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65
“그 말은 날 기다렸다는 뜻이렷다?”
사내들은 검왕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당신 때문에 우리가 많은 피해를 입어야 했소. 그래서 오늘은 그걸 돌려주고자 하오.”
사내들 뒤쪽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검왕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담담한 기도를 흘리며 서 있었다.
“네가 산적 대장이로군.”
검왕의 말대로 그 사내가 바로 녹림왕이라 일컬어지는 곽패였다.
“내가 바로 곽패요.”
검왕은 사내의 기도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일 대 일로 싸우면 당연히 이기겠지만 이렇게 많은 고수들과 협공을 하면 조금 곤란해질 듯했다.
“그래서 녹림 놈들이 여기 다 모였다는 말이냐?”
곽패는 고개를 쉼탔見?대답했다.
“그렇소. 오늘은 검왕은 천중산에 묻힐 것이오.”
곽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변에 있던 녹림도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녹림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고수들이었다. 검왕 때문에 황금련에게 큰 타격을 받았다. 사도련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크게 세력과 기세가 위축되었다.
본래 이런 시기에는 웅크리고 힘을 비축해야 하지만 곽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곽패가 결정한 것은 검왕을 죽여 기세를 돋우는 것이었다.
하남표국에 검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표국의 표물을 건드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검왕이 움직였다.
쩌저저저정!
검왕의 검이 눈부시게 움직이며 녹림도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검왕의 표정은 너무나 여유로웠다.
“과연 검왕이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없을 것이오.”
곽패가 몸을 날렸다. 곽패의 손에는 어느새 커다란 대감도가 들려 있었다.
화우우웅!
대감도에서 일어나는 바람이 검왕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검왕은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휘둘러 그것을 흩어냈다. 녹림도들의 공격은 사전에 많은 수련을 거친 듯 정교하게 맞물려 나갔다.
“죽이면 안 되는데 곤란하군.”
검왕이 중얼거리며 검에 기를 불어 넣었다.
콰우우우!
검왕의 검에서 강렬한 검기가 쏟아져 나갔다.
퍼버버벙!
몇몇 사내가 그것을 막다가 힘을 못 이겨 뒤로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검왕은 그 빈틈을 비집고 나갔다.
촤촤촤촤악!
검왕의 검이 날카롭게 움직였다. 그리고 부드러운 보법으로 포위를 단숨에 벗어났다.
곽패는 그 모습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이런 상황도 미리 예상하고 준비를 해 놓았다. 녹림이 지금 유리한 점은 수가 많다는 것뿐이었다.
검왕은 포위를 벗어나면서도 여전히 인상을 펴지 못했다.
어느새 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 포위를 형성하고 있엇다. 그리고 방금 전의 상황이 다시 재연되었다.
“끝도 없군. 어쩐다……”
지금이라도 살수를 쓰면 상황을 훨씬 호전시킬 수 있엇다. 물론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들은 녹림의 핵심이었다. 검왕 혼자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버틸 수 있지만 머지않아 진짜 싸움이 시작되면 상당한 곤란을 겪을 겄이다.
검왕이 곤혹스러워 하는 동안 검마는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검마에게 신경 쓰는 녹림도는 한 명도 없었다. 그저 검왕과 함꼐 온 사람 정도로 취급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남표국에 검마가 있다는 소문은 절대 흘러나가지 않았다. 검마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서 좋을 일이 없지 않은가.
검마의 입가에 살짝 비웃음이 어렸다. 그때 검왕이 그 비웃음을 정통으로 봐 버렸다.
“이놈이!”
검왕이 화를 내며 사방으로 검기를 날렸다.
위협적이었지만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조절을 했다.
화아아악!
검마의 몸에서 강렬한 마기가 피어났다. 그 마기는 순간적으로 검왕을 포위한 녹림도들의 몸을 경직시켰다. 그리고 검왕의 검기가 그 녹림도들을 덮쳤다.
“헉!”
검왕은 깜짝 놀라 급히 몸을 움직였다.
