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89
염혜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아. 어차피 자신이 반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천섬의 원래 주인인 단형우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일 아닌가.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염소저.”
“아니에요, 당연한 일인걸요.”
두 여인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단형우는 한 발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쳐다보며 살짝 입가에 미소를 매달았다. 그 미소를 발견한 우문혜가 단형우의 팔에 매달렸다.
사도련의 움직임이 급박해졌다. 사도련은 짐금까지와 달리 갑자기 몰아치듯 움직였다. 사도련의 칼끝이 향한 곳은 바로 황금련이었다.
황금련 역시 사도련이 다시 일어설 때부터 충분히 이런 일을 예상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도련의 힘은 그들의 예측 범위를 넘어섰다.
사도련은 황금련 분타 몇 개를 동시에 공격했다. 황금련은 그 움직임을 미리 읽고 충분히 대비했지만 사도련의 거센 파도를 잠재울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 싸움으로 죽은 사도련의 흑전사들은 고스란히 다시 사도련이 수거해 갔다. 그야말로 완벽한 패배였다. 그 시체들은 철강시가 되어 황금련의 목을 더욱 강하게 조일 것이다. 사도련은 그 이후 황금련의 총단을 공격하겠다고 공언을 해 버렸다.
그리고 수많은 흑전사들이 황금련 총단이 있는 소주를 향해 진격했다. 그 움직임은 너무나 크고 당당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황금련은 돈을 풀었다. 수많은 낭인 무사들을 끌어모으고, 무림 문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황금으로 모은 수많은 무사들을 총단에 집결시킨 채 사도련의 거센 공격을 맞이했다.
사도련은 그야말로 총력을 쏟아 부었다. 련주인 갈천악까지 가세했으니 남아 있는 모든 힘을 일거에 몰아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아직 철강시는 쓰지 않았다. 대법이 제대로 완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철강시는 황금련과 싸운 이후, 남아 있는 강력한 적을 위해 아껴둬야 했다.
자그마치 일천이 넘는 흑전사들이 황금련을 몰아쳤다. 그 힘은 경천동지였다. 황금련은 말 그대로 사도련에 의해 유린당했다.
황금련 총단이 무너졌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렇다고 해서 황금련 자체가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 황금련은 상인들의 모임이다. 힘이 큰 상인들이 모여 힘으로 그들을 핍박하는 무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총단이 무너졌다고 해서, 또 돈을 많이 쏟아 부었다고 해서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황금련의 소련주인 유백상은 자신의 약혼녀인 금유화와 함께 마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다.
스무 명 남짓한 호위무사들을 대동한 두 사람은 사도련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안휘성(安揮省)의 관도를 달리고 있었다.
황금련 총단은 사도련에 의해 완전히 박살났다. 수많은 무사들이 죽었고, 황금련에 속한 상인들과 가족들이 무수히 죽어나갔다.
“과연 그들이 우리를 도와줄까요?”
금유화의 말에 유백상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소. 무림맹과는 손을 잡을 수 없으니 정천맹으로 가야지. 정천맹도 사도련의 습격으로 꽤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아마 우리의 제안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거요.”
“그렇군요. 부디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유백상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고갯짓에는 굳은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래야지, 이 핏값은 어떻게든 받아낼 거요.”
금유화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유백상을 쳐다봤다. 황금련주는 이번 사태로 유명을 달리?다. 즉, 이제 유백상이 황금련주가 된 것이다.
어차피 이번 일이 아니었다 해도 얼마 후면 유백상이 련주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반발은 없었다. 오히려 서둘러 유백상이 능력을 발휘해 이번 일을 원만히 마무리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과연 정천맹이 사도련을 막아낼 수 있을까요? 전 너무 걱정이 돼요.”
금유화는 사실 정천맹이 그리 미덥지 못했다. 그들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최근 패룡도 죽었다고 하고, 뭔가 삐걱거리는 듯해서 못내 불안했다.
게다가 사도련의 힘을 눈앞에서 봤다. 사도련의 흑전사들은 정말로 무서웠다.
