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72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가 이닌 듯한군.”
“그 말은 내가 어떻게 천섬을 얻든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패룡이 말에 검마가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따. 그리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신이 더 이상 움직일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마음대로.”
굳이 죽고 싶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었다. 사실 패룡이 죽든 말든 검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죽으면 더 좋았다. 무림맹과 다름없어 보이는 정천맹의 힘이 약화될 것 아닌가.
패룡은 검마를 잠시 노려봤다.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패룡의 시선이 단형우에게로 돌아갔다.
“표정이 좋지 않군. 그렇게 겁먹거나 불편해할 것 없네.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테니 걱정할 것 하나도 없네.”
단형우의 표정이 살짝 불편한 기색을 띠고 있는 것은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을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앉는 것은 불편했다.
“그래, 얼마를 원하나? 아니면 무공을 원하나? 벽검(碧劍)이라는 패검문에 전해 오는 꽤 괜찮은 무공이 있는데 그것과 교환하는 건 어떻겠나?”
벽검은 벽검대가 익히고 있는 무공이었다. 패검문에서도 특별히 선별된 제자들만 익힐 수 있는 뛰어난 검법이다. 단 벽검을 완벽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특별한 검이 필요하다.
“벽검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지도해 주지. 어떤가? 이 정도면 천섬의 가치로는 충분하지?”
패룡은 자신만만했다. 자신이 제안한 조건은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패검문의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벽검을 완벽하게 익히면 아무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벽검을 익혔다는 자체가 패검문과 관계된 자라는 뜻이었으니까.
단형우는 여전히 불편함이 살짝 드러나 얼굴로 앉아 있었따. 결국 패룡이 서서히 기세를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패도적인 기세가 스멀스멀 단형우를 감쌌다.
“내 말을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패룡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했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천하에 누가 감히 패룡의 말을 무시하겠는가.
“못 참겠군.”
단혀우가 결국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대번에 편한 얼굴이 되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어. 힘든 수련이군.”
단형우는 그렇게 중얼거린 후 몸을 돌렸다. 방이 있는 후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단형우의 말과 행동에 우문혜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평소 단형우가 앉는 것과 눕는 것은 병적으로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랬다.
“호호호홋! 그걸 수련이라고 말하는 분은 단 소협밖에 없을거예요.”
우문혜의 웃음에 패룡의 인상이 점점 더 구겨졌다. 그리고 우문혜 옆에 앉아 있는 두 여인. 제갈린과 당문영의 안색이 헬쓱해졌다.
제갈린은 기절 일보 직전이었다. 패룡이 누군인가. 십대고수 중에서 힘마으로는 제일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패룡을 무시했으니 그냥 넘어가기에는 문제가 너무 커져 버렸다.
단형우가 강하다는 사실은 잘 안다. 천섬을 휘두르며 뇌기(雷氣)를 다스리는 모습은 똑똑히 봤고, 검마와 검왕이 직접 자신들보다 강하다고 시인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상대는 패룡이었다. 단형우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더 그랬다.
당문영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공포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도 어려웠다. 단형우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봐서 그가 충분히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상대는 패룡이었다.
“감히!”
패용의 몸에서 강렬한 기세가 피워 올랐다.
콰지지직!
객잔이 흔들리며 여기저기서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흙가루와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패룡의 기세가 직접적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형우는 몸을 돌려 패룡을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했다. 이럴 때 조설연이 있었다면 아마 그녀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죽여도 되냐고.
최근 단형우는 되도록 사람을 죽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이 세상과 어우러지는 가장 중요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형우는 어느새 옆에 따라붙은 우문혜를 쳐다봤다.
“죽이면 안 되겠지?”
단형우의 물음에 우문혜의 누니 동그래졌다.
“저, 저한테 물어봐 주신 건가요?”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혜의 눈이 감격을 담아 글썽거렸다. 우문혜는 잠시 단형우를 그렇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패룡을 쳐다봤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준 패룡에게 우문혜는 마음으로나마 감사했다.
“죽이시면 안 돼요. 정천맹에 손님으로 가는 중이잖아요.”
우문혜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패룡은 그 모든 대화를 들으며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상태였다. 분노가 머리를 터트려 버릴 것만 같았따.
“이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것들이 감히!”
스릉!
패룡이 단숨에 검을 뽑았다. 순식간에 패룡의 검에 강렬한 빛이 션慧? 검강이었다.
힘으로는 아무도 따를 자가 없다는 패룡의 검강이다. 이것을 직접 검으로 받아낼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패룡은 물론이고 객잔 안에서 구경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패룡은 한 발 한 발 단형우를 향해 다가갔다. 패룡의 검에 맺힌 검강이 점점 커졌고, 짙어졌다. 눈부시게 빛나던 검강은 어느새 투명한 유리처럼 변했다.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검강이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패룡이 검을 들어올린 것이다.