쩌저저적!
자심이 날린 검기를 자신이 쳐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자칫 사람들이 검기에 맞아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검왕은 인상을 쓰고 검마를 쳐다봤다.
“교활한 놈.”
그리고 검마와 검왕이 동시에 움직였다.
곽패는 너무 놀라 입을 멍하게 벌렸다. 사방에서 부하들이 썩은 짚단처럼 픽픽 쓰러졌다. 곽패도 고수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부하들이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더욱 절망스러웠다.
검을 들고 악귀처럼 날뛰는 저 두사람은 절대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검마와 검왕이 어우러지니 그 어떤 협공도 무의미했고, 어떤 공격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방이 검기와 마기로 가득 찼다.
결국 모든 녹림도가 쓰러졌다.
그 자리를 하원후와 승룡단, 표사들이 들이쳤다.
하남이 발칵 뒤집혔다.
녹림왕 곽패가 모든 녹림도를 이끌고 천중산에 숨어서 뭔가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잔뜩 들끓었다. 얼마 후 그 소문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 녹림도를 하남표국에서 평정해 버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하남표국에 절대 함께 있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함께 돌았다.
하남이 뒤집힐 수밖에 없는 소문들이었다.
소문의 중심에 있는 두 사람, 검왕과 검마는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분명히 내가 이겼다.”
검왕이 이를 갈며 말하자, 검마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해 보자는 게냐?”
“그러든지.”
검마와 검왕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아무도 검을 뽑거나 달려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싸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검왕은 한참 동안 검마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옆에서 난감한 얼굴로 서 있는 하원후를 쳐다봤다. 아니, 거의 노려보는 수준이었다.
“다시 세!”
하원후는 검왕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이 연무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산적들을 세기 시작했다.
산적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천정혈(天鼎血)이 막힌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천주혈(天柱血)이 막힌 사람들이었다.
공교롭게도 둘의 수는 똑같았다. 그리고 천정혈과 천주혈 둘 다 막힌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몇 번을 확인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저놈은 분명히 내가 먼저 제압했어. 그러니까 내가 이긴거지.”
검왕의 말에 검마가 피식 웃었다.
“훗, 우습군. 내 마기가 먼저 천주혈을 막지 않았었나?”
“말도 안 돼! 내 검기가 먼저 천정혈을 꿰뚫었다니까!”
검왕과 검마는 서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노려보고 있을 때, 연무장에 일단의 무리가 등장했다.
“정말로 곽패로군. 놀라워.”
등장한 사람들은 하원후의 보고를 받고 무림맹에서 나온 사람들과 조설연이었따.
녹림과 사도련은 오랜 시간 동안 무림맹과 싸워 왔다. 그중 사도련이 얼마 전에 황금련과 검왕에 의해 무너졌고, 이번에는 녹림이 하남표국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무림맹으로서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 시원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쨌든 고맙소. 반드시 보답을 하도록 하겠소.”
무림맹 사람들이 손짓을 하자 수많은 무사들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녹림도들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순식간에 연무장이 텅 비어 버렸다. 검마와 검왕은 그 광경을 그저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직 결판이 나지 않았는데 그 증거물들이 사라지는 모습을보고 있으려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조설연이 있기 때문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조설연은 두 사람이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보며 슬쩍 웃었다. 그리고 연무장 밖으로 나갔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인지. 원.”
검왕이 허탈함을 가득 담아 중얼거렸다. 검마도 검왕과 같은 심정이었다.
“재주만 넘은 기분이로군.”
검마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검왕을 쳐다봤다. 검왕과 검마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싸움이 아니라 대련이라면 괜찮겠군.”
검왕의 말에 검마의 이가 환히 드러났다. 그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해 보였다.
“대련하다가 가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스릉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검을 뽑았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라 대련이다. 그 의지를 옆에서 놀란 눈으로 구경하고 있던 하원후에게 강렬하게 쏘아 보냈다.
하원후는 그 의지를 나름대로 받아들였다.
