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66
“저놈이 확실해?”
“확실해.”
“제대로 확인해. 몸에 흐르는 기운이나 분위기도 확인해야지.”
“확인했다니까!”
마영은 살짝 짜증스런 목소리로 대답했다. 검영은 그런 마영을 보며 슬쩍 비웃었다.
“훗, 누가 감시하다 놓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성질을 내다니. 이런 걸 적반하장이라고 하던가.”
검영의 말에 마영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마영은 검영을 한껏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으드득, 어차피 너나 나나 할 말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만 해.”
마영의 반응에도 검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흥, 이번에는 실수하지 마라. 너 때문에 나까지 회주님 눈밖에 났으니까.”
마영은 화를 억누르며 다시 고개를 돌려 단형우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그 단형우였다.
사람에게는 특유의 기운과 분위기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쌍둥이라 하더라도, 또 아무리 비슷한 성장과정을 겪어더라도 차이가 나게 마련이었다.
헌데 지금의 단형우는 예전 마영이 봤던 그 단형우와 똑같았다.
“끄응, 아무리 봐도 똑같아.”
“그럼 그새 또 바꿔치기가 되었다는 뜻인가?”
마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지금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어쨌든 우리 목표는 저놈이니까, 저놈만 처리하면 돼.”
“그건 그렇지. 저놈의 행동반경은 뻔하니까, 오늘 중으로 해치우자고.”
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동안이나 단형우를 살폈다. 회주의 명은 단형우를 죽이라는 거였고, 아직 거둬지지 않았다. 별도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최대한 빨리 단형우를 제거해야 했다.
“그나저나…… 검왕과 검마라…… 난 저쪽이 더 매력적이야.”
이 말은 마영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검왕과는 아직 못 다한 승부도 남아 있지 않은가. 하지만 회주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마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검영이 투덜댔다.
“저놈은 왠지 내키지가 않아, 재미도 없을 것 같고.”
그것 역시 마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하는 수밖에. 일단 저놈을 처리하고 나서 검왕과 검마도 손을 보면 되지.”
마영의 말에 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주께서도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해 주실 테지.”
검영은 그렇게 말을 마무리하고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검영의 몸이 주변에 녹아 들어갔다. 그리고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영이 움직이자, 마영도 몸을 날렸고, 주변에 숨어 있던 검영대와 마영대가 동시에 움직였다.
마영대 오십과 검영대 일백이 동시에 움직이니 사방이 술렁일 법도 하건만 주위는 더할 나위 없이 고요했다.
단형우의 이동 경로는 상당히 단순하다. 허창의 번화가에 들러 한적하게 주변을 계속 맴돌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면 허창 외각으로 빠져 그곳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하남표국으로 돌아간다.
지난 열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해 왔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허창 외각으로 빠져 단형우가 항상 가는 식당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외졌다. 마영과 검영이 노리는 순간이 바로 그 외진 길로 들어설 때였다.
단형우가 외진 길로 들어섰다. 그 순간 검영과 마영이 몸을 날렸다.
사사사삭!
검영대와 마영대가 순식간에 단형우를 에워싸다. 그들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빨랏다.
단형우는 걸음을 멈추고 들을 둘러봤다. 그동안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에게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을 건드린 것도 아니었으니까.
검영와 마영은 단형우 앞뒤에 섰다. 두 사람 역시 협공을 할 생각이었다.
검영대와 마영대가 각각 기이한 보법을 밟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陳)을 이루려는 것이다.
혈마자가 비록 천지자에 비해 진법이 뒤떨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적으로 알려진 다른 유명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혈마자의 그림자들은 각각 자신의 부대에 맞는 진법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 진법은 다른 부대와 연동하면 훨씬 그 효과가 커진다.
먼저 움직인 것은 마영대였다. 마영대는 그 수가 오십이었고, 검영대는 백 명이었으니 검영대가 뒤에 위치하는 것이 당연했다.
