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71
검마의 말에 검왕이 살짝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런 자리에서 밝히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또 시작이로군. 한 판 해 볼 테냐?”
검왕의 말에 검마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애도 아니고……”
검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각해졌다 느낀 당호관이 급히 중재를 했다.
“자자, 이러지들 마시고 술이라도 한 잔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당호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점소이가 술과 안주를 나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술판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단형우의 길고 긴 식사가 끝났다.
“공자님, 왜 먼저 오셨어요? 같이 오려고 했는데……”
우문혜의 말에 단형우가 살짝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호칭이라든지 말투가 뭔가 좀 이상했다.
“왜요? 안 보는 동안 더 예뼈졌나요?”
우문혜의 애교에 옆에 있던 당문영과 제갈린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 이후로도 우문혜의 애교 공세는 조금 더 이어졌고, 당문영과 제갈린은 연방 단형우의 기색을 살폈다.
단형우는 저런 애교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었고, 그렇다면 폭발할지도 몰랐다.
두 여자는 약간의 기대가 어린 눈으로 단형우와 우문혜를 쳐다봤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단형우는 거의 아무런 반응 볼이지 않았다.
사실 단형우에게 이런 애교를 부리는 행위는 죽음을 부르는 행동이었다. 미녀이 유혹은 단형우의 동료들을 상당수 죽음으로 몰고 갔다. 덕분에 단형우는 아름다운 여자도 싫어했고, 애교도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 줄만 했다. 이곳은 지옥이 아니라 세상이었으니까.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수련이었다.
단형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우문혜는 단형우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계속해서 표정을 바꿔가며 말을 걸었다.
갠잔 안에는 단형우 일행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손님들이 남자였다. 그리고 그 남자들은 거의 무림인이었다. 각 문파의 대표로 참석한 무림인들이었으니 자존심도 강하고 실력도 높았다.
그들은 처음 우문혜가 객잔에 등장할 때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모든 여인들 중 단연코 우문혜가 최고였다.
처음에 제갈린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그저 힐끗거리며 제갈린의 아름다운 외모를 훔쳐보던 사람들도 우문혜 만큼은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사내들은 보면 보수록 짜증이 조금씩 치밀었다. 우문혜 옆에 앉아 있는 단형우 때문이었다.
단형우 옆에는 세 여인이 앉아서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다.
그중 두 여인이 삼봉이화(三鳳二花) 중 백봉과 비봉이었찌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어쨌든 아름다운 여인이 단형우 옆에 앉아서 관심 있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우문혜의 얼굴이 이러저리 변하며 단형우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해도,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이 단형우를 관심 있게 쳐다봐도 단형우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광경에 조금 짜증이 났다.
‘대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하지만 척 보기에도 잘난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무공도 없어 보였고, 분위기도 별로였다. 그렇다고 돈이 많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이젠 단형우에게로 향했다. 대체 저런 여인들을 잡아끄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단형우와 세 여인을 정신없이 오가고 있을 때, 일단의 무리가 객잔 안으로 들이닥쳤다.
무려 스물이나 되는 사내들이었는데, 모두 청색 무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선 패도적인 기세가 뭉클뭉클 쏟아져 나왔는데 덕분에 객잔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들은 패검문(覇劍門) 무사들이었다.
패검문은 호남에서 가장 강한 문파였다. 그리고 이번에 개파하는 정천맹에서도 큰 축을 담당하는 문파였다.
원래 무림맹 소속이었는데 이번에 배를 갈아탄 것이다.
패검문은 이름에서 나타나듯 패도적인 검법으로 이름 높은 문파였다. 패검문 무사 하나하나가 다른 중소문파의 문주에 퍼금간다고 해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강했다.
비록 무사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하나하나가 정예이니 수가 많은 것보다 오히려 더 무서웠다.
그들은 객잔에 들어오자마자 객잔 안을 한 번 훑고는 단형우가 있는 곳으로 곧장 걸어갔다.
사내들은 패도적인 기세를 감추지 않고 단형우를 둘러쌌다. 그들이 쳐다보고 있는 것은 단형우가 아니라, 단형우가 등에 메고 있는 도(刀), 천섬(天閃)이었다.
단형우는 이들이 객잔에 들어오기 전부터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등장이 자신을 계속 쫓아오던 그들과 관계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도, 이들에게도 비슷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그 도가 천섬인가?”
