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58
동굴 입구에서 나온 것은 쇠줄이었다. 입구에 난 구멍에서 쇠줄이 튀어나와 주변을 한바탕 휘젓고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쇠줄들은 단형우의 몸을 거침없이 두드러댔다.
단형우는 쇠줄에 맞고도 아무렇짖도 않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쇠줄이 나오는 구멍을 유심히 살펴보기까지 했다.
단형우가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사람들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단형우가 검을 뽑을 때마다 한 가지씩 일이 해결된다는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번쩍!
그리고 벼락이 떨어졌다.
무림맹 일행은 커다란 동굴 입구에서 멈춰 섰다. 그들 중 제갈중천이 나서서 동굴 입구를 세심히 살폈다.
사방에 부서진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흐음, 아무래도 누군가 여기 와서 입구를 부순 후 잔해를 치운 모양입니다.”
제갈중천은 거의 정확히 상황을 유추했다.
“그럼 우리보다 먼저 들어간 사람이 있다는 뜻 아닌가?”
독고운의 말에 제갈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입구를 이렇게 부쉈다는 것은 뭔가 함정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함정이 완전히 제거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제갈중천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독고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두르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최소한 한 가지는 반드시 가져와야 했다.
‘금마공!’
독고운의 뇌리에는 온통 그것뿐이었다. 천기자의 비동에 금마공이 있다는 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금마공은 반드시 무림맹이 차지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마인들의 손에 넘어가면 향후 무림은 피에 잠기고 말 것이다.
“린아, 와서 살펴보거라.”
독고운이 금마공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고 있을 때, 제갈중천은 제갈린을 불러 함께 동굴 입구를 살폈다. 부서져 있었지만 그들에게 기관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이 구멍에서 뭔가가 나와 동굴을 지나는 사람을 공격하는 모양이네요.”
“그렇구나.”
“흔적을 살펴보니…… 아마 쇠줄 같은 것 아닐까 합니다.”
제갈린의 거침없는 분석에 제갈중천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기관을 해체할 수 있겠느냐?”
“일단 기관이 어떻게 돌아가나 확인을 한 번 해 보죠.”
제갈린은 제갈중천을 뒤로 물러나게 한 후, 돌을 들어 동굴 안으로 던졌다.
촤좌좌좍!
그 순간, 수많은 쇠줄들이 나타나 주변을 한 번 크게 휘저었다. 제갈린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누군가 벌써 손을 썼군요.”
제갈린의 말에 제갈중천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쇠줄 중 몇 개가 짧았다.
누군가가 잘라 낸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람 하나가 지나갈 틈이 생겼다. 모두 그 틈으로 지나가면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서둘러요. 마인들이 눈치채기 전에.”
제갈린의 말에 제갈중천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림맹 무사들이 순식간에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무림맹 무사들이 모두 사라지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타난 자들은 마인들이었다. 그들은 기관에 대한 생각 자체가 아예 없었다.
촤좌좌좍!
몇몇 성질 급한 마인들이 안으로 들어가려다 쇠줄의 공격에 당해 몸이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버렸다.
그제야 마인들의 안색이 변했다. 이곳은 정말로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고작 쇠줄이다. 그냥 잘라 버리면 돼!”
마인 중 하나가 검을 휘두르며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촤좌좌좍!
어김없이 쇠줄이 날아왔고, 마인이 검을 휘둘렀다.
까가가강!
마인이 검을 휘두르는 솜씨는 일품이었지만 쇠줄은 그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마인의 검은 쇠줄에 닿는 족족 부러졌고, 그 마인 역시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흩어졌다.
그제야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 이후로도 몇몇의 희생이 더 있었다. 그리고 마인들 역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모든 마인이 안으로 들어간 후에야 남아 있던 무림인들이 들어갔다. 그들은 혹시라도 찾아올지 모르는 기연을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천기자의 비동으로 들어갔다.
비동 안에는 몇 군데 더 기관이 장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행은 간단히 그것들을 파괴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
입구의 기관이 가장 어려운 것이었고, 나머지는 그저 검마가 나서서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걸로도 충분히 부술 수 있었다.
문제는 비동 안이 상당히 넓고 길이 복잡하다는 데 있었다.
“대체 안에 뭐가 있는 걸까요? 천기자가 남겼다면 보통은 아니겠죠?”
당문영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처음 몇 군데 기관을 파괴한 이후로 한참 동안이나 그저 길만 계속되었기에 이제 긴장감도 많이 풀어진 상태였다.
“글쎄다.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당호관 역시 천기자가 무엇을 남겼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당가가 얻은 정보만으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조설연은 당호관과 당문영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문득 검마를 쳐다봤다. 검마는 단형우와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그 주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검마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아무도 근처에 있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우문혜조차 그저 조설연과 함께 있을 뿐이었다.
조설연 역시 검마가 껄끄러웠지만 용기를 내서 다가갔다.
검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조설연을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봤다. 이중에서 검마의 흥미를 돋우는 두 사람 중 하나였다.
“내게 볼일이 있나?”
검마의 목소리는 스산했고,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목소리에 은연중 실린 마기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설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정보를 주세요.”
검마는 흥미로운 눈으로 반문했다.
“정보?”
“이 안에 대체 뭐가 있는 거죠?”
조설연의 질문에 검마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약속도 약속이고, 어차피 알려줘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일단 금마공이 있다.”
“금마공!”
검마의 말에 여기저기서 경악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마인들이 모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바로 금마공이었다.
“금마공을 천기자가 가져갔던가……”
당호관의 중얼거림에 검마가 피식 웃었다.
“천기자가 가져간 게 아니라 금마공을 만든 사람이 천기자다.”
