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6
조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단 말이지. 인이 네 생각은 어떠냐?”
“제 생각도 사마 숙부와 같습니다.”
“둘 다 그렇게 봤다면 그런 거겠지. 어쨌든 우리와는 원래 관계가 없는 물건이나 다름없으니 이제 관심을 끊도록 하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인의 대답에 조일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그러고 보니 함께 온 사람이 있다고?”
“예, 표국에서 능력이 되는 일을 한 번 맡겨 볼까 합니다.”
“신원은 확실한 사람인가?”
“아직 조사해 보지 않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게.”
조일현은 단형우의 문제를 완전히 사마철에게 맡겼다. 어차리 표국의 일은 사마철이 모두 알아서 했으니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음? 방금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 친구의 문제가 아니라 설연이의 문제입니다.”
“설연이? 설연이가 왜?”
“아무래도 그 친구를 너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장주님께서 한 번 얘기를 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조일현이 살짝 인상을 쓰며 조인을 쳐다봤다. 조인은 조일현의 눈빛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범위라는 뜻이었다. 조일현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나 심각한 상태란 말인가?”
“아직 심각하진 않지만 앞으로 심각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군, 알아들었네. 이런 일은 미연에 조심스럽게 다뤄서 해결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일이 커지는 법이지. 내 알아서 하겠네. 이만 물러들 가게.”
“예.”
사마철과 조인은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방에서 나갔다. 조일현은 두 사람이 나간 후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조인은 이제 더 이상 조언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자랐다. 이제 한 사내의 몫을 다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조일현이 비록 조가장 안에만 있었지만 세상 돌아가는 소문과 정보는 모두 듣고 있었다.
승룡단의 후기지수들도 조인의 능력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조인과 비교될 만한 사람이라면 승룡단에서는 단 세 사람뿐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고 하니 더더욱 기뻤다.
“내, 자식 농사만큼은 누구보다 잘 지었지. 암, 그렇고말고.”
조인도 조인이지만 조설연은 또 어떤가. 그 총명함과 마음씀씀이,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조일현은 조설연의 예쁜 모습을 떠올리다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잘 다독여야 할 텐데, 자칫하면 엇나갈 수도 있는 나이이니……”
조일현은 사마철이 데려왔다는 사내를 한 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지금 밀린 일을 조금만 더 처리한 후에 말이다.
하남표국은 허창(許昌)은 물론이고 하남성(河南省)에서 가장 규모가 큰 표국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역시 하남성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무림세가인 조가장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남표국은 조가장이 거느린 사업체 중 하나였다.
천하제일이라기엔 조금 손색이 있었지만 그래도 천하사대표국(天下四大驃局) 중 하나였다.
표국주인 사마철의 목표는 언젠가 천하제일의 표국이 되는 것이었고, 조가장주 역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가장의 다른 사업체에 비해 상당히 많은 지원을 받았다.
허창은 크고 작은 관도가 지나는 곳이다. 그런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하남표국은 점점 위세와 규모를 늘려가는 중이었다.
사마철은 표국에 들어서며 일단 단형우부터 찾았다. 세상의 규범이나 관습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니 어디서 모난 돌을 맞을지 몰랐다. 초반에는 자신이 좀 보살펴 주는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조설연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가.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조설연이 크게 슬퍼할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사마철도 견딜 수 없었다.
표국에 들어선 사마철은 자신의 집무실로 가는 도중, 계단에 앉아 있는 조설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단형우의 모습도 보였다.
“끄응, 저기 있었군.”
사마철은 서둘러 다가가려다가 조설연이 단형우에게 하는 말을 듣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단 소협이 찾으시는 분들이 누구예요?”
조설연의 질문에 단형우가 간단히 대답했다.
“친구의 가족.”
친구의 가족이라는 말에 조설연이 단형우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그 친구 분이……”
“내 친구는 아흔아홉이다. 이 검 때문에 죽은 친구는 그 중 하나일뿐이다.”
“친구 분이 아흔아홉이나 있었어요?”
조설연은 깜짝 놀랐다. 아흔아홉이라는 숫자는 일견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 꽤 많은 수였다. 더구나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깊은 산속에서 홀로 지내온 사람이 사귀기에는 너무 많은 수였다.