흑전사는 온몸이 난도질 당해 죽으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정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적을 죽이려 발버둥쳤다. 그들의 몸은 거무튀튀했지만 눈은 핏빛이었다. 너무나도 섬뜩한.
“얼마 전 정천맹을 습격했던 철강시들이 아예 박살이 났다고 했소. 정천맹을 무시하지 마시오. 내가 보기에는 무림맹과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으니.”
유백상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런 것이다. 유백상은 상인답게 물건의 값어치를 매기는데 능숙했다. 그것이 사람이거나 혹은 어떤 단체라도 유백상의 머릿속에서 값이 매겨졌다.
하지만 그래도 무림맹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무림맹에도 연락을 넣어 보시는 것이 어떤가요? 어차피 그들도 사도련과 싸워야 하니 별다른 손해 없이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무림맹이 알아서 스스로 싸우는 건 상관없소. 하지만 우리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 발밑으로 들어가야하오. 무림맹에는 상인들의 이권과 연관된 곳이 너무 많소. 자칫하면 우리 황금련의 상권이 무너질 수도 있소. 무림맹은 너무 위험하오.”
금유화도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맹에 속한 수많은 세가들은 각지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천하 각지를 아우르는 황금련에게는 사실 적이나 다름없다. 그들에게 약점을 잡혀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천맹은 다르다. 정천맹에 속한 문파들은 대부분 상권과는 별 관계가 없는 곳들이다. 어떻게 그런 큰 단체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유백상은 그런 점도 노리고 있었다. 아마 정천맹은 돈이 모자랄 것이다. 황금련과 정천맹이 손을 잡으면 서로 아쉬운 부분을 긁어줄 수도 있었다.
물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잡아먹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무림맹보다는 훨씬 낫다. 무림맹에 손을 벌리면 황금련은 갈기갈기 찢어질 테니까.
“합비에 도착한 모양이네요.”
마차 밖을 살피던 금유화가 말했다. 유백상은 심호흡을 한후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황금련의 미래가 얼마 후 있을 몇 마디 말로 결정될 것이다. 지금부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사도련의 기세가 정말로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에요.”
제갈린의 말에 방에 모여 있던 일행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됐다. 일행은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냈다.
객잔 후워에 있는 방들 중 가장 큰 곳에 모여 이렇게 제갈린이 물어오는 소문이나 정보를 듣고 앞으로의 일을 각자 계획했다.
어차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사도련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사실 정천맹과의 일이 아니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검왕은 어차피 사도련과 싸워야 한다. 비록 황금련의 계략이긴 했지만 사도련을 무너뜨린 것은 검왕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검왕이 싸운다면 검마도 당연히 싸운다. 검마 역시 천마성 사람이라는 껍질을 벗겨낼 필요가 있었고, 검왕과 꽤 정이 들어 버렸으니까.
당호관은 단형우 근처에서 천뢰를 쓰고 싶어 벌써 몸이 달아 있었다.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어떻게든 졸라서 싸움에 참여 했을 것이다. 이번 싸움은 천뢰의 완성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당호관이 참여하니 당연히 당문영도 참여한다. 그리고 제갈린과 우문혜는 단형우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참여할 것이다.
단형우는 이들 모두를 지키기 위해 따라간다. 어차피 이렇게 모두 사도련과 싸워야 할 입장이었다.
어쨌든 어차피 싸우게 될 테니 사도련의 행보를 자세히 아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갈린이 열심히 물어오는 정보를 이용하면 너무나 편했다.
“무슨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느냐?”
“황금련 총단이 무너졌어요. 련주는 죽었고, 소련주만 간신히 도망간 모양이에요.”
제갈린의 말에 검왕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결국 그렇게 되는구나.”
검왕의 말에 제갈린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급히 말을 이었다.
“그 소련주의 약혼녀인 금유화 소저 역시 무사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것 다행이구나.”
제갈린의 말에 검왕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어쨌든 금유화와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그리고 단형우가 아니었다면 지켜주지 못할 뻔한 일도 있었다.