이어진 검마의 말에 장내는 경악에 휩싸였다. 입도 벌리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들이 천기자에게 꼼짝도 못했지. 그놈은 정말로 천재야. 사라진 게 다행이야.”
검마는 잠시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몇 가지 무기가 있지. 천기자가 만든 것들. 혈영검이라든지, 천섬이라든지 하는 것들.”
그것은 충분히 수긍이 갓다. 천기자는 뭔가를 만드는 것도 천재적이었다. 아마도 이름만큼이나 대단한 무기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진법도해서가 있다.”
진법도해서라는 말에 당호관과 당문영의 눈이 빛났다. 천기자는 진법의 일인자였다.
진법을 이용해 무공을 빨리 익힐 수 있도록 하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진법도해서라는 것은 아마도 천기자의 모든 진법이 담겨 있을 것이다.
“정말 탐나는 물건들이로군요. 그럼 천마성에서는 금마공을 노리고 있는 건가요?”
조설연의 질문에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않느냐. 금마공만 파헤칠 수 있다면 우리에게 걸린 족쇄가 풀려나는 것인데.”
“그렇겠지요.”
조설연은 고개를 끄덕인 후, 조심스럽게 단형우 옆으로 걸어갔다. 처음부터 함께 걸어가고 싶었는데 우문혜와 당문영이 억지로 끌고 가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왕 왔으니 앞으로는 단형우와 함께 걷고 싶었다.
“이제 가죠. 우리가 먼저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금마공.”
조설연의 말에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맞는 말이었다.
절대 마인들의 금마공을 찾게 둘 수 없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조설연은 미소 지으며 단형우 옆에 바짝 다가갔다. 단형우는 그런 조설연을 한 번 힐끗 쳐다본 후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우문혜가 슬금슬금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검마의 숨 막힐 듯한 기운 때문에 견디기 어려었다.
‘이 정도 고난은 있어야 열매도 달콤하지.’
우문혜는 그렇게 생각하며 억지로 참고 조설연 옆으로 갔다. 일단 조설연 옆에 서니 그나마 나았다. 우문혜는 조설연에게 귓속말로 조용히 말했다.
“동생이 저족으로 가면 안 될까?”
우문혜의 말에 조설연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조설연이 지금 서 있는 곳은 단형우의 오른쪽이었다. 만일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다면 검마와 단형우 사이에 끼게 된가. 그건 조설연도 그리 원하지 않았다.
“저는……”
조설연은 막 입을 열려다가 우문혜의 간절한 표정을 보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만일 저런 표정을 남자들이 본다면 누구나 자신의 심장이라도 빼 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문 언니는 정말 아름답군요.”
조설연이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리를 옮겼다. 우문혜는 반색을 하며 조설연이 왼쪽으로 옮기며 생긴 빈자리로 냉큼 들어섰다.
우문혜가 단형우의 팔을 살짝 끌어안았다. 단형우는 굳이 그것을 빼지 않았다. 그것을 본 조설연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단형우의 소매를 살짝 쥐었다.
그리고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우문혜처럼 과감한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검마는 옆에서 그 묘한 분위기를 멀뚱하게 쳐다봤다.
“팔자 좋은 아이들이로군.”
검마의 중얼거림에 우문혜가 발끈 했지만 입을 열 수는 없었다. 검마만은 정말로 무서웠다.
아무리 단형우 옆에 있다 하더라도.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일행은 커다란 철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음새가 전혀 없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철문에는 커다랗게 천(天)이라는 글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대단하군.”
당호관이 감탄하며 말했다.
“순수한 묵철(墨鐵)이야.”
묵철은 일반적인 철보다 훨씬 귀한 철이었다. 열 근의 철을 모으면 한 근의 묵철과 같은 무게가 된다. 그리고 값은 같은 무게의 금과 같았다.
“이 문짝만 떼다 팔아도 한밑천 잡겠군.”
당호관이 문을 쓰다듬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는 세심한 눈으로 문에 혹시 기관이 설치되어 있지 않나 살폈다.
“일단 문은 안전한 것 같긴 한데……”
한참을 살폈지만 기관은 없었다. 하지만 이음새도 없었다. 즉, 어떻게 문을 여는지 방법을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설마 이 문을 들어올려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당문영이 농담 삼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이번에는 조설연이었다. 조설연은 문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문 아래에 작은 홈이 패여 있었다. 바닥과 밀착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여기를 잡고 들어올리라는 뜻이로군.”
당화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쇠보다 열 배나 무거운 묵철이었다. 만일 순수하게 무쇠로 이 문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엄청난 무게일 텐데, 그냥 무쇠도 아닌 묵철이니 얼마나 무겁겠는가.
“적어도 몇 십만 근은 나갈 것 같군.”
아무리 내공이 출중한 사람이라도 수천 근을 들어올리기 어려운 법이다. 헌데 수십만 근의 철문을 어떻게 들어올린단 말인가.
“사람 손 하나 들어갈 빈틈밖에 없으니 정말로 혼자 들어올리라는 뜻인데……”
당화관이 고민하고 있을 때, 우문혜가 옆에서 말했다.
“땅을 파서 안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요?”
우문혜의 발상헤 당호관이 주먹으로 손을 내리치며 탄성을 질렀다.
“호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
당호관은 직접 움직여 문 앞을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인상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래도 온통 묵철이로군.”
“잘라 버리지.”
이번에는 검마가 나섰다. 당호관을 비롯한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당연히 이쯤에서 검마가 나설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검마는 검강을 쭉 뽑아냈다. 새까만 검강이 한 자나 뻗어 나왔고, 그것이 철문을 두드렸다.
캉!
“이럴 수가!”
놀랍게도 철문은 멀쩡했다.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검마의 검강을 철문이 깨끗이 흡수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