“그럼 그분들은……”
“모두 죽었다.”
단형우의 말에는 아무런 감정도 배어 있지 않았다. 너무 오래되어 그들의 죽음에 대한 감정 자체가 메말랐다.
아니, 단형우가 가지고 있는 감정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서야 조금씩 그런 것들을 되찾아 가고 있는 중이었다.
“미, 미안해요.”
조설연이 당황하며 말했다. 설마 모두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형우는 조설연의 눈가가 일러이는 것을 보더니 역시 건조하게 말했다.
“괜찮다.”
단형우의 눈가가 살짝 가늘어졌다. 보통 사람이 봤다면 그 변화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단형우는 분명히 기뻐하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마지막 친구이자 동료가 한 말이었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을 대신해 죽어 가면서도 미안하다고만 했다.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찌만 이젠 조금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괜찮아. 혼자라도……”
단형우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조설연은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분명히 자신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단형우의 눈이 먼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조설연은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다시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요.”
단형우가 고개를 내려 조설연을 쳐다봤다. 조설연은 물기가 어른 눈으로 되도록 환하게 웃으려 노력했다.
“이젠 제가 있잖아요, 홀로 두지 않아요, 헤헷.”
단형우의 눈가가 눈에 띄게 가늘어졌다.
“괜찮다.”
조설연은 단형우의 눈가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거 웃는 거예요?”
단형우가 고개를 다시 돌려 먼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
“그동안은 볼 수 없었으니까. 저렇게 파란 하늘은.”
조설연은 단형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 소협은, 아이 참, 저 그냥 오라버리라고 불러도 되죠?”
조설연의 말에 단형우가 그녀를 다시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단 오라버니라고 부를게요. 훗.”
조설연의 표정이 훨씬 환해졌다.
“오라버니, 우리, 대장간에 가요. 그 검에 맞는 검집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조설연의 말에 단형우가 자신의 검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동안 검집을 만들募募?시도는 몇 번 해 봤다. 하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
껍질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마무들의 가죽으로도 만들 수 없었다. 이 검의 예기는 그런 가죽들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단형우가 고개를 젓자, 조설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형우의 팔을 양손으로 감싸 안은 후, 무작정 잡아끌었다.
“후훗, 그러지 말고 가요. 이래 봬도 저 돈 많아요. 뭐 엄밀히 따지면 제 돈은 아니지만.”
조설연이 힘을 줬지만 단형우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설연은 약간 당황했지만 그래도 힘을 더 줘서 단형우를 끌고 가려고 했다.
정말로 검집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것은 처음 단형우가 취운루에 들어왔을 때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었다.
“이잇!”
조설연은 힘을 주다가 자신도 모르게 내공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단형우는 여전히 바위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설연이 흠칫 놀라 단형우의 팔을 놓았다.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팔을 잡고 내공을 썼으니 잘못하면 팔이 부러질 수도 있었다. 조설연은 자신이 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괜찮다.”
단형우의 말을 들은 조설연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단형우를 쳐다봤다. 방금 자신이 내공을 일으킨 것은 정말로 본능적인 것이었다. 어쩌면 단형우가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혹시…… 무공을 익히셨나요?”
조설연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단형우가 다시 그녀를 쳐다봤다.
“칼 쓰는 법, 숨쉬는 법, 그리고 몸 움직이는 법은 알고 있다.”
단형우는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을 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그것을 무공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확실치가 않았다.
“아마 기억이 맞는다면 삼재검법(三才劍法)이라고 했던 것 같군.”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재검법은 자신도 익히 알고 있었다. 아니, 무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삼재검은 검을 처음 시작할 때 배우기 좋은 검법이다. 나중에 상승 검법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검을 쓰는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이것을 익혔다.
설혹 검을 주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삼재검은 한 번쯤 익히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삼재검법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정말 열심히 배웠거든요.”
조설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형우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자신이 배운 검법을 다른 사람들이 익히고 있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처음 배울 때만 해도 백 명이 함께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 서른두 초식은 잘 익혀두면 큰 도움이 된다고 사마숙부께서도 말씀하셨어요.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이 말에는 단형우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른두 초식이라고?”
