지 조설연이 조심스럽게 단형우에게 물었다.
“오라버니의 생각은 어떠세요?”
단형우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조설연은 따뜻한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 오늘 있었던 모든 고생스러운 일들이 그 말 한 마디에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결국 하남표국도 천기자의 비동을 찾아보기로 했다. 단형우의 보호 아래.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그 그림자는 마치 땅에서 튀어나오듯 솟아올랐다.
“과연 천마성. 고독이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군.”
사람의 형상을 이룬 그림자가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고독의 잔해를 확인했다. 그가 쓴 고독은 말리비틀어진 상태로 죽어 있었다.
“역시 멀었어. 독영(毒影)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능력을 가지려면 아직 한참이나 더 있어야겠군.”
독영은 바닥에 흩어져 있는 고독을 조심스럽게 수거했다. 앞으로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고독들은 마기에 노출되는 바람에 죽은 것이다.
혈마자는 모든 면에서 천기자를 앞섰고, 그 능력을 그림자(影)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했다. 하지만 두 가지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하나가 진법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독이었다.
특히 천기자는 고독(蠱毒)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비록 독영이 혈마자로부터 독에 대한 모든 것을 전부받았고, 스스로 노력하고 연구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지만, 천기자의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그나저나 하남표국 높들에게도 고독을 써야 하는데 기회를 놓쳐 아쉽군. 간신히 조건을 만들어 냈는데 말이야.”
독영은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린 후, 다시 그림자가 되어 땅으로 스며들었다.
천중산은 넓었고, 들어온 무림인들도 많았다. 신강에 있는 천마성까지 끼어들 정도였으니 근처에 있는 문파들 중 조금이라도 힘이 있다고 믿는 곳은 대부분 비동을 찾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문파들 중, 당연히 당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가가 있는 사천까지는 상당히 멀지만, 하남 허창에 분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우문세가도 비동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우문세가는 이 일에 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
그렇기에 당가가 우문세가나 세가가 가지고 있는 힘을 제대로 집중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당가는 일개 분가만 참여했고, 우문세가도 우문혜를 위시한 몇몇 무사들뿐이었다.
그래서 두 가문은 힘을 모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문혜와 당호관이 손을 잡았다. 덕분에 그들은 허창에서부터 함꼐 출발해 천중산에서도 힘을 합해 천기자의 비동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곤란하네요. 벌써 두 번째에요. 앞으로 얼마나 더 나타날지 모르지만 이들이 이렇게 한씩 나타나지 않고 한꺼번에 나타난다면 상당히 어려워질 거예요.”
“네 말이 맞다. 설마 마인들까지 나타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구나. 대부분의 마임들은 신강이나 청해성 쪽에서 잘 나오지 않는 데 말이야.”
당호관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리 천기자의 비동이 매력적이라고는 해도 무림맹까지 참여한 마당에 마공을 익힌 마인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림맹주가 익히고 있는 금마공(禁魔功)은 마인들에게는 상극이었다. 그들은 아무리 강한 마공을 익히고 있어도 무림맹주인 독고운 앞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덕분에 무림맹주가 있는 무림맹은 마인들의 천적이었다. 아무리 금마공을 익히고 있는 사람이 독고운 한 사람 뿐일지라도 그의 존재 자체가 마인들에게는 불행이었다.
“금마공을 극복할 방법이라도 찾은 걸까요?”
당문영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번 일에는 당문영도 따라왔다. 그녀의 재지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글쎄, 그건 좀 어려울 듯싶구나. 그것을 연구해서 극복해 내려면 금마공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현재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무림맹주밖에 없지 않느냐.”
“그야 그렇죠.”
우문혜와 당문영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많은 마인들의 출몰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구나. 사방에서 마기가 느껴진다. 마인들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모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