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85
천영의 눈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장중하고 무거웠다. 좌중은 천영의 눈빛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앞에 내세운 흑전사는 철강시를 만들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이 밝혀졌소!”
천영의 말은 모두의 심장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철강시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사방이 웅성거렸다. 철강시는 그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비록 수백 년이나 지났지만 과거 혈교가 무림을 피로 물들이던 시기 사람들을 가장 공포에 떨게 했던 존재가 바로 강시였다. 당시 혈교가 보유하고 있던 철강시와 혈강시는 무림의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철강시라는 말은 사람들의 가슴에 공포심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분노를 만들어 냈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동안 사도련이 행했던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사도련은 흑전사를 이용해 문파들을 무너뜨리면서도 나중에 어떻게 해서든 흑전사의 시체를 회수해 갔다. 철강시라는 것이 개입되자 그 의문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크하하핫! 그걸 이제 알아봐야 이미 늣었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좌중이 크게 술렁였다.
쉬리리릭!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꼐 수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내렸다. 하나같이 흑의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조차도 옷 색깔과 마찬가지로 새까맸다.
나타난 흑의인은 서른 정도였다. 정천맹 앞마당에 모임 무림인의 수가 수백을 헤아릴 정도니 너무나 미약한 수였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소리는 모두 공황 상태로 빠드리기에 충분했다.
“네놈들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철강시의 위력을 마음껏 즐겨보거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른 흑의인들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철강시들의 움직임은 절정고수에 맞먹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은 도검이 통하지 않았다.
“크아아악!”‘
“커억!”
여기저기에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상대는 고작 서른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외침을 기점으로 무림인들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일단 철강시들에게서 거리를 둔 후, 조직적으로 철강시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방으로 검기가 날았고, 폭음이 뒤따랐다. 하지만 철강시는 그런 정도로 막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피해가 잇따랐다.
단형우는 철강시가 나타난 순간부터 기운을 방출해 일행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일행은 단형우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것은 검왕이나 검마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뒤로 물러난 일행은 걱정스런 눈으로 철강시에게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가 이 사태를 혀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검왕과 검마도 굳이 자신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단형우가 한 번 검마 휘둘러도 모든 상황이 끝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형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왕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뭔가를 얘기하려는 찰라 일단의 무리들이 장내에 등장했다.
“모두 비켜라!”
그들은 정천맹의 무사들이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들이 등장하고 정천맹주인 천영이 싸움에 가세하고, 철강시들이 산산이 박살나면서 바닥에 잔해를 흩뿌린 것은.
정천맹에 모인 무림인들은 그 경이로운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천영의 무위와 기세를 뇌리에 각인시켰다.
천영은 모든 철강시들을 물리친 후, 여유와 위엄을 잃지 않고 다시 단사으로 올랐다. 단상으로 천천히 올라가는 천영의 등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 보였다.
그렇게 정천맹의 무림대회가 끝났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과도 같은 모습으로.
천섬(天閃)의 주인
무림대회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무림대회란 사람들과 문파간의 단합을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다. 목표는 정해고, 마음도 하나로 만들었으니 이제 서로에 대해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것에는 술만 한 것이 없다.
그렇게 새로운 무림대회가 시작될 때, 단형우 일행은 정천맹에서 나와 다시 객잔으로 돌아갔다.
“충격적이네요, 철강시라니.”
내용과는 달리 제갈린의 말투와 표정은 담담했다. 하지만 당호관은 그럴 수 없었다.
“철강시라니……. 그 마물을 사도련에서 어찌 다시 만드러냈다 말인가.”
“문제는 철강시가 과연 얼마나 있는가 하는 거예요.”
제갈린은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대충 유추했다. 적어도 수 백 구 이상의 철강시가 사도련에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있었다.
“그보다 흑전사에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는 상사도 못했어요. 그저 뭔가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의선문에 있던 흑전사들의 시체들도 훔치려 했던 사도련이다. 당연히 뭔가 비밀이 숨어 있다고 짐작은 했는데 그것이 철강시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쨌든 현재 무림의 상황은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제갈린은 시종 침착함을 유지했다. 오늘 그런 큰일을 경험한 사람답지 않았다.
물론 단형우 뒤에 있었기에 별다른 위협은 못 느꼈겠지만 어쨌든 철강시라는 것은 말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운 병기였다.
“이상하다니? 뭐가 말이냐?”
검왕이 물었다. 검왕 역시 철강시가 나타난 이상 가만히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철강시는 마물이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천하를 도탄에 빠트릴 수도 있었다.