콰아아아!
막대한 압력이 단형우에게 집중되었다. 검진은 주변의 기의 흐름까지 변화시켰다. 단형우는 살짝 흥미가 이는 눈으로 기의 흐름을 살폈다.
“재미있군.”
이렇게 사람이 모여 단순한 움직임만으로 주변 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은 단형우도 처음 봤기 때문에 호기심이 일었다. 단형우는 그것을 유심히 살폈다.
마영과 검영은 단형우의 몸에 압력이 가중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천천히 움직였다. 두 사람 역시 단형우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특히 마영은 직접 겪어보기까지 했으니 더 확실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검영대와 마영대가 동시에 펼치는 절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검영과 마영의 협공을 받고도 살아날 사람은 이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타앗!”
먼저 움직인 것은 검영이었다. 검영은 빠른 속도로 검을 찔러 넣었다. 단형우의 시선에서 느껴진 빈틈으로 찌른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성공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단형우는 그것을 피해냈다. 그저 한 걸음 옆으로 걸은 것뿐이었다.
그 순간, 마영이 검을 내리?다.
쉬익!
마영은 놀라 눈을 부릅떴다. 분명히 베었다고 생각했는데, 단형우의 잔상이 흩어졌다.
단형우는 이번에도 단순히 한 걸음 걸었을 뿐이었다.
“죽음을 원하나?”
단형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지극히 무미건조했다. 마영과 검영은 동시에 침을 삼켰다. 그리고 동시에 움직였다.
두 사람의 검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왔다. 검강이었다.
“죽어!”
검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마음에서 이는 공포를 억누르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반드시 단형우를 죽이募募?의지도 섞여 있었다.
콰앙!
두 사람의 검강이 폭음과 함게 산산히 부서졌다. 어느새 단형우가 검을 뽑아든 것이다.
검영과 마영이 입을 벌렸다. 단형우는 그저 검을 뽑아 들어올렸을 뿐이다. 그 한 동작에 검영와 마영의 검강이 박살났다.
단형우의 눈이 빛났다.
번쩍!
그리고 벼락이 떨어졌다.
마영대와 검영대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검영과 마영이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둘로 쪼개졌다. 난데없는 벼락에 의해.
검영과 마영을 죽인 단형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검영대와 마영대를 쳐다봤다. 몸에 집중되는 압력이 어마어마할 텐데도 마치 아무런 저항을 못 느낀다는 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검영대도 마영대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들의 검진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하짐나 그럼에도 검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멈출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진의 흐름은 이미 검영대와 마영대에게서 단형우에게로 넘어간 후였다.
단형우는 진의 한가운데서 흐름을 조절했다. 기가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재미있군.”
단형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너무도 섬뜩한.
검영대와 마영대는 그 미소를 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퍼버버벅!
그리고 온몸이 터져 나갔다.
사방이 자욱한 피로 뒤덮였다. 단형우는 그 참상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상하게 화가 나는군.”
단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다. 지옥에서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그 비슷한 일은 있었다. 흑사방과 싸울 때 그랬다. 하지만 지금과는 뭔가 좀 달랐다. 그때도 화가 났지만 이렇게는 아니었다.
여전히 단형우의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었고, 그 화는 살기가 되어 주변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이들은 죽인 것 때문에 죄책감이 드는 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갖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들은 죽음을 원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 준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화가 났다. 스스로에게 단형우는 피와 살점이 가득한 땅을 밟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되새기며.
정천맹(正天盟)
“검영과 마영이 당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혈마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일들은 계획대로 잘 되는데, 단형우가 개입되면 일이 틀어진다.
“시체는?”
“모두 갈기갈기 찢어져 회수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한데 모아 태웠습니다.”
혈마자는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혈영은 조심스럽게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시체도 남지 않을 정도로 싸움이 격했다는 뜻이겠군. 그놈이 그리 잔인한 성격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싸움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흔적 없이 싸웠겠지. 마영대와 검영대의 흔적만 가득했겠지?”
