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78
“하악, 하악, 다, 단소협. 조,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될까요?”
결국 가장 먼저 손을 든 사람은 제갈린이었다. 제갈린이 일행 중 가장 무공이 떨어졌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갈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단형우가 멈춰 섰다. 그러자 모든 일행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힘들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단형우는 힘들어서 헉헉대는 일행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처 생각 못했군.”
단형우의 말에 일행의 얼굴에 황당함이 묻어났다. 속으로 몇 가지 욕이 지나갔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단형우는 마염기를 슬쩍 집어던졌다.
털썩.
마염기는 바닥을 꼴사납게 굴렀다.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갑자기 날아가니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크으윽.”
마염기는 고통스럽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도망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어떤 방법을 써서 도망가더라도 다시 잡힐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목을 잡힌 채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상당히 체력이 소모되었다. 지금은 그 체력을 보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마염기는 쉬면서 힐끗 당호관과 영사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동료하기 힘든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온몸의 혈도를 제압당한 상태였는데 눈에는 체념이 가득했다.
그들은 흑전사가 되는 것을 거부한 사도련과 녹림의 무사였다. 흑전사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마염기도 모른다. 그저 흑전사가 된 사람들을 부리는 것이 전부였다. 흑전사들을 보통 사람과 똑같았지만 신기하게도 마염기와 같은 지휘자가 근처에 없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흑전사가 되지 않거나, 지휘자가 아니라면 사도련의 중추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중추에 접근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적었지만,
어쨌든 그 두 사람은 사도련에도, 그리고 무림매에도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지금 가치 있는 사람은 마염기뿐이었다.
마염기는 앞으로의 일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무림맹에서 넘겨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지금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지만, 일단 단형우만 사라져 준다면 자신이 살아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야 하나?”
마염기는 한창 생각에 빠져 있다 단형우의 말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설마 잠깐 쉬었다 갈 생각이었단 말인가.
‘저놈은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야! 악마야! 마귀야!’
마염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일행의 표정을 보니 다른 일행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일찍 가도록 하죠. 이 정도 속도라면 내일 밤쯤에는 형산에 도착해 버리겠네요.”
모두 할 말을 잊고 있을 때, 우문혜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안 그랬다가는 정말로 다시 달려갈 기세였기 때문이다.
일행은 우문혜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모두의 눈에 깊이 각인되었다.
단형우는 한쪽으로 가서 섰다. 어차피 서서 잘 생각이었기 때문에 가장 편한 장소를 찾은 것이다. 단형우가 찾은 장소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바위도 있고, 나무도 꽤 많은 곳이었지만 그런 곳들을 교묘히 피해 사방이 트인 곳에 가서 섰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누군가 근처로 다가온다면 가장 빨리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 있다면 말이지.’
제갈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서둘러 잘 준비를 했다. 지금까지 먹지도 못했기 때문에 뭔가 먹고 싶긴 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금 서둘러 쉬어야만 했다.
이윽고 침묵이 찾아들었다. 모두 잠자리에 든 것이다.
마염기는 잠을 청하면서도 치를 떨었다. 단형우가 서 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다른 일행은 단형우가 서서 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염기는 모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진정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인가!’
마염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희망을 완전히 버렸다.
우문혜는 가만히 누워 단형우를 쳐다봤다. 사실 일행 중 조금 이상한 것을 느낀 것은 우문혜뿐이었다. 우문혜는 그 때문에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단형우는 상당히 서둘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끼니를 거를 정도로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 달릴 때는 빨리 달리더라도 밥 먹는 시간은 꼭 챙기는 사람이 바로 단형우다. 먹는 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사람 아닌가.
헌데 오늘은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물론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생으로 굶을 수밖에 없었지만.
‘물론 하루쯤 굶는다고 이상이 올 사람도 없겠지만.’