“그들은 왜 정천맹에 나타났을까요? 더구나 이렇게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인 순간에 고작 서른 구의 철강시만 대동하고 말이에요.”
“정천맹이 자신들의 비밀을 알아챘으니 그리 한 것 아니겠느냐.”
검왕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뭔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면 사도련이 정천맹과 대립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그저 정파의 모임이라는 것 외에는.
“사도련이 가장 이를 갈고 있는 존재는 아마 무림맹과 황금련일 거예요. 둘 때문에 몰락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굳이 정천맹에 나타났을까요?”
제갈린의 말에 일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럼 네 말은……”
“오늘 일은 제가 보기에 뭔가 어색했어요.”
제갈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봤다.
“마치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것 같지 않았나요?”
제갈린의 말은 좌중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럼 정천맹이 사도련과 짜고 그런 만행을 저질렀단 말 아니냐?”
검왕이 날카로운 눈으로 제갈린을 쳐다봤다. 제갈린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무엇보다 제갈린은 아직 정천맹을 믿지 않았다.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구나. 의아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정파를 대표하려 모인 자들이 그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당호관도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 검왕이 몇 마디 덧붙였다.
“게다가 패룡은 그렇게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정천맹에는 패룡이 있다. 그 패룡이 사도련과 손을 잡았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제갈린은 조용히 일행을 둘러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전 정천맹주를 의심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천맹주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일만 해도 사실 좀 더 일찍 나섰다면 이렇게 피해가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갈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정천맹주는 의도적으로 상황이 커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경천단의 힘을 보여주기를 원한 듯 보였다.
“끄응, 그래도 쉽게 속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사실 일행이 이렇게 제갈린의 말에 수긍하지 않으려는 이면에는 제갈린이 무림맹 사람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어쨌든 무림맹과 정천맹은 서로 좋지 않은 사이가 분명했으니까.
그렇게 일행이 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염혜미는 천섬을 휘두르고 있었다.
객잔으로 돌아오자마자 단형우의 강렬한 눈빛 덕분에 염혜미는 방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천섬을 꺼내 휘둘러야만 했다. 염혜미는 단형우의 눈빛이 너무나 무서웠다. 단형우의 눈이 빛날 때마다 섬뜩섬뜩 몸이 떨려왔다.
염혜미는 천섬을 휘두르며 단형우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단형우 옆에는 우문혜가 바짝 붙어 있었는데, 그녀 역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염혜미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가볍게 아래로 내려치는 것을 반복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염혜미는 우문혜의 표정을 볼 때마다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우문혜가 단형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단순한 수련을 반복하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
염혜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며칠 전부터 너무 무리했다. 하루 종일 무거운 도를 휘두르려니 정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벌써부터 팔에서 무리라고 신호를 보내온다.
“흐윽.”
결국 힘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염혜미는 조심스럽게 단형우를 쳐다봤다. 단형우의 눈에서 불꽃같은 눈빛이 쏟아졌다. 화들짝 놀란 염혜미는 곧장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천섬을 휘둘렀다.
점점 팔에 감각이 사라져 갔다. 종국에는 천섬을 휘두르는지, 아니면 가만히 서 있는지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 기묘한 감각은 그때 찾아왔다.
찌리릿!
염혜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뭔가 짜릿한 것이 발바닥을 뚫고 몸으로 스며들어왔다. 그 짜릿함은 척추를 따라 솟아올라 정수리로 빠져 나갔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감각이지만 너무나 생생했다. 그 짜릿함이 아직 척추에 남아 찌르르 몸을 울렸다.
“쉬지 마라.”
염혜미는 단형우의 말에 어느새 자신이 천섬을 늘어뜨리고 멍하니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알았어요.”
염혜미는 다시 도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내리쳐다. 그 짜릿한 감각을 기대하면서.
쉬익!
천섬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 감각은 찾아오지 않았다. 염혜미는 실망하지 않았다.
다시 천섬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염혜미의 얼굴은 조금 전까지 그렇게 부러워하며 의아해하던 우문혜의 표정을 닮아갔다.
찌리릿!
“흐윽.”
갑자기 발바닥을 타고 오르는 짜릿한 느낌에 염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휘둘렀고, 그 느낌을 계속 맛볼 수 있었다.
단형우는 흠칫흠칫 몸을 떨며 계속 천섬을 휘두르는 염혜미를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염혜미의 발을 타고 오르는 기운은 미약하긴 했지만 분명히 뇌기(雷氣)였다. 천섬과 땅의 기운이 만들어 낸 뇌기가 발바닥을 통해 몸에 들어와 온몸을 휘저은 후, 정수리를 통해 하늘로 뻗어 올랐다.
