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67
“무, 무엇이 말입니까?”
“너무 고분고분해. 지나쳐. 솔직히 말해라. 뭘 잘못했는지.”
천마의 말에 혈도객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하지만 혈도객은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저었다.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씀을. 그보다 지금은 검마에 대해서……”
천마는 의심스런 눈을 거두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검마. 지금은 검마가 중요하지.”
천마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다시 혈도객을 보며 말했다.
“그 쟁자수가 뭘 어쨌는데 검마가 표국까지 쫓아간 거지?”
혈도객이 잠시 머뭇거렸다. 천마의 눈이 살짝 일그러졌을 때, 혈도객이 입을 열었다.
“마기를 내뿜었습니다.”
“마기? 그럼 마공을 익힌 놈이로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 마기가……”
혈도객은 잠시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리고 힘 있게 말을 이었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혈도객의 말에 천마가 눈을 크게 떴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마기라니, 대체 무슨 뜻인가?
“그게 무슨 말이냐? 빨려 들어간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순수했습니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하 마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마는 혈도객의 말에 눈을 빛냈다. 천마의 머리가 민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역시 검마야. 그래서 그자를 쫓아갔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천마가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좋구나. 또 다른 건 없나?”
혈도객은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단형우와 관계된 모든 기억을 주절주절 얘기했다.
“검마와 저를 단번에 제압했습니다. 그것도 순수한 마기로 그리고 못쓰게 된 검마의 마공을 단숨에 되살렸습니다. 그자는 마치……, 마치 신선 같았습니다.”
“마공을 쓰는 신선이라……, 그렇다면 마선(魔仙)인가?”
천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혈도객에게 물었다.
“나와 비교를 하면 어떻지?”
혈도객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차마 천마보다 단형우가 더 대단한 마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천마는 혈도객의 대답을 들은 거나 다름없었다.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 이제 남은 건 금마공뿐인가.”
천마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창 밖을 바라봤다. 천마의 등 뒤에는 여전히 고개를 조아린 마인들이 숨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무림맹주의 집무실.
독고운과 제갈중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몇몇 문파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간 무림맹이 자칫 분열될 수도 있습니다.”
“파악은 했는가?”
“예, 하지만 파악을 했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문제로군. 하필 이런 시기에……”
독고운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무림맹은 상당히 덩치가 큰 편이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약간의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이어선 곤란했다.
“천마성은 어떤가?”
“아직 겉으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습니다. 검마도 조용한 모양입니다.”
“검마라…… 검마는 어떤 면에선 마인 같지 않은 구석이 있지.”‘
독고운의 말에 제갈중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게 있어서 마인이란 그저 피와 살육, 그리고 무공에 미친 자들이었다.
검마 역시 제갈중천이 보기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독고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어쨌든 검마야 승룡단주가 알아서 할 것이고…… 문제는 천마로군.”
“그렇습니다. 천마가 움직이면 천마성도 움직일 테니 그 여파가 엄청난 것입니다.”
“그렇지, 엄청나지. 천마성만 움직여도 그런데 만일 신강과 청해에 있는 모든 마임들이 하나로 뭉쳐 들고 일어나면 정말로 엄청나겠지.”
독고운의 말에 제갈중천이 눈을 크게 떴다. 식은땀이 잔뜩 흘러내렸다. 그런 상황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마인들은 절대 뭉치지 않습니다.”
“어찌 그리 확신하나? 천마성이 있지 않은가.”
“천마성은 천마라는 특수한 인물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천마라 하더라도 마인 전체를 통합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인이니까요.”
제갈중천은 말을 하면서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설명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 그들은 마인일 뿐이었다.
“만일 천마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 나타나 마인들을 통합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그,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 천마를 능가하는 마인이 나타날 리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래 왔지.”
독고운은 그렇게 말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왜 이리 불안한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긴, 내가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무림맹의 분열을 막는 일일세.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일단 최대한 문파들을 회유하고 단합이 강화되도록 수를 써야 합니다.”
“그래, 그래야겠지. 자네가 알아서 할 수 있으리라 믿네.”
“물론입니다.”
제갈중천은 그렇게 대답하고 잠시 숨을 돌린 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분쟁지역에 대한 조사도 끝났습니다.”
“오, 그래 어떻던가?”
“사실상의 분쟁은 모두 끝났습니다.”
“그래? 끝났다고?”
“그렇습니다. 분쟁 중이던 문파는 한쪽이 완전히 몰락해 버렸습니다. 싸울 상대가 없으니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고운이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그렇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허면, 그 승리한 문파에 대해서 좀 조사를 해 두게.”
“예, 그렇지 않아도 지시를 내려 두었습니다. 향후 무림맹에 속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 이후로도 제갈중천과 독고운은 한참이나 무림맹의 대소사를 논의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맹주님! 크, 큰일 났습니다!”
독고운은 득달같이 달려오는 제갈중천의 외침에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염려하고 있던 일이 현실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일이 잘 안 되었나 보군.”
“안 된 정도가 아닙니다. 그들이 새로운 맹(盟)을 결성했습니다.”