“한 번이라도 막으면 용서해 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용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패룡이 판단하는 단형우는 그저 겉멋만 든, 삼류조차 못되는 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고, 무공을 익힌 자가 갖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러니 그렇게 판단되는 것이 당연했다.
패룡의 강렬한 힘이 가득 담긴 검강이었다. 아무나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십대고수쯤은 되어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힘을 모은 시간이 길었으니 십대고수라 해도 막기 어려울 것이다.
“검을 뽑아라.”
패룡이 말했다. 검도 들지 않은 상대를 벨 수는 없다. 하지만 단형우는 패룡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형우의 무심한 눈빛이 패룡을 꿰뚫고 지나갔다.
패룡은 순C거으로 자신의 폐부를 낱낱이 내보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단형우의 눈빛은 두려움에 떠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냥 평범한 것도 아니었따. 굳이 따지자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여유가 가득한 눈이었다.
패룡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무시한 것은 정말로 안중에 없다는 뜻이었다. 자신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는다는 말이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결국 패룡의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어마어마한 힘을 머금은 검강이 단형우의 정수리를 갈라 버릴 듯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한 줄기 벼락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쩌엉!
엄청난 소리와 함께 패룡의 검강이 산산이 부서졌다. 검강 파편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쩌저저정!
수많은 벼락들이 수명을 뻗어 나갔다. 그리고 검강 파편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단형우는 마치 눈처럼 쏟아지는 빛 가루들 속에서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패룡을 쳐다봤다.
패룡은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으로 단형우의 눈을 바라봤다.
부서졌다. 엄청난 힘을 응축한 검강이. 다른 것은 몰라도 힘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무림인들의 힘은 당연히 내공이다. 패룡은 천하에서 가장 내공이 높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힘에서 져 버렸다.
더 늦게 출수한데다가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검에 자신의 검이 부서져 버렸다. 완벽히 힘에 밀린 것이다.
패룡은 여전히 멍한 눈으로 자신의 검을 내려다봤다. 검강과 함께 부서진 검신은 거의 형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패룡의 고개가 다시 단형우에게로 돌아갔다.
“어, 어떻게……”
단형우는 말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객잔 후원으로 향했다. 우문혜가 그 뒤를 쪼르르 따라갔고, 잠시 후, 제갈린과 당문영이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뒤 쫓았다.
이미 상황은 끝났다. 당호관과 영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패룡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게 조심하며 후원으로 가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구경하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패룡과 검마뿐이었다.
“슬슬 바깥쪽도 정리가 된 모양이군.”
검마의 중얼거림에 패룡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객잔 입구를 쳐다봤다. 그리고 처음 나갈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여유 있게 들어서는 검왕을 볼 수 있었다.
“고작 검진(劍陳) 따위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니 실망이군.”
검왕의 말에 패룡의 시선이 객잔 밖으로 향했다. 문을 넘어서 보이는 개잔 밖의 풍경은 처참했다. 여기저기 상처로 얼룩진 패엽과 벽검대가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주저앉아 있었다.
너무도 완벽한 패배였다.
“쯧쯧, 보아하니 그놈한테 당했군. 충격이 꽤 오래 가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검왕이 후원으로 향했다. 검마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패룡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고 검왕의 뒤를 따랐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패룡은 그때까지 멍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점점 표정이 돌아왔다. 패룡의 얼굴에 드러난 것은 극도의 수치심과 분노였다.
“으드득.”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방금 전의 패배는 상대를 너무 얕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십대고수인 자신이 한 수에 당할 수 있겠는가.
당장 처들어가 목을 따고 싶었지만 지금은 물러날 때였다.
“절대 잊지 않는다.”
한 자 한 자 씹어뱉은 패룡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객잔에서 나갔다.
객잔에서 있었던 일은 순식간에 장사(長沙)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일이 벌어진 객잔은 장사에서 가장 큰 객잔이다. 당연히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거기다 대부분이 무림인들이었다.
검왕과 검마가 나타났다는 사실도 큰 관심거리였지만 패룡이 고작 스무 살밖에 안 되는 청년에게 졌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 왔다.
그렇지 않아도 장사에는 정천맹의 개파대회(開派大會) 때문에 수많은 무림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 무림인들이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단형우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십대고수를 이겼으니 그 반열에 올라서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 않은가 덕분에 단형우 일행이 묵고 있는 객잔은 항상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아무리 객잔에 사람이 넘쳐나도 단형우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따.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단형우 일해은 객잔으로 나가지 않았따.