어쨌든 우문혜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단형우는 아무 이유없이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우문혜가 몸을 일으켰다. 궁금한 것은 물어 봐야 직성이 풀린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혜는 단혀우에게 다가갔다. 단형우는 서서 눈을 감고 있었지만 우문혜가 눈앞에 섬과 동시에 눈을 떴다.
번쩍!
단형우의 눈에서 섬광이 일었다. 우문혜는 깜짝 놀랐지만 벼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단형우는 우문혜의 말을 들으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우문혜는 단형우의 눈을 마주 보며 배시시 웃었다. 보통 남자가 봤다면 순식간에 덮쳐 버리고 말았을 정도로 강렬한 유혹이 담긴 웃음이었지만 단형우는 그저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죠?”
우문혜의 질문에 단형우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마치 딴청을 피우는 것처럼.
우문혜는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면 발걸음을 옮겨 단형우의 얼굴이 마주 보이는 자리로 걸어갔다.
“왜 절 피하세요?”
우문혜가 또 배시시 웃었다. 단형우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그냥?”
우문혜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걱정돼서.”
단형우의 말에 우문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걱정이요? 누구를요? 설마 검왕 할아버지요?”
우문혜의 말에 단형우가 다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우문혜는 단형우의 행동에 잠깐 놀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강한 분들인걸요. 그분들은.”
천하의 검왕과 검마를 걱정한다고 말하면 누구라도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단형우이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단형우가 보기엔 검왕이나 다른 사람이나 다 똑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 이제 잘게요. 단 공자님도 주무세요.”
우문혜는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어느새 단형우를 부르는 호칭이 소협에서 공자님으로 바뀌었다.
우문혜가 자리에 가서 눕자, 단형우는 가만히 하늘을 쳐다봤다. 수많은 별들이 단형우의 눈으로 쏟아져 내렸다.
우문혜 덕분에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단형우는 지금 검왕을 걱정하고 있었다. 검왕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또 그 손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그리고 검왕을 쫓아간 검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이것은 생소하면서도 상당히 따뜻한 감정이었다.
“합기(合氣)를 좀 넣어 줄 걸 그랬군.”
합기(合氣)란 조설연에게 넣어 주곤 했던 그 기운이었다. 삼재기공의 합일을 이루면 쓸 수 있는 기운이고, 단형우 자체나 다름없는 기운이었다.
단형우는 한참 동안이나 별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내일은 뭔가를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강서(江西) 남창(南昌) 의선문(醫仙門).
무공을 익히고 전승하는 무림 문파이면서도 의술로 더욱 유명한 곳이었다. 문주인 정철영은 사람들에게 의선(醫仙)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의술이 뛰어나고 덕이 높았다.
사실 의선문은 지닌바 무공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웬만한 강호 문파는 의선문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그것은 비단 의선문이 무림맹의 비호를 받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의선문은 무림맹의 비호를 받는 만큼, 마인이나 사파의 인물들을 치료하는 것을 꺼려왔다.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고, 목숨이 경각에 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되도록 치료하지 않고 돌려보내왔다.
그럼에도 사도련이나 녹림은 그 세력이 한창일 때조차 의선문을 건드리지 않았다. 의선문의 의술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의선문이 가진 힘이 컸기 때문이다.
의선문 자체가 가진 힘은 그렇게 크다 할 수 없었찌만 의선문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의선문의 규모는 상당했다. 그리고 그 규모가 큰 만큼 다친 몸을 의탁하고 있는 사람의 수도 엄청났다.
그리고 그 다친 사람들을 지키거나 수발을 들기 위해 머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대부분 무림인이었고, 개중에는 엄청난 고수들도 많았다.
의선문 자체의 힘은 그저 그렇지만 뛰어난 의술 덕분에 부수적으로 딸려온 힘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남창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검은 옷(黑衣)을 입고 있는 사내들이었는데, 모두 무표정한 얼굴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의선문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움직이는 사내들 틈에 나름대로 표정이 살아 있는 자들도 섞여 있었따. 그들은 사내들의 움직임을 따라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모두 왓나?”