“예, 왜 그러세요? 설마……”
조설연은 아차 했다. 설마 단형우가 삼재검법조차 모두 익히지 못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너무 앞서 나가서 단형우의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세 초식밖에 익히지 못했다.”
단형우의 말에 조설연이 입을 다물었다. 삼재검법은 너무도 단순하고 간단한 검법이었다. 고작 세 초식으로는 응용이건 뭐건 해 볼 수 없었다.
“괘, 괜찮아요. 제가 나머지를 가르쳐 드릴게요!”
조설연이 힘차게 말했다. 삼재검법 정도야 무엇이 어렵겠는가. 얼마든지 가르쳐 줄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나중에 표국의 무공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예요. 하남표국의 무공은 정말로 대단하니까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조설연의 말에 단형우가 잠시 그녀를 쳐다봤다.
“세 초식의 걸음마를 떼는 데만 삼 년이 걸렸다.”
단형우는 나머지는 익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그 세 초식만으로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세 초식은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강력한 초식이 있으면 뭐 하겠는가. 자신의 것이 아닌 초식은 오히려 독이 될 뿐이었다. 그것은 조설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서른두 개나 되는 초식을 모두 익혔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강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설연은 그 말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였다. 삼재검법 세 초식을 익히는데 삼 년이 걸렸다는 건 정말로 말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이건 아니었다. 조설연은 단형우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미, 미안해요.”
조설연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단형우는 조설연을 빤히 쳐다봤다. 조설연은 단형우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빨개졌다..
“앞으로 그 말은 하지 마라. 절대로.”
단형우의 어조는 강하고 단호했다. 조설연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때를 맞춰 사마철이 다가왔다.
“여기 있었군, 날 따라오게. 일단 숙소로 안내핼 줄 테니까.”
사마철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설연은 사마철과 함께 멀어지는 단형우의 등을 그저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마철은 단형우를 뒤에 달고 걸어가면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삼재검법 세 초식을 익히는 데 삼 년이라니,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설연이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무공을 가르쳐 표사로 일하게 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군.’
사마철은 단형우를 데리고 쟁자수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칼을 찬 쟁자수
호북(湖北) 무한(武漢). 정파 무림의 기둥이라 일컬어지는 무림맹이 있는 곳이다. 당연히 알게 모르게 무림맹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무한이 지금 무림맹에 관련된 소문으로 크게 술렁이고 있었다.
무림맹이 있는 곳이니만큼 여러 무인들이 찾게 마련이고 많은 무림인들이 머물렀다. 무림맹에 무사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사도련같이 무림맹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단체의 세작들도 활동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많은 무림인들이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 사이에 무림맹이 최근 천기자의 보물을 얻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천기자의 보물은 모두 세 가지로, 천하를 울릴 만한 무공, 누구든 조종할 수 있다는 독, 그리고 천하제일의 무기라는 구체적인 정보까지 나돌았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힘을 가진 무림맹에서 천기자의 보물까지 가져갔으니 사람들이 술렁이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소문이 도니 무림맹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암리 아니라고 우겨봐야 소문을 잠재울 수 없었다.
“허어, 이거 정말 답답하군. 대체 누가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어단 말이오.”
맹주 독고운의 탄식에 아홉 장로는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소문이 퍼저나갈 여지는 많이 있었다. 당시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만 해도 수가 상당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저렇게 부풀리니 무림맹의 입장만 난처해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배후가 있는 것 같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순식간에 소문이 호북땅 전체를 뒤덮을 리가 없소.”
장로 중 하나가 입을 열자 독고운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그럼 대체 그 배후가 누구겠느냔 말이오.”
잠시 모두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제갈중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일에는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많습니다. 처음 일을 진행시킬 때 사도련과 녹림에서 알고 움직인 것도 그렇고……”
제갈중천의 말에 독고운과 장로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과연 그랬다. 그 천기자가 장보도를 여러 개 만들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무림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계획한다는 뜻이로군.”
독고운의 말에 장로들이 한차례 술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