당시 일을 떠올리니 꽤 각별한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덕분에 단형우도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래도 황금련이 그리 쉽게 무너질 곳은 아닌데 정말로 생각보다 사도련의 힘이 상당한 모양이에요.”
당문영이 자신의 의견을 말?다. 제갈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더구나 사도련은 이번 싸움에 철강시는 하나도 동원하지 않았어요. 시체는 고스란히 회수해 갔고요. 아마 우리와 싸울 때는 훨씬 더 강할 거예요.”
일행은 철강시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는 말에 살짝 놀랐다. 그만큼 사도련의 힘이 강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황금련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돈의 힘은 쓰기에 따라서 어떤 무림 문파보다 강력한 법이다.
“놀랍구나.”
“더 놀랄 일은 황금련이 정천맹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에요.”
제갈린의 말에 일행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예측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황금련으로서도 정천맹 정도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군.”
검마가 핵심을 꿰뚫으며 중얼거렸다. 그 말이 일행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렸다.
특히 무림맹 소속인 제갈린은 더 심했다. 아무리 정천맹과 무림맹이 같은 정파라 하더라도 가는 길은 다른 법이다. 사이좋게 손을 잡고 갈 수는 없었다.
황금련은 무림맹 입장에서도 그렇게 큰 힘을 얻어서 좋을 것 없는 단체였다. 무림맹의 이권이 상당히 흔들리게 될 것이다. 어쩌면 정파끼리 이권다툼을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싸우기만 하면 되는 쉽지 않느냐.”
검왕의 말에 제갈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숨을 쉬지 않을수 없었다.
“무림맹은 어쩌고 있느냐?”
검왕의 질문에 제갈린은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무림맹은 아직도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도련이 무림맹을 도발하긴 했지만 심하지 않았다. 그보다 정천맹이 더 크게 개입해 버렸다.
사도련과 정천맹의 싸움은 이미 확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 상황에서 무림맹이 굳이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제갈린은 그것이 너무 아쉬웠다. 자신들이 참여하는 싸움이다. 천하의 검왕과 검마가 힘을 합했다. 그리고 당호관의 천뢰는 또 어떤한가.
게다가 단형우도 있다. 비록 싸움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기로 했지만 일행이 다치는 것을 가만 보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분명히 큰 힘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이긴 싸움이다. 사도련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무림맹은 더 눈치를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제갈린을 너무 답답하게 만들었다.
무림맹에서는 지금 단형우 일행이 가지고 있는 힘을 지나칠 정도로 과소평가 하고 있었다.
제갈린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된 단형우를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같은 자세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아…….”
제갈린의 입에서 한숨이 새나왔다. 부디 무림맹이 늦기 전에 움직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한숨이었다.
사도련의 움직임은 단순했다. 당연히 알기 쉬웠고, 예측하기도 편했다. 사도련은 곧장 정천맹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소주에서 장사까지는 결코 짧지 않은 길이다. 굳이 정천맹에서 기다려 맞을 이유는 없었다.
미리 길목을 막고 기습을 하거나 아니면 미리 싸우기 좋은 자리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사도련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사도련의 광기와 집념은 장사에서 편히 쉬고 있는 정천맹에도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미친 무사들이 장사에 몰려들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사도련이 그냥 정천맹만 상대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장사에 살고 있는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철강시들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그냥 마물에 불과하다. 적아를 가리지 않고 피에 미쳐 날뛰게 된다. 당연히 가장 먼저 목표가 되는 것은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정천맹은 사도련을 맞이하러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만일 사도련이 제정신이라 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집에서 가만 기다리다 보면 기세가 떨어진다. 기세를 잃으면 싸움에 이기기 힘들다.
진법을 이용해서 상대할 수 있지만 사도련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작정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근처를 초토화시키는 작전으로 나오면 정천맹만 곤란해진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도련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결국 정천맹은 대부분의 힘을 집결시켜 사도련을 중간에 맞아 싸우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단형우 일행도 정천맹의 움직임에 맞춰 강서(江西)를 향해 출발했다.
“이렇게 느긋하게 움직여도 되는 건가요?”