‘대련을 빙자한 싸움이로군.’
검왕과 검마의 기세가 서서히 연무장을 잠식했다. 하원후는
표국에 돌아온 후, 처음 며칠을 제외하곤 허창에서 가장 번화하고 사람이 많은 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것이 단형우의 일과였다.
조설연도 형표도 단형우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다. 단형우가 해 주길 원하는 일은 바로 표국을 지키는 것이었다.
표국에 단형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하고 어떤 일이든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런 단형우가 사람도 없는 연무장에 나타났으니 검왕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검왕은 아직도 단형우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단형우와 조설연의 사이가 심상치 않은 듯했지만 별 진전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검왕의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단형우는 최고의 손녀 사윗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단형우와 손녀를 만나게 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검왕의 손녀는 지금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단형우가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형우는 검왕과 검마를 하남표국에 있게 한 원인이었다.
단형우는 연무장에 들어서서 물끄러미 검왕과 검마를 쳐다봤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던졌다.
“아직 그대로군.”
단형우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연무장에서 나가 버렸다.
검왕과 검마는 단형우의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봤다. 마치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힘껏 얻어맞은 듯했다.
“허……! 허허허!”
허탈하면서도 자조적인 웃음이 검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크하하하하핫!”
그리고 검마가 통쾌하게 웃었다.
“이거 정말 한 방 얻어맞았군. 통쾌해, 아주 통쾌해. 크하하핫!”
검마와 검왕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검을 든 채, 각자 연무장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순식간에 연무장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연무장 밖에서 조심스럽게 안쪽 상황을 살피던 표사들과 승룡단원들이 슬쩍 들어왔다.
하원후는 그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그리고 한자리에 모여 검왕과 검마를 살폈다.
검왕과 검마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검무가 시작되었다.
하원후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검왕과 검마를 쳐다봤다. 사실 더 이상 검마를 감시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원후가 판단하는 검마는 뭔가 뒤에서 일을 꾸밀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그럴 능력이 없었다.
앞에 나서서 사람을 죽여 버릴지언정 뒤에서 모사를 꾸밀만한 머리는 없었다.
지금 검마를 보며 하원후의 눈도 상당히 달라졌다. 그래서 두 사람의 검무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이런 것도 나름대로 기연이라면 기연이군.’
검왕과 검마가 동시에 검무를 추는 광경을 이럴 때가 아니라면 언제 볼 수 있겠는가.
하원후는 두 사람의 검무에 서서히 빠져들면서도 한편으로 단형우를 생각했다.
한 마디만으로 검왕과 검마를 이렇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검왕과 검마를 일개 표국에 붙잡아 놓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한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사람이었다.
‘과연 능력은 어떨까.’
아직 단형우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본 적이 없어 확신할 순 없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다.
일 검에 검왕을 박살내고, 기세만으로 검마를 굴복시키며 한 번 검을 휘두르면 수십, 수백 명이 둘로 쪼개지고, 벼락을 떨어뜨리며 용을 부리는 사람이었다.
‘훗,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만일 정말로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답은 하나다.
‘사기꾼.’
하원후는 그 가능성을 가장 우위에 두었다. 마일 그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단형우를 계속해서 유심히 살폈지만 그는 그저 먹을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연무장에서 나온 단형우는 느긋하게 걸었다. 단형우가 향하는 곳은 표국 밖에 있는 번화가였다.
최근 단형우가 하는 가장 주된 일이 바로 번화가를 걸으며 사람 냄새를 맡는 겄이었다.
사람 사는 곳에는 평화가 있었고, 그 평화 속에 침투한 치열함이 있었다. 물론 예전 지옥에 있을 때 겪은 치열함보다는 느슨했지만, 그래도 그곳에는 삶이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치열한 법이다.
하남표국이 위치한 곳은 허창 중심부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었다. 단형우는 표국에서 나와 허창 중심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느긋하게 움직이는 단형우를 몇 개의 눈동자가 은밀히 살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