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80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독고운은 그렇게 지시를 내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머리를 식히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일행이 형산 근처에 있는 무림맹 지부에 도착한 것은 유가장을 떠난 지 꼭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첫날, 상당히 무리한 탓에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단축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날 단형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면 날이 밝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림맹 지분느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였다. 하지만 뇌옥(牢獄)정도는 있었다.
비록 지부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무림맹이었다. 상당한 수준의 무사들이 여럿 있었다. 마염기를 인계해도 잘 지켜낼 수 있을 듯했다.
마염기를 비롯한 사도련 무사들을 연계하는 것은 제갈린이 맡아서 했다. 제갈세가는 무림맹의 큰 축이었다. 당연히 제갈린 역시 상당한 힘이 있었다.
그렇게 마염기를 무림맹 지부에 인계한 일행은 다시 남창을 향해 출발했다.
사실 제갈린은 무림맹 형산 지부에서 조금 머물렀으면 했다. 하지만 단형우가 바로 움직이니 어쩔 수 없었다. 단형우에게 뭔가를 자연스럽게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우문혜가 유일했다. 그 우문혜가 별 상관 않고 가만있으니 다른 사람들 역시 그냥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당호관은 특히 기분이 저조했다. 당호관이 단형우를 따라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천뢰를 완성시키는 것. 그래서 단형우가 없는 곳에서도 지금처럼 천뢰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바쁘게 움직이니 수련조차 할 시간이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일행은 불만을 가득 안고 무림맹 형산 지부를 나섰다.
“이제 남창으로 가실 건가요?”
제갈린이 다소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일행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단형우가 걸음을 옮기려다가 잠시 멈춰 섰다. 이렇게 또 걸어가면 언제 남창에 도착하지 알 수가 없다. 조금 더 빨리 남창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검왕과 검마가 무사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조금 빨리 가고 싶다.”
단형우의 말에 일행이 긴장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단형우가 더 빨리 가겠다고 말한다. 대체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일행이 거의 동시에 굳는 모습을 보고 단형우는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간다면 훨씬 빨리 갈 수 있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를 데리고 더 빨리 가고 싶었다.
“한 번 해 봐야겠군.”
단형우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일행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뭔가 또 새로운 것을 보여줄 모양이었다.
“뭘 하시려는 건데요?”
우문혜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단형우는 우문혜를 빤히 쳐다봤다.
“처음 해 보는 거지만 아마 될 거다.”
단형우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우문혜는 망설이지 않고 단형우의 손을 잡았다.
단형우는 나머지 손도 내밀었다. 단형우의 손이 우문혜가 서 있지 않은 쪽으로 향했다. 일행은 그것을 보고 단형우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제갈린이 냉큼 달려가 단형우의 손을 잡았다. 일행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런 제갈린을 쳐다봤다. 제갈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지만 당당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궁금해서요.”
제갈린의 대답을 듣고도 일행은 의심의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단형우의 말이 이어졌다.
“나머지도 다 손을 잡아.”
남은 사람은 당호관과 당문영, 그리고 영사였다. 먼저 당문영이 제갈린의 손을 잡았고, 당문영의 손을 당호관이 잡았다. 영사는 우문혜의 손을 잡으려다가 잠시 멈칫 하고는 당호관에게 걸어가 손을 잡았다.
그렇게 모든 일행이 손과 손으로 연결되었다.
“절대 놓치지 마라”
단형우의 말에 일행의 눈에 의아함과 긴장감이 동시에 어렸다. 그리고 단형우가 한 발 걸었다.
화아아악!
어마어마한 압력이 일행을 덮였다. 그나마 단형우의 손을 잡고 있는 우문혜와 제갈린은 나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압력을 견뎌야만 했다.
단형우에게서 먼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받는 압력이 강했다. 덕분에 가장 마지막에 있는 영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손을 놓쳐 버렸다.
뒤이어 당호관과 당문영의 손이 떨어졌고, 단형우의 걸음이 멈추기 직전에 당문영이 떨어져 나갔다.
단형우가 그저 한 걸음 걷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제갈린과 우문혜는 너무 놀라 점점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단형우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두 여인의 눈앞에 유가장이 보였다.
“어, 어떻게 유가장에……”
무려 이틀 동안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달려서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던 무림맹 형산 지부였다. 헌데 그곳에서 다시 유가장으로 오는 것은 그저 한 걸음뿐이었다.
“마,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죠?”
제갈린이 다시 경악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단형우는 그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놓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듣는군.”
단형우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제갈린은 그곳에 나머지 일행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당문영의 손을 놓쳤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제갈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예?”