단형우 일행은 객잔 후원에 있는 가장 큰 방에 모여 있었다. 후원에 틀어박힌 지도 이틀이 넘었으니 슬슬 좀이 쑤시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대체 언제쯤 열리는 겐가?”
“확실한 날짜를 정한 것이 아니라서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검왕의 질문에 대답한 당호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상한 것은 정천맹이 대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정천맹은 그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다. 장사에 있는 큰 규모의 장원 중 하나일 거라 짐작은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파대회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준비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사람과 물자가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정천맹의 위치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천맹은 마치 구름 속에 숨은 용처럼 실체를 보여주지 않았따.
“궁금한 것은 또 있습니다. 대체 정천맹주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당호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정천맹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조만간 개파대회가 열련다는 것과 참여한 몇 개 문파들, 그리고 몇몇 무림명숙들에 대해서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중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가장 자극하는 것은 아직 맹주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보통 맹(盟)을 결성하는 경우 개파대회에서 맹주를 선출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정천맹주의 경우는 미리 내정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꽤 대단한 이문이라 하더군요.”
제갈린이 살짝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제갈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알려진 문파들 중에서는 패검문이 가장 유력하군요.”
“하지만 패룡은 맹주의 그릇이 아니야.”
검왕이 단정하듯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패룡은 정천맹주라는 이름에는 걸맞을지 몰라도 그릇은 확연히 모자랐다.
게다가 이번에 망신까지 당했으니 아마 미리 내정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맹주로 추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로 맹을 결성하는 마당에 흠이 있는 사람을 맹주 자리에 앉힐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잠시 정천맹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가 오갔다. 한 식경 정도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바깥 동태를 살피러 나갔던 영사가 서 있었다.
“내일 시작한다고 합니다.”
영사의 말에 모두의 눈이 빛났다.영사는 우문혜에게 다가갔다.
“장사 중심에 있는 커다란 장원에 현판을 내건다고 합니다.”
일행의 눈이 빛났다.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영사는 우문혜의 반응을 살피면서 계속 보고했다.
“사람들이 지금 장사 중심부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다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영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문혜가 벌떡 일어섰다.
“가 보자.”
우문혜의 말에 영사가 당황했다.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가 봐야 안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거야 가 보지 않고는 모르잖아.”
우문혜가 그렇게 말하자 검왕과 검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말이 맞아. 궁금한 건, 가서 직접 확인해봐야지.”
그렇게 세 사람이 나가 버리자 당호관도 가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결국 당호관과 당문영, 그리고 제갈린까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형우는 가만히 서서 사람들이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모두 나가 버리자 결국 단형우도 걸음을 옮겼다.
후원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객잔을 통해야 하지만 무공이 뛰어난 일행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훌쩍 담을 뛰어넘은 것만으로 간단히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비록 담이 꽤 높았지만 일행 중 그것에 구애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역시 모두 정천맹이라고 예상되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상당히 복잡했지만 일행은 유유히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갔다. 그들의 신법은 거칠 것이 없었다.
단형우는 천천히 일행을 따라 걸어갔다. 빠르지 않고 적당한 속도로 가는데도 아무하고도 부딪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마치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 가는 듯했다.
장사 중앙으로 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 입을 크게 벌리고 서 있었다. 단형우 일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건물이 다닥다닥 멸집해 있는 거리에 불과했다. 헌데 지금은 모든 것이 온데간데없고 커다란 장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거대한지 담장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정문만 해도 웬만한 힘으로는 열지 못할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사람들은 저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하루 만에 거대한 장원 하나를 만들어 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당호관은 경악한 표정으로 장차 정천맹이 될 장원을 바라봤다. 어제 이곳을 둘러봤기 때문에 더 놀랐다.
일행의 궁금증을 해소해 준 것은 제갈린이었다.
“정말 놀랍군요. 이건 진법을 이용한 것이 분명해요.”
진법이라는 말에 일행의 눈이 빛났다. 현재 진법으로 가장 이름 높은 곳은 당연히 제갈세가였다. 일행은 기대어린 눈으로 제갈린을 쳐다봤다.
“그동안 일종의 환영진(幻影陳)으로 이 장원을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요. 정말 놀라워요. 이렇게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서 이 정도 규모의 장원을 감추다니 말이에요.”
제갈린의 말에 일행은 눈을 빛내며 장원에 다가갔다. 일행이 내뿜는 기도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양 옆으로 조금씩 비켜섰다.
제갈린은 찬찬히 주변을 살피면서 장원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이내 걸음을 멈췄다. 불과 몇 장만 더 가면 문에 닿을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