천섬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그 기운은 조금씩 더 강해졌다. 물론 단형우를 제외한다면 그렇게 기운이 늘어나고 있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했지만.
단형우는 염혜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예전에도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눌러 버리겠다는 듯 패도적인 기운, 다름 아닌 패룡의 기운이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챘다. 검왕이나 검마가 이렇게 거대하고 노골적인 기운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사도련에 대한 일을 계속해서 논의했다. 밖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단형우가 있었으니까.
“그분이 오시나보네요.”
우문혜가 긴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미 검은 멈춘 지 오래였다. 이렇게 대단한 기세가 온몸을 짓눌러 대는데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우문혜의 시선도 단형우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패룡이 객잔 후원에 들어섰다.
패룡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단형우를 노려봤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단형우를 압박할 수는 없었다. 패룡의 기세는 단형우 근처에도 가기 전에 잔잔한 봄바람처럼 흩어졌다.
패룡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마치 불꽃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단형우는 그런 패룡의 눈을 담담히 마주 봤다.
패룡은 한참이나 단형우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염혜미를 쳐다봤다.
염혜미는 여전히 천섬을 휘두르고 있었다. 패룡이 나타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저 무아지경에 빠져 천섬을 하염없이 휘둘렀다.
천섬과 땅이 반응해 만들어 내는 뇌기를 패룡이 못 알아볼 리 없다. 패룡은 염혜미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뇌기를 보자마자 거대한 기세를 일으켰다.
화아악!
패룡을 중심으로 거센 바람이 쏟아져 나갔다. 그의 옷자락이 미친 듯 흔들렸고, 머리가 위로 솟아올랐다.
“천섬의 주인이 고작 저것인가.”
패룡은 내력을 가득 담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 목소리에 실린 내력은 채 그 힘을 뻗어 내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세상 모든 것에는 그에 걸맞은 주인이 있는 법이다.”
패룡은 그렇게 말하며 단형우를 노려봤다. 하지만 단형우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패룡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손이 슬쩍 허리춤에 있는 도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도를 뽑아 사방을 휘저을 것만 같았다. 긴장감이 장내를 휘감았다.
우문혜는 단형우 옆에 더욱 바짝 붙였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패룡에게 물었다.
“대체 왜 그렇게 천섬을 집착하시는 거죠? 천하의 패룡 어르신이 고작 무기에 목을 매신다는 걸 이해할 수 없네요.”
우문혜의 말에 패룡이 그녀를 쳐다봤다. 그리고 살짝 눈이 커졌다.
후원에 들어서면서 오로지 단형우와 천섬에만 신경 썼기 때문에 우문혜에게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제대로 볼 생각조차 없었다.
헌데 지금 보니 너무나 놀라웠다. 패룡은 우문혜의 미모에 입을 꼭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본 적이 있는 여인이다. 예전 처음 단형우를 만났을 때도 봤고, 정천맹 안에서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이렇게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름답군.”
패룡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부끄러워할 만한 상황이지만 패룡은 그렇지 않았다. 속마음을감출 생각도 없었다.
“왜 고작 무기에 집착하느냐고 했느냐?”
패룡의 목소리는 상당히 부드러웠다. 우문혜는 패룡의 갑작스런 변화에 크게 당황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무공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천섬만이 패검문의 무공을 완성시킬 수 있다. 천섬은 패검문의 것이다.”
패룡의 말에 우문혜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염혜미를 쳐다봤다. 염혜미는 어느새 수려을 멈추고 멍한 얼굴로 패룡을 쳐다보고 있었다.
패룡이 염혜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것을 이리 내라.”
패룡의 너무나 당당한 요구에 염혜미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천섬을 가슴에 꼭 끌어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패룡의 기세에 눌러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넘겨줄 수는 없었다.
방금 전의 경험은 정말로 놀라웠다. 뇌전이 몸속을 관통하는 짜릿함, 그리고 그 항거할 수 없는 힘이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통쾌함이 그녀를 지배했다. 게다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염혜미는 검왕의 손녀다.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갈 때마다 검왕이 내력을 이용해 몸에 기를 불어넣어줬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고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기의 흐름이 반대인 탓에, 기가 흐르는 길도 상당히 약했다. 빈약한 기맥(氣脈)은 외부의 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염혜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런 염혜미에게 외부의 기가 몸속에서 활개 치는 경험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방금 전의 일 덕분에 온몸이 날아갈 듯 상쾌했다. 이것은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 겪는 느낌이었다.
염혜미의 행동에 패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것은 네 것이 아니다. 우리 패검문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