한 사내의 질문에 그들은 서로를 확인했다.
“마염기가 아직 안 왔습니다.”
처음 질문을 했던 사내가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흑전사를 오십이나 데리고 간 놈이 아직도 안 왔다고? 고작 유가장 따위를 치면서?”
사내는 두 번째 전사단의 단주였다. 새로 등장한 사도련의 무력부대는 모두 흑전사단으로 이루어졌고, 이백으로 구성된 전사단이 다섯 개 있었다. 모두 천이나 되는 거대한 힘이었다.
사도련은 꽤 큰 단체였다. 당연히 무사들의 수도 많았다. 고수들이야 검왕과 황금련, 그리고 무림매에 의해 거의 죽음을 면치 못했지만 하급 무사들은 상당한 수가 살아남았다.
녹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녹림은 그 특성상 훨씬 많은 자들이 살아남았고, 그들 대부분은 흑전사가 되었다.
흑전사가 되기를 거부한 사람들 역시 사도련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 조직의 부활을 함께 꿈꾸고 있었다. 물론 조직 내에서는 은연중 배척받았지만.
어쨌든 이 단주는 살짝 짜증이 났다. 마염기는 지휘자 중에서도 상급에 속했다.
한꺼번에 백 명의 흑전사를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드물었다. 그것은 거의 단주에 맞먹는 힘이었다.
이 단주는 모여 있는 흑전사들을 둘러봤다. 백오십, 마염기가 데리고 있는 오십의 흑전사를 제외하면 한 명의 손실도 없이 임무를 완수해낸 것이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흑전사는 정말로 강력한 힘이었다. 그런 흑전사가 지금 백오십이나 있다. 의선문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마염기의 오십 흑전사가 있었다면 훨씬 더 쉬웠겠지만 오지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우리끼리 간다. 마염기는 나중에 합류하면 돼. 지금 이 시기를 놓칠 수 없다.”
현재 의선문에는 상당히 큰 힘을 빠져 나간 상태였다. 예전 천기자의 비동 때문에 상처를 입은 무림맹 무사들과 제갈세가 사람들이 바로 어제 돌아갔다.
그들이 사라진 덕에 지금 의선문은 거의 텅텅 비다시피 했다. 물론 다른 문파의 환자들도 상당히 많았지만 무림맹 무사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공백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공백도 의선문이 세워진 이래 몇 번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무림인들이란 기본적으로 힘에 대부분을 의지하기 때문에 부상을 입는 일이 잦다. 이런 빈자리는 금세 채워지게 마련이다.
“일단 의선문을 포위하고, 내 신호에 맞춰 동시에 담을 넘는다.”
이 단주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흑전사들이 빠르게 몸을 날려 의선문을 포위했다.
지휘자는 흑전사를 부린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흑전사들은 남름대로 의지가 살아 있었다. 단주의 명이 떨어지면 지휘자들을 통하지 않고도 즉시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따.
다만 지휘자가 근처에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도련을 배신할 수 없었다.
사도련주나 흑전사단의 단주, 혹은 지휘자가 명령을 내리면 그것을 수행해야만 했다. 명령이 흑전사의 의지 속으로 자연스럽게 침투하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강시와는 차원이 다른 능력을 제공한다. 강시는 스스로 생각하고 궁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지만 흑전사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연스럽게 대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단주는 민첩하게 움직이는 흑전사들을 바라보다가 옆에 늘어서 있는 지휘자들을 쳐다봤다.
‘자기들도 흑전사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겠지.’
단주의 얼굴에 약간의 씁쓸함이 떠올랐다. 그것은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이들의 최상층에는 바로 사도련주가 있었다. 그렇기에 사도련주의 명령을 이들은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단주의 얼굴에 결연함이 떠올랐다. 무림맹을 무너뜨리려면 그런 사소한 것들은 모두 잊어야 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복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무림맹에도, 그리고 황금련에도.