혈영이 고개를 숙였다. 혈마자의 말대로다. 그곳을 조사한 조서단의 보고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의 흔적은 가득한데 정작 단형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단지 싸움이 모두 끝난 후, 그곳을 밟고 지나간 흔적만 남았다 했다.
“경지에 이른 고수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말로 대단한 놈이군.”
혈마자는 단형우의 경지를 섣불리 짐작할 수 없었다. 단형우 때문에 자꾸 일이 클어져서 앞으로의 계획에 조금 차질이 빚어질 듯했다.
“당분간 그놈은 지켜보기만 한다. 그리고 샅샅이 밝혀내라. 그놈과, 그놈 주변, 그리고 또 다른 그놈까지.”
“존명!”
혈영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혈마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혈영의 모습이 사라졌다.
혈마자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조금씩 계획이 비틀어지는 것이 못마땅했다.
“천기자, 정말 끝까지 방심할 수 없는 놈이야. 이번에는 제법 머리를 썼다만 앞으로는 어림도 없다. 네놈이 이룩한 모든 걸 부숴 버릴 테니까. 기대하라고. 큭큭큭큭.”
혈마자의 음산한 웃음이 장막을 흔들었다.
신강(新疆)에는 천산산맥(天山山脈)이 있다. 그리고 그 천산에는 천마성(天魔城)이라 불리는 마인들의 성지가 존재했다.
천마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방, 한 사내가 창을 통해 천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마성이 위치한 곳 자체가 천산에서 꽤 높은 장소였고, 천마성도 크고 높았으니, 그곳에서 가장 높은 방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볼 때마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군.”
천마성주(天魔城主), 즉 천마(天魔)의 말에 방 안에 함게 있던 사내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저 산이 끝나는 곳에 중원이 있겠지.”
천마는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사내들을 쳐다봤다.
“혈도객, 다시 말해 봐라. 검마가 어쨌다고?”
혈도객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남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래, 표국에 들어갔다고 했지. 그랬어, 그럼 표사질이라도 하募募醋?”
“표사는 아니고……”
“하긴, 그놈 정도라면 표사로 만족 못하지. 표두 정도는 돼야지.”
혈도객은 천마가 비아냥거리자, 이마에 흐르는 땀을 M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고, 그쪽에 살펴볼 사람이 있어서 갔습니다.”
“살펴볼 사람? 금마공도 못 얻은 주제에 누굴 살펴?”
“그, 그것은…….”
혈도객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금마공을 얻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자신 때문이었다.
스스로 켕기는 부분이 있으니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천마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더더욱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끄응, 하여간 제대로 뭔가를 하는 놈이 없군. 그래도 검마는 믿었는데 말이야.”
천마가 다시 몸을 돌려 창 밖을 바라봤다. 시야가 확 트이니 좀 살 것 같았다. 치밀어 오르던 화도 가라앉힐 수 있었고, 좀 더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뭔가 좀 이상하긴 했다.
혈도객은 몰라도 검마는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명을 완수하지도 못했는데 누군가를 지켜보겠다고 표국에 들어갈 정도면 틀림없이 뭐가가 있었다.
천마가 다시 몸을 돌렸다.
“누굴 살펴본다고 했지?”
혈도객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분명히 단형우라는 쟁자수입니다.”
“쟁자수?”
천마의 인상이 다시 일그러졌다.
혈도객은 아차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냥 말이 나오는 대로 한 것이 실수였다. 단형우 정도면 은거기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재, 쟁자수를 가장한 기인이었습니다.”
혈도객이 급히 말을 수정했다. 천마는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표국에 은거한 기인이라 이거로군.”
“마, 맞습니다.”
혈도객은 지나치게 비굴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천마는 그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혈도객, 오늘 좀 이상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