스무 명 무사들 중, 가장 패도적인 기운을 쏟아내고 있는 사내가 입을 열었따.
단형우는 그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제법 사내답게 생긴 자였다. 짙은 누썹과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사내의 이름은 패엽, 패검문(覇劍門)의 소문주였다.
패엽의 말에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가지는 파장이 객잔을 술렁히게 만들었다.
“천섬?”
“그 천기자가 만들었다는?”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터져 나왔다. 천섬이라면 천기자가 만든 희대의 기물이었다.
쓰는 사람을 새로운 무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헌데 그 보물을 가진 자가 나타났다. 사실 천섬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
천기자의 비동이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그런데도 그것이 그리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묻힌 것은 바로 천섬의 등장 때문이었다.
ㅡ 천섬은 하남표국이 가져갔다. 그것도 하남표국의 국주도 아닌 쟁자수에게 넘어갔다.
이런 소문이 은밀하게 돌았다. 유명 문파의 문주들과 주요 인물들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 알려질 대로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가?”
강렬한 공력이 깃든 사내의 말이 객잔을 뒤흔들었다. 객잔 안을 다시 조용해졌다.
스무 명 패검문 무사들이 쏟아내는 기세가 더욱더 강해졌다. 몇몇 사람들은 결국 그 기세를 견디지 못하고 객잔에서 나가 버렸다.
“허허. 이것 참, 어린 것들이 왜 이리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원.”
패엽은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봤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눈여겨봤지만 별 볼일 없다 판단해서 신경을 껐던 두 명의 중년사내 중 하나였다.
“지금 그 말은 나에게 한 말인가?”
패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중년사내, 검왕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헛. 그래, 여기서 어린 것이 또 누가 있는가? 머리만 어린 게 아니라 말버릇도 어리구나.”
검왕의 말에 패엽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화가 머리 끝까지 뻗친 것이다.
이 호남땅에서 누가 감히 패검문의 소문주인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그 말은 자신의 머리가 모자라다는 뜻 아닌가.
“그 말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 믿겠다.”
콰아아아!
패엽의 몸에서 패도적인 기세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그 기세는 고스란히 검왕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검왕이 누구인가. 천하십대고수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최근 단형우 덕분에 새로운 경지로 올라설 준비가 된 그야말로 초절정(超絶頂) 고수가 아닌가.
검왕은 그 기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흘리는 것도 아니고 고스란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글쎄, 과연 내가 그 말을 책임질 수 있을지 모르겠군. 고작 염철군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야.”
검왕의 말에 패엽은 갑자기 온몸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올라왔다. 패엽은 염철군이라는 이름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거, 검왕……!”
검왕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패엽을 향해 돌아섰다.
후와아악!
강렬한 기세가 바람이 되어 패엽에게 쏟아졌다. 패엽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아니, 패엽뿐 아니라 나머지 패검문 무사들도 동시에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만큼 검와의 기세가 대단했다.
“어떤거? 이만하면 책임을 질만 한가?”
검왕의 말에 패엽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에게 검왕은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모두 나서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따.
검왕이 비록 천하십대고수 중 하나지만 패검문의 문주인 패장천 역시 십대고수였다.
검왕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큰 실수였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필요는 없었다. 검왕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모험을 걸어볼 만큼 천섬의 유혹은 강렬했다.
“그래도 변하는 건 없을 것입니다. 천섬은 패검문에서 가져가겠습니다. 물론 대가는 충분히 치르겠습니다.”
패엽은 일단 한 발 물러나는 척 했다. 검왕은 고개를 돌려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는 천섬에 전혀 미련이 없었다. 지금은 천섬과의 인연이 모두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패엽에게 넘겨주기는 싫었다.
“싫다.”
단형우의 담담한 대답에 패엽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텐데.”
패엽의 말에 단형우가 그를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 더 이상 볼 가치도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패엽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리고 주변에 눈짓을 했다. 벌써 무사 중 하나가 패검문에 연락을 취하러 갔고, 그 결과가 거의 다와갔다.
“슬슬 시작해도 되겠군. 검왕께서도 우리 아버지와 싸운다면 승부를 점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패엽의 말에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패룡(覇龍)이라면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지.”
패검문의 문주 패장천은 패룡이라 불린다. 그 압도적인 힘때문이다. 패룡의 힘은 십대고수 중 으뜸이라 전해진다.
그리고 그 패룡이 객잔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자,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패엽의 말에 검왕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에 맞춰 검마가 일어났다.