제갈린이 당황하며 단형우게 물었다. 단형우는 그런 제갈린을 가만히 쳐다봤다.
“중간에 떨어졌겠지.”
제갈린의 표정이 멍해졌다. 중간이라면 형산에서 유가장으로 오는 길 중간에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한 걸음에 여기까지 왔으니 손을 일찍 놓친 사람은 형산에 더 가까울 것이고 늦게 놓친 사람은 유가장에 더 가까울 것이다.
제갈린과 우문혜가 전혀 새로운 경험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 단형우는 잠시 왔던 길을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걸었다.
단형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제갈린은 더 이상 놀랄 힘도 없었다.
“우, 우리 조금만 쉬죠.”
근처에 있는 돌이 보였고, 그 위에 앉았다. 우문혜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에 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단형우가 다시 나타났다. 당문영의 손을 잡고.
영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저 너무나 강한 압력에 손을 놓친 것뿐인데 주변 환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분명히 무림맹 형산 지부에 있었는데, 주변에 사람들이 보였다. 이곳은 꽤 번화한 마을의 장터였다.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확인한 후에야 이곳이 형산에서 백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백 리나?’
영사는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생각하던 영사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 버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문혜를 찾는 일이었다. 물론 단형우 옆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만일 자신처럼 이렇게 떨어져 나왔으면 상당히 곤란하다.
“그럼…… 남창으로 가야 하나?”
원래 목적지는 남창이었으니 그리고 가야 했다. 그것이 영사가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앞으로는 거의 쉴 시간이 없을 것이다. 우문혜를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호관도 영사와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웠다. 강한 압력에 눈을 뜰 수 없었고, 당문영의 손을 놓치는 순간, 놀랍게도 물에 빠져 버렸다.
잠시 동안 물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당호관은 주변을 살피고 아연했다. 강 한가운데였다.
비록 작은 강이긴 하지만 그래도 얕지는 않았고, 그곳에 빠진 것이다.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당호관은 물에서 나가 내공으로 물기를 말려 버렸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이 민가가 보이는군.”
이대로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사라졌다. 민가에 가서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이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민가가 있던 곳은 작은 마을이었다. 당호관은 친절한 마을 사람들 덕분에 간단히 요기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악할 만한 사실을 알아냈다.
당호관이 있는 그곳은 호남과 강서의 경계였다. 그 경계에 있는 작은 강이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고작 반걸음 정도 걸은 것 같거늘.’
당호관의 모에 쏟아진 압력은 어마어마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움직일 수 있었던 거리는 반 보 정도였다. 그 정도에서 자신이 손을 놓친 것이다.
당호관은 자신에게 일어난 이 믿을 수 없는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당문영을 찾아야 했다. 당문영은 당가의 미래 중 하나였다.
“일단 남창으로 가야 하나?”
그렇게 당호관도 남창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당호관 역시 영사와 마찬가지로 거의 쉴 틈이 없이 달릴 생각이었다. 당문영에게 무슨 일이라도 새기면 견딜 수 없을 테니까.
한편, 유가장 앞에 모인 세 여인은 여전히 경악스런 눈으로 단형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한 거죠?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건가요?”
제갈린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 한 걸음 걸었을 뿐이다. 물론 눈을 감고 있어서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그랬다. 헌데 그 한 걸음이 형산에서 유가장을 이어 버렸다.
단형우는 제갈린에게 그런 것을 친절히 설명해 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은 단형우도 그냥 할 수 있을 뿐, 설명이 불가능했다.
보통 사람에게 어떻게 숨을 쉴 수 있냐고 묻는다면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것이다. 방금 단형우가 한 일이 바로 그랬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다음은 남창이다.”
단형우의 간단한 말에 제갈린은 입을 다물었다.
“그, 그것을 또 하실 생각이신가요?”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린의 눈에 어렸던 혼란이 서서히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짙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고야 말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어디쯤 있나?”
단형우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제갈린 뿐이었다. 제갈린은 잠시 방향을 가늠했다. 그리고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방향으로 곧장 가면 아마 남창이 나올 거예요.”
제갈린은 진법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방향을 설정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유가장에서 남창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제갈린은 대강이나마 그것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거리는?”
제갈린의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졌다. 제갈린은 중원전도(中原全圖)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달리 삼봉이화(三鳳二花) 중 백봉(白鳳)이 아니었다.
“오백 리쯤 되는군요.”
“그게 몇 걸음이지?”
제갈린은 갑자기 말문이 꽉 막혔다. 몇 걸음이냐니. 하지만자동적으로 머릿속에서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충 열장이면 다섯 걸음쯤 된다.