당문영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제갈린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제갈린의 자신 있는 대답을 들었지만 당문영은 여전히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일행이 움직이는 곳은 정천맹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게다가 정천맹보다 훨씬 늦게 출발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련과 부딪친 다음에 도착하면 아마 정천맹주가 좋아하지 않을 게다.”
보다 못한 검왕이 말을 덧붙였다. 제갈린은 일행을 둘러봤다. 대부분이 당문영이나 검왕과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듯했다. 표정이 과히 좋지 않았다.
그들은 무림인, 그것도 고수다. 일단 싸우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누구보다 화끈하게 나서서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검왕이나 검마, 그리고 당호관은 훨씬 더 심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마 우리가 먼저 도착할 거예요.”
제갈린의 말에 검왕이 눈을 빛냈다.
“따로 정천맹주와 얘기라도 오갔던 것이냐?”
“그런 것은 없어요. 단지 우리는 다로 움직이겠다고 미리 통지를 했을 뿐이에요.”
미리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갈린에게 뭔가 다른 생각이 있다는 뜻이다.
일행의 표정에서 지독할 정도의 궁금증을 읽은 제갈린은 할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마 정천맹도 조만간 길을 바꿀 수밖에 없을 거예요. 우리가 가는 길이 가장 빨리 사도련을 만날 수 있는 길이에요. 그러니 너무 서둘러 가면 자칫 우리끼리 사도련과 부딪칠 수 있어요.”
제갈린의 말에 일행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정천맹은 길을 헛짚었어요. 사도련은 그쪽으로 가지 못해요. 아마 미리 도착해서 진을 설치하는 것도 못할 거예요.”
제갈린의 말에 검왕은 물론이고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일행은 모두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사도련은 예전의 사도련과는 많 이 달라요. 머리를 쓰고 있어요. 반면 정천맹은 그렇지 않더군요.”
제갈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쩌면 일부러 속아 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 판단이 맞을 것이다. 정천맹에는 제갈세가를 능가하는 진법 전문가들이 있다.
그렇게 진법에 능한 사람들을 끌어들일 힘이 있다면 당연히 이런 대규모 전투에 능한 사람도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틀린 길을 고집한다는 것은 뭔가 의도하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왠지 모르지만 정천맹주는 지금 진법 없이 사도련과 정면으로 충동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제갈린에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와도 같았다.
제갈린이 사도련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무림맹과 제갈세가의 정보수집 능력 덕분이다.
만일 정천맹에 그 정도 능력이 없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명백히 의도하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갈린이 판단하기에 정천맹은 무림맹 못지 않은 정보수집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너만 믿고 따라가면 된다는 뜻이로구나.”
제갈린이 혼자서 딴생각을 하는 동안 검왕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정확한 판단이다. 제갈린의 능력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최근에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능력들은 감탄할 만하다.
“그럼 조금만 속도를 높여 볼까요?”
제갈린은 그렇게 말하고 살짝 몸을 날렸다. 지금까지는 느긋하게 걸어갔지만 이제부터는 속도를 조금 높여야 했다. 그녀가 목표로 하는 곳은 강서의 남쪽, 백운산 근처였다. 아마 그곳이 격전장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곳에 너무 빠르지도, 또 너무 늦지도 않게 도착해야 했다. 가장 이상적인 시간은 정천맹이 도착한 직후, 그리고 사도련이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제갈린이 몸을 날리자,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아직 무공을 익히지 못해 경공을 쓸 수 없는 염혜미는 검왕이 안고 달렸다.
단형우는 모든 일행 뒤에서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걸음걸이는 여유가 넘쳤지만 일행과의 거리는 항상 일정했다.
항상 앞만 보고 달렸지만 사방으로 퍼진 감각은 주변 지형과 상황을 자동으로 끌어왔다.
일행을 보호하겠다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으로 이끌어간 것이다.
예전 첫 표행을 나갔을 때,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상당히 달랐다. 지금은 감각이 미치는 모든 범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단형우는 또 다른 놀잇감을 발견할 아이처럼 입가를 살짝 늘이며 걸어갔다.