이내 흑전사들이 의선문을 포위했다. 의선문의 정문은 항상 활짝 열려 있었다. 환자라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배려였다.
단주는 의선문의 정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사내들을 쳐다봤다. 이들은 흑전사가 되기를 거부했으면서도 아직 사도련에 남아 있는 자들이었다. 단주의 마음속에서 쓰레기라 정의된 자들.
“마염기가 도착하면 작전을 시작했다고 알려라.”
단주는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하는 사내들을 보며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단주의 소매에는 날카로운 비수들이 감춰져 있었다.
그 비수들은 의선문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눈에 띈 사람들을 해치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공격 신호였다.
흑전사들에게 별다른 작전은 필요 없었다. 그들은 별다른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서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가장 효과적인 공격법을 찾아낸다.
때론 검진을 형성하고, 때론 혼자 움직이며 상대를 빠르게 말살한다.
단주의 발이 정문을 넘어섰다.
당연히 의선문 안에는 의선문의 무공을 익힌 무사들도 있고, 하인들도 있다. 그리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의원들도 있다.
단주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무공을 익힌 무사들이었다. 모두 다섯이었는데 정문을 들어서는 단주를 쳐다보며 뭔가 말을 꺼내려 했다.
그들이 무사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단주의 손에서 비수가 날았다.
쉬쉬쉭!
퍼벅!
“커억!”
비수는 정확히 무사들의 목을 꿰뚫었다. 무사들은 자신의 목으로 비수가 날아오는 것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흑전사들이 의선문의 담장을 넘었따. 그 뒤를 느긋하게 따라가는 지휘자들이 보였다.
단주는 흑전사들이 자행하는 살육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웬 놈들이냐!”
“막아라!”
“사람들을 더 불러와! 적의 수가 많다!”
채채챙!
여기저기서 소리치는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선문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비록 환자들이 많긴 하지만 그 수만큼 무사들도 많다. 그리고 고수들도 많다.
일반 무사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은 흑전사에게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흑전사들은 엄청나게 강했다.
사방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흑전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고수들이 등장한 것이다.
단주는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쉽지는 않군.”
처음부터 간단히 끝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의선문은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니었다. 흑전사들의 전진이 더뎌진 것을 보니 마염기가 더더욱 아쉬워졌다.
그와 흑전사 오십이라면 이보다 훨씬 좋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단주는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곳에 있는 고수들은 흑전사들이 상대할 것이다.
단주가 상대할 사람은 의선문주였다. 의선이라 불리는 만큼 무공도 탁월하지만 이길 자신이 있었다. 단주의 앞을 몇몇 무사들이 막아섰지만 단주의 손 아래 순식간에 고혼이 되어 버렸다.
단주는 그렇게 의선문 깊은 곳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니 오히려 더욱 사람들이 없었다. 대부분의 무사들이 흑전사와 싸우기 위해 밖으로 나간 것이다. 단주는 내심 생각보다 일이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따.
의선문의 중심부라 생각되는 곳에 작은 전각이 하나 서 있었다. 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각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문이 열린 틈으로 한 사람이 보였다. 그가 바로 의선이었다.
단주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의선 옆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별로 위협적인 느낌이 없었기에 일단 신경을 껐다. 의선 하나만 상대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다른 사람은 다 죽어 나가는데 문주라는 사람이 여기서 혼자 유유자적 하고 있어도 되나?”
단주의 말에 의선이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스를 일어나려던 참이었네.”
의선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전각 밖으로 나갔다. 마치 전각 안에 있는 사람을 다치지 않게 배려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당연히 단주도 그것을 눈치챘다. 그는 항상 싸움은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단주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그대로 전각 안으로 몸을 날렸다. 문을 통하지 않고 그냥 벽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갈 기세였다. 의선은 그런 단주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