“새로운 맹?”
“이, 이것을 보십시오.”
제갈중천이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독고운은 그 서찰을 받아 죽 읽어 내려갔다.
“정천맹(正天盟)이라……”
서찰의 내용은 별것 없었다. 정천맹을 새로 결성해 무림의 질서를 지키고자 한다는 내용이었다.
주축이 된 문파는 얼마 전 제갈중천이 밝혀낸 문파들과 최근 분쟁에서 승리한 문파들이었다.
“우려했던 모든 것이 들어맞았군.”
“면목 없습니다. 제가 미리 대처를 해서 막았어야 하는 건데……”
“자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지 않나. 어쨌든 장로들을 소집해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는 게 좋겠네.”
“예.”
“개파대회(開派大會)를 연다고 하니 우리도 누군가를 보내긴 해야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군.”
독고운의 말에 제갈중천이 고개를 숙였다. 이 서찰은 정천맹의 탄생을 알리는 서찰이기도 했지만 개파대회 초대장이기도 했다.
어설픈 사람을 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람이라면 정천맹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무림맹 입장에서 정천맹은 배신 집단이었다.
“어쨌든 앞으로 무림에 파란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드네.”
독고운의 말에 제갈중천은 그저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렇게 무림매이 둘로 갈라졌다.
정천맹이 개파한다는 소식은 천하 각지에 전해졌다. 그것은하남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는 천마성에도 서찰이 갔다고 하니, 무림에 관계된 웬만한 단체는 모두 서찰을 받았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설연은 서찰을 쭉 읽은 후, 탁자에 내려놓았다.
“무림에 파란이 일겠군요.”
“아마 그럴 것입니다. 사도련과 녹림이 사라지니 역시 무림맹이 가라지는군요.”
“그나저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파대회에 초대를 받았으니 참석을 하긴 해야 할 텐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하남표국은 무림맹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설연도 형표도 전혀 무림맹을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무림맹이 자꾸 참견하는 것이 귀찮았다.
“이번 기회에 무림맹과 살짝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어쨌든 그동안 무림맹 때문에 문제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었다. 단적으로 최근 표국이 몰락한 계기를 만든 것도 무림맹 승룡단이었으니까.
“그럼 참석하는 걸로 하죠. 이제 누구를 보낼까 하는 문제만 남았네요.”
정천맹이라는 이름이 나타내듯 정파의 한 축을 담당하려 만든 단체이다. 그러니 내부적으로 무림맹과 적대를 하거나 싸울지라도 겉으로는 무림의 평화를 위해 힘쓰는 단체이다.
그리고 모여든 문파를 잘 뜯어보면 꽤 대단한 문파들이 상당수 있었다. 특히 오대세가 중에서 둘이 포함되어 있으니 정천맹을 중심으로 하는 이권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럴 때는 표국의 힘을 과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그럴 힘이 있었다.
검왕이나 검마를 보낸다면 하남표국의 위세를 충분히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설연은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형표를 바라보며 像?열었다.
“최근 단 오라버니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지 않나요?”
“예?”
형표는 난데없이 단형우 얘기에 살짝 놀란 표정으로 조설연을 쳐다봤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평소와 다름없는 것 같던데……”
단형우가 최근 하는 일이라야 그저 빈둥거리며 허창을 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조설연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짐작은 안 되지만. 어쨌든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조설연의 말에 형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민을 하는 단형우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단형우는 어떤 고민이 있더라도 단숨에 그것을 박살내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 일, 오라버니께 부탁드려 보면 어떨까요?”
조설연의 말에 형표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단 소협이 움직이면 아마 검왕 어르신과 검마 어르신도 함께 가시려 할 것입니다.”
단형우도 없는 마당에 검마와 검왕까지 사라진다면 표국에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그것을 헤쳐 나가기 어려워진다.
비록 종칠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아직까지는 표국의 바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조설연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분들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을 수는 없어요.”
“그야 그렇지만 시기가……”
조설연이 빙긋 웃었다. 그 웃음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괜찮아요. 별일 없을 거예요.”
결국 형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세요. 개파대회니 아마 비무대회라도 하지 않을까요? 오라버니께서 참석하시면 참 재미있겠네요.”
사실 조설연은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표국은 가장 중G나 시기였다. 표국의 바탕을 만들고 기둥을 세워야 하는데 자신이 빠질 수는 없었다.
“그럼 이 서찰은 단 소협에게 전해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결국 초대장을 겸한 서찰의 주인이 결정되었다. 단형우로.
단형우는 최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얼마 전 마영대와 검영대를 해치우며 들었던 그 기묘한 감정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분명히 누군가를 죽이면서 드는 후회나 주저함은 아니었다. 만일 그런 거라면 오래전에 느꼈어야 했다. 세상에 나온 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
오늘은 왠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숙소 앞, 뜰에 서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오늘은 안 나가셨네요?”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단형우가 눈을 떴다. 누가 왔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표국 안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손에 잡힐 듯 보였으니까.
“천섬을 보러 왔어요.”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천섬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가져가지만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