“삼십만 보(步) 정도 되네요.”
거의 질문과 동시에 나온 답이었다. 우문혜와 당문영은 제갈린의 계산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유가장에서 남창까지의 거리를 추측하는 것도 놀라웠고, 그 거리를 순식간에 걸음으로 바꿔 버리는 계산 속도도 놀라웠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마라.
단형우의 말에 세 여인이 긴장했다. 그리고 결국 방법을 바 꿨다. 제갈린과 당문영이 단형우이 손을 각각 잡고, 우문혜는 단형우를 뒤에서 끌어앉았다.
제갈린은 단형우의 손을 꽉 쥐며 눈을 부릅떴다. 이번에는 절대 눈을 감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단형우는 세 여인이 자신을 붙잡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화아아악!
강렬한 압력이 쏟아졌다. 너무나 압력이 거세서 눈이 터져 버릴 것 같았지만, 제갈린은 끝까지 참아냈다.
그렇게 한 걸음이 끝났다.
일행은 어느새 남창, 그것도 의선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번에는 모두 단형우의 몸을 직접 잡고 있는 덕분에 아무도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의선문이네요.”
제갈린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압력이 거세게 그래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온통 시야가 새까맣게 변해 버린 타셍 눈을 감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정말 대단해요. 단 공자님. 이렇게 단숨에 남창에 올 수 있다니.”
우문혜는 단형우를 꼭 끌어안은 채 말했다. 제갈린과 당문영은 어느새 손을 놓고 떨어졌는데, 우문혜는 주변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뒤에서 단형우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제 다 왔는데 그만 놓으셔야죠.”
보다 못한 제갈린이 우문혜에게 말하자 우문혜는 잠시 제갈린을 쏘아보고는 슬며시 팔을 풀었다.
그리고 단형우를 선두로 일행은 의선문 안으로 들어섰다. 의선문의 정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었다.
검마는 의선문을 구한 영웅이나 다름없었기에 상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검마는 홀로 방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검마가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 금마공이었따.
검마 역시 검왕과 마찬가지로 몸을 혹시시키면서 달려왔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검왕과 많이 달랐다. 검마는 꽤 많은 내공을 비축한 상태로 의선문에 도착했다. 덕분에 검왕의 위기도 구했고, 의선무도 구해냈다.
‘이건 모두 금마공 때문이다.’
오래 전 금마공에 당한 경험이 떠올랐다. 당시 금마공을 펼칭 이는 지금의 무림맹주인 독고운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독고성이었다.
독고운은 백검문 출신이다. 하지만 금마공은 백검문의 독문심법이 아니다. 금마공은 독고운의 아버지인 독고성이 우연한 기회에 얻은 신공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독고운은 무림맹주가 될 수 있었다.
당시 검마는 백검문주인 독고성을 만나 금마공을 겪었다.
‘온몸의 기맥(氣脈)이 터져 버리는 줄 알았지.’
당시 독고성은 금마공의 성취가 모자랐다. 덕분에 검마는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공도 되찾을 수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무공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아니면 죽어 버렸을 것이다.
검마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다시 생각해도 섬뜩했다. 하지만 생각해야만 했다.
‘그건 분명히 금마공이었다.’
얼마 전 만났던 그 황의 사내가 펼친 것은 분명히 금마공이었다.
독고성을 만나서 한 번 금마공을 겪어 봤기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황의 사내의 금마공은 독고성이 펼칠 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았다.
‘그런데도 통하지 않았다고? 대체 왜?’
검마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눈을 뜨고 침상에서 내려온 검마는 검을 들고 방에서 나갔다.
의선문에서 검마가 쓸 수 있는 개인 연무장까지 준비해주었다. 어차피 당분간 의선문의 문도들은 연무장을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 테니 생색이라도 낼 심산이었다.
어쟀든 검마로서는 마음껏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았다. 검왕이 떠나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었으니까.
방 근처에 있는 연무장에 도착한 검마는 가볍게 검을 뽑았다. 이렇게 생각이 복잡할 때는 검에 몰입해 모든 것을 잊는 것도 한 가지 방편이었다. 어차피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는 것은 검마의 성격에 맞지도 않았다.
연무장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는 검마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무(劍舞)였다. 마기가 극도로 절제된, 그리고 화려하게 폭발하는.
검마가 한창 검무에 몰두해 있을 때, 연무장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검마는 눈까지 감고 검무에 몰입하다가 불청객이 나타난 것을 알아채고 눈을 떴다. 검무를 중단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당황스런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의선문을 위기에서 구한 지 몇 시진 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저 사람이 여기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설마 자신을 쫓아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검마는 검무를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단형우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