스아아아아!
검마가 일어남과 동시에 객잔 안이 스산한 마기로 가득 찼다. 패엽은 화들짝 놀라 내력을 끌어올렸다. 마기에 당하면 자칫 내력이 흐트러져 싸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패엽은 너무나 놀라 말도 하지 못하고 검마를 쳐다봤다.
검마는 말없이 패엽을 쳐다봤다.
패엽은 대체 이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단형우 옆에 앉아 있던 제갈린이 해결해 줬다.
“그분의 이름은 모르지만 명호는 아주 유명해요.”
패엽의 시선이 제갈린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제야 그곳에 있는 세 미녀를 발견했다. 패엽의 눈이 순식간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렇게 커진 눈이 찢어질 정도로 더 커져야 했다. 제갈린의 한 미디에 의해서.
“그분의 명호는 검마(劍魔)죠.”
제갈린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객잔 안에 싸한 한기가 돌았다. 마기와 한기, 그리고 투기와 살기가 얽혀 객잔 안에 휘몰아쳤다.
객잔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 버릴 것처럼 객잔 안이 흥분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때 패룡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 순수 타이핑본이고 검토를 하지 않아 오타가 있더라고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문맥이나 전, 후편의 책을 토대로 오류가 있는 부분은 임의로 수정했습니다. –
정천맹주(正天盟主)
“오랜만이군.”
조용하지만 박력이 넘치는 목소리가 객잔 안에 울렸다. 객잔 안의 상황은 터지기 일보 직전, 하지만 패룡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따.
패룡과 검왕의 눈이 부딪쳤다. 그리고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도 변한 게 없군.”
패룡 역시 검왕과 마찬가지로 사십대 정도로 보였다.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패룡은 고개를 돌려 패엽을 쳐다봤다. 패엽은 패룡의 등장한 순간부터 기세가 등등했다. 아무리 검왕이라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질 리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검마는 자신들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검마의 경우 상당히 과소평가된 면이 있었다. 무림맹을 비롯한 정파 무인들에 의해 신강과 청해 쪽으로 쫓겨난 자들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너와 벽검대(碧劍隊)라면 검왕쯤은 상대할 수 있겠지?”
패룡의 말에 검왕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그리고 패엽과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무사들을 쳐다봤다. 상당한 수준이긴 했지만 자신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패룡이 헛소리를 지껄일 리는 없으니 뭔가가 있는 모양이군.”
검왕은 검을 뽑았다. 패룡이 자신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한 번 보고 싶었다.
“좋아, 원한다면 놀아 주지.”
검왕의 말에 패엽과 벽검대가 동시에 검을 뽑았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검에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검왕은 눈을 빛내며 그들의 검을 살폈다. 검에도 분명 뭔가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객잔에 굳이 피해를 줄 필요는 없겠지.”
검왕이 중얼거리며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객잔 밖으로 나가 버린 검왕을 뒤따라 패엽과 벽검대 역시 서둘러 몸을 날렸다.
검왕과 패검문 무사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패룡이 고개를 돌려 검마를 쳐다봤다. 검마도 일어선 채로 계속 서 있었는데 여전히 객잔 안을 가득 채운 마기를 거둬들이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슬슬 이 기분 나쁜 기운은 거둬들이는 게 어떤가?”
패룡의 말에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객잔을 메웠던 마기가 검마의 몸으로 스며들어갔다.
“밖에서 듣자하니, 검마라고?”
패룡의 질문에 검마는 굔鄂舊?않았다. 패룡 역시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세간의 평가가 얼마나 멋대로인지 충분히 알겠군. 누가 십대고수보다 쳐진다고 했는지 몰라도 만나면 목을 꺾어 줘야겠어.”
패엽은 몰라도 패룡은 알 수 있었다. 검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자인지.
“천마성 사라마들은 다 이런가? 모두 이 정도라면 곤란한데 말이야.”
패룡이 슬쩍 웃으며 말하자 검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니 걱정 마라. 그건 그렇고 여기서 할 텐가?”
패룡은 검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여전히 앉아 있는 단형우를 슬쩍 쳐다봤다. 정확히는 단형우 등에 매달려 있는 천섬을 쳐다봤다.
“굳이 어려운 길을 갈 것 있나? 싸우고 나면 피차 피곤해질텐데 말이야. 긴 말 하지 않지. 얼마면 넘기겠나?”
검마